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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서론
1. 히브리서 소개
히브리서는 신약의 서신들 가운데 가장 적게 알려진 책이다. 구약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접근하기 어렵다. 히브리서는 모세 5경을 풀어쓴 주석서와 같으며 히브리서는 신약의 레위기와 같다. “성경을 넘길 때 주의하라! 히브리서의 어떤 부분이 찢기면 예수님의 피가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장 탁월하게 기술한 기독론적 신학서신이다. 또한 히브리서는 로마서의 사본이자 부록과 같으며 둘 다 근본적인 복음진리의 강해서이다. 로마서는 은혜와 율법이, 믿음과 행위가 양립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주장한다. 반면에 히브리서는 신약이 구약의 절정임을 보여주며 계시의 점진성과 발전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제사장, 제물, 제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사역의 상징과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림자는 사라졌으며 실체가 왔다고 외친다. 이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구약의 모세 5경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으면서 옛 질서를 대체했고 유대교는 서론적이었고 일시적인 것으로서 목적을 다 했기에 이제 포기되어져야 한다. 옛 질서를 고집하면서 새 질서의 충만함과 완전함을 누릴 수는 없다. 히브리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리스도의 탁월하심”(Christ Supreme)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이 모든 문제의 답이고 난관에 대한 해결책이며 그리고 모든 침체와 실패에 대한 진정한 위로와 격려편지이다. 히브리서는 여러 면에서 특수한 성경으로서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문학적이며 70인역(B.C.27년경에 완성된 가장 오래된 헬라어역 구약성경)으로부터 인용한 문구들로 가득하다. 또한 히브리서는 “논문처럼 시작해서 설교처럼 진행하고 편지처럼 끝을 맺는다.”(Ress)
2. 저자
히브리서의 기자에 대한 여러 논란들이 있었다는 것은 모든 성경학도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초기 흠정역(KJV) 성경의 역본들이 히브리서 앞에 바울의 이름을 같이 사용했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울의 저작설은 기독교 초기의 동방교회의 지지를 받았으며(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디오니시우스, 클레멘트), 아타나시우스의 인정과 함께 서방교회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많은 이들은 바울이 저작설을 의심치 않는다. 그 이유로서는 ➀히브리서 가운데 디모데를 언급했고(히13:23) ➁베드로가 그의 편지에서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의 편지가 전해진 것을 언급하는 것을(벧후3:15)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설을 뒷받침한다고 어떤이들은 주장한다. ➂히브리서에서 전개되는 그 신학과 논조 그리고 흐르고 있는 사상은 전적으로 바울의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의 저작설을 믿고 있는 본인은 구약성경의 하박국 2장 4절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동일한 말씀의 인용이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바울서신인 로마서 1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나온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지나면서 바울이 아니라 바울과 가까운 누가, 바나바, 실라, 빌립, 브리스길라, 아굴라 등이 저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루터는 히브리서 저자와 관련하여 문체와 내용이 구약성경에 능하며 훌륭한 웅변가였던 아볼로를 지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저자가 히브리 서신을 보낼 때 자신에 대한 유대인의 편견을 고려하여 일부러 자기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히브리서를 누가 기록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히브리서에 대한 금언(金言)) “나는 히브리서를 누가 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누구든 나는 그를 사랑한다!”(F.W. Boreham)
그렇다면 주님께서 왜 히브리서 기자를 밝히지 않으셨을까? 이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히브리서 성경을 읽는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온전히 집중시키기 위함인 것 같다.
3. 수신지, 수신인
히브리서 저자에 대하여 모호함이 있다면 히브리서의 수신인과 수신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고 유추해 볼 수 있다.
➀고대 책명에서 단순히 “ 히브리인들에게”라고 적혀있음을 볼 때 수신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며, 이 서신이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헬라어 구약성경 번역본이었던 70인역에서 인용한 것을 참고한다면 특별히 헬라파 유대인, 헬라어권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의 아람어보다는 헬라어 방언을 사용했던 유대인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➁수신인이 일정지역의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리이었을 것이다. 서신의 마지막 장에서 개개인을 언급한 점이나 디모데와 함께 방문할 것을 밝힌 점을 고려한다면 그렇다.
