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_()_
#염불왕생 #염불하여 앉아서 왕생하다
대만 의란(宜蘭)에 매일 십만 번씩 염불하는 노보살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노보살님은 아주 간단하여 염불밖에 할 줄 몰랐고
그 밖의 독경 등은 전혀 할 줄 몰랐습니다.
노보살님은 본래 일반적인 민간신앙을 하던 분이셔서
해마다 사람들을 따라 관광버스를 타고 대만섬을 한
바퀴 돌며 여기저기 다니면서 참배를 하셨는데, 이를
“진향단(進香團: 성지순례단과 같은 개념)”이라 불렀습니다.
즉 보통 말하는 세간의 선인(善人)이었지요.
노보살님은 평소에 남의 옷을 세탁해주는 일을 했는데,
집안에 돈 쓸 일이 없었기에 옷을 세탁해서 번 돈을
저축해 두었다가 매년 성지순례를 갈 때 몇 군데 들러서 공양을 하고, 돈을 다 쓰면 돌아와서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느 해에 노보살의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며느리가 불광산을 다니던 신도였기에 시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서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노보살에게
염불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노보살님을 모시고 불광산에서 운영하는
의란에 있는 뇌음사로 갔는데, 절에 계시는 스님께서
노보살님에게 108염주 하나를 주면서 염불을 하라고
가르쳐주시니까 노보살님은 그저 염주만 손에 잡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며느리가 집에다 법당 하나를 설치해놓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며느리는 직장에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집 문을 나서기 전에 며느리는 의자 하나를 갖다놓고서
시어머님께 말씀드렸지요.
“어머님은 여기에 앉아서 염불을 하세요"
그 뒤로 노보살님은 매일 앉아서 줄곧 염불만 했습니다
며느리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노보살님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서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보살님이 그렇게 정진하는 것을 본 며느리는 혼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갔지요.
저녁상을 다 차려놓고 노보살님을 불렀습니다.
“어머님, 식사하세요!” "응 이제 내려가도 되니?"
“그럼요!” "어!"
노보살은 의자에서 내려오자마자 화장실을 먼저 갔습니다.
왜냐하면 온종일 화장실도 가지 않고 줄곧 의자에 앉아서 염불만 하셨으니까요.
며느리도 몰랐었고, 노보살님도 매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며느리가 출근하면 노보살님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이렇게 염불한 것이었습니다.
일요일만 염불을 하지 않았는데, 며느리가 출근을 하지
않아서 노보살님더러 의자에 앉으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보살님은 이렇게 일주일에 여섯 날을 염불하고 일요일 하루만 쉬었지요.
노보살님은 이렇게 일 년을 염불하였습니다.
설을 쇨 때 절에 갔더니, 마침 절에서 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노보살님도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노보살님은 절을 할 줄 몰라서 줄곧 서서 합장만 하였고,
글도 모르기에 경문 역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계신 스님께서 기이한 현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경전의 책장이 뜻밖에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었지요
노보살님은 책장을 넘길 줄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글도 모르고 다들 무엇을 부르는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야할 때가 되면 스스로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스님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계속 절을 하는데 노보살만 줄곧 앉아서 합장하고
합장하고 염불만하고 있었습니다.
노보살님은 이미 의자에 앉아서 염불하는 게 습관 되었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 때 스님은 노보살님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묻지를
않았고, 이상하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이듬해 노보살님은 또 새해에 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왔고 결과도 역시 똑같았습니다.
스님은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보살님에게
불법을 배우면서 깨달은 바에 대해 말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노보살님은 아는 게 없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법을 배운다는 게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저는 인생이 두부와 같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의 목숨은 두부와 같아서 한 번 바닥에 떨어지면
박살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을 소중히 여겨 수행을 잘 해야 합니다."
노보살은 또 말했습니다.
“인생은 마치 물살이 센 폭포와 같습니다."
물살이 센 폭포는 강에서 인연 따라 마구 소용돌이치지
않나요?
“인생이 곧 이러하고 저도 이러합니다.
오늘 복이 있어서 며느리가 저를 데리고 불법을 배우게
되었으니, 마치 폭포에서 언덕으로 건져진 것과 같습니다."
노인께서 비록 글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글을 모르지만 해석은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생생합니까?
노보살님은 ‘박살이 난’ 인생이 인연 따라 표류하다가
이제 불법을 배우고서야 언덕으로 건져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전을 강의하면서도 노보살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생생하지 않습니다.
염불한지 삼년이 되어서 노보살님이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가야겠어, 집으로 가야겠어!"
“친정으로 가시겠다는 건가요?”
“나는 0월 0일에 갈 거야”
며느리는 노보살님이 그날 친정으로 가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보살님이 또 말했지요.
“내가 갈 때 내 형제자매들을 모두 불러오너라.
내가 팥에다 원자를 넣고 원자탕(圓仔湯)을 끓여서
사람들에게 대접할 거야!”
“형제자매가 어디에 있습니까?”
“채당(菜堂)에 있잖아!”
채당이 바로 염불당입니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채식을 하기 때문에 법당에 있는 사형사저(師兄師姐)들이 바로 형제자매였지요.
노인께서 말씀하신 그날에 며느리는 법당의 사형사저들을 모시고 왔지요.
원자를 다 먹고 나서 노보살님은 사람들에게 함께 염불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노보살님은 앉아서 왕생하셨습니다
[글쓴이] 해운계몽(海雲繼夢)법사 2015년 9월 28일
선도대사님의 순수한 정토법문을 공부하는 정토종(홍원염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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