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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우리 비유 10:1~6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구원과 생명을 주는 목자 10:7~10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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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강도입니다. 문지기는 목자를 위해 문을 열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누구든지 양의 문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양으로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는 목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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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우리 비유 10:1~6
예수님은 그분과 우리의 관계를 양과 목자로 비유하십니다. ‘양’은 하나님 백성을, ‘목자’와 양이 드나드는 ‘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10:7, 11). 목자는 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먼저 들어가고, 그 문을 열어 양이 들어오게 합니다. 그런 후에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부르며 성심껏 보살핍니다. 목자가 앞서가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뒤를 따릅니다. 이러한 양과 목자의 비유는 오늘날 성도와 목회자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성도와 목회자가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먼저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잘 배워서 성도를 양육해야 합니다. 매사에 믿음의 모범을 보이고, 성도를 사랑으로 보살피며, 예수님을 따르는 길로 성도를 바르게 인도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의 비유에서 양과 목자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떤 목자 혹은 어떤 양이 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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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생명을 주는 목자 10:7~10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7, 9절). 이는 예수님이 세 번째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위한 유일한 문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야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면 좋은 꼴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준비해 놓으신 ‘생명의 떡’을 배불리 먹기 때문입니다. 목자와 도둑은 무엇을 통해 우리에 들어가는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1~2절). 거짓 목자는 담을 넘거나 예수님보다 앞서 온 자로,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1, 8절). 거짓 목자를 따르면 멸망하지만,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따르면 영생의 복을 누립니다.
● 더 깊은 묵상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따르면 어떤 복을 누리게 되나요?
예수님 안에서 내가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 은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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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의 관계가 답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소유가 아닌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고객과의 관계에 중점을 둡니다. 이른바 ‘관계 우선의 법칙’을 따릅니다. 기독교에서 핵심이 되는 것도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아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양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이 목자를 신뢰하고 따를 때, 목자는 양의 육체적·정서적·영적 필요를 모두 채워 줍니다. 하지만 목자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양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의 양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목자들은 자기 양의 귀에 상처를 내거나 몸에 색을 칠함으로써 소유권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에 주님의 표식이 새겨져야 합니다. 주님이 내 목자이심을 마음으로 인정하십시오. 이는 곧 내 삶의 주인이 다른 어떤 존재도 아닌,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 인생 계획, 일의 성패, 재산과 소유, 건강 등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 성도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늘 그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양의 고백 / 한기채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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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10장 10절
누군가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친구'와 '도둑'으로 구분됩니다.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성도에게 생명의 양식을 풍성하게 가져다주는 선한 친구이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성도의 믿음을 앗아가고 결국에는 파멸시키는 악한 도둑입니다. 성도는 예수님과 교제하고 연합할 때 악한 마귀로부터 보호받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의 내적 교제가 느슨해지면 마귀에게 공격을 받고 결국 생명까지 위태로워집니다.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사람이 참생명을 누립니다.
당신의 가치를 계산하고 싶은가? 예수님과의 친밀함이 어떠한지를 먼저 따져 보라. - 메리 브라운
오늘의 기도
주님, 저를 부르시는 목자의 음성에 제가 얼마나 귀를 기울이며 따라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생명의 양식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풍성히 얻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구원의 문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 생명 길로 인도받는 양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6절 참목자이십니다. 목자가 문으로 들어가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 양들이 그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듯, 나면서부터 볼 수 없던 사람이 눈을 떠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9:35-38). 하지만 문지기 몰래 다른 데로 넘어온 도둑과 강도의 음성을 듣고는 양들이 도망하듯, 그 눈 뜬 사람은 바리새인들의 회유를 거절하고 쫓겨나는 길을 택했습니다. 내가 듣고 따라가고 있는 분은 예수님입니까?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려도 목자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면 도망합니까?
