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벽'을 둘러 '방'을 만듭니다.
주변 다른 곳과 경계를 긋는 벽의 역할, 바로 벽의 숙명이겠지요.
그래서 벽은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빗댑니다.
'불신의 벽, 자기 한계의 벽, 대립의 벽' 등,
벽은 깨고 싶고 또 깨어야 하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벽의 다른 의미는 사람 사이의 단절인 것이지요.
'벽을 쌓다'는 사귀던 관계를 끊는 일이고, '벽에 부딪치다'는 소통에 장애물을 만난 상태이잖아요.
그런 벽을 허무는 꿈은 모두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벽은 고독한 이에게 유일한 지지자입니다.
혼자 설 힘조차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우리는 벽에 기대어 서는데,
두 손으로 벽을 짚고 서는 것을 '벽을 안다'고 합니다.
'화가 나서 벽을 안고 돌아누웠다'거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들지 않아 벽을 안고 잠을 청한다'는 등,
벽을 향하여 가까이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벽이 보이는 말입니다.
방의 주위를 두르는 것이 벽이라면, 집 마당을 둘러막는 것은 '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우리말 '담'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데요.
흙, 돌, 벽돌, 싸리나무 등 담을 이룰 재료는 재산과 신분 여하에 따라 다를 것인데,
주위를 두르는 것이니만큼 담도 경계와 구별을 뜻합니다.
'담을 쌓다, 담을 지다, 담을 두르다' 등이 그러한 표현입니다.
벽까지 동원하여 '담을 쌓고 벽을 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의좋던 관계를 끊고 서로 철저하게 등지는 삶을 강조하는 말이 됩니다.
이처럼 벽과 담의 역할은 아주 유사합니다.
그런데 '담'은 '벽'과 묘하게 다릅니다. 한옥에서는 더욱 그러하지요.
한옥의 담은 마당이 훤히 보일 정도로 야트막하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넘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입니다.
외국인들과 한옥마을을 돌다 보면 이런 흙벽 담의 쓸모가 무엇인지 묻곤 합니다.
골목을 오가는 이웃들이 안부를 살필 수도 있는 한옥 담은 적어도 단절의 아이콘은 아닙니다.
감나무 가지가 물색없이 옆집 마당으로 뻗기도 하는데,
그 감을 딴 주인이 한 소쿠리 담아 주고받는 장소도 바로 담장 위이거든요.
'무작정 울담을 넘고 들어와 살려 달라고 호소하는데 박정히 내쫓을 수 없었다.'
는 소설의 한 구절도 바로 그러한 인간미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담이란 주인 허락 없이 넘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담 구멍을 뚫다'는 바로 도둑질한다는 뜻이 됩니다.
적어도 '양심과 도덕이 지켜지는 경계', 그것이 한옥 담의 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