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렌의 가르침(영) [남묘호랭개교]실행을 그대로 본떠 만든,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영) [‘그 영’안으로 들고 마심 ‘오주예수여’]쉬지않고 주문외워 '그 영'충만 실행*
[남묘호랭개교]
불교경전중에 법화경[본류는 석가 -> 천태계열 ->니치렌의 주장]을 기초로 하는 불자종교에서 파생하여 나온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히말라야인근 방언인 산스크리트어로는 ‘나마스 살달마 분다리가 소다람’- 인도말로는 ‘나모삿다르마푼다리카수트라’)의 일본전파 및 득도자로 성인추앙을 받는,
‘니치렌대성인’(1222~1282)의 입종선언(종파창제선언=세칭득도)시 일본식 발음으로‘남묘호렌게쿄’로 발음하여 이를 일본의 호국종교 및 동남아와 세계적으로 전파에 박차를 가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남묘호랭개교’로 불리는, 그 근본이 일본 조상신숭배(동쪽 일본을 향하여 절하는 동방요배)와 타국에 종단이 설립되어 그 모여드는 재산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빼돌려 각 나라들에서 문제와 지적을 당하고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종교교단이 있습니다.
그들의 교주(敎主) 득도성인으로 추앙하여 높이는 니치렌의 말,
[ ‘어여운 중생들에게는 제목만 읽거나 외워도 공덕이 된다’ ]는 말을 높여,
아무나 남무묘법연화경 제목의 일본식발음 [‘남묘호렌게쿄’만 쉬지 않고 외워 말하면 바라고 소망하는 모든 것이 부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간단한 실행을 믿고 가르치고 행하여, 그 종교(무리가르침 영)의 깊음으로 들어가게 되는 자기 최면으로 ‘남묘호렌게쿄’를 쉼 없이 연발하여 최면경지에 이르며 계속하여 그 최면가운데 들어 풀리지 않도록 외워 말하는 주문어가 ‘남묘호랭개교’입니다.
*남묘호렌게쿄의 실행 방법과 효과를 그 종단에서 가르치는 말*
[인간을 위한 묘법이 아니었다면 남묘호렌게쿄라는 것으로 묘법을 표현하시고 민중에게 부르도록 하지 않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문자형태의 본존님(經)을 보며 속으로 제목을 불러가면 되는 것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도 속으로 제목을 부르면 됩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생각으로 ‘남묘호렌게쿄’를 쉼 없이 외치면 됩니다.
모든 감각기관이 상실된채 남묘호렌게쿄를 만나지 못한채 침대에만 누워 있는 큰 장애나 병을 겪고 있다면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친구가 언제 어디서라도 그를 위해 남묘호렌게쿄를 힘차게 불러주면 되는 것입니다.]
***[비교]****************************************************************************
[위트니스리의 가르침(‘그 영’)에 들기 위한 세칭지방교회의 실행]
그 영 안에서 행하는 실행적인 길
갈라디아서 5장은 우리가 그 영 안에서 행해야 함을 말한다(16, 25절). 그러나 어떻게 이것을 행하는가? 오늘 우리는 그 비결을 알고 있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 생활에서 영 안에서 행하기란 좀 어렵다. 우리의 자녀들이나 배우자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오, 주 예수”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떤 종류의 미신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영적으로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을 쉬는 것은 미신이 아니다. 범사에 당신은 꼭 호흡해야 한다. 호흡하지 않는다면 삶은 끝난다.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말하지만(살전5:17)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마치 쉬지 않고 호흡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범사에 우리는 “오, 주여”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오,주여”라고 말함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를 항상 영 안에 지켜줄 것이다. 이것이 영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사는 비결이다.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주님을 지속적으로 호흡하는 것을 배우라. 만약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면, 당신이 영적인 것에 관해 읽거나 연구하는 것은 다만 생각 속의 지식이 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지식이다. 당신이 “오, 주여”라고 말함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것이 당신을 영 안으로 이끌어 그리스도의 죽음이 당신의 영을 통해 당신의 존재 안에서 효력을 가질 것이다. 당신이 읽고 알고 있는 모든 진리는 반드시 살아 있는 영에 의해 실제화 되어야 한다. 당신이 “오, 주여”라고 말할 때 자신을 살아 있는 영 안에 지키게 된다. 그러면 성경의 모든 지식이 당신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실제가 될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알고 있든지, 그것이 다만 문자로만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의 지식이 당신 자신을 죽인다. 의문은 죽인다(고후3:6). 당신은 문자로부터 영으로 돌이킬 필요가 있다. “오, 주여”라고 말함으로써 생각으로부터 영으로 돌이키라.
