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 - 작은배
음유시인이라 일컬어지는 조동진의 노래가 처음 나올때 나는 군복무중이었다.
연대체육대회에서 우리대대가 꼴찌를 하고 그벌로 대대원 전체가 늦게까지 연병장 완전군장구보를 돌았는데
그날밤 갑자기 비상이 걸리고 영문도 모르는체 부대주변 초소 경계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비상은 전시에 준하는 진도개 2로 격상되고 밤새 교대자도 없이 추위에 떨며 보초를 서고 새벽에
막사로 돌아왔는데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곧 전쟁이 나고 죽게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연대지휘관회의에 다녀오신 대대장님은 전 부대원을 모아놓고
조국이 백척간두에 놓였으니 여러분들은 모두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야 한다고 훈시하셨다.
그날밤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고 한탄강변 보장산 진지로 출동하는데
군인가족과 마을주민들이 시루떡과 인절미 등을 해서 부대앞에 나와 살아서 돌아오라고 환송하였다.
전쟁이 날 그순간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진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다행히 사나흘이 지나도록
아무일 없자 우리는 자대복귀를 하였고 군장도 풀지않고 잘때도 군화를 신은채 부대에서 대기하였다.
그때 부대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노래 가 있었다
처음 들어보지만 당시 내상황을 대변해주는것 같고 가슴을 파고 드는 노래였다
배가 있었네.
작은배가 있었네.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배가 있었네.
작은 배가 있었네.
아주 작은 배가 있었네.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작은배로는
떠날 수 없네.
멀리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작은배로는
떠날 수 없네.
멀리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 조동진 -
군입대전 나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갑작스런 큰형의 죽음과 그로 말미암은 아버지의 사업실패
나는 다니던 공무원도 사표내고 도무지 앞날을 예측할수 없어 군대말고는 갈곳이 없었는데
군에 와서는 전쟁까지 날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떠나고 싶어도 떠날수 없는 나는 작은배에 갇혀있는
신세였던 것이다. 그때 내심정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터널입구에 서있었던 느낌이었다
첫댓글 대통령의 비보는 큰 충격이 였지요
당시는 참으로 불안했었습니다
그무렵 군에 계셨네요
많이 걱정을 했겠습니다.
군입대전에 큰형님의 죽음과 아버님의
사업실패등 연이은 불행에 많이 고통 스
러웠겠네요 참으로 인생이란 파란많은
곡절이 수 놓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전에 쓴 김포와 세리의 추억에 연이은 글입니다
10.26 당시는 모두가 놀라고 당황스러웠을겁니다
저는 현역군인의 신분이었고 남북대치상황이라 몹시 긴장했었습니다
@그산 차마두 그림입니다
@차마두 박대통령을 많이 존경하시나 봅니다
그림이 실물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
@그산 제가 태어난 곳에
논이 이웃하고 있었고
저의 아버지와 연배이십니다^^
@비플렛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반갑습니다
10.26당시 장교로 일직사령을 하셨으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아실것 같습니다
저희는 새벽까지 교대도 없이 보초서고 들어와 뉴스보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12.12까지 비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글은 "김포와 세리의 추억" 후속으로 올려드렸습니다
@비플렛 감사합니다. 당시는 군대뿐아니라 전국민이 혼란스러웠을겁니다
응원해주신데 대한 보답으로 후일담은 또 올리겠습니다
조동진의 작은배
당시 본인 그리고 주변 상황과
맞 떨어져 마음이 심란 했겠습니다.
당시 다들 전쟁 날까봐
전전긍긍 하던 그 때가 떠오릅니다. ㅎ
잘 읽었습니다. 건필 유지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전방에서 현역병시절이라 전쟁으로 이어질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서도 놀라고 혼란스런 상황이셨을겁니다
행복한 구월되시기 바랍니다
26일 뒷날 27일 일요일에
저는 남편과(그때는 애인)
3주만에 데이트 약속이 있었어요.
아침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라디오뉴스에서
계염령비상사태라 하기에
약속을 못 지키겠구나 하고 그냥 아쉬움에...ㅠ
그때 남편은 전방부대 중위였거든요.
반갑습니다
10.26이 토요일이었던것 같습니다
다음날 당시 애인과 데이트약속까지 있었는데 계엄령으로 면회도 못하고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그후 44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두분께 아련한 추억이겠습니다
눈물이 흐르네요 조동진씨의 노래 탓 만은 아닌
그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대통령 유고라는 낮은 소리 종일 그 소리와 낮게 흐르던 음악
난 며칠 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빈방에서 3살아들 곁에 두고 딸을 낳았지요 12시간 산통으로 낳은 딸 대통령 서거 보다 내 처지가 더 급하고 서러웠던 기억 춥고 암담했던 그 해 연말을 겨우 넘기고 갓난 애와 4살 아들데리고 길 나섰던 봄, 광주사태로 주변이 흉흉 나 같은 건 아무도 돌아 보지도 않던 서울거리를 두 애들 데리고 종일 걸었던 80년대 봄 여름 신군부 들어서자 경기 펴지고 나도 아이들과 밥이라도 얻어 먹었던 아주 징그러웠던 시절 더러븐 시상 그 시절 였지요
슬픈 음악은 날 울려요~
아 그러셨군요
낯선 서울거리에서 어린아들과 갓태어난 딸을 두고 시국까지 어수선했으니
정말 아주 작은배에 홀로 타고 계신 심정이셨겠습니다
그후 사북사태와 5.18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정말 우리가 그시절을 이겨내고 살아온게 기적이라 봅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항상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실겁니다
그날, 우리 대한민국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었지요.
역사는 기록되어 있지만 세월 속에 묻혀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제는 잊고살던 까마득하게 먼 옛날로 느껴집니다
지난 삶을 회고하며 글을 올리다보니 그시절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5사단 근무하셨네요
그때 난 6군단 사령부 통신대에 글구 5사단백이리이 통신파견도 나가고 ㅎ
반갑습니다. 5군단 예하 8시단입니다
6군단 통신병이셨군요. 저는 대대 탄약병이었습니다
@그산 우리옆군단 이셨군요 ㅎㅎ
회상의 먼 바다에
그대 배를 띄워요~
이 노래만 나오면 첫사랑이 생각나네요.
공중전화부스에서 전화로 이별통보를 받던 날
전파사에서 흘러나온
노래였답니다.ㅎ
반갑습니다
작은배에 대한 사연들이 다 있으신군요
전화로 이별통보를 받았으니 얼마나 가슴아프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공중전화부스에서 차례를 기다려 그녀에게 애타게 전화를 걸던 시절이 있습니다
네 역사 ~~기도 할께요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