[문학칼럼] 편혜영의 '호텔창문'에서 보는 특권과 서민의 죄의식에 관하여
민병식
편혜영(1972 ~ ) 작가는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소설집으로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소년이로’, ‘어쩌면 스무 번’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홀The Hole’, ‘죽은 자로 하여금’ 등이 있다. 수상 실적으로는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셜리 잭슨상, 김유정문학상, 제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기도한 이 작품은 인간의 죄의식을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죄가 없는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왜 죄없는 죄의식이 주인공의 머리를 지배하는 가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죄없는 자에 대한 과도한 죄의식의 부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라는 명제를 던진다.
큰집에 얹혀살게 된 주인공 운오를 군식구 취급했던 사촌형과 사촌 형이 있다. 운오는 그러나 사촌형과 그 친구들을 따라 다닌다. 이유는 따돌림 당할까봐서이다
형들은 운오에게 뻑하면 이렇게 말한다.
. “이 새끼 버리고 갈까?”
형들과 형들의 친구들과 강에 갔다가 처음에는 발만 담궜으나 물에 빠지고 운오는 사지를 내저어 간신히 바위를 밟고 빠져나오지만 바위는 운오의 사촌형이었다.
사촌형 그를 살리고 대신 물에 빠져 죽은 것이었다. .
자라면서 큰 어어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운오에게 죄를 상기시켰다.
“네가 누구 덕에 산 줄 알아야 한다.”
운오는 사촌 형의 삶을 대신해 살아야만 했고 형의 죽음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떠안아야 했다. 그의 삶은 없었다.
사촌형의 열아홉 번째 기일이다. 한때 큰어머니는 운규의 기일 때마다 강에 함께 갔던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제삿상 앞에서 그날의 일을 상기시키게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의 친구들은 오지 않았는데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군대에 가기도 했으며, 멀리 유학을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운오는 그러지 못하였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빠진 적 없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해에 건축회사의 인턴사원으로 채용되어 바쁜 탓에 참석하지 못했을 때 큰 어머니가 다음날 아침 회사로 찾아와 별것 아닌 운오의 말에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점심시간이 지나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제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기차에서 내리며 재킷을 입고 역 건너편 식당에서 해장국을 시켰다.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를 보았고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그날 강에 함께 갔던 형의 친구 들 중 한 명이었다. 그도 곧 운오를 알아보았고 넉살 좋게 운오 맞은편 의자를 빼더니 양해도 구하지 않고 앉으며 말을 붙여왔다.
식당을 나서는데 그가 뒤따라 오며 한잔하고 가자는데 운오는 가봐야 한다고 대답했고 그와 멀어질 작정으로 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역에서 심상치 않게 솟구치는 흰 연기를 보았고 웅성거리며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역 뒤편의 허름한 호텔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다행히 호텔은 리모델링 예정으로 영업을 하지 않아 투숙객은 없다고 했다. 불길은 더욱 크게 피어올랐고 불똥이 떨어질 때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운오는 오층 끝 방에 누군가 어른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갇혇음을 알리려는 듯 창가 가까이 서 있었다. 손을 흔들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기에 눈에 띄지 않은 모양이다. 운오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기 좀 보세요. 오층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요.'
옆 사람이 운오에게 되묻고 그걸 들은 사람들은 사람이 있다며 큰 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고 운오가 정확하지 않다고 정정할 새도 없이 앞쪽에 있는 소방대원에게 얘기가 전해져 소방대원이 5층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연기는 옆으로 넓게 퍼졌고 불길 속으로 들어간 대원도, 창가를 서성이던 사람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운오는 자신이 사람을 살린 건지 사지로 밀어 넣은 건지 알 수 없어 겁이 나기 시작했고 길을 꽉 채운 구경꾼들 틈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운오가 불구경을 할 때 여러 번 큰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큰아버지의 메시지도 몇 통이나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그날의 일을 상기시키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에 분노하면서 제사에 참석할 때까지 전화를 걸어댈 것이다. 운오는 휴대전화를 꺼버리고선 아까의 그 형이 있을만한 술집을 찾아 나섰다. 일곱 번째로 열어본 술집에서 그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이번에는 운오가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주인에게 잔을 더 달라고 했다. 시간은 많이 흘렀고, 형의 죽음과 얽힌 죄책감 같은 게 없는 사람이라 부럽기까지 하다.
그에게서 수도관 보온재 공장의 화재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공식적인 화재 원인은 자연발화로 판명이 되었지만, 형의 친구는 공장에서 해고되었다. 자연발화인지 자신의 실수로 인한 것이었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하도 피곤해서 담배나 피우려고 나왔는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탄내가 나서 신고부터 했다고 했다. 빠른 신고로 초기 진압에 성공했음에도 그는 회사에서 해고당했는데 그의 흡연으로 인해 불이 붙었다고 생각한 사장이 그를 해고했던 것이었다. 억울하겠다는 운오의 말에 꼭 그렇지도 않다며 담뱃불을 껐는지, 꽁초를 그리로 던졌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거였다.
'불이 번지니까 말이야. 내가 담뱃불을 끄기는 했는지, 꽁초를 어디에 버렸는지, 정말 야적 장 쪽으로 던졌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윤오의 삶, 화재 사건으로 인해 실직한 죽은 사촌형의 친구,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확신할 수 없는 죄의식에 대하여 말한다. 자신의 잘못도 없는데 비합리적인 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사회 서민의 부조리한 모습 들, 권력있는 자들은 죄를 지어놓고도 철면피처럼 모르쇠로 일관하며 죄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함을 보면서 힘없는 서민에게만 적용되는 모순의 죄의식이 어떤 불상사에 대해 희생의 댓가로 쓰여질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