주님을 부를 때 당신은 그것을 가볍거나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분을 진정으로 대해야 한다. 그러면 그분을 부를 때 그분과 연결되어, 그분을 하늘에 속한 전기로 누리게 될 것이다. 즉시 당신에게 만유를 포함한 영의 실제가 내적으로 전달될 것이다. 당신은 생각을 사용하지 말고 영을 사용함으로써 살아 계신 주님을 접촉해야 한다. 당신이 영을 사용하는 최고의 길, 가장 간단한 길은 “오 주여”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열고 영을 사용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면, 영 안으로 들어가고 영 안에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분을 부를 때마다 신선케 되고 능력 있게 된다.
로마서 8장 6절은 생각을 육신에 두면 사망이나 영에 두면 생명과 평강이라고 말한다. 혼의 주된 부분이 생각이다. 생각은 영과 육 사이에 있다. 생각을 둘 곳이 두 군데 있다. 생각을 사용할 때 영을 떠나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각을 육신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이다. “오, 주여”라고 말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오, 주여”라고 할 때마다 즉시 생각을 영으로 돌이키게 된다. 그분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름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둔다면, 생명과 평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육으로 돌릴 때 즉시 사망이다.
주님을 찬양하자. 그분의 긍휼로 우리는 그 비결을 보았다. 각 처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고전1:2)은 너무나 놀랍고 실제적이며 효과적이다. 우리가 “오, 주여”라고 말할 때 생각을 영에 두게 되고, 내적으로 생명과 평강의 느낌을 갖는다. 신약은 우리가 영안에서 또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롬8:4b). 이것을 행하는 길은 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와 주님은 실제적으로 하나이다. 끊임없이 “오, 주여”라고 할 때 우리 자신을 영 안에 지키게 되고 영 안에서 또 영을 따라 행할 수 있게 된다. (Back)
(위트니스리,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자람으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됨, 영문판 p.31-39)
우리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이든 자유자든 우리로 다 한 영을 마시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마실 수 있는 위치에 놓여졌으므로 다만 끊임없이 “주 예수”를 부름으로써 마셔야 한다. 15분간 주님의 이름('주예수여')만을 불러보면 무언가('그 영')가 발생할 것이다.
- 지방교회를 위한 위트니스리의 가르침 중 -
***[결론]**************************************************************************
제국주의 일본의 호국불교인 니치렌의 가르침 ‘남무묘법법화경’ ‘제목만 외워도 공덕이 된다’는 말 불법경 결론으로 ‘남묘호랭개교’라는 만사형통우상이 만들어져 세상을 미혹하고, 가끔으로 집회와 책자로 그 주문마법의 효력을 얼마간 더하기 위하여 법화경내용을 가르칩니다.
이를 그대로 기독교로 옮겨 본뜬 위트니스리의 ‘오주예수여! 이름만 불러도 ‘그 영’ 마심 호흡 복 누림 성경결론‘으로 , 주문외워 마법하여 ‘그 영’에 들기만 하면 성경말씀묵상도 전도도 기도도 특별히 나를 살피거나 염려열심 할 필요도 없고, 다만 집회로 성경을 배우거나 읽는 것은 그 마법효과를 더하기 위함이니,
전도하고 싶으면 아무나 붙잡고 ‘나를 한번 따라 해보시오’해서 오주예수여 세 번만 따라하게 하여 따라하면, 그 사람은 주의 이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에 기록하였고 이제 불렀으니 구원을 얻얻고,
성령 안에서 진리로 권함 받아 성경묵상이나 기도도 별도로 필요도 없으니, 다만 오주예수여! 이름만 최면 하듯 불러대면 만사형통인 [‘그 영’마법 누림]우상 안에 들고도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자라고 마지막 날에 영생(?)한다구요?
(혹 ‘그 영’에 계신 분은 꿈에서 깨이고 정신 차리십시다. 영원멸망으로 이끄는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말씀을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택하여 전파하시도록 내리사랑을 세상 끝 날까지로 제자와 자녀 된 자를 통하여 잇게 하셨으며, 이를 인하여 진리의 성령인치심 가운데 진리말씀권고를 따라 쉬지 말고 기도(영이 산자의 호흡)로, 신이신 하나님과 인격인 사람이 ‘진리의 말씀 안으로 교통 말하고 나누어 진리에 이를 것’을 명하시고 있습니다.(고전1:21, 딛1:3,등등 성경전체의 말씀증거)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그러나 속되고 헛된 말장난들을 피하라.
