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Bench - 신정숙
독서실에서 재수할때 사람들이 벽보아래 모여 웅성거리는걸 보았다.
읽어보니 국세청공무원 채용공고였다. 일단 시험을 봤는데 40대 1의 경쟁율을 뚫고
합격하여 발령받은 곳이 영등포역전 H세무서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갓 스무살짜리가
그렇게 세무공무원이 되었다. 나의 담당구역은 김포군 4개면(양촌, 대곳, 월곳,검단)이고 입사동기인
M의 담당구역은 나머지 4개면이었다. 아침에 간단히 사무를 보고 서류를 챙겨 영등포에서 강화행버스를
타고 마송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양촌에 가서 세무실사를 하는게 나의 주업무였다.
그때 양촌은 아직 초가집이 많았고 대곳이나 월곳 검단으로 가려면 양촌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양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4거리 별다방에 가끔 갔었고 별다방 아래는 양촌유일의 병원인
박성원의원이 있었다. 어느날 업무차 방문했는데 원장님은 당시 60대 초반으로 6.25당시 해군군의관으로
참전한 경력도 있는 훌륭한 분이셨다. 항상 환자가 많았는데 나에게 깍듯이 존대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양촌하면 그분이 생각난다.
어느날 양촌면 양돈농가들 실사를 마쳤는데 저녁먹고 가라하여 양촌시내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대부분 사오십대 중장년층으로 나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은 분도 계셨는데
나에게 주사님이라 하며 상석을 권하고 술한잔씩 주시길래 먹다보니 막차를 놓쳤다
지금 생각하면 안될일이지만 떠날때 정릉우리집까지 택시를 잡아주셔서 타고온 적도 있다
한번은 김포군 양돈농가 회장님을 만나 실지조사를 마치고 김포읍에서 그분과 저녁을 먹고
술한잔 곁들였는데 그집마담과 내또래 앳된 아가씨가 옆에 앉아서 말동무를 해주었다
서울가는 버스가 끊겨 그집에서 하루밤을 자기로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그아가씨가 방에 들어와서 요밑에 손을 넣으며 춥지않냐고 묻더니 갈생각을 안한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미아리아래 길음동 술집에 있다가 며칠전 이곳에 왔다고 한다
예쁘장하고 때묻지 않은 모습인데 그나이에 이곳까지 흘러왔나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간후에 또 들어와서 왜 또왔냐고 물으니 뜨개질 실을 찾으러 왔다고 하였다.
그녀가 두번이나 내방에 들어왔다 나갔는데 더 들어오지는 않아서 은근히 아쉬었다
그후 별들의 고향의 "나는 열아홉살이에요"를 들으면 그녀가 생각났다
별들의 고향 OST
당시 우리 직장엔 내또래 젊은 남직원들과 여직원들도 많았다
그해 여름 우리또래 남자3, 여자2명 총 5명이 양평 용문산에 캠핑을 갔는데
텐트가 2개라 여직원2, 남직원 3 자기로 하자니까 무서워서 여자끼리 못잔다 하여
섞어서 자기로 했다. 그런데 한참을 자다보니 누가 내위에 올라타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같이 텐트안에 있던 Y양이었고 M군은 없었다. 내가 뭐하는 거냐고 그러니까 내얼굴에 싸인펜으로
수염을 그리던 중이라 한다. 그날 이후 Y양은 다른과인데도 우리과에 자주 놀러왔었다.
어느날은 일거리가 많아 쉬는날에도 일을 해야할 지경이라 걱정을 했더니 그녀가 자기가 도와줄테니
동네 여관을 잡아서 같이 일하자고 한다. 그때는 보자기에 서류를 싸가지고 여관에 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순간 야릇한 느낌이 들어 그러자 하려다 그냥 집에서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다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곳으로 떠나게 되어 우리는 그녀의 송별회를 해주었다.
송별회가 끝나고 나에게 같이 서점에 가자고 하여 따라갔는데 내또래 남자한테 선물을 하고 싶은데
어떤책이 좋냐고 추천해달라고 하여서 책한권을 골라주었다. 그애의 집은 홍제동이고 우리집은 정릉이라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홍제동에서 내리지 않고 정릉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선물이라며 아까 산 책을 주었다.
그때 나는 군입대가 얼마남지 않았고 여자친구를 사귈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져가라니까
국민대앞 개울에 던져버리더니 그녀는 가버렸다. 나는 그책을 집어들고 집에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별로 잘나지도 않았는데 그녀에게 너무한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
세무공무원 생활중 제일 기억에 남는건 추석앞두고 국세청 기동타격대에 차출되어 1주일간 단속활동했던 일이다
그때 종로세무서옆 오진암이란 한옥으로 된 고급요정에 갔는데 여대생 배지를 단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왔었고 우리는 신분을 밝히고 조사를 했다. 그리고 국일관 등 굴지의 극장식 대형술집을
방문하여 세금포탈을 밝힌 일이었다. 국일관에서 사회는 김정남이란 분이었고 김세레나가 출연하여
마이크 던지는 춤을 추며 노래 불렀었다. 그후 어머니와 혜화동 성당에 미사보러 갔는데 신부님 강론이
바리새인과 세리였다. 어린마음에 내가 계속할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얼마후 나는 사표를 제출하고
군입대를 하였다. 당시 우리 계장님은 나보다 30살 많으시고 우리 아버지와 동갑이셨다
그분은 퇴근할때 마다 사무실앞 커다란 칠판에 한자로 공수래 공수거로 쓰고 나가셨다
하루는 내가 결재를 올렸는데 글자가 틀렸다고 다시 쓰라고 빠꾸시켰다
그런데 2번이나 정확한 이유없이 계속 그러셔서 돌아나올때 나도 모르게 ㅆㅍ ㅈ같네라고 중얼거렸는데
직원들이 들었던지 킥킥거렸다. 돌아보니 계장님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셨지만 화내진 않으셨다
계장님은 경상도 출신의 과묵한 성격이셨지만 마음씨는 참 따뜻한 분이셨다
내가 퇴사할때 송별회를 열어주시고 격려해주셨다. 지금 살아계시다면 97세가 되셨을것이다
제대후 뜻하던 대로 일이 안풀려 그때 공무원을 그만두지 않고 다닐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가끔 그때 같이 지냈던 친구들과 여직원들도 생각난다
나와 친했던 M은 그곳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것이고 그 여직원들도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손자손녀도 보고 잘살고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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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사실 공부에 소질은 없지만 가난한 실향민의 아들이 살길은
공부라고 생각해서 평생 책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내세울것 없는 저의 삶이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후의 이야기도 극적인 내용만 추려서 올려드리겠습니다 ^^
사십대 일이라 참 대단하네요
세무 공무원을 하셨으면 지금쯤은
연금이 무척 많이 나올 것 같네요
노후는 걱정없이 보낼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반갑습니다. 세무공무원은 15개월 정도밖에 안하고 사표쓰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만둔 이유는 윗글에 자세히 썼습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제대말년에 제가 군복무했던 지역이네요.
