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이는 분은 이르면 가을, 아니면 내년에
走路에서 뵙기를 희망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포 용지 석장 분량이므로 읽는데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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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8일 일요일 서울국제마라톤 참가후기
42.195는 '사랑'입니다.
봉달이 골인장면을 보면서 ‘ 니가 인간이냐? ’ 서슴없이 튀어 나옵니다.
2시간 8분 4초!
키로 당 3분 페이스로 105리를 달린 것입니다.
3년 전 썹쓰리(3시간 이내) 동갑나기 마라토너가 흔치않은 여자 중의 한 사람인
나를 훈련시켜 준 적이 있습니다.
그가 몰아 채는 바람에 4분 30초 페이스 5키로, 속도의 고통을 체험했습니다.
덕에 일등을 했지만 다시는 못할 짓이었죠.
어린 아들을 끌어안는 봉달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그만 편안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목숨을 담보로 국민들 대리만족 시키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도전입니다.
세종로 출발~잠실 주경기장 골인의 서울국제마라톤 대회는 달림이들의 봄의 향연입니다.
올해는 2만4천명 참가였다는데 40대가 가장 많고 30대 50대 비슷한 수준, 60대도
간혹 보입니다.
이번이 12번째 도전이었는데 완주는 기본, 빛고을 광주 울트라 100키로가 마음속에 있어
시험해볼 목적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달려 볼란다 ♬
노래도 있지만 꿈을 꾸어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6분 30초 페이스 유지, 5시간 이내 골인이 목표입니다.
기록은 4시간 25분이 최고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단축은커녕 점점 뒤로 갑니다.
매번 30키로 이후를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출발 선상에 서면 완주 장담을 못하는 대신 최선을 다해 ‘포기’의 그 씁쓸한 맛은
느끼지 말자고 세뇌시킵니다.
기본수칙
첫째.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
둘째. 급식대는 빠지지 않고 들린다.
셋째. 먹을 때 외 걷지 않는다.
봉달이 등 엘리트 선수 8시 출발!
명예의 전당(3시간 이내) A B C D=>4시간 30분 E=> 5시간 F=>첫 출전
42.195는 ‘자유’입니다.
10키로도 뛰어 보지 않았다는 배동성의 사회와 서울시장 오세훈씨가 손 흔드는 가운데
출발, 청계천을 돌아 나오는데 15키로 였습니다. 이 청계천을 언제까지 우려먹을지
이번에는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통통제, 구급차, 회수차 대기, 5키로 마다 급식대, 물 먹은 스펀지,
군데군데 풍물패의 공연과 응원하는 시민, 자원봉사 학생들...
5시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축제이자 해방구였습니다.
이 속에 끼어들면 형식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인이었습니다.
“ 저, 완주 못할 것 같은데요.”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대학 동기가 다가와 속삭입니다.
‘완주 하겠다’로 생각을 바꿔라! 말해주지만 이미 그의 생각이 굳어져 있어 20키로
지점에서 회수차 올라타고 미묘한 감정의 기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핑계는 계속 핑계를 양산해 냅니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은 속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라톤 5년차에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내게 되었습니다.
세상사가 생각 속,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게 됨을 체험한 것입니다.
마라톤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근사치에 가면서 자신의 얼굴도
그렇게 만들어 갑니다. 늙어서도 당당하되 경솔과 자만은 내 것이 아닙니다.
42.195는 ‘자신감 회복’입니다.
저만치 낯익은 몸동작이 앞서 가는데 흔치않은 동갑나기 여자들입니다.
자만은 내 것이 아니라고 최면 걸지만 내 머릿속은 그녀의 몸동작을 보면서 금새
경박해져감을 발견합니다. 그녀들은 기록과 횟수에서 내 뒤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자만해져 있는 마음이 부끄러워 그녀가 먼저 간 그 길을, 나도 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양심을 씻어냈습니다.
“ 논문 주제 허난설헌으로 할까해.
페미니즘을 더 공부해서 접목시켜 보려는데 어때? ”
그녀의 긍정적인 답을 얻어내고 반드시 완주하라고 말하고 제쳐 나갔습니다.
그녀는 완주할 것입니다. 그녀의 삶 자체가 근성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지요.
페이스는 거의 일정했습니다.
스쳐 지나는 숨소리만 들어도 완주할지 못할지 짐작이 갑니다.
30키로 이후를 장담할 수 없었는데 30키로 이후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랍니다.
20키로와 30키로 지점에서 쵸코파이와 바나나 반개를 뚝딱 먹고 잠실대교 35키로 지점을
건넙니다.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울트라의 꿈은 접고 마음을 정리해야겠습니다.
풀코스나 일년에 두 번쯤 즐기자~ 로...
몸은 어느 사이 편안함을 찾고 있었습니다.
잠실로 들어서자 2년 전 감격적인 체험을 함께한 울트라 동기가 다가왔습니다.
“ 같이 가자! 그런데 나는 네가 겁나. ”
“??? ”
그때 42키로 까지 같이 갔었는데 걷고 싶어도 내가 걷지 않기 때문에 겁이 난다고
했습니다. 66번째 도전이라는 그의 말 속에는 세상을 달관한 자의 모습이
들어있었습니다. 깡 마르고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 새삼 나의 모습일 것 같아
그만두라고 하고 싶어졌습니다. 마라톤도 중독이었습니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잠실역 주변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응원하러 나온 저 군중 속에 나를 반겨 주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40키로 지점 급수대 끝에 ‘개 사료 보급소’가 있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부산 등 지방에서까지 올라온 동갑나기 마라토너들이
지나는 동갑나기들을 불러들여 막걸리와 과일 한쪽씩 먹여 보내고 있었습니다.
숫자도 많지만 이들의 활동은 마라톤 계에 소문이 나 있습니다.
낀세대들의 몸부림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늙어서도 반겨줄 곳이 많을 것 같습니다.
42.195는 ‘성실’입니다.
41키로를 지나 경기장으로 진입합니다.
‘해냈구나’하는 의기양양함은 있었지만 감동은 무디어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할 것을 해낸 것 같은...
무더기 마라토너들 틈에 끼어 피니쉬 라인을 향하여 트랙을 돕니다.
42.195km 4시간 40분 28초 골인!
여러분들도 시작해보지 않으시렵니까?
길 위에 뿌리는 땀만큼이나 느끼고 얻어지는 것도 많답니다.
고정관념을 깨버리면 삶이 다시 보입니다.
(2007.3.19)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남자도 어려운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