그것들은 점점 더 경건치 아니함으로 나아가느니라.“(딤후 2:15~16)
“어린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라. 아멘“(요일 5:21) -흠정역-
첫댓글 샬롬^^ 몇년전에 이곳 외의 카페에서 그 카페의 주류를 이룬 지방교회인과의 논쟁중에
지방입장파(위트니스리의 교훈을 중심한) 그들의 좇는 그 결국이.............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과는 다른복음, 다른영(그 영)임을 증거하는 글로
당시 주께서 부족한 저를 통하여 분별하여 올렸던 본문입니다.
아랫글 598번의
댓글답변에 관한 보충 글 자료로 함께하여 올립니다. ^^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사용된 그이름이 임의적이 아님을 주의해야 합니다..어떤이름을 사용하든 그분의이름은 다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출애굽 3장까지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각각 다른이름을 사용하였지요..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창세기1장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고 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셨지요..그런데 출애굽3장14절과15절에 와서야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성경에는 이런 귀한부분들이 많습니다만 우리가 잘모르면서 미신적으로 비슷하다 하여 함부로 말하는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지요..
지금 아만님은 남문호랭교에서 부르는 귀신들의 이름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남무묘법법화경’ ‘제목만 외워도 공덕이 된다’는 말>은 어떤의미인가요? 이이름에 주예수님의 이름처럼 권세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이름을 귀중히 생각하고 그이름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이름을 부르는것이
무었이 잘못되었는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그분을 죽도록 사랑한다면 주님의이름을 들이마시고도 싶을것 같습니다..저는...
아만님, 니치렌의 사상을 지방교회가 적용한 것이 근거가 있는 내용인가요?(따지려는게 아니라 정말 알고 싶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공부한 대학교가 니치렌의 총 본산이었습니다.(우리나라엔 창가학회 SG모임, 일본에서 소카학회) 장학금에 각종 혜택이 많아서 제가 이 대학에 교환유학생으로 파견되는걸 매우 못마땅해하는 여학우들이 많았습니다. 자기들 밥그릇 가져가는것 처럼....가서는 고생을 좀했습니다. 기숙사밑에 그들 법당이 있는데 자주 제방이 있는 구역으로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을 간접체험(?) 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다행히도 마을에 일본 그리스도교단 교회가 있어 주의 날을 잘 지킬 수 있었네요
네^^ 사브넷바네아 형제님! 반갑습니다.^^
아! 멀리 위(니치렌의 총본산에서 체험하신분?)에서
아래에 있는 저를 보시는 느낌에 멈칫! 놀랬답니다...ㅎㅎ
물론 윗글의 본떳다는 것에 관하여는 그들간의 조인이나 무슨 다른증거로
사실관계를 증명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다만 그 실행면이 너무도 흡사한 것에 관한것입니다.
니치렌은 1200년대 사람이요. 웟치만리와 위트니스리는 1800년대말~의 인물이니요.
제가 참된 인생이란? 하고 여러 서적들을 읽기 시작한 때는 훨씬 이전부터 이겠지만,
이를 찾아 집을떠나 나선때가 1978년이었습니다.
첫걸음곳으로 택한 곳이 가장 가까이로 있는 절을 찾아
살아있는 석가를 만나보는 것과 과연 그 안에 참의 증거가 있느냐?로
가장가까이 있는 사찰인 법천사를 향하던 중에 산 중턱 묘지곁에서
쉬고있던 조계종 총무원소속의 도선이란 스님을 만났으며,
저의 심경을 소개하자......
소개장 두통을 써서 제 손에 들려주며 먼저 목포에 있는 약사사 주지를
찾아 1박하며 상담하고 다음날 해남대흥사로 행하게 하셨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개월을 행자승으로... 빈 방에서 벽과 함께 이야기하며 홀로 매일의
느낌만을 적는 것으로와 그들의 종교적 예불 참여.......
