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
큰 기대하지 않고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도 '생의 한가운데'이고, 고전소설로 유명하다보니,
뭔가 어려운 철학적 이야기가 잔뜩 써있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이 책을 굳이 읽게 된 이유는,
헌책방 갔다가 깨끗한 상태의 많이 들어본 제목의 책이 있길래 집어든 이유뿐이었으니까
책에 대한 내용도, 지은이에 관한 내용도 전혀 모른 상태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처음 출간된 것을 알아보니
1950년이었다. 그리 오래된 소설도 아니다.
그리고 지은이는 루이제(루이저) 린저란 독일사람이다.
그의 약력을 보아하니,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반항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39년에는 악단 지휘자와 결혼하였다가
1943년 남편은 소련으로 도피해서 헤어졌다고 한다.
그녀의 삶 또한 평범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책 후반부에 있는 그의 약력을 본 것인데,
그의 약력을 본 순간,
이 소설 속의 니나는 바로 작가 자신을 모델을 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루이제 린저는 1970년대 대한민국을 여행한 적도 있었으며,
윤이상과 이야기를 나눈 후 <상처받은 용>이란 대담록을 내기도 하였으며,
북한을 방문한 후 <또 하나의 조국>이란 책을 집필하는 등
우리나라와도 꽤 인연이 깊은 작가란 것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
암튼, 다시 책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책의 소재는 사랑과 자유의 싸움이라고 하고 싶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랑이 존재한다.
이 소설에도 다양한 사랑이 나온다.
그리고 주인공 니나는 자유를 사랑과 동등한 위치 또는 그것보다 더 위에 놓는다.
이 책, 참 매력있는 소설이다.
왜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이해가 간다.
내가 만일 청소년기에 이 책을 읽었다면,
주인공 니나와 같은 삶을 동경했고, 따라해 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나는 니나의 언니 마르그넷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나는 남자이지만, 이미 안정한 삶의 틀을 꽉 잡고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어떤 황홀한 자유가 나를 유혹해도, 나는 그 유혹에 넘어갈 용기가 없고,
나이와 가족 등의 핑계를 서둘러 댄다.
1. 해후
마르그넷은 결혼과 동시에 남편과 함께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생활하였다.
남편과 자신의 직업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가족 특히 자신의 11살 아래 여동생과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한참뒤에 일 때문에 고향에 돌아온 마르그넷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술집에서 방황하는 여동생 니나를 만나게 된다.
반가운 해후는 아니었지만,
두 자매는 그 이후 며칠간 같이 지내게 된다.
그리고 마르그넷은 니나의 그동안 살아온 삶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니나의 삶과 사랑을 알게된 계기는
니나를 17년동안 사랑했던 슈타인이라는 남자의 일기를 통해서였다.
슈타인은 그가 니나를 만난 이후 쓴 일기와
니나와 관련된 편지들을 묶어서 니나에게 보내온 것이다.
그런 슈타인의 글들과 니나의 입을 통해
그동안 니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 자유에 대한 댓가
니나는 늘 자유를 꿈꾸었다.
무엇인가 얽매여 있는 삶을 거부하였다.
그 얾매임이 안정적인 삶과 행복한 삶인 경우에도 말이다.
그런 자유로운 삶을 원한 댓가로 니나는
아픔과 외로움과 조금의 후회를 가져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에게도 아픔을 주었다.
인생은 한번뿐이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른다.
모든 삶의 방식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니나는 니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아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때론 자살 시도도 했었지만,
자신의 삶에 후회하지 않았다.
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원했으니까.
그와 반대로 그의 언니 마르그넷은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였다.
결혼한 이후 외국생활을 하였고,
아이는 없었지만,
남편과 공통의 직업과 공통의 취미를 가지고 무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런 댓가로 마르그넷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 제한된 자유는 그녀의 표정에도 나타나 있었다.
풍부한 표정을 지닌 동생 니나와 달리
마르그넷의 표정은 어디가 부자유스러웠다.
마르그넷의 삶 역시 정답일 수 있다.
나의 삶은 정답일까?
3. 그의 사랑 방식
이 소설의 주인공 니나는 사회에 반항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그녀는 소설가로 몇편의 소설을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독일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그녀를 정치적으로 무관할 수 없게 하였다.
니나는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고모와 고모의 가게를 보살펴 주게 된다.
병든 고모를 보살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유를 제한받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 니나는 생각도 깊어진 듯 보였다.
슈타인은 의사였는데,
니나를 환자로 처음 만났다.
슈타인은 니나가 반항적이고, 사회의 틀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지만,
니나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니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도 바꾸어 놓았다.
니나가 망명가들을 국외로 빼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니가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을
완전히 무시할 정도로 악하지는 않았다.
니나의 본성은 '착함'이었다.
