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영혼을 파괴하는 주적은 오직 자기 육신의 생각.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드실 때, 흙으로 자신의 모형을 만들어 생기를 주입시켜 육신을 생동케 하고 이렇게 생동하는 육신에게 하나님의 뜻을 감지할 수 있는 영을 주신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주인이 되고 운전수가 되는 생령(生靈)입니다. 자동차로 말할 것 같으면, 차체는 사람의 육신에 해당되며, 영이 되는 운전수는 키를 꽂아 시동을 걸어 엔진을 작동시켜 발생되는 힘으로 차를 움직여 운전하는 운전수가 바로 그 육신(차체)의 주인되는 영입니다. 그리고 자동차가 운행도중에 발생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이 운전사에게 있듯,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 육신이 저지른 사건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오직 운전수가 된 영이 책임져 심판(상벌)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도서3:18~21) 하심 같이, 사람이나 짐승들이 죽게 되면, 사람의 혼(영)은 하나님께로 태어났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 심판을 받으나, 짐승들의 혼(생각)은 흙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땅 아래로 내려갑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국을 주변 열강국들로부터 자유 자주독립시켜 안정시키게 되자 심히 부강하게 되었으나, 부왕이 되신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왕직 수행하는 일에 전념치 않고, 여느 짐승들처럼 시험적으로 육신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무한대로 누리고 즐겨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깨달은 것이 바로 인간 육체를 운전하는 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육신을 운전치 못할 때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즉 육신의 생각에 맡겨 사람의 영혼이 망가질 때에는 운전사답지 못한 책임을 영혼이 다 감당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나 짐승들의 육체는 흙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흙의 생각으로 자신의 본향된 흙으로만 돌아가려 합니다. 즉 인간 육신의 생각이나 짐승들의 육신 생각은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은 지킬 수 없고 오직 죽음의 쾌락만 쫓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인간 육신의 생각은 심히 헛되고 헛되어 아무리 육신이 원하고 뜻하는대로 부귀영화를 누려보아도 결과는 육신이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이르러 원치않는 고깃값으로 처분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짐승들의 육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 대한 책임추궁을 하지 않지만, 사람의 육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율법을 준수하여야만 간신히 생존하며 종의 신분으로 살 수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된 의가 없으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잠시잠간 흙의 상태로 돌아가 있지만, 육신을 운전한 영혼만은 음부라는 구치소에 갇혀 하나님의 최종심판날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이 에덴동산에서 자신의 상전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한낱 자기 도구에 불과한 육신의 생각을 추종하게 되자, 그 때부터 거룩하여야 할 사람의 영혼은 철부지한 육신의 생각을 따라간 죗값을 치르며 살게 됩니다. 즉 운전사가 된 사람의 영혼이, 육신이란 차체를 교통법규가 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운행하지 않고 한낱 차체에 불과한 육신에다 맡겨 대형사고를 저질러 차체와 같은 육신은 죽음의 폐차장으로 폐기처분되고 운전수가 된 영혼만은 수감상태가 됩니다. 즉 육신을 운전하는 운전사가 된 영혼이 길가 이정표에 기록된 진입금지 표시판을 무시하고 진입해 들어가다 마주 오는 대형차와 부딪혀 사고를 일으킨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표지판의 지시사항(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다만 육신이 생각하기에 편리한 길을 택해 달린 결과입니다.
운전수가 도로상에 기록된 표지판의 지시사항보다 자동차 차체가 임의로 치닫고자 편리한 길을 택한 이 행위, 이것이 바로 차체와 같은 육신의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범죄 행위입니다. 자동차의 성능이 좋다고 도로상에 명시된 속도제한을 무시한 채 무한질주하는 운전사, 그는 육신(차체)의 생각만을 존중하는 무법운전자로서 참담한 결과를 빚게 됩니다. 대형사고를 저지를 연월일시를 자신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과, 죽음 이후에 부닥칠 사건을 경험해 보지 못해 알 수 없다는 무지가 어찌 그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상참작을 변호해 줄 수 있겠으며 또 그 형량을 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사기꾼에게 속아넘어간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정상참작을 요구하면, 어느 판사가 그 어리석음에 대해 정상참작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인간 육신의 생각이란, 마치 자동차 차체와 같은 게으른 편안과 편리 위주의 생각입니다. 운전사는 오직 도로교통법과 도로상의 표지판에 기재된 모든 말들을 생명처럼 준수하며 차체를 운행하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영혼은 오직 자동차 차체와 같은 자기 육신의 편안과 편리를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자동차 차체는, 자신의 편안과 편리만 생각할 뿐, 티끌만큼도 운전사가 된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해 줄 줄 모르는 철저한 이기주의 독선가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육신의 생각도 이처럼 그의 주인된 영혼의 안전과 생명을 존중해 줄만한 티끌만한 애정도 없이 오직 초지일관 자신의 욕구와 편리만을 주장하며 사는 철저한 이기주의 독재자입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독재자와 범법자들과 이기주의자들이 이처럼 자기 육신의 생각을 상전으로 모시고 받들기 때문에 추호라도 자신들의 상전된 국가와 국민들의 안전과 평안을 마련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국민들 또한 이런 독재자들과 범법자들과 이기주의자들에게 짓밟혀 신음하게 되는 것도 모두 자기 육신의 생각을 우선시해 살아간 죗값 때문입니다. 