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냥 놀아요 !
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
나오는 이바구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 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 잘 때 잠은 안자고
이런 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전에 이 글을 읽고는 속된 말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라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보통 내공이 아니면
힘든 것이겠구나 싶다.
머리를 단순화 시키는 작업, 그것은 우연이나 성격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수련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 하고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요즘은 뭐 하시며 지내세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놀아요"
그러면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한다.
현직에 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고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 생활 습관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은퇴 후에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현직에 있을때는 모든 것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놀이다.
그들은 일도 놀이처럼 하는 내 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놀이가 일이고 일이 놀이라고
생각하며 생활한다.
그러니 "그냥 놀아요" 가 내 대답이다.
오래전에 버틀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는데 나이가 쬐끔 들고 보니 "찬양"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우리 모두는 너무 바쁘게 산다.
"나 요즘 너무 바빠, 바빠서 정신이 없어"
이렇게 타인에게 말하면 뭔가 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바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우리 스스로도
뭔가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해지거나,
불러주는 이가 없으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늘상 무엇인가를
해야하고,
늘상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야
오히려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이란 '개미와 베짱이' 에서의 베짱이 처럼 놀고 먹는 게으름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게으름이란 존재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기 위한 여유로움과 여백이다 (뽈네 동네 여백 ?)
진정 행복해지려면 게으름을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통해서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고 말하는 책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존재와 자유를 스스로 확보할 만한 여유가 없이 살아 가고 있다
"행복한 창조의 시간은 게으름 으로부터 나온다.
행복해지려면 게을러지라"
는 "러셀"의 처방이 저는 왠지 마음에 든다.
아일랜드 옛 시집에는
"어느 아일랜드 王의 충고" 라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너무 나서지도 말고,
너무 물러서지도 말라.
너무 나서면 가벼운 사람으로 여길것 이고,
너무 물러서면 무시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지도 말고,
너무 겸손 하지도 말라.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떠들지도 말고,
너무 침묵하지도 말라.
너무 말이 많으면 말에 무게가 없고,
너무 침묵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강하지도 말고,
너무 약하지도 말라.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고,
너무 약하면 부서질 것이다."
결국 "너무"가 문제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조금은 여백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그래야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그래야 행복이 보인다.
좋은 글 中
첫댓글 너무 신경써도
너무 무관심해도 안돼는 세상살이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건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