7-10절 양의 문이십니다. 양들이 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안전을 보장받고 또 문을 통해 우리 밖으로 나가 들판에서 자유롭게 꼴(풀)을 먹듯, 우리도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14:6)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과 자유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출교당해서라도(9:34) 예수님의 제자가 된 눈 뜬 자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기도
공동체-저를 위해 자신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신 주님, 주님만이 제 인생의 목자이십니다.
✔ 예수님은 어떤 목자이십니까?
➲ 풍성하도록 채워주시는 참목자이십니다(1~10절).
예수님은 강도와 목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자는 양의 목자이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강도라는 것(1~2절)입니다. 거짓 목자와 참 목자의 차이를 드러내시는데, 참 목자는 문지기도 그를 알고, 문을 열어주며,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3절).
참목자는 양들을 불러 우리 밖으로 나오게 하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라갑니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따르지 않고 도망합니다(4~5절).
예수님의 이러한 비유에 대해 유대 지도자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6절). 다시금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7절).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심을 말씀하십니다. 양의 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습니다(9절).
우리 밖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양에게는 우리가 없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지혜로운 양은 우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즐거워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10절)입니다.
참된 목자는 바른 교훈을 가르치며, 오직 성도의 유익에만 관심이 있는 인도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벗어난 사역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무엇보다 물질 중심의 목회가 아닌 사람 중심의 목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3절). 나의 이름을 부르셔서 은혜의 자리로, 사역으로 자리로 이끄시는 주님의 음성을 잘 분별할 때, 영적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크게 들려오는 세상의 달콤한 소리나 감미로운 소리에 넘어가지 말고, 예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맡겨진 양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역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참 생명과 영적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도록 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 노력하는 사역이어야 하겠습니다. 영적으로 풍성하도록 채워주시는 참목자되신 예수님만을 온전히 따르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양들의 모양이 다 비슷해 보일지라도 목자가 각각 양들의 특징을 알고 각각 이름을 알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를 각각 아시고 각각 이름을 불러 인도해 주십니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10:3)
그런 점에서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고 우리는 주의 손에 기르시는 양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그런데 우리를 양으로 비유할 때에 흔히들 양의 미련함이나 약함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양이 잘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씀하셨습니다 양이 잘하는 것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목자 음성은 알아 듣기 때문에 따르지만, 타인의 음성은 모르기 때문에 듣지 않고 도리어 도망한다는 것입니다(요10:4~5)
지금도 타인, 곧 거짓 목자, 종교 목자들이 많이 왔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의 문은 예수님이고,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
그 문을 통하지 않고 들어온 자는 다 타인, 곧 절도며 강도이기 때문입니다(요10:1~2)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즉, 그들이 참 양이 아니기 때문에 참 목자의 음성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요10:6)
그러나 우리는 주의 양이고, 주는 우리의 목자이시니, 타인의 음성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 주의 음성을 성경을 통해 많이 듣고 좋은 양식을 얻어 먹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 원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9~10)
그리하면 우리 선한 목자께서 우리를 싸매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누워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34:15~16)
요한복음10:1-10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예수님은 양을 지키는 목자와 그렇지 않은
절도와 강도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양의 문이시며 목자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양을 지키는 양의 목자와 절도와 강도와 비교하는 이유입니다
이유는, 예수께서 맹인을 고쳐주었을때 유대인들은 맹인이 앞을 보게 된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양을 지키는 목자의 이야기를 통해 유대인들은 목자가 아닌 정도요 강도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약 목자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목자는 양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양들이 우리안에 들어가면 목자는 본인이 양의 문이 되어
우리안에 있는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였습니다
예를들어 이리나 늑대가 와서 양을 해치려고 하면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
뿐만 아니라 목자는 양들 하나 하나를 풀을 먹이기 위해 인도합니다
그리고 양들은 자신의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양들은 목자가 아닌 타인의 음성은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양의 목자와 절도와 강도의 이야기를 통해 유대인들은 절도요 강도 이지만
예수님은 양의 목자이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함을 맗씀하는 것입니다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면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는 삶 살아갑니다
여기서 양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위의 사실을 기억하고 양의 문이요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기대가 됩니다
풍성한 삶을 교회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도둑과 비교하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선한 목자라고 비유로 말씀하신다.
