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omplex.com/covers/g-dragon-interview-september-2013/
대서특필됐다고 기사났던 인터뷰기사 번역본입니다.
출처 지디갤
part1
한국 슈퍼 팝스타 G-Dragon의 스타일은 이미 전 세계의 패션 창시자(tastemakers)들의 인정을 받은 상태다.
그의 음악도 같은 코스를 밟을 수 있을까?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거물인 건 알겠다.”
7월의 어느 더운 일요일, 그의 가게를 둘러보는 날렵한 체구의 키 5’8’’(172cm)의 금발머리 아시아인에게 맨하탄 시내의 부티크 ‘Private Stock’의 주인인 Jon Koon 이 한 말이다.
낯선 손님의 어떤 점이 그가 거물임을 알아채게 했을까?
아마 그의 소년처럼 잘생긴 – 혹은 감히 “예쁘다”고도 할 수 있을 얼굴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의 일행 중에 유명한 보석 세공사 Ben Baller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급 남성의류 디자이너인 Koon에게 있어,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그의 손님의 의상이었다.
Givenchy에서 영감을 받은 커스텀 제작 스냅백, Lennon 스타일 선글라스, Jil Sander제 줄무늬 민소매 티셔츠, 헤진 Saint-Laurent 청바지, Chrome Hearts 목걸이, 신고 있는 Air Jordan XI, 오버사이즈 Hermes HAC 가방.
의문의 방문객은 G-Dragon으로 보다 잘 알려진 25세의 권지용이었고, 그는 고향인 한국에선 이미 굉장히 유명하다.
실은,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시안 팝스타이다 –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친다면.
그러나 같은 기획사 소속인 싸이와 달리, G-Dragon은 미국에서 장난스러운(gimmicky) 노래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지 않다.
실은, 그 어떤 음악으로도 활동한 적이 없다. G-Dragon은 개인적인 패션 스타일로 미국의 패션창시자(tastemakers)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이다.
Koon은 미국을 기반으로 하여 증가하고 있는 G-Dragon 찬양자들의 대열에 최근에 합류한 편이다.
그 리스트에는 영향력 있는 사람 중에서도 핵심적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Kanye West의 고문(consigliere) Don C는 그의 팬이며, Pyrex Vision의 Virgil Abloh 또한 그러하다.
Virgil Abloh는 G-Dragon이 그의 브랜드 제품을 입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후 아시아에서 그의 브랜드의 인기가 치솟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20만(현재 200만)의 열렬한 팔로워들이 이뤄낼 수 있는 일이란…)
GD는 또한 En Noir의 급격한 사랑을 받고 있다. En Noir의 브랜드 디렉터 CurT@!n$는 말한다:
“언제나 텀블러에서 G-Dragon을 보곤 했지만 누군지 몰랐었죠.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게시하는데 전 ‘얘가 대체 누구야?’ 하곤 했거든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Balmain으로 차려 입는다든가, 혹은 Givenchy 것으로, 또는 Dior 것으로 차려 입곤 하는데, 락스타처럼 많은 의상들을 소화해 내더라구요.”
G-Dragon은 여러 면에서 완벽한 남성의류의 뮤즈이다.
그는 무엇을 입든 멋져 보일 정도로 날렵한 체형을 갖고 있으며, 그가 아시아인이기에 발생하는 타자성(otherness)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겁을 내고 A$AP Mob 이라면 건드릴 엄두도 못 낼 유니섹스 의상,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의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게 해 준다.
미국의 길거리 브랜드(streetwear types)들은 이제야 따라잡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세계의 최고급 패션 브랜드들은 이미 GD에게 협찬(co-sign)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것은 G-Dragon이 이미 솔로가수로서, 또 그의 그룹 Big Bang의 일원으로서 그의 음악으로 수천만의 아시아 팬을 거느린 한국 대중가요계의 우상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GD가 한국어로 웃으며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의 패션창시자(tastemakers)’들은 제가 잘나가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 관심을 갖는 거에요.
그러지 않았더라면 관심도, 신경도 쓰지 않았겠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진 않으려고 해요.”
G-Dragon은 음악가이지만, 그의 미국 진출은 텀블러 태그, 인스타그램 사진, 패션 블로그 등을 통해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여름의 “강남 스타일”에 대한 집착은 빠르게 싸이에게 캐리커쳐적 이미지를 남겼다.
G-Dragon의 패션에 대한 매혹도 그의 재능을 가려버릴 위협이 될 것인가?
CurT@!n$ 는 말한다. “내 취향의 음악은 아니예요. 하지만 G-Dragon이라는 말을 주변의 한국 여자애들에게 던져봤더니 반응이… 어쩌면 나도 그의 음악을 들어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part2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저는 옷을 좋아하고, 제가 좋아하는 옷을 입는 걸 즐겨요. 옷을 선택하는데 있어 취향이 다를 수 있겠죠. 어떤 사람은 제 선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그럴 시간이 있다면 거울 속의 자신부터 보고 스스로를 계발하는 데 시간을 더 쏟길 바라요. 지금은 2013년이잖아요.”
