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적에 대한 다양한 반응 9:13~23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소서 하였더라
계속되는 바리새인들의 심문 9:24~34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맹인이었다가 안식일에 눈을 뜬 사람에게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온 자인지, 죄인인지를 두고 분쟁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오시지 않았다면 눈을 뜨게 할 수 없으리라고 답변한 그 사람을 바리새인들이 쫓아냅니다.
----------
표적에 대한 다양한 반응 9:13~23
예수님의 치유 표적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반응합니다.
첫째, 율법주의적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침 뱉음, 진흙 반죽하기, 진흙 바르기 등)을 했기에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16절).
둘째, 신비주의자들은 표적에만 관심을 보일 뿐 예수님 말씀이나 제자 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16절).
셋째, 현실적인 사람들인 시각 장애인의 부모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출교당하게 되는 현실을 두려워합니다(20~23절).
넷째, 치유받은 시각 장애인은 위협 속에서도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당당하게 고백합니다(17절).
자신이 믿는 바를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이 진짜 신앙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치유 표적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하나님 은혜보다 앞세우는 율법의 잣대는 무엇인가요?
----------
계속되는 바리새인들의 심문 9:24~34
바리새인들은 치유받은 사람을 다시 불러 집요하게 심문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4절)라는 말은 진실을 말하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 법을 위반한 죄인으로 단정하고, 죄인이 하나님의 엄청난 표적을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치유받은 사람은 반복되는 심문에 “당신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라고 반문합니다(27절).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욕을 하면서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치유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임과 하나님 뜻을 행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31~33절). 치유받은 사람의 확실한 신앙 고백은 종교 지도자들의 불신앙과 대조됩니다.
● 더 깊은 묵상
치유받은 사람이 계속되는 심문에도 자신의 확신을 꺾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신앙 면에서 양보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율법에 갇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제게도 있는지 돌아봅니다. 자기 의가 아닌 사랑으로 행하며, 남을 판단하기보다 용납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진실에 눈감지 않고, 빛 되신 주님을 닮아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이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시자 유대인들은 이번에도 율법, 특히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시비를 붙고 심지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정을 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직접 눈으로 기적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강퍅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어 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맹인이었던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이길 수 없으니까 그의 부모를 데려다 취조를 하는데 부모는 유대인들의 억압이 두려워서 정황상 문제가 될 만한 질문은 즉답을 피하고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내가 손해 볼 것 같거나 어려움이 예상되는 자리에서 정직하고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음을 포기하게 하는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핍박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영적으로 잘 준비되어 세상의 도전에 맞설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손익을 계산하지 말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맹인을 예수님이 치료하신 사건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눈 뜬 사람에게 축복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발할 빌미를 찾는 유대인들은 치료받은 당사자인 맹인이었던 사람과 그의 부모를 번갈아 소환하여 자기들이 듣고 싶은 대답을 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취조를 하였는데 본문에서도 그가 죄인이라고 말하며 대답을 유도하고 있지만 소경이었던 사람은 도리어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온 선지자라고 담대하게 증언하고 있다. 직접 체험 한 신앙은 능력 있게 만든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육체의 눈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도 뜨게 된 것이다.
우리도 영의 눈이 떠지고 육체가 자라는 것처럼 믿음도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무조건 시간이 지나면 믿음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수십 년이 지나도 똑같은 믿음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믿음의 실험과 도전을 하면 할수록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육신의 눈이 열린 소경처럼 영의 눈이 열려 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어야 하는데 오늘은 예배 가운데 그런 은혜가 부어지기를 기도한다.
