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갤럽의 9월 셋째 주 여론 조사에서 정계주요인물 8인에 대한 호감도 조사를 실시했다. 이번한국갤럽여론 조사결과 나타난 정계주요인물에 대한 개별 호감도는 아래와 같다:
정계주요인물 호감이 간다(%) 호감이 가지 않는다(%)
오세훈 41 46
홍준표 40 48
이재명 34 56
유승민 30 53
한동훈 28 51
이낙연 27 57
안철수 27 63
이준석 24 65
여기서 국민의 힘을 상대로 연속적으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의 제기하여 정치의 사법화를 시도하고 있는 이준석 전 국민의 힘 대표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좀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 힘 대표에 대한 성별, 연령별, 지역별, 성향별 여론 동향:
여론조사대상 호감이 간다(%) 호감이 가지 않는다(%)
남성 30 62
여성 18 69
연령별 18-29세 28 61
30세 34 54
40세 23 69
50 세 19 75
60 세 23 71
70세이상 15 57
지역별 서울 28 66
인천/경기 23 65
대전/충청/경기 22 65
광주.전라 17 65
대구/경북 20 64
부산/울산/경남 26 66
성향별 보수 28 64
중도 24 65
진보 23 71
청년정치를 표방하며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이준석 전 대표의 화려한 등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나 정치의 사법화를 통한 자신의 구명 운동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집착하는 광적인 태도에 지금 여론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대표는 가처분 소송에서 번번이 이겼지만 여론의 호감도는 반대로 악화되었습니다. 청년정치를 표방하는 이대표에 대한 젊은 세대의 지지도 밀물처럼 빠져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면 젠더 갈등으로 인한 여성들의 지지는 우려를 불러 일으킬 만큼 여전히 왜소합니다.
당헌당규를 바꾸어 당내 비상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한 연후에 새로운 당헌당규에 따라 임명된 국민의 힘 정진석 비대 위원장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 심리는 오는 28일에 있을 예정입니다. 28일 법원의 가처분 결과에 따라 정진석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될 경우 국민의 힘은 새로운 수습책을 내 놓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국민의 힘은 이준석 전 위원장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가처분 신청에 코가 꿰어 끌려 다니며 급한 불을 끄기에 급급합니다. 다수국민의 지지로 정권을 차지한후 할 일은 뒷전으로 밀고 철없이 권력투쟁에 이전투구를 벌이는 여당의 몰골에 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준석 전대표도 지금같이 공동체 의식이라고는 눈곱 만 치도 없는 마음의 상태를 바꾸지 않으면 옛날에 자신의 똑똑함에 취해 독불장군 노릇을 하다 존재감을 상실한 박아무개, 이아무개, 손아무개 선배정치인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로 이준석 전대표가 개인적으로 부담해야할 변호사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연쇄적인 가처분조치로 국민의 힘을 상대로 소송에 승리한다 해도 승소에 반비례하여 정치인으로 성공할 확률은 더욱 희박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신당을 창당한다면 모를까 국민의 힘으로 돌아갈 다리는 오래전에 스스로 폭파했기 때문에 본인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기 도취감에 빠져 상대방이 자기를 품는 것을 싫어 한다고 했습니다. 혹 살아있는 부처가 이세상에 있다면 모를까 현실정치세계에서 이준석의 막가파식 스타일을 품어줄 성인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국민의 힘 윤리위원장이 어제 이준석 전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를 개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추가징계는 탈당권유나 제명이 될 것 같다. 이준석 전대표는 추가 징계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예고 했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분풀이를 하는 이준석 전 대표의 법정 싸움이 언제 까지 계속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세상이 말세인지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살인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역무원 살인 사건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시의원이 남자가 좋아하는데 여자가 안 받아 주서 생긴 사건이라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시의원쯤 된 사람이 저렇게 철없는 생각으로 어떻게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 할 수 있을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소죄를 짓지 않고 살기 란 참 어렵습니다. 사람의 소죄를 용서하기라도 하듯 신명기 23장 25절-26절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너희가 이웃의 포도 밭에 들어갈 경우, 원하는 만큼 배불리 포도를 먹을 수 있지만 그릇에 담아서는 안된다. 너희가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경우, 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된다.”