패션과 음악적으로 G-Dragon이 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은 자연스레 Kanye West와의 비교를 불러일으키지만, GD는 Kanye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를 완전히 이해해요.”
K-pop의 대형스타의 초기 행적은 Kanye West보다는 Justin Timberlake와 닮아 있다.
G-Dragon은 말한다.
“미국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고등학교에 가기 전 까지 졸업장에 미래의 목표를 적는 칸이 있어요.
아이들은 ‘대통령’ 이라거나 ‘우주비행사’ 같은 걸 적었지만, 전 언제나 ‘가수’ 라고 써 넣었죠.”
그 목표를 향한 여정은 그의 나이 5세, TV의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가 한국 음반 레이블계의 큰손들의 이목을 끌며 어린이 버전 K-pop 그룹에 캐스팅 되며 시작되었다.
꼬마 룰라 밴드는 하나의 앨범을 내고 해체되었다. (그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려면 유투브를 검색해 보라)
몇 년 후, G-Dragon이 지역 춤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심사위원 중에는 한국 대중가요계의 가장 강력한 음반 기획사인 SM Entertainment(현재 메가그룹 소녀시대의 소속사인) 의 창시자인 이수만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는 GD의 부각되는 연습생으로서의 자질 – 다시 말하자면, 잠재적 K-pop스타의 가능성을 발굴해 냈다.
GD는 회상한다: “SM에 있었을 때는 매일 연습하지 않았어요.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그분들은 저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던 거죠.”
그 시점엔, GD또한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지금 “성전과도 같은, 신성한 음악” 이라고 회상하는, Wu-Tang Clan의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앨범을 발견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 앨범 때문에 랩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영어에 능숙하진 못 하지만, 그 시절엔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가사를 번역하지 못 하고, 소리 나는 대로 한국어로 한 글자씩 받아 적곤 했어요.”
힙합이란 장르를 발견하고 담대해진 G-Dragon은, 그의 노래 “내 나이 열셋” 이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MC들의 앨범에 피처링되며 한국의 최연소 랩 신동이 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YG Entertainment의 창시자 양현석이 그와 정식으로 계약하여 자신의 기획사로 데려가기 위해 연락을 취해왔다.
그 때부터 G-Dragon의 K-pop 교화가 시작되었다.
K-pop 아이돌들이 견뎌내야 하는 가혹한 훈련제도에 대해서는 이미 다뤄진 적이 많은데, GD가 경험한 것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7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어요. 힘든 시간이었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우울하고 힘든 기억도 많지만, 어째선지 그 때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으니까요.”
2006년, 마침내 K-pop 교육을 마치고, G-Dragon은 4명의 다른 멤버들 – T.O.P., 태양, 승리, 대성 – 과 함께 Big Bang이란 이름의 보이 밴드로 데뷔를 하게 된다. 이 그룹의 문화적 영향력은 즉각적이었고 광범위했다.
“우리가 데뷔할 시기엔, 우리는 우리 음악을 직접 만드는 유일한 ‘아이돌 그룹’ 이었어요.” 랩
과 노래를 모두 태연자약하게 소화해내는 GD가 회상한다.
“누가 우리에게 노래를 주고 정확히 무얼 하라고 시키는 식이 아니었죠.”
빅뱅의 리더로 두각을 나타낸 G-Dragon은, 음악 차트를 휩쓴 그의 그룹의 노래들 (‘하루하루’, ‘거짓말’ 등)을 작곡하는데 참여했다.
빠른 속도로 한국 내의 다른 보이 밴드들을 제치고 올라선 빅뱅은 그 후 YG Entertainment의 가장 큰 수익원이 되는 일본 시장을 휩쓴다.
2009년, GD는 ‘Heartbreaker’로 솔로 데뷔를 하며 5백만 다운로드의 기록을 세운다. 많은 환호를 받은 작년의 후속 솔로곡 ‘One of a Kind’에서, GD는 스스로가 - 한국어와 발전하고 있는 영어로 – 탁월한 글로벌 스타임을 선포한다.
그와 자주 협업을 해온 Diplo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G-Dragon은 굉장한 놈이에요. K-pop 씬보다 크죠. 그는 겁이 없고 punk하죠.”
개척자인Skrillex가 덧붙인다:
“GD에 대해 가장 존경하는 점은, 그와 그의 멤버들은 music 씬 안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분야(mega niche)를 일궈냈다는 겁니다. 그냥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거죠.”
이는 미국에서 그의 스타일의 정점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G-Dragon의 2집 정규앨범 Coup D’Etat로 시선을 되돌리게 한다.