길음동 술집에서 거기까지 갔다는 아가씨를
생각하니 마음도 아릿합니다.
서라벌고교 아랫동네 술집들...(^_^)
반갑습니다. 철모르던 시절 길음동 일대를 기웃거리고 돌아다녔습니다
별들의 고향 경아처럼 그녀는 참 어리고 아름다운 아가씨였습니다
그후 그녀의 삶이 그곳에서 벗어나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산 님의 지난 젊음, 한 때 있던 사연
잘 읽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젊은 한때 있던 사연" 마침 비도오고 우중의 여인 가사가 연상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은 남들은 쫌 선호도가 떨어지는 놀래미입니다
좋아하는 이유는 담백하고 비리지 않아서입니다 저혼자서 뽈래기보다 더 쳐줍니다
님의 글이 마치 놀래미맛 같습니다
공원에 운동 왔다가 벤치에서 즐거이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보내세요^^
저는 낚시를 안하기에 놀래미와 뽈래기의 차이를 잘모릅니다
담백하고 비리지 않아서 좋다는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의 글은 미사여구도 없고 문장력도 내세울만한게 못됩니다
그저 담담히 지난 시절을 반추해보며 생각나는대로 써보았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1세기 당시에 세리들은
죄인 취급을 당하였는데
로마를 위해 세금을 과하게 걷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ㅋ
그산님이 세리일을 하셨군요.ㅋㅋ
진짜 사표 쓰기는 아깝긴 했네요.
반갑습니다. 성경에 보면 세리들은 아주 악한으로 나옵니다
사실 저는 공무원을 계속하며 야간대학에 갈생각이었지만 튀근후 집에 오면 힘이들어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러하던 때에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그만둘 마음을 먹었습니다.
네~~젊은 이야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 잊지못할 추억들이 있을겁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참 인연이라는게..
제 사업장이 대곶입니다.
김포에서는 제법 규모가 있는 편인데~
아주 오래전 관할이셨다니 신기하네요.
계속하셨으면 혹 인연이 있었을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몇년전 마니산 등산 갔다가 오는길에 보니 대명포구로 빠지는 대교가 생겼더군요
그시절 대명포구에 양돈업하는 분들을 만나러 간적이 있었는데 너무 많이 변하여
옛모습은 찾을수 없었습니다.
예..세리를
주변에서는 쎄리라 했었죠..
참 오랜만에 듣게됩니다..세리..ㅎ
제 동기중 한명이
그산님 공무원 할 때 서울 충무로 관할 세무서에 근무했는데
고급술집 공짜 술 많이 마셨다해서
제가 그러면 되느냐~했더니
당시 최고 유명인 최인호도
그동네에서는 외상술로 악명 높았다~하면서 말 돌리더만요
신정숙의 노래 글에 잘 어울립니다
저는 신정숙이 가수란 것만 아는데
"그 사랑이 울고 있어요"라는 노래는 한때 참 즐겨 들었죠..덕분에 추억하게 됩니다.
반갑습니다. 성경에 세리란 단어가 있어 자조적으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76년 당시 부가세시행 1년을 앞두고 대규모공채가 있어 그때 들어간 사람이 많습니다
당시에는 세무공무원의 재량이 커서 관할구역 술집에서는 얼굴을 알면 술값을 안받으려해
다른곳에 가서 먹었습니다. 신정숙은 그사람이 울고있네요가 많이 알려졌지만 잃어버린 벤치도 이계절에 좋습니다
항상 응원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한 국가가제대로 기틀을 잡고 발전 하려면 모든 기관이 다 필요합니다 세무 공무원이 없으면 나라 살림이 꾸려지나요
늘 현실적이고 솔직한 문장 잘읽습니다ㆍ
반갑습니다. 만20세 무렵에 뜻하지 않게 15개월정도 했던 일이기에
정통으로 걸은 분들에게 누가 되지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말씀대로 세무공무원이 없으면 모든 국가기관이 작동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너무 짧게 공직생활하셨네요.
추억이 많으시군요.
김포 전 하성에서 1년간 근무한게 이젠 추억이랍니다.
반갑습니다.공무원 생활은 15개월 정도 했지만
공기업에서는 31년 근무하고 정년퇴직했습니다
하성면은 한강가에 있어 철책이 쳐져있었고
제 담당구역은 아니지만 업무상 여러번 간적이 있습니다
@그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