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9.
러시아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이다.

막상 떠나려니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서운함에 젖는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풍경들을 다 작별하듯 살펴 보았었다. 처음 대하는 풍경도 금생에는 두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이 자명하기에...
...
국경으로 가는 길은 여느 시베리아 길과 다름이 없지만 러시아 국경을 통과한다는 긴장이 있다.

출국심사소 입구에서 길을 찾아 꾸물거리니 초짜를 간파한 내 앞 순서의 핀란드 스킨 헤드가 맨머리를 흔들어 컴온. 한다.
친절도 하여라~ 놓칠까봐 얼른 따라갔다.

그는 몇 번(3, 4) 줄에 서야 하는지 아는 걸로 보아 러시아 국경을 자주 오가는 모양이다.
세 대의 차량이 함께 심사 받는다. 아무 것도 모를 때는 방법은 하나다. 컨닝. 훈련소 신병처럼 빠릿빠릿하게 뛰어가서 앞 순번 스킨헤드의 서류를 스캔했다.

내 순서가 오기 전에 얼른 필요한 서류를 들고
왔다. 오케~ 여권과 자동차 수출면장이다.
서류를 창구에 냈다. 빠꾸다. 머라머한다. 영어 같기는 한데 러시아말과 구분이 안된다. 쩝. 그머라머라 중에 오지리날? 요런 말이 들린다.
다시 보니 이런 복사본이다. Ok. 라고 영어로 유창하게 말해주고 다시 빠릿빠릿하게 뛰어서 원본을 갔다 주었다. (창구와 10m 땀났음)
속사포 질문이 이어진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 어디를 통해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차가 뭐냐. 둘이 가느냐.
이거는 요숙을 시킬 수도 없고 혼자 진땀뺐다. (나는 내가 영어를 이마이 잘하는 줄 몰랐다 묻는기 귀에 속속 들어오고 입에서는 영어가 휙휙 날았다)
...질문에 조신하게 대답하다 보니까... 이상하다. 이기 출국심사하고 무신 관계있노? 내가 여행 경력 40일에 눈치가 백단이다. (일마가 순 호기심이구나)
즉시 얼굴에 들어간 힘을 어깨로 옮기고 토킹을 우아하게 이어 나갔다.
다음 심사.
이번에는 관세관 아가씨가 완장을 두르고 등장했다. (완장에 알레르기가 있는데)
차 안의 모든 물건을 꺼내서 일일이 검사를 하는게 원칙이란다. 그래도 대개는 쉽게 통과라던데 이 아가씨 날 보고 차문을 열어라고 한다.(후회할낀데)
... 열었다.
아가씨가 눈을 살포시 감으며 입을 약간 벌린다.
... 내가 봐도 차안은 폭탄맞은 전쟁터다.
여행자 살림살이 그렇지. 머. 여행기 쓰니라꼬 시간도 별로 엄써요. 아가씨. 잠이 오는가 한줄기 숨을 내쉬면서 손가락으로 가방을 가리킨다. 뭔지 설명을 하란다.
....에~ 그거는 옷.. cloths 아니 어...
....(벌써 다음 손가락) 어.그거는.... 푸..드...
사실 우리가 얼메나 바빴는데 그거 또박또박 나눠서 넣었겠나 다 섞였지. (가방 열어보라 했시마 설명하기 어려웠을끼라)
귀찮은지 머리를 옆으로 휙~ (아이구 감사)
세번째.
출국심사를 마치고 1km 쯤 가니 핀란드 입국 심사장이다. 또 시작이다 너 어디서 왔니. 뭐하러 왔니. 블리디보스톡에서? 어디까지 가는데?
옆에 동료에게 핀란드말로 머라머라한다. 틀림없이 ...야들이 블라디에서 차로 왔단다. 미쳤나봐 어쩌고 잡담이다. 표정보마 모리나.
(... 사실 차의 여권인 영문 자동차 등록증을 안 가져 왔다. 이거 매~우 중요하다고 서울에서 복사를 2부나 했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복사본만 2부 이쁘게 있고 원본은 신발 주머니와 함께 대구에 계신다. 나의 건망증은 인터내셔널.)
아뭏든 이번에도 무탈하게 통과되었다.

네번째. 마지막 과정 자동차보험.
그린카드를 받았다. 나는 그린카드라고 하기에 신용카드 모양인 줄 알았더니 A4 종이 한장이다. 그린 색깔이고.
4번의 관문을 통과하고 나오니 중학교 입학시험 생각도 나고. 결혼 전에 처가집 방에서 똬악 나오던 생각도 난다.
...
드디어 핀란드다.