그래서 니나도 슈타인에게 마음을 조금 열었다.
하지만, 조금 열었을 뿐이지, 슈타인이 니나를 사랑하는 만큼
니나가 슈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슈타인 역시 알고 있는 바이다.
그래도 니나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고모가 죽은 이후, 니나는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왔고,
그때 슈타인은 의사를 그만두고,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니나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때가 때인 만큼,
사회 정세 또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토론이 많을 때였다.
다른 학생들과 의견을 달리한 니나는 자꾸 부딪히게 되고,
대학 자체에 환멸까지 느끼게 된다.
니나는 자신의 의견을 슈타인과 이야기하지만,
슈타인과 의견 충돌을 하게 된다.
슈타인은 사회의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니나는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충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의견 충돌로 인해 슈타인은 니나의 본성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슈타인은 니나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오직 모험과 생을 사랑할 뿐이야, 내가 아니야."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가진 니나를 풀어주기 위해 이별을 선고한다.
이것은 니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고,
언제까지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슈타인의 의도가 니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니나도 화를 내면서 그를 떠난다.
슈타인은 떠나는 니나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지는 못하지만
감지하고 있는 그 목표는? 어떤 남자가 그녀를 붙드는 데 성공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만에 하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남자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니나는 한 남자에게 정착하기 위해 얼마나
더 경험을 쌓아야 하는가?"
그리고는 그녀에게 버림받기 전에 먼저 그녀를 단념했다고 위안삼아 보지만,
그의 본심은 그녀를 자신의 생명처럼 붙들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4. 결혼
세월이 어느정도 흐르고, 슈타인은 니나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니나의 결혼은 그리 행복한 결혼은 아니었다.
니나의 결혼 상대는 퍼시라는 남자였다.
그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니나는
다른 남자, 알렉산더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니나와 알렉산더가 어떤 사랑을 했는지 모르지만, 일회성 사랑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도 퍼시는 니나와 결혼하려고 하지만,
결혼 후에 니나를 소유하려는 욕심이 지나치자,
마음 속에 늘 자유를 꿈꾸고 있는 니나와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혼을 하게 된다.
그 짧은 결혼 생활에 니나에게 남은 것은 두 아이.
그것도 아빠가 서로 다른 두 아이.
슈타인은 이런 니나의 결혼 사정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니나가 슈타인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계속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니나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슈타인은 외면할 수 없었고,
그를 도와주었다.
...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고, 슈타인은 몹쓸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된다.
그 죽음을 앞두고 그동안 쓴 일기와 편지 등을 니나에게 보냈던 것이다.
니나도 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를 마지막으로 방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니나는 또다른 자유를 찾아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5. 또 한사람
이 소설은 또 한사람이 등장한다.
니나가 진정 사랑한 사람이지만,
그 사랑 역시 니나에게 있어서는 자유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할 뿐이다.
간혹 그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오지만,
그때마다 니나가 없어서 언니 마르그넷이 전화를 받게 된다.
니나가 멀리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그사람이 찾아온다고 이야기하지만,
니나는 그 소식을 듣고 먼저 그곳을 떠나게 된다.
자유를 찾아서...
6. 자유의 가치
누구나 자유를 동경한다.
물론 도덕적, 법적 책임이라는 제한된 울타리내에서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런 도덕적, 법적 제한보다
더 작은 울타리 내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말이다.
새장 속에서 할 수 있는 무엇인든 하면서 자유를 누린다고 이야기한다.
새장 밖의 세상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새장 밖의 세상이 두려워서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보니, 자유를 향해 떠나는 이 소설 속의 니나나
그리스인 조르바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이 소설이 이채로웠다.
나는 이 소설 속의 니나의 언니 마르그넷처럼 생활한다.
그리고 마르그넷처럼 니나를 부러워한다.
비록 니나의 삶이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는 자유롭다.
그러면서도 니나가 떠난 후 마르그넷은 다시 자신의 안정된 생활로 돌아온다.
나도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는 니나를 동경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다시 안정된 생활로 돌아온다.
이 소설을 읽다보니 안정의 반대말은 불안정이 아니라 자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7. 흔적
이 책은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앞서 읽은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중간중간 책을 읽으면서
자를 대고 반듯하게 밑줄이 쳐져 있었고,
간혹 메모도 적혀 있었다.
앞서 읽은 이의 밑줄 친 부분이나 메모를 눈여겨 보았는데,
그 독자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 니나처럼 아픔과 외로움을 지닌 듯 보였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픔을 가진 듯하다.
책제목 : 생의 한가운데
지은이 : 루이저 린저
펴낸곳 : 홍신문화사
펴낸날 : 1992년 8월 10일
정가 : 5,000
독서기간: 2008.05.19 - 2008.05.23
페이지: 374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