강도와 목자
성경은 사람들을 누군가가 인도해 주어야 하는 양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 양들은 인도하는 이가 도둑인지 목자인지 구별하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양의 문을 통해 들어가느냐 여부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는 양과 음성으로 소통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목자요 바리새인들은 강도이다.
양의 목자
예수님은 양의 문이자 목자이시다.
문으로 드나들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온다고 말씀하신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개별적 관심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신분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아시고 불러주시는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주셨기 때문이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양의 문
목자들은 양들이 양의 문을 통해 들고 나가도록 인도하므로 양의 문으로 나가면 풍성한 꼴이 있는 풀밭으로 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시면서 선한 목자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 풍성한 공급을 체험한 사람은 이제 영적 허기를 채울 영원한 것을 찾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함을 잘 알려주고 있다.
오늘 본문은 양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와 다른 데로 넘어가는 강도를 비교합니다.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쫓아가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 문으로 들어가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강도는 호시탐탐 목자의 손에서 양을 강탈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어리석은 양이 고집을 부러 목자의 부르심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맘대로 행동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려 강도의 전리품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강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않는 자들은 강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마귀의 자식이라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목자는 양을 주인에게로 인도하는 자들이지만 마귀의 자식들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양을 잡아먹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강탈하는 강도에 대한 경고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강도가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거룩을 무너뜨리는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와 선생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목자와 강도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과 삶 속에서 간섭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대로 인생이 움직이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예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간섭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 속에서 목격하는 기쁨을 줍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강도로부터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풍성히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유대인의 목자들은 양을 한 달이거나 두 달이거나 집을 떠나 방목을 합니다. 산간벽지에 있는 양우리는 문이 없습니다. 돌이나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만든 후에 양을 몰아 놓고 목자가 몸으로 가로막아 스스로 문이 됩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문이 되어 그의 양들을 확실히 지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은 양의 문이신 예수님과 강도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셔서 구원의 통로의 역할을 하십니다. 그의 문으로 들어가면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도들이 오는 것은 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을 잡아 팔아 강도의 유익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세상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믿는 자들은 사탄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에 목자만을 쫓아갑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삯꾼과 선한 목자를 비교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우리는 삯꾼이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그러나 사실 삯꾼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삯꾼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람입니다.
돈을 받고 주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자들입니다. 유대의 관습상 삯꾼 목자가 양을 잃어버리면 배상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삯꾼 목자가 감당하기 힘든 수의 이리가 나타나서 잃어버린 양이 생기면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삯꾼의 문제는 직업의 본질에 있습니다. 삯꾼은 양을 쳐서 먹고살아야 하는 자입니다. 그들을 위해 죽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참 목자 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여러분을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문이 되셔서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신령한 것을 우리에게 먹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쫓아갈 때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래도 안 돌아오면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우리를 끌고 오실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삶 속에서 회초리를 맞는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과 함께 푸른 초장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또한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렘23:1 / 겔34:2 / 렘10:21 / 슥11:4,17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 10:17~18)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2~13)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 이사야 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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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 같은 길 잃은 우리를 이끄셔서 양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다시 그 음성을 듣고 선한 길로 걸어가도록 그 평강과 생명을 지켜주시는 목자이신 주님을 높여드립니다.
세상의 음성을 쫓아 살아왔던 과거의 나를 날마다 부인하고,
오늘도 주님이 허락하신 나의 십자가를 지고 겸손과 순종으로 걸어가는 복된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반석 위에 서서,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아 이 마지막 세대 가운데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하는 거룩한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방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좇아 그 구원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고통과 아픔으로 상한 심령들과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빛을 비춰주시고 찾아가 만나 주시옵소서.
분열과 다툼, 미움과 분노, 비방과 판단에 사로잡혀 있는
이 나라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시고 새롭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