교회마다 목사님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반응함으로써 은혜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사람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자기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뭘까요?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시자 사람들은 그의 치유를 축하하기는커녕 붙잡아 심문했습니다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고침을 받은 그는 그가 내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해서 그대로 하니 보게 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니 죄인이라고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묻자 진술했습니다 "선지자니이다"(요9:17) 여기서 선지자는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 곧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고 그 부모까지 소환해 심문했습니다 "너희 아들이냐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요9:19) 그러자 그 부모는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여 출교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들은 다시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요9:24)
여기서 그들의 무지와 완악함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죄인이 한 일로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마치 지금 세상 정치인처럼 그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멸시하던 그가 정곡을 찔렀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9:31~33)
그러나 그는 결국 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요9:34)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출교 시키던 그들은 천국에서 출교 당하게 하시고,
출교 당하던 그는 천국에서 환대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의인을 자처하는 그들은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정죄 받던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권세 있는 자는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는 높이시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눅1:51~53)
오늘의 말씀요약
바리새인 중 어떤 이는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고,
어떤 이는 죄인이 어떻게 표적을 행하겠느냐 합니다. 유대인들이 맹인이었던 자의 부모에게
아들이 어떻게 해서 보는지 묻자, 부모는 출교당할까 무서워 아들에게 물어보라 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바리새인들의 분쟁(9:13~16)
예수님은 진정한 치유와 안식을 주는, 선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공격할 틈만 노리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일로 분노합니다. 예수님이 맹인을 만나 치유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이에 어떤 바리새인은 예수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날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의료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바리새인은 예수가 죄인이라면 어떻게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겠느냐며 반론을 제기합니다.
평생 쉼 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야말로 안식에 걸맞은 행위임을,
율법의 형식만 지키는 사람들이 알 리가 없습니다.
- 묵상 질문: 바리새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질문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예수님을 본받아 안식일의 참뜻과 율법의 정신을 내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출교당하는 두려움 앞에서(9:17~23)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주님이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세상에 알립니다. 맹인으로 있다가 치유받은 사람은
자신을 고쳐 주신 예수님이 선지자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견해를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맹인을 고치신 사실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이들이 듣기 원했던 대답이 아닙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그의 부모를 불러 추궁합니다.
그 부모는 맹인으로 태어난 아들이 눈을 뜬 것이 사실임을 밝힐 뿐, 누가 어떻게 고쳐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 유대 사회에서 내쫓김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불신의 세상에서 위협과 공격을 받고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위축되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입니다.
- 묵상 질문: 맹인이었던 사람의 부모가 결정적인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세상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저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저를 구원하시고 치유하신, 온 세상의 주 예수님을 기쁘게 소개하며 자랑하는 담대함을 허락하소서.
오늘 본문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친 사건이 안식일의 논쟁으로 번지는 내용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에 관하여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와 함께 기쁨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안식일에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문제로 계속해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율법을 지키는 행동으로 표현하고 확증해 왔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자, 그의 부모,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같은 한 사건을 통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줍니다. 먼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의 부모를 보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가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누가 고쳤는지를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22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 함이러라”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의 눈을 고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출교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을 보게 됩니다. 진실은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기적의 참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달리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는 점점 그를 고쳐 주신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그를 쫓아내 버립니다.
처음에는 그에게 진흙을 발라 주셨던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밖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눈이 떠지자 그는 예수님이 선지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바리새인과의 논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신실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출교를 당한 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내용은 내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찾아오셔서 그의 눈을 보게 하신 예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며, 믿음의 표현입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쫓아 보냅니까? 바리새인들은 그를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난” 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제자들이 이 맹인을 보고 질문한 것을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바리새인들은 맹인 된 것을 죄 가운데 태어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맹인과 자신을 구별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의 제자로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완악함은 우리에게도 항상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열심으로 상대방을 정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이 일에도 율법의 잣대(안식일)를 들어 무력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우리의 정당성을 증명하기를 원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 때부터 맹인 된 자처럼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며 자신이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을 경험해야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살리신 이가 누구입니까?
이제 우리를 살리신 이가 누구인지 온전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 속에서 증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자신이 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율법과 전통과 자기 생각을 모두 동원하여 상대방을 정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출교당할까 두려워하는 부모처럼 세상의 지혜로 할 말은 하고 손해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감사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담대함으로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 어떠한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합니까?
➲ 믿음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13~16절).