국경을 넘어 핀란드 땅을 감상하면서 요숙과 러시아와 다른 점을 이야기했다. 우선 아스팔트 도로에 빵구가 없다.
그렇지만 자연 경관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도 확실히 뭔가 마음에 달라진게 있다.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엇일까.
핀란드 마을 시내에 들어서면서 분명해졌다.
러시아가 많은 변화를 했고 자유로워진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늘 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가 나거나 운전법규 위반으로 폴리스 아저씨에게 불려가면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할 것같아 항상 조심을 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유와 함께)
그러나 핀란드로 들어오면서 부터는 그것이 사라졌다. 여기도 사고가 있을 수 있고 경찰 단속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에서는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처리될 것이란 믿음이 있다.
선진사회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이러한 신뢰가 공기처럼 깔려있는 사회이다. 러시아는 그 점에서 핀란드와 아직 차이가 난다. 이게 다른 점이었고 이것이 핀란드로 넘어 오면서 마음이 가벼워진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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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첫날 야영지인 라스틸라 캠핑 헬싱키(Rastila camping Helsingki)로 입성했다.
뉴질랜드 Top10 Holliday 야영장과 흡사하다. 그러나 Car Site와 Tent Site를 구별해 Car Site에는 텐트를 칠 수 없게하고 Tent Site에는 Power를 공급하지 않는다.

키친은 실내와 실외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37€. 첫날이라 방갈로에 잘까하여 How much? 하니 240€란다. 얼메요? 30만원이다. 노노노.
... 기양 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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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차안에서 요숙과 둘이서 오랫만에 다정하게 핀란드 첫날밤을 보냈다.


우와 요숙은 절대 호텔 체질이 아이다.
참기름. 무슨 오일. 깨. 머시기 다 넣어서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해왔다. 40일만에 처음 묵는 요숙의 요리였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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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북유럽 일정을 함께 하기로 한 나의 소울메이트 달오가 미국 샌디에고에서 온다.
헬싱키 반타공항에 픽업 가기전에 바닷가에 나갔다. 이 추운 날씨에 아이들이 수영을 한다. Life Guard로 두 청춘남녀가 근무 중이다. 여기가 선진국임을 느끼게 한다.

우리집에 손님이 오니 손님맞이로 세차를 했다. 엄마야 25€. 35,000원이다. 살인적인 물가.
지나가는 말로 왁싱하겠냐고 묻길래 얼마냐고 되물었다. 250€.
잘 못 듣고 오케 했시마 이틀 굶었다.

...
반타 헬싱키공항에서 달오 찾던 일. 심 사서 넣던 일. 주차장에 갇혀서(번호판 인식이 안된다) 끙끙대던 일. (난관을 요숙과 달오의 유창한 영어로 해결한 일). 이거 다 쓰면 좋겠는데 너무 길다고 할까봐 아깝지만 생략합니다.

이미 하루가 저물었고, 헬싱키 투어도 남았기에 일단 어제의 숙영지로 철수했다.

새로 사온 텐트도 좋고 그 안의 사람들은 더 좋습니다.

달오는 40년 친구지만 그저 식구입니다. 그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시러븐 (우리집 아가들도 포함) 사람들과 핀란드까지 가져온 인삼주 한 잔. 조으네요~
..
러시아에서 오기 전날에
설사때문에 약국을 갔습니다. 지사제를 받고 하루에 몇알 먹느냐고 번역기로 물었더랬습니다.
... 이거 어떻게 먹습니까?
(약사 아가씨가 번역기에 대고 머라머라 합니다)
답이 돌아 왔습니다.
... 혀 밑에 해장국.
핀란드에서는 번역기가 어떤 쇼를 부릴지 자뭇 궁금합니다.
핀란드 들어오면서 터널 처음 봤습니다. 시베리아가 그만큼 넓었지요.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들어봤습니다. 핀란드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핀란디아.
힘찬 뒷부분입니다.
핀란드 인사말로 굿나잇이
휘바 이요타~ ( hyvää yötä~ ) 랍니다.
휘바 이요타~
첫댓글 관람객에서 조연으로 들어왔습니다. 주연 두분께서 워낙 험지를 뚫고 지나왔기에, 저는 걱정이 하나도 안됩니다. 조연이기도 하고, 사회적 환경도 그렇고... 우예될랑공, 흐르는 물에 맡겨보기로 해 봅니다.
덕분에 러시아에 관한 공부 잘 했습니다.
더욱 더 재미있는 여행기가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보드카를 매일 밤 한모금씩 마시면 위장이 소독됩니다..
배탈 안나여~~ㅎㅎ
요숙에게 일러줍니다.
국경선 통과하면서 보여준 미송씨의 활약, 재치와 순발력 거기에 유창한 영어실력이 40년도
넘게 영어로 밥벌이한 나로 하여금 현역이 아닌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게 합니다. 누구나
위기에 처하면 초인이 된가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군요. 계속해서 드라머틱한 은퇴기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