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엘레지”
이게 몇 해만인가,
해운대 백사장을 거니는 게,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그 옛날 <해운대관광호텔>서“트위스트”추며 신나게 밤새우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그 다음 유행했던 게“디스코”춤이었던가, 또 "허슬"도 신바람 났었다.
그때 함께 놀던 친구들 지금 다 어딜 가고 <조선비치호텔> 만이 옛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백운대 백사장을 거닐었던 건 벌써 30년 전 40년 전 일이 아니던가.
그동안 수 십 번 부산에 내려왔지만, 무에 그리 바빴던지 늘 시내서 부산만 떨다 올라오곤 했었다.
이제 지음지기(知音知己)는 다 사라지고 쓸쓸히 한산도 선생이 작사한
<해운대“엘레지”> 가사만이 어렴풋하다. 곡조나 노랫가락은 잊은 지 오래이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던가,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이 그 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 잊어 내가 운다.
울던 물새도 어디로 가고,
조각달이 흐르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는 가련다 떠나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게나.
- 이 얼마나 별리의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노랫말인가 -
나는 예전 어릴 적부터 <해운대> 하면 무언가 아련한 동경의 세계였다.
하얀 안개구름이 모든 걸 다 감추어 줄 것 같은, 심지어 역모의 모반까지도,
나의 치부까지도, 세상의 모든 더러움까지도 다 덮을 것만 같은 해운대란 이름이 참 좋았다.
그래서 아늑하고 순수한 감미로움만이 흐르는 순백의 "샹그리라"가 바로 해운대란 생각이 들곤 했었다.
일제 때 조국 잃은 청년들이 신혼여행을 온양온천이나 함흥 명사십리, 부산 해운대로 가면 최고였다는
얘길 들으면서 자라나서일까. 나는 부산하면 해운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가슴 뛰는“로망"이 넘실거리기 시작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백사장 길을 늦은 오후에 나보다는 훨씬 젊은 세대 <모놀>인들과 걷는 기분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일,
또 이번 답사에 제일 고령자인 나의 추억은 그들과 한참이나 다를 것이다.
백사장 길 내내“해피맘”께서는 세상 살아가는 얘기, 시댁 얘기, 다문화가정 얘기하며 옆에서
정겹게 동행이 되어주셨다. 얘길 들으며 나는 아득한 천년도 전에 신라 말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 생각이 나고 지금껏 나만의 해운대 추억이 주마등처럼 연신 떠올라
그저 건성으로만 그녀 이야기를 대한 것 같아, 지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해운대를 걸으며 그 수많은 인걸들 중에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제일 먼저 생각났었다.
아마 고운 선생 당시 이곳 해운대는 인적 드문, 운무 가르며 노니는 갈매기의 고향 같은 곳이 었을 게다.
부산 동백섬 남쪽 바위에 새긴 <海雲臺>란 글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또 최치원 선생이 호를 孤雲 또는 海雲이라 한 것으로 보아도 이 아름다운 해변을
<해운대> 라 작명한 분은 아마 최치원 선생이 처음일 것이다.
함양 땅 태수로 부임하여 농투성이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며 땀 흘리는 그들을 생각하여 소나무를
비롯한 상록수는 모두 뽑아 버리고 한창 농사짓는 여름 철에 그들이 쉴 그늘이 넓게 드리우는
활엽수로만 함양 땅 상림을 조성했다는 고운 선생의 천재성, 애민정신에 놀란 이래 선생은
평생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태고의 신비를 교감케 하는 분들 중 한 분이시다.
아래는 최치원 선생이 지은 秋夜雨中 이란 시,
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시를 읊나니
世路少知音 이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없구나.
窓外三更雨 깊은 밤 창밖엔 비가 내리고
燈前萬里心 등불아래 내 마음은 만 리 길로(고향으로) 달리는구나.
옛날에 백아라는 사람과 종자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둘은 너무 친한 친구였고 특히 백아는 거문고의 달인, 그 소리를 종자기가 가장 잘 알아주었다.
그런 이심전심의 둘도 없는 친구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며 자신의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두 번 다시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중국의 故事가 있다.
둘째행의 <知音>이 바로 그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멀리 중국에서도 요즈음으로 치면 장관급의 높은 벼슬을 하면서도, 동무 떠나 한 없이 외로웠을
최치원 선생이 종자기와 같은 고국의 친구를 생각하며 늦은 가을비 추적거리는 야밤에 지었음직한 시다.
지금도 자신을 잘 알아주는 친구를 知音知友라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천년도 전에 일세를 풍미한 최치원 선생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 . 또 무덤도 없다.
다만 합천 해인사엘 가면 고운 선생이 가야산에 들어서며 그 들머리에 꽂은 지팡이가 살아났다는,
드넓은 그늘을 이루는 당찬 고목(느티나무?)이 한그루 남아 있을 뿐이다.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어 이 조국산천을 지금껏 돌보고 계신 것일까.
내 나이쯤 되면 가까웠던 친구가 죽어 사라지는 일도
또 살아는 있지만 출세하고 돈 벌어서인지 변심하여 내 마음에서 사라진 친구도 많다.