➂수신인들은 이달리야와 관련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 하느니라(히13:24)”
➃말씀을 통해 수신인들은 아주 어려운 영적 상황에서 큰 격려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굳게 잡을 지어다”(4:14. 10:23),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6:1-2),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10:35), “인내로써...경주하며”(12:1), “낙심치 않기 위하여...생각하라”(12:3)
➄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고린도, 에베소, 로마 혹은 다른 어느 지역이든 이 서신의 독자들은 히브리 그리스도인 신자들로서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아직 회심하지 못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유대교로 돌아갈 영적 위기 가운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연대
학자들간에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히브서의 집필시기를 A.D.63-68년으로 본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히10:11)”에서의 동사의 시제가 현재시제임을 고려할 때, 그러므로 이 서신을 쓸 당시에 제사장들이 여전히 날마다 섬기고 있었음으로 성전이 여전히 서있던 A.D.70년 이전으로 볼 수 있다.
5. 배경 – 목적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극한 갈등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유대교 사회에서 모든 관계를 끊어야만 되는 고통,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하는 시련, 그리고 배교자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핍박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갈등과 긴장상태에 있었다. 그러한 갈등과 고난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는 유대교로 돌아갈 수 없으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히 붙들고 나아갈 것”을 교리적으로 확증하고 경고하며 격려한다.
그림자에서 실체로, 형식적인 것에서 진실된 것으로, 지나간 것으로부터 궁극적인 목표로,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목적은 유대교와 초대 그리스도교, 그리고 당시의 헬레니즘의 광범위한 배경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논하는 기독론(基督論)을 초대교회의 믿음의 집대성이라 말할 수 있다. 히브리서의 배경은 단연 구약으로서, 신약에서 구약을 가장 많이 인용(84회)한 책이다. 특히 70인역을 인용했음을 고려할 때 히브리서의 역사적 배경으로서 구약과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이 깊이 관연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6. 특징(주요어휘)
히브리서의 문학형식은 설교적이면서도 변증적이다. 목회적 설교이면서 권면적 논문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당당한 논증과 설득력은 압권이라 말할 수 있다. 히브리서는 유대인을 상대로 쓴 서신인데 신약성경 중 유대인을 상대로 한 것은 마태복음과 야고보서와 히브리서 세권의 책이 있다.
히브리서에는 특유의 화법과 반복되는 표현법이 나오는데 이점을 관찰해 보기로 하자.
➀“온전한”- 약 12번 나온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5:9)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6:1-2)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7:1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7:1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히9:9)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9:1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10:1)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10:14)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12:23)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13:21)
➁“영원한”- 여러 형태로 여러번 나온다. 옛 유대교의 일시적인 성격과 대조하여 그리스도안의 새로운 질서의 영원한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영원한 구원 -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9)
영원한 심판 -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6:2)
영원한 속죄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 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영원한 성령 -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 도의 피가(9:14)
영원한 기업 -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9:15)
➂“더 좋은” “더 나은” - 13번 나오는데 히브리서와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지고 특징적인 어휘다.
더 좋은 소망 -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 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7:19)
더 좋은 언약 -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8:6)
더 좋은 제사 -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 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9:23)
더 좋은 나라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11:16)
더 좋은 부활 -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 하였으며 (11:35)
7. 구조 - 개요(1-13장)
히브리서를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서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1:1-4:13)”
둘째는, 본론적으로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4:14-10:18)”
셋째는, 응용적인 부분으로 “믿음의 실천(10:19-13:25)”이다.
이는 신약의 다른 서신들처럼 첫째 부분과(1:1-4:13) 둘째 부분(4:14-10:18)은 교리(敎理)이고, 마지막 셋째 부분은 믿음의 실천(實踐)으로서 양대(兩大) 구분된다.
구분 | 큰 제목 | 작은 제목 | 말씀 |
서론 | 그리스도의 뛰어나신 인격 |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 1:1-3 |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 1:4-2:18 | ||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 3:1-4:13 | ||
본론 |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 아론의 제사장직분보다 뛰어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 | 4:14-7:28 |
아론의 제사사역보다 뛰어난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 | 8:1-13 | ||
구약의 제사보다 뛰어난 그리스도의 제사 | 9:1-10:18 | ||
결론 | 실천적 권면 (경고와 권면) | 믿음으로 전진할 것 | 10:19-39 |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을 것 | 11:1-40 | ||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소망 | 12:1-29 | ||
결론적 교훈 | 일반적인 교훈과 권면 | 13:1-17 | |
기도요청 | 13:18-21 | ||
결어 및 축도 | 13:22-25 |
<자료 : 온고울송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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