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망명객 '장지락'의 짧은 생애
아직도 장지락(張志樂 1905-1938)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체 게바라는 알면서도 장지락을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유관순, 김구, 조만식, 안창호를 알면서 장지락을 모른다. 나는 지금 장지락이 그들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장지락이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져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싶을 뿐.
장지락은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1938년 중국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이자 인텔리 혁명가다. 부모형제와 떨어져 일정한 거처도 없이 검문검색을 피해 뒷골목에서 뒷골목으로 쫓겨다니며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했던 사람. 장밋빛 세상을 꿈꾸었지만 정작 자신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
그 위태로운 나날 속에서도 그는 세상을 알기 위해 끝없이 책을 읽었고, 덕분에 신문기자 님 웨일즈의 눈에 띄어 기록으로 남게 된다. 고수는 고수를 첫눈에 알아보는 법. 님 웨일즈는 1937년 여름, 중국 옌안(延安)의 루쉰(魯迅)도서관에서 어려운 영문책자들을 대출해가는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접근한다. 그리고 두 달 동안 22차례 인터뷰한 끝에 일곱 권의 취재노트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엮은바 그것이 이 {아리랑(Song of Arirang)}이다. 님 웨일즈가 장지락의 비범성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 역사는 그만큼 얇아졌을 것이고, 어쩌면 그의 존재조차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시베리아로, 중국대륙으로, 그리고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자로, 공산주의자로--- 그의 생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건너뛰는 도약의 연속이었다. 그는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로 매순간순간을 치열하게 살았다.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은(혹은 낭비하지 못한), 신념에 바쳐진 그의 숭고한 인생역정을 보며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1941년 뉴욕에서 발간된 영문판 {아리랑}의 표지.
'김산'은 장지락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썼던 많은 가명 중 하나다.
{아리랑}은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간되었다. 장지락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1984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발간되었는데, 그나마 출판사 사장이 연행되고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단지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만일 몸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먹고 굶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한 십년 동안 세상을 유랑하고 싶다. 먹든 굶든 개의치 않으리라. 방랑시인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시를 팔고 공원에서 노숙하며 살리라."
낭만적 성향이 잘 드러나는 장지락의 이런 진술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런 사람을 단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조국에서 그 이름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를 먼저 명예 회복시킨 것도 중국정부였다. 돌아보면 울화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식민지의 피끓는 청년이라면 테러리스트든 공산주의자든, 어느 쪽이든 극단에 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국은 없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 쇼우와(昭和)시대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헤이세이(平成)시대인가?
보라, 저 당당하고 오만한 눈빛을!
"내 청년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어버렸다.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수백 명에 이른다……(중략)……그네들의 뜨거운 혁명적 선혈은 조선, 만주, 시베리아, 일본 및 중국의 대지 속으로 자랑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1937년 여름 님 웨일즈 앞에서 그렇게 담담하게 술회했던 장지락은 이듬해인 1938년, 중국정부로부터 트로츠키 주의자이자 일본간첩으로 몰려 처형되면서 그 자신도 이역땅 중국의 대지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만 33세, 글자 그대로 굵고 짧은 생애였다.
파란 눈의 외국인을 통해 간신히 우리가 만나게 된 영원한 '아름다운 청년' 장지락! 우리가 그를 잊으면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 혁명가'로 자리매김된다. 우리에게는 그를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장지락의 진술처럼 '조선, 만주, 시베리아, 일본 및 중국'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무수한 사회주의 항일투사들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찾아낼 수 없는 그 무명의 젊은 넋들을…….
그렇기 때문에 이 책 {아리랑}이 소중한 것이고, 장지락이 소중한 것이다.
행복한 시대를 사는 후손으로서, 이름없이 죽어간 모든 사회주의 항일투사들을 향한 고마움을 당신께 한꺼번에 바치노니 선열이여 지하에서 사이좋게 나눠받으시라.
첫댓글 김 산 은 가명이고 장지락이 본명이군요. 님 웨일즈의 아리랑- 한 번 읽어 보아야겠네요.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도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