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이의 도보여행
서울 한양도성 걷기5
600년 도읍지 한양을 마주하다
광희문~남산~숭례문 5.4km
한양도성 걷기의 마지막 구간은 서울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남산을 걷는다. 남산은 분지를 이루는 한양의 내사산에서 남쪽에 자리해 이름도 남산으로 바뀌었다. 본래는 목멱산이라 불렸는데, 이 역시 '마뫼' 라는 옛 이름의 변형이다. 마뫼의 '마'는 '마파람'의 '마'와 같은 뜻을 가지므로 예로부터 이곳은 '남쪽의 산' 이라는 호칭으로 꾸준히 불렸던 셈이다. 몇 년간 공사가 진행 중이던 백범광장이 열려 더 쾌적한 걷기가 가능해졌다.
※광희문~신당동 성곽~장충동 성곽~국립극장사거리
한양도성의 소문(小門)이 다섯 개인 이유는?
한양도성의 네 구간 중에 야간이동이 자유로운 곳은 낙산과 남산이다. 그래서 이곳들은 낮보다 밤에 걷는 맛이 더 운치 있고 화려하다. 필자 역시 한낮보다는 어두워진 후에 이곳을 주로 찾아 고즈넉한 고성의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고, 불 밝힌 도시의 현란한 야경의 대비에 세상사의 덧없음에 잠시나마 젖기도 한다.
이 구간의 출발점은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부근에 있는 광희문이다. 빛나고 또 빛나야 할 이름을 얻었건만 광희문은 부침의 역사가 더 많이 쌓인 문이다. 지금도 서울 안에 이런 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희문은 태조 5년에 다른 문들과 함께 지어졌으나 당시는 지금의 문루가 없었고, 홍예만 있었다.
문 부근으로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지나가는 수로가 있어서 수구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또 조선시대 도성 안에서 시신이 나갈 때는 서쪽은 소의문으로 나갔고, 동쪽은 광희문으로 수습해 나갔다. 그런 이유로 이곳도 소의문과 함께 시구문이라고도 불렸다. 병자호란 당시 숭례문을 통과해 강화도로 몽진하려던 인조가 빠르게 남진하던 몽골군에 밀려 미처 숭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어가를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돌려 지나간 곳도 바로 이 광희문이다.
이곳에 문루가 들어선 것은 숙종 37년이다. 당시 문을 크게 개축하면서 문루를 세우고 현판을 걸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문을 돌보지 않은 탓에 문루는 스스로 허물어지고 홍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문은 1975년, 원래 자리에 도로를 내면서 15m 정도 남쪽으로 옮겨서 새로 지은 것이다. 홍예 위에 번듯하게 올라선 문루도 당시에 복원하면서 재건한 것이다.
이후로는 남산을 향해 100m 정도 복원된 성곽을 따라 걷다 안쪽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여기부터 장충체육관이 있는 동호로까지는 마을길을 따른다. 즉, 성곽이 완전히 소실된 구간인 것이다. 성곽의 원형은 완전히 사라진 구간이지만 길 옆 오래된 축대 등에는 옛 한양도성의 성돌로 추정되는 화강암들이 곳곳에 박힌 것을 볼 수 있다.
왕복 8차로의 큰길인 동호로 건널목을 건너면 이후로는 한동안 완벽하게 복원된 성곽을 따라 갈 수 있다.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성곽 안쪽으로 걸으려면 건널목을 건넌 후 오른쪽으로 가다 곧바로 나오는 피자집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되고, 성곽 바깥쪽 길은 건널목을 건너 그대로 직진한다. 걷는 환경은 신라호텔에서 길을 터준 성곽 안쪽이 더 낫다. 하지만 저녁 6시 이후로는 안쪽 길 일부를 통제하므로 바깥쪽을 택해야 한다. 안쪽과 바깥쪽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있으므로, 재방문할 때 각각 다른 곳을 걸어보면 좋겠다.
잘 복원된 성곽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2층 팔각정자가 보일 것이다. 팔각정자가 보이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반얀트리클럽 골프연습장 외곽을 도는 나무데크를 따라 걷게 된다. 이 골프연습장 위로 성곽이 지나갔을 테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반얀트리클럽 구간을 지나면 남산산책로가 시작되는 국립극장사거리다.