위의 성경구절은 그릇을 가지고 와서 남의 포도를 따가거나 남의 곡식에 낫을 대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손으로 포도를 따먹거나 이삭을 잘라먹는 것은 율법에도 용납하고 있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선비 한 사람은 구약의 율법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선비 허노재가 더운 여름날 하양 땅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갈증이 심하여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가 배나무에 달린 배를 따먹고 있었습니다. 배를 따먹던 한 사람이 허노재에게 말했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 이 배나무에는 임자가 없소’
허노재가 대답 했습니다. ‘배나무에 주인이 없다고 해서 내마음에까지 주인이 없을 리 있겠소” 조선 선비 허노재의 양심은 존경받을 만합니다. 동방예의지국의 후예인 대다수의 한국인은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이 사회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양심적 공해를 일으키는 불한당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파되여 사회 일반에 오염을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하느님께서는 성인들보다 죄인들과 더 가까우시다’고 말했습니다. 제자가 스승이 한말에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자 스승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각사람을 줄로 매어 붙잡고 계시다. 네가 죄를 지을 때 너는 그 줄을 자른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매듭을 묶어 다시 줄을 매신다. 이렇게 해서 너를 그분께 조금 더 가까이 잡아 당기 신다. 거듭거듭 너의 죄를 지어 그 줄을 자르게 되고, 매듭이 하나씩 늘 때 마다 하느님께서는 계속 너를 더욱더 가깝게 잡아 당기신다.’- 앤소니드 맬로 이분지혜중에서.
마르코 복음 2장 16절에 바리사이파 울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예수님)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행위의 개념이 아닙니다. 상태의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죄(罪)라는 한문을 보면 아닐 비(非)와 그물 망(罒)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죄란 잘못을 저지른 자가 그물에 갇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사회 통념인 죄(罪)를 행위로 보는 사람들은 네가지(그물罒을 넉 四자로 해석) 즉 언행심사가 잘못된 것(非) 를 가르킨다고 말 합니다.
아무튼 성서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형식적 법치주의자로 비호감도가 높은 위선적인 한국의 유명 정치인의 행태와 비슷합니다.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여도지죄(餘桃之罪)즉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죄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위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젊고 잘생긴 신하가 있었습니다. 미자하는 욍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즉시 궁안으로 들어가 왕의 수레를 몰고 고향으로 가 버렸습니다. 당시 위나라는 왕의 수레를 허락없이 몰면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을 내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보고를 받은 왕은 노 하기는 커녕 자기 발꿈치가 잘려 나가는 사실도 잊어버릴 정도로 효성이 지극한 자라고 크게 칭찬하였습니다.
또 한 번은 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후궁의 과수원을 산책한 적이 있는데 미자하가 갑자기 복숭아 나무에 올라 가더니 잘 익은 복숭아 하나를 따서 한입에 베어 먹고는 왕에게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했는데도 도리어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는 늙고, 왕의 총애도 식어 갔습니다.
어느날 미자하가 왕에게 잘못을 저지르자 왕은 지난 일들을 언급하며 죄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군주의 기분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인치(人治)라고 합니다. 반면 법의지배(Rule of Law)는 통치자도 법의 구속을 받는 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법치는 법의 지배(rule of law)입니다. 법의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닙니다. 법의 의한 지배는 독재권력이 인권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을 편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히틀러가 1933년 3월24일 공포한 ‘국민 및 국가의 위기극복에 관한 법률’ 즉 수권법(授權法)이 법의 의한 지배의 좋은 예입니다.
정치는 개인이나 집단간에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 그리고 반목 상태를 조정하여 사회를 통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순기능입니다. 정치가는 정치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한국정치에서 당내 계파간 또는 여야간 합의하여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은 아름 다운 정치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여야 정치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 같이 남의 잘못을 캐내어 고발하고 규칙이나 규정하나 하나를 금과옥조처럼 잘 지키는 것만이 능사로 여기고 있는듯 합니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인들은 다른 사람의 희생위에 오직 나와 내 가족의 욕망을 추구하는 비뚤어 진 마음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력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고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영빈관을 지어 국격(國格)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선거를 통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올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행사하여 명실상부하게 국격을 올리는 방법을 적극 모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소 인간적인 소양이 부족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미천한 사람이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보석으로 몸을 치장한다고 갑자기 그 사람의 인격이 상승한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영빈관을 잘 지어 외빈 접대를 잘한다고 결코 하루아침에 국격(國格)이 치솟을 리가 만무 합니다. 겉멋에 맛을 들이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위정자들은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화려한 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고 책을 사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닙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저 품질 정치권력이 횡행하는 것을 견제하여 나라를 바른 길로 가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고품질 국가의 시민 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4월 10일 차기 총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저 품질 정치권력은 국민의 엄정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 인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에 성역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