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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세계 병자의 날)
교회는 해마다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이는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하였다.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하셨다. 이날 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기도한다. 또한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의료인도 함께 기억하며 그들이 병자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다지도록 기도한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제34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26년 2월 11일)
사마리아인의 연민: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사랑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제34차 세계 병자의 날을 2026년 2월 11일에 페루 치클라요에서 장엄하게 기념할 것입니다. 저는 이날을 맞아,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다시 한번 권유하고자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사랑의 아름다움과 연민의 사회적 차원을 재발견하는 데에 여전히 의미 있고 필수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성찰을 통하여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이와 고통받는 모든 이, 특히 병자들을 향하여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감동적인 이야기(루카 10,25-37 참조)를 우리는 모두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묻는 율법 교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응답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들에게 습격당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한 사제와 레위인은 그를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가엾이 여겨 상처를 싸매 주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저의 선임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쓰신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 비추어 이 성경 구절을 성찰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회칙에 따르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자비는 개인의 노력으로만 축소되지 않고 관계들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곧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과 맺는 관계, 그들을 돌보는 이들과 맺는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만남의 선물: 친밀함과 존재를 내어 주는 기쁨
우리는 빠르고 즉각적이며 서두르는 문화 안에, 곧 ‘버림’과 무관심의 문화 안에 깊이 잠겨 살아갑니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필요와 고통을 인식할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그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상처 입은 사람을 보고 ‘지나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주의 깊게, 바로 예수님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은 인간적이고 연민 어린 친밀함으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멈추어 서고 다친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몸소 돌보아 줍니다. 심지어 그는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다친 사람을 위하여 씁니다. …… (무엇보다도) 자기 시간을 다친 사람에게 준 것입니다.”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누가 우리 이웃인지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되어 주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2) 이에 관하여 우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 이웃인지가 아니라,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실제로, 자유 의지로 다른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아무도 참된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웃이 된 사람은 바로 자비를 베푼 사람이었습니다.3)
사랑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른 이를 만나러 나가는 것입니다. 이웃이 되는 것은 물리적, 사회적 근접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로 한 결심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상처 입은 인류에게 가까이 다가가신 참으로 거룩한 사마리아인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고통받는 이들의 이웃이 됩니다. 이는 그저 자선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인격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표징입니다. 이는 단순히 필요의 충족을 넘어, 우리 자신이 선물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4) 이러한 형태의 애덕은 우리를 위하여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반드시 자양분을 얻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들과의 만남을 언급하며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저를 그들 가운데로 이끌어 주셨습니다.”5)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들을 통하여 사랑의 감미로운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만남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신 착한 사마리아인이심을 알아봅니다. 또한 우리가 상처 입은 형제자매에게 손을 내밀 때마다 그분을 현존하시게 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해 주신 분보다 더 참된 이웃은 없으니, 그분을 주님으로 또 이웃으로 사랑합시다. 머리보다 자기 지체들과 더 가까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 또한 사랑합시다. 몸의 일치를 위하여 다른 이의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합시다.”6) 친밀함과 존재, 그리고 주고받는 사랑을 통하여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러하였듯 주님을 만난 감미로움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2. 공동의 사명인 병자 돌봄
이어서 루카 성인은 사마리아인이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민이란 우리가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이끄는 깊은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내면에서 솟아나 타인의 고통에 헌신적으로 응답하도록 이끄는 감정입니다. 이 비유에서 연민은 실천적 사랑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연민은 이론적이지도 그저 감성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다가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책임지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자기 혼자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을 보살펴 줄 여관 주인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작은 개개인의 총합보다 강한 ‘우리’ 안으로 초대하고 그 안에서 함께 만나라고 부름받습니다.”7) 저는 페루에서 선교사와 주교로 활동하며, 사마리아인과 여관 주인의 마음으로 자비와 연민을 보여 주는 많은 이를 직접 보았습니다. 가족, 이웃, 의료 종사자, 보건 사목 관련자 그리고 다른 많은 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보살피고 지원하며 동반합니다. 가진 것을 내어 줌으로써 그들은 연민에 사회적 차원을 부여합니다. 관계망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경험은 단순한 개인적 헌신을 넘어섭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에서 병자 돌봄이 교회의 사명에서 “중요한 일부”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교회적 행위”(49항)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측면이 건강한 사회의 척도임을 설명하고자 치프리아노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끔찍하고 치명적으로 보이는 이 흑사병의 유행은 개개인의 의로움을 점검하고 인간의 마음을 시험합니다! 건강한 이들이 아픈 이들을 돕는지, 친척들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주인들이 감염된 종들에게 연민을 보이는지, 의사들이 도움을 청하는 병자들을 버려두지 않는지, 이 흑사병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8)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은 우리가 고유한 소명에 따라 모든 이의 고통에 주님의 연민을 전하는 한 몸의 지체임을 참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9) 더욱이 우리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고통은 낯선 이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몸,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바로 그 몸을 이루는 지체들의 고통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의 선을 위하여 그 몸을 돌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고통은 그리스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되고,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봉헌될 때 구세주께서 모든 이의 일치를 위하여 바치신 기도의 성취를 앞당깁니다.10)
3.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이끌려 우리 자신과 이웃을 만나기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이 이중의 계명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수위성과 그것이 인간 사랑과 관계의 모든 차원에 미치는 직접적인 결과를 인식합니다. “요한 사도가 증언한 대로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2.16).”11) 이 사랑은 그 대상이 하느님, 이웃, 자기 자신으로 각각 다르고 서로 구별되는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더라도, 그 사랑을 근본적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12) 하느님 사랑의 수위성은, 인간의 행동이 자신의 이익이나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례적인 규범을 초월하여 참된 예배 안에서 표현되는 사랑의 드러남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웃을 섬기는 것은 행동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13)
이러한 관점은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도 이해하게 해 줍니다. 이는 우리의 자존감이나 존엄성의 기반을 성공, 경력, 지위, 집안 배경14)과 같은 세속적 고정관념에 두려는 온갖 시도를 버리고,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우리의 고유한 자리를 되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상호 관계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인간이 참다운 상호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수록 인간의 정체성은 더욱 완전해집니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류가 입은 상처의 참된 치료제는 하느님 사랑에 뿌리내린 형제애에 기반한 삶의 방식입니다.”16) 환대와 용기와 헌신과 지지의 정신 그리고 하느님과의 일치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 이 형제애의 정신, 곧 ‘사마리아인’의 정신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에 언제나 반영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를 때, 우리는 고통받는 모든 이, 특히 아픈 이들과 노인들과 시련을 겪는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 중에서 연민과 경청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를 도와주시기를 청하며 병자의 치유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드립시다. 질병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하여 가정에서 바쳐 온 이 오랜 기도로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시다.