참 많은 친구들이 죽어서 또 살아서도 내 곁을 많이도 떠나갔다.
나의 결벽성 때문일까 그들의 오만 때문일까, 아무렴 그 어이 외롭고 쓸쓸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휘황찬란해진 환락의 해운대 해변을 걸으면서도 쓸쓸한 명상(瞑想)만이 떠올랐다.
또 긴 머리칼 휘날리며 해변을 함께 다정히 거닐었던 해변의 여인들, 나에게 여인네의 향기를 알게 해준
그렇게나 황홀했던 나의 "마돈나" 또 "에레나"는 다들 어딜 가고 환멸의 환영만이 어른 거렸다.
(예전 섬유회사 근무할 때, "탈런트", 영화배우, "패션-모델"들과 어울려 부산서 툭하면 "패션-쇼"를 주관했었다)
<모놀>부산답사 명상의 연속일까, 아래와 같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나이가 들어 늙어간다는데 대한 회한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평온한 안도감(安堵感)을 가질 수도 있다.
살아 갈 날이 많으면 아름답고 행복한 날도 많을 것이나,
때론 예기치 못한 불운과 만나게도 되고,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서러운 이별도 해야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지나온 세월이 불행했다면 그런 시간이 지나갔다는 안도감,
고통스러웠다면 아프고 쓰린 상처가 아문 편안함이 지금 있는 것이다.
또 지금 당장 곤경에 처해 힘들고 불행하다면, 그러한 세월은 빨리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화려하고 행복했던 추억> 이 있다면 그것으로 좋을 것이다.
또 지금이 더없이 행복하고 화려한 순간이라면,
앞으로도 그러한 순간만이 쌓여 미래가 될 것이라는 망상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해서,
또는 미래가 불안스럽다 하여 세월의 흐름에 대해 쓸쓸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스스로의 생각에, 생활에 힘껏 노력하여 삶에 대한 긍지를 가지게 된다면,
자신이 귀중해 질 것이다.
그러면 형형한 눈빛과 자태는 죽는 날까지 광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많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지금껏 살아 온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져 간다.
죽은 다음의 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대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산다면, 스스로의 위안을 가지고 세상의 많은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위안을 가지나 안 가지나 오늘은 가고 내일은 또 오겠지만,
그러한 위안이 없이 한 평생을 보낸다면, 지치기 쉬운 널뛰기 인생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세월의 허망함에 빠져들지 않는, 마음의 위안을 갖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많은 세월 숨 가쁘게 살아온 우리 세대, <모놀>인들이여 부모님께 효도를, 이 범초에게 위로를!
손인호가 부른 <해운대“엘레지”>가 갑자기 듣고 싶어진다.
** 기다림님, 달새님 사진 따옴 (해운대에서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사자 꿈을 꾸다).
범초.
첫댓글 혜안이 밝으신 님의 글을 접하니 바쁘다는 이유로 인색한 저의 삶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행복과 불행에 집착하며 무엇이 그렇게도 쉼없이 바쁘기만 한것인지....주위를 둘러보고 낮추며 살라는 말씀같아 숙연해집니다. '모놀'에서 가벼운 저의 지식창고가 알토란처럼 여물어 갈것 같습니다. 좋은글에 감사드리며 언제나 건강하십시요~~~~
진주라 천리길, 지리산 타고 산청 거쳐 촉석루 홀로 올라 의암에 갈라져 흐르는
남강물 위에 논개의 절개를 그려보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번 답사에서
비단님을 만나 모처럼 진주의 정기를 느꼈습니다. 비록 댐을 막아 생긴 호수이지만,
남강호수의 광활한 아름다움을 어찌 잊으리! 반가웠습니다. 범초.
기억 저편에 있던 편린들이 해운대 바닷가의 물결처럼 밀려오셨군요. 지음지기분과 함께 하셨음 범초님 마음이 덜 쓸쓸하셨을 텐데 . . . 잔잔한 여운이 남는 후기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나이 들어가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는 정말 힘들어요, 물론 내키지도 않구요!
언젠가는 모놀에도 옛 친구 같은 사람이 생길거라는 바람을 갖고 . . . .범초.
여초님이 언급하신 춤 저도 다 접했던 춤이네요. 이제는 추억 할 기억들이 더 많아지는 나이이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 중 지금이 가장 젊은 때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입니다.
해운대 모래사장 푸른 달빛 아래 쏴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이
난무하는 장단에 맞춰 그녀와 함께 트위스트 추던 때가 그 언제던가,
그런 날이 또 오려는가, 무한상상은 자유!
여초님! 연세가 어째되신지! 그런 저런 춤 다 접했던나이인데.......제주 할망 민박집 할망이 나보고 정말 예쁜나이라고 어찌 스킨쉽을 해데던지...지금이 가장 젊은 나이 이거든요. 화이팅 합시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언제나 지금이 내일보다는 젊은 법, 지금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지요! 감사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온 기성 세대에게 공경의 마음을 갖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이 듦의 허전함도 있겠지만 나이 듦에 대한 기쁨 또한 있겠지요.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부산답사에서 반가웠습니다. 자라나는 후세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는데
강산애님 같은 분이 많은 기여를 하시리라 믿습니다. 범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