그리고 간혹 전체모임에서 그들의 무용담(서산대사~ 당시에이르는
무술과 득도를 위한 참선과 도량이야기)나눔 등등으로
몇개월을 지내던 어느날
고등고시를 그곳에서 준비를 하던 당시로는 형뻘되는 어느분과의 대화중
과연 석가모니가 살아있는 신이냐?
그 안에 변치않을 진리가 있느냐?
도리어 그는 죽었고 죽기전 자신의 교훈을 가지고 신격화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또한 도리어
각자의 업보를 참선과 수행과 도량으로 스스로 부처가 되가고자하는 자기기만 아니냐?
등등의 깊은 인생전반의 깊은 얘기를 나누었고... 피차 평안을 비는 인사후에
그날 그시로 그곳을 뒤로하고 하산하였답니다.
하산이후로 여러 종교들에 대하여 직접 저를 어떤 무리안으로 던져와
제가 할 수 있는 간접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참(진리)이 증거하는 신을 찾고 찾다가 ....... 마침내 '신은 없다'
그리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구나! 오호라 불쌍한 인생이여! 하며...... 1980년 5월경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혼만 살아있는 가운데서 드러눕혀있는 제 껍질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려도 도데체 누군가가 와야말이지요?......ㅎㅎ
당시 깊은 산속이었는데... 점점 의식을 더듬어보니 어제의 그자리에 손가락하나
까딱(다시 죽을 수도 없이 난처한)할 수 없는 난감한 저를 보는가운데.......
어렴풋이 제가 접하여본 많은 종교들이 있었는데......
외국 잡신이라고 알려하기는 커녕 간혹 술이라도 한잔 걸칠라치면
그들 예수꾼들의 예배를 훼방하였는데 혹시 그치 예수가 참 신이 아닐까?! 번득^^
예수여! 당신이 살아있는 신이면 나로 하여금 당신을 한번만 만나게 하소서!
그리고 나서 다시 죽겠나이다........ㅎㅎ
언젠가 제가 중학교시절 어느 연설장에서 받아 집안구석 어딘가에 박혀있을
기드온협회의 무료증정 성경이 생각났고......
[그래 그곳에 있는 그 성경을 살펴보고 확인할때까지만.......]하다가
지금까지 와버렸네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만 우리 주의 주되심을 인하여 찬미의 영광을 드립니다.
알렐루야! 아멘
신실로 영원을 살아계시며
긍휼에 풍성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안으로 평강을 소원드립니다. 샬롬^^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은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6:7-9). 즉 심지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마저도 헛된 반복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로자리오 사용하면서 반복기도하고, Blessed Virgin Mary 를 계속 반복하기를 1천번 정도 합니다. 니치렌이 일련을 말하지요? 일련정종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레18:30절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시편 48"10> 라고 하셨는데...
이 이름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안다면 모든것을 포함 한다는것을 알고 느께게 될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사랑도 능력도, 지혜와 의와 거룩과 구속이 될수 없다는것을 가슴깊이 알게 된다면
그분의 이름을 반복~!! 아니라 <수없이~!!> 부를날이 오게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믿음에 따라 그분만이 우리의 위로와 보장과 견고한 성과 피난처가 될수 있다는것을 마음깊이 꺠닫게 되는날
오직 하나님 ,그분 여호와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대로 우리의 모든것이 되심을 믿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놀랍고 그분이 말씀하신것도 놀랍습니다..다만 우리가 특별하게 그분의 보배로움을 느끼는만큼 그리고 그분을 믿어 주는만큼 우리는 영적실재를 체험하게 될것입니다..그분은 우리에게 제한 받으실정도로 부드럽고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여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표호니라..>출애굽 말씀입니다..그리고 시편에 9:10절에는 여호와여 주의이름을 아는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라고 말하고 있지요..다시 시텬 25편 11절에서는 여호와여 나의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주의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시편54:1)> <주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선대하시며(시109:21)>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또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자를 주의이름으로 밟으리이다(44:5)> 그유명한 시편 23편에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하셨구요..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시63:4)>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자신을 계시하고 계시고 하나님의이름은 우리 믿음의 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아래서 하나님의 이름의 실제안으로 들어갈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놀라운 일을 성사 할수 있을것입니다..이 세상에 계실때 주 에수님도 자기자신을 구약의 여호와라는 것을 시인하셨습니다..그분은 <너희가 만링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죄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4>라고 하셨지요..주예수님은 그분이 바로 여호와이심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런데 그분의 이름을 좀 자주 부른다하여 어떻게 남문호랭교와 똑같이 취급하심이 저는 이해가 가지도 않거니와 아만님은 그분의 이름을 남문호랭교로 격하시키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계시네요..