우리의 기쁨이신 성모님,
저를 떠나지 마시고,
저를 외면하지 마소서.
어디에서나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홀로 버려두지 마소서.
성모님께서는 참어머니이시며
언제나 저를 지켜 주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저에게
복을 내리시도록 빌어 주소서.
모든 병자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와 보건 사목 관련자들, 특히 세계 병자의 날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저의 교황 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2026년 1월 13일
레오 14세 교황
1) 프란치스코,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2020.10.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1(제1판), 63항.
2) 「모든 형제들」, 80-82항 참조.
3)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Sermones), 171, 2, 179/A, 7 참조.
4)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12.2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1판), 34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Salvifici Doloris), 1984.2.1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제3판), 28항 참조.
5)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유언」(The Testament), 2, 『프란치스코 전집』(Fonti Francescane), 110.
6) 성 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해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VII, 84.
7) 「모든 형제들」, 78항.
8) 성 치프리아노, 「죽음에 관하여」(De Mortalitate), 16.
9) 「구원에 이르는 고통」, 24항 참조.
10) 「구원에 이르는 고통」, 31항 참조.
11) 레오 14세,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 2025.1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6(제1판), 26항.
12)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26항 참조.
13) 「모든 형제들」, 79항 참조.
14) 「모든 형제들」, 101항 참조.
15) 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6.2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9(제1판), 53항.
16) 프란치스코, 제33차 메주고리예 국제 젊은이 축제 참가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2022.7.16., 메주고리예, 2022.8.1-6.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60051 ]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았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0,1-10
그 무렵 1 스바 여왕이 주님의 이름 덕분에 유명해진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찾아왔다.
2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
3 솔로몬은 여왕의 물음에 다 대답하였다. 그가 몰라서 여왕에게 답변하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4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을 보았다.
5 또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신하들이 앉은 모습, 시종들이 시중드는 모습과 그들의 복장, 헌작 시종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드리는 번제물을 보고 넋을 잃었다.
6 여왕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내가 임금님의 업적과 지혜에 관하여 내 나라에서 들은 소문은 과연 사실이군요.
7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 직접 보니, 내가 들은 이야기는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지혜와 영화는 내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8 임금님의 부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언제나 임금님 앞에 서서 임금님의 지혜를 듣는 이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9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 마음에 드시어 임금님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려놓으셨으니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임금님을 왕으로 세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여왕은 금 백이십 탈렌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임금에게 주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준 것만큼 많은 향료는 다시 들어온 적이 없다.
축일2월 11일 성 베네딕토 (Benedict)
신분 : 수도원장
활동 지역 : 아니아네(Aniane)
활동 연도 : 747-821년
같은 이름 :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프랑스 남부 마구엘론(Maguelone)의 백작이자 서고트족(Visigoth)의 귀족 아이굴프(Aigulf)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페피누스 3세(Pepinus III)의 궁정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샤를마뉴(Charlemagne)의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774년경 수도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종으로서 일생을 봉사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군대를 떠나 상센(Saint-Seine) 수도원에 입회했다. 동방의 수도생활을 동경했던 그는 780년경 아니아네로 이주해 동방의 수덕생활을 실천하는 수도원을 설립했다가, 782년경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다시 설립했다.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수도생활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며 각 수도원이 사용하던 여러 규칙서를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서와 비교 연구하여 임의 해석이 아닌 수도 규칙서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임을 확신했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프랑크 왕국 내 수도원 개혁을 위임하였다. 그의 사후 왕위를 계승한 경건왕 루도비쿠스(Ludovicus) 역시 그에게 재차 수도원 개혁을 위임하였다. 경건왕 루도비쿠스 시절 성 베네딕투스는 코르넬리뮌스터(Cornelimnster) 수도원을 설립하고 개혁의 중심지로 삼았다.
그는 당시 사용되던 25개의 수도 규칙서를 모은 “수도 규칙서 전집”(Codex Regularum)과 그 규칙들을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서와 병행하며 주석한 “규칙서들의 대조”(Concordia Regularum)를 저술했다. 결국 아니아네의 성 베네딕투스는 수도원 연합의 수석원장이 되어 모든 수도자가 같은 수도 규칙서를 따르며 세상을 포기하고 구원에 다다르기를 희망했다. 루도비쿠스 왕은 816년과 817년 아헨 교회회의에서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원 개혁 의지를 담아 수도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규칙인 “수도회 참사규칙”(Capitulare Monachorum)’을 공표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서방 수도생활의 재건자로 추앙받으며, 제2의 베네딕투스라고 불린다. 그의 축일은 2월 12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네딕토 (Benedict)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