그런대도 파렴치하게 엉뚱한 곳에다 핑계를 대고 행패를 부리는 짓들을 보십시오. 좌파는 우파들 때문에, 우파는 좌파들 때문에,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 때문에, 부자들은 가난한자들 때문에 등등 서로가 남탓만 할 뿐, 자기 영혼이 하나님께 저지른 범죄, 곧 도로교통법과 같은 성경말씀과 도로상의 표지판과 같은 선각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오직 자기 육신의 편안과 편리만을 최우선시하는 악행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에 빠져 허덕이는 자들은 사건의 시시비비보다 먼저 자기 영혼이 하나님이 명시해 준 도로교통법과 같은 진리의 말씀을 무시한 죄부터 먼저 뉘우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즉 운전수로서 지켜야 할 도로교통법을 무시하고 차체와 같은 육신의 생각만을 우선시해 살아간 행위를 뉘우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육신 위주의 생각에서 영혼 위주의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모든 고통과 난관을 풀어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이런 생각의 전환만이 그 나머지 모든 원수와 대적들과 산천초목들과 비바람들도 비로소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로 우대해 주고 예절을 베풀어 줍니다. 하나님께 진실히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이 있다면,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두들겨 부숩니다.
인간 육신의 생각이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도 모르거니와 자기의 주인된 영혼의 생각마저도 자기 육신의 뇌세포가 성경말씀을 기억하는 한낱 현상으로만 취급합니다. 자동차 차체가 자기를 운전하는 운전수를 인식할 수 있는 고귀한 생명의 감각이 없듯, 인간 육신도 자기 안에 거하는 불멸의 운전수가 된 영혼을 인식할 수 있는 감지력이 없습니다. 육신에게 눈이 있어도 영에게 육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일 뿐, 육신의 눈 자체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자동차에 헤드라이트가 있어도 자동차 차체가 무엇을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며, 오직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사에게 지형적인 정보만 비쳐줄 뿐입니다. 사람의 눈도 사람의 육체가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지형지물의 정보를 육신의 운전사가 된 영혼에게 알려주기 위해 빛을 발합니다.
육신이 찢어져 고통을 느끼는 것도 얼핏 보면 육신 자체가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만, 고통을 느끼는 실체는 그 육신을 책임지고 운전하고 있는 운전사의 영혼입니다. 즉 이곳이 찢어져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니 시급히 고장난 부위를 수리하여 완전한 기능을 갖게해 주십시오라는 정보 제공이 곧 육신이 느끼느 고통입니다. 자동차 타이어가 주행중 펑크가 났을 때 자동차 바퀴가 아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운전수가 된 사람의 영혼이 아픔을 느낍니다.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 육신의 생각은 오직 육신 자체만이 사람의 전부인 줄 착각하고, 오직 육적인 편리와 배부름과 쾌락만 추구하는 무지막지한 이기주의 독재자입니다.
그러나 이런 육신의 독재 행위를 방관한 죗값으로 받는 영혼의 치욕과 고통은 처절무쌍합니다. 자신의 유익 밖에 모르는 인간 육신의 생각은, 자기 육신의 편안과 편리와 욕구만 챙깁니다. 이런 지독한 이기주의 육신의 생각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여 죽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며, 또 자신의 주인된 영혼과 함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참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만 단순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육신의 주인된 영혼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치 못한 죗벌로 지옥 형벌에 영원히 갇히게 됩니다. 자기 주인된 영혼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만의 쾌락을 즐긴 죄악들로 인해 영혼과 함께 당하여야 할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혼은 육신의 탈선방종만 지켜 보았다는 직무유기 죄로 육신과 함께 혹독한 고난을 겪습니다.
오늘날 부덕한 아내를 만난 남편들과 불손한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을 보십시오. 아내의 완악한 행패와 자녀들의 불손한 행위를 마냥 지켜보고 허용하는 일들을 대자대비한 은덕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내와 자녀들을 능히 다스리지 못한 이유는, 오직 영혼이 자신의 상전된 하나님의 말씀을 좇지 않고 오직 자신의 도구에 불과한 육신의 생각만 좇아 평생 살아간 죄벌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영의 생각을 좇지 않고 육신의 생각만 좇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완악하여 하나님께 뉘우치질 않고 시대의 흐름이 지금과 같은 풍습을 만들어 내었다고 남탓만 합니다. 종북 반역 세력들보다 더 무책임하고 흉악한 것이 자기 육신의 생각입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믿음의 지혜로 자신의 영육과 자기 처자들과 이웃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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