Ben Baller는 말한다:
“(K-pop 아티스트 중 미국에서) 뜰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G-Dragon일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시아 문화에 대한 배경적 이해가 없는 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 할 거에요. 개방적인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Part3
“불가능할거라 여겨졌던 일들이 점점 더 자주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거죠.
세상의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작업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한국 시장 안에서만 만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한국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그걸 넘어 한국 밖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걸요.”
Private Stock을 방문하기 몇 시간 전, G-Dragon은 맨하탄 시내의 녹음실에서 그의 iPhone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과 소규모의 청중들을 위해 아직 발매되지 않은 그의 앨범의 수록곡을 들려줄 계획인 것이다.
“이런 걸 해 본적이 없어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거요.”
그는 긴장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젠장!’ 이랄까요. 숙제를 검사 받는 기분이에요.”
Coup D’Etat는 그의 이전 솔로곡들과 마찬가지로, 현란한 뮤직 비디오와 이국적인 의상변화를 동반하는, 귀에 꽂히는 잘 빠진 K-pop다운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G-Drago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한국 대중가요는 저의 음악적 성장의 기반이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만드는 멜로디에는 그런 (K-pop스러운) 느낌이 묻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특정 종류의 음악을 좋아해요. 한국인들이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특정한 코드가 있고, 전 그걸 전달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나 이번 앨범이 이전과 다른 점은, 미국인들의 재생목록에 올라와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한 몇몇 수록곡들이 있기 때문이다. 말춤을 추는 방식이 아닌 쪽으로 말이다.
앨범의 수록곡 중에는 Diplo, Baauer와의 협업곡들이 있으며, 힙스터들이 사랑하 Sky Ferreira와 Boys Noize의 참여도 눈에 뜨인다.
이러한 노래들은 블로그에서 많이 다루어진 G-Dragon의 의상들만큼이나 그에게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음악의 옷에 대한 비유는, G-Dragon의 경우 비유라기보다 그의 원칙에 가까운 것이다.
“제가 노래를 만들 때, 저는 제가 그 노래를 공연할 때 무엇을 입을지에 대해 즉각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뮤직 비디오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곡을 공연할 때 무대에서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죠.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제겐 하나의 패키지처럼 여겨져요. 제게 있어 의상은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에 가까워요.”
즉 이런 것이다: 그가 입는 의상이 마음에 든다면, 아마 그의 음악도 당신의 마음에 들 것이다.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면서도, G-Dragon은 영어사용권 팬들을 얻으려는 계산적인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노력은 가까운 과거에 K-pop 가수들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 하였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그저 외화를 벌고 싶은 욕심에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가수들을 해외 시장으로 진출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떤 시도는 지켜보기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예요. 이 곳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한국의 음악에 대한 인식은 그런 시도들에 의해 규정될 테죠.”
그렇다면 어떻게 회의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시작은, 그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겠다.
G-Dragon의 이번 앨범에서 눈에 뜨이는 곡은 “닐리리야” 라는, 한국 전통 음악이 샘플링 된 heavy rap 음악이다.
“이 노래를 어떤 사람과 같이 하고 싶은지 생각했었죠. 완전히 한국적인 음악에 외국 아티스트를 섭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A$AP Rocky나 Kendrick Lamar가 이 곡에 참여한다면 멋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한창 뜨고 있는 사람보다는,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사람과 작업하는 게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과는 GD의 한국적 뿌리에 기울어 있으면서도 서양의 영향이 섞인 –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 Missy Elliott과의 듀엣곡의 완성이었다.
MTV VMA에서의 Miley Cyrus의 공연이 “문화적 전용”이라는 비명을 뽑아냈던 같은 8월의 밤, GD와 Missy는 LA에서 열린 KCON에서 “닐리리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문화적 협연의 빛나는 대조적 사례라 하겠다. GD가 그날의 공연에 대해 말한다:
“신경이 끊어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Missy와 함께 동료로서 무대에 섰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내 verse에 같이 라임을 넣어준다는 건… 정말 영광이었어요. 믿기지 않는 일이었죠.”
Missy가 한국 노래에 참여한 첫 미국 가수는 아니지만, 아마도 쉬운 돈벌이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협업을 한 것으로는 그녀가 첫 번째일 것이다.
그녀는 GD와의 공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서로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죽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는 재능있고 멋진 사람이고, 함께 무대에 서기에 정말 즐거운 사람이에요.”
“닐리리야”처럼 공격적인 rap 노래가 기존의 K-pop 팬들을 소외시킬까?
앨범의 타이틀, Coup D’Etat가 암시하듯, 그의 이번 앨범은 G-Dragon의 골수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그저 제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전보다 힙합적인 앨범이 되었어요. 제 생각엔, 한국 대중들은 아마 이번 앨범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주 만약이지만, 미국의 대중들은 좋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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