사람들은 전에 맹인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14절). 침을 뱉아 진흙을 만들고 바르는 작업 자체가 노동이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보게 되었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재차 자신이 보게 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15절).
그러자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죄인이라면 어떻게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겠느냐며 ‘...그들 중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16절).
유대인들은 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자비는 잊어버린 채, 규례와 형식에 빠져 예수님이 행하신 진정의 의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규례와 형식을 뛰어넘어 당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형식과 틀에 얽매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얄팍한 세상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이루신 일들을 자신들만의 제한적인 틀 안에 가둬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을 놓쳐버리면 주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더욱 깊이 알아갈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의미 또한 깨닫지 못합니다. 본질이 아닌 것들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쏟아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믿음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 의심을 버리고 순종함으로 전해야 합니다(17~19절).
유대인들은 논쟁을 벌이다가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갑자기 예수님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습니다. 유대인들의 악의 있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17절). 그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아직은 깨닫지 못했지만, 유대인들의 질문과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수라는 사람은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람이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못하고, 그의 부모를 불러다가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당신의 아들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라고 물었습니다(18~19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주저함 없이 순종했던 맹인은 밝은 빛을 보게 되었지만,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유대인들은 점점 영적 맹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져 어둠에 속하여 있게 되면, 믿음에 이르게 하는 증거가 아무리 많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자체를 믿음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의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불행 중에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영접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행동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믿고, 끝까지 순종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세상의 위협에 비겁해지지 않아야 합니다(20~23절).
유대인들의 질문에 그 부모는 자신의 아들이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지 자신들은 알지 못하니 그가 장성했으니 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대답했습니다(20~21,23절). 그 부모가 이처럼 소극적으로 대답한 이유는 당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대 사람들이 이미 결의를 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무서워해서(22절)이었습니다.
회당에서 추방을 당한다는 것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살아가려면 핍박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세상의 위협과 핍박과 조롱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낄 때, 내 자신이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내 삶에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증언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강하게 거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예수님을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교회에 몇 달 전에 등록하셔서 매주 교회 출석 잘 하시던 어르신이 교회를 나오지 않아 알아본 결과 같은 동네에 어르신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교회를 뭐하러 나가려고 하느냐? 당신도 전염되고 싶으냐?’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을 들으시곤, 겁이 나서 못 나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위협 앞에 주눅 들지 말고, 비겁해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도록 영적으로 잘 준비되어 세상의 도전에 맞설 수 있도록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내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언제 어디서나 담대히 말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 세상의 위협 앞에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24~27절).
바리새인들은 맹인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안노라...’(24절).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답하면서 다만 한 자기 아는 것은 자신이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25절)입니다.
이것보다 더 단순하고 분명한 대답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예수님을 정죄할 구실을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을 향해 그는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27절)라고 되물으면서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그들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그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아 알아가면서 유대인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에 대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면, 세상 그 어느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가면 갈수록 복음의 메시지를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하여 바로 깨닫고, 바로 믿어 담대함으로 세상 앞에 서 있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과거에 신앙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함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한계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28~34절).
유대인들은 맹인이었던 사람을 욕하며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모른다며 비웃었습니다(28~29절). 이에 그는 맹인이었던 자신을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하셨는데, 왜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참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30절).
그러면서 하나님은 죄인의 말은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신다고 강조하면서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3절)라고 이제는 확신 있게 고백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이제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알고 그분에 대해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죄 가운데 태어난 자라고 정죄하며 그를 쫓아내어 보냈습니다(34절).
영적인 눈을 떠야만 영적인 일들을 이해하고, 깨닫게 됩니다. 영적으로 맹인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맹인이었던 자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을 뜨게 된 맹인은 확신에 찬 모습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예수님과 깊이 있게 교제하며, 예수님을 확신하는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맹인이 쫓겨난 것처럼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핍박이 있을 것을 인식하여 용기를 잃지 말고 그럼에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자신이 겪는 모든 상황과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어 주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롬10:10 / 고전1:27 / 마10:2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사 29:18-20)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6)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시 8: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