여기서 왼쪽으로 차량이 시원하게 달리는 버티고개 자리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남소문이라고 불렸던 이 문은 한남동 부근의 나루터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던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세조 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도적이 기승을 부리고, 풍수지리에도 맞지 않아 나라에 좋지 않은 변고가 생긴다는 이유로 예종 때 폐쇄되고 만다.
남소문 주변으로 도적이 들끓어서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것이 실록에 여러 번 기술되어 있으며, 이 문 때문에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가 사망했다고 추측하는 장면도 실록에 기록으로 남았다. 흔히 한양도성 출입구에 대해 사대문과 사소문으로 일축하지만 이 남소문을 더하면 소문은 다섯 곳이 된다.
※국립극장사거리~남산성곽~N타워~남산성곽~숭례문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에서 바라본 서울의 현주소
자, 이제 국립극장사거리를 건너 N타워 쪽으로 길을 잡는다. 2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개의치 말고 직진하면 곧 아스팔트 바닥이 울퉁불퉁한 화강암으로 된 곳을 만난다. 이 화강암 표시는 예전에 성곽이 지났던 자리를 표시해 둔 것이다. 따라서 이 표시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성곽을 따라 놓인 계단을 볼 수 있다. 가파른 계단이 한동안 계속되지만 중간에 쉴 만한 곳들이 있으므로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계단 가장 상층부는 성곽 전망대로 이곳에서 보는 서울풍경도 썩 괜찮다.
이후로도 길을 따라 그대로 가면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남산의 상징이 된 N타워에 다다른다. 이곳 남산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이고, 마뫼산이라고도 불렸다. 목멱산 역시 마뫼의 변형으로 마뫼의 '마'는 마파람의 '마'와 같아 오래전부터 남쪽 산이라고 지칭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전국의 봉수대에서 피워 올리는 봉수 신호를 최종적으로 받는 곳이어서 종남산이라고도 불렸다.
N타워 광장에서 성곽을 따라 걸으려면 팔각정 옆에 복원해 놓은 봉수대 쪽으로 가면 된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5대 봉수로 중에 평안도 강계를 출발한 3봉수를 수신하던 봉수대이다. 나머지 4개의 봉수대도 각각의 봉수신호를 받을 수 있는 남산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었겠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야 할 길은 봉수대 왼편, 성곽의 여장 안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른다. 이 계단을 잠시 내려가면 잠두봉 포토아일랜드 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에서 보는 서울 시내의 모습이 자못 근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생태도시가 될 수도 있었던 서울이 고도성장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에고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곳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Y자 갈림길이다. 오른쪽을 택해서 가면 남산분수대 쪽으로 나온다. 분수대를 지나 그대로 직진하면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으로 얼마 전 공사를 끝내고 개통한 백범광장과 이어지는 생태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후로는 성곽이 보이므로 그대로 물 흐르듯 이를 따르면 된다.
산뜻하게 단장한 백범광장을 지나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자. 숲이 잎을 떨군 겨울에는 N타워에서 능선을 따라 떨어지는 성곽의 여장이 살짝 드러나지만 요즘 같은 계절에는 그 성곽라인을 어림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600년 도성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서울 한양도성 걷기는 여기서 5분만 더 걸으면 숭례문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숭례문에 도달하면 또 걷고 싶을 만큼 서울 한양도성의 매력은 깊고도 그윽하다. 6세기에 걸쳐 쌓인 이야기꾸러미이니 자꾸자꾸 열어도 무언가가 또 튀어나오는 도깨비방망이와 같다. 다음 편에는 서울성곽을 중심으로 한 걷기 명소들을 소개한다.
*발견이의 도보여행 <www.MyWalking.co.kr>에서 서울성곽 탐방로 및 전국의 걷기여행 코스 상세지도를 볼 수 있다.
글쓴이:윤문기 걷기여행 작가. (사)한국의 길과 문화 사무처장. 발견이의 도보여행 운영자
참조:발견이의 도보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