네^^ 헤세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반갑습니다.
물론 그분의 이름(그분 안으로 계신 모든 진리들로 인하여 진리가 진리들)을 위하여
일(진리증거) 하심을 모든 성경이 증거합니다.
저는 망령되이(영의 혼미가운데들기 위하여 그 이름을 사용하거나 불러대는) 일컬어지는 것에 대한
경계로 올렸답니다. 샬롬^^
아만님...그들이 망령되이 부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들이 믿음으로 부르지 주예수의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겠는지요?
이러함은 아만님만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보입니다..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보지 않습니다..제가 댓글로 적은것은 그들이 이러하기 때문에 부른다고 들었습니다..아만님은 지방교회 지체들중 어떤사람들과 교제했으며 또 어떤사람들에게 들었는지요?
아만님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정보를 보고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제가 그동안 보아온것과 똑같은 자료를 올려놓은것도 그렇네요..확실하게 모르면서 어림짐작으로는 얼마든지 생사람을 떼려잡을수도 있습니다..실로 가능한 일이지요..
물론 주님과 아만님의 문제겠지만 나아가서는 우리가 어떤 영적인일에 대해서 의문이 가고 받아들일수 없다하여 그일에 대해서 함부로
폄하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미신취급을 하는것은 스스로도 자기자신의 영적상태를 조금은 짐작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자꾸 부를고 싶은데 하물며 나의 주인이 되시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것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귀신의 이름을 부르는것으로 말하시는 아만님은 절대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의지하지도
그이름에 권세가 있음도 믿지 않으시겠군요?????
지방교회에서는 주 예수여를 많이 반복하지는 않는가요?
헤세드님! 본문중에 [우리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이든 자유자든 우리로 다 한 영을 마시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마실 수 있는 위치에 놓여졌으므로 다만 끊임없이 “주 예수”를 부름으로써 마셔야 한다. 15분간 주님의 이름('주예수여')만을 불러보면 무언가('그 영')가 발생할 것이다.] 위트니스의 설명은 분명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사람이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이름으로 주신 hw:hy]나,
부를 수 있는 jIhsou' cristou'(이에수스 크리스토스)와는 다른 부름이지만요.
오직 진리의 주 안으로 평강을 소원드립니다. 샬롬^^
아만님의 평강소원은 저도 드리구요..성경말씀은 하나님의 감동 혹은 더정확히 호흡이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이의미를 아만님은 한번 생각해 보시는것도 좋을듯 하네요? 아만님 말대로<15분간 주님의 이름('주예수여')만을 불러보면 무언가('그 영')가 발생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요? 이게 뭐그리 잘못되었나요? 주님의 이름에 이정도 능력도 없다면 내이름으로 귀신이 좇겨나갈 이유가 없겠습니다..어느것이 더 체험하기가 어려울것 같습니까? 저는 주님의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감을 믿는다면 그가르침이 그리 잘못되었다고 보여지지 않는군요?
하토브님은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어 기도할때에 한번만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는 구절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것을 중언부언으로 보시는지요?
이방인들이 기도할때 그중언부언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주예수여를 많이 ,여러번, 혹은 수없이 부르면 도대체 이분의 이름이 예수아 하마시아가 아니던가요?
그게 왜 잘못인가요?
우리는 하나님과 영에 속한 일들중에 위장된 초자연적인 일이 많다는것은 압니다만 그렇다고 결단코 초자연적인 모든것을 거절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저는 이런글들을 보면서 참으로 믿는이들이 한 극단에서 다른극단으로 휩쓸려 가는것을 느낍니다..
사실 우리사람들이란 가장 극단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이지요..좀더 언급을 하면 <종일 주의이름으로 기뻐하며 89:16>
보배로운 그분의이름을 종일이 아니라 저는 평생을 기뻐하며 부를것 같습니다..그분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다고 했지요..
내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셨지요..아만님은 주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간다는것을 믿으시는지요???
이런 문제는 극단에서 극단으로 흘러가기는 해도 철이 철을 연마하듯이 그런 과정에서 조율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방교회가 전세계 어디서나 오 주 예수를 일률적으로 부르짖는 것은 누가 일률적으로 가르친 결과로 보입니다.
지방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친다면 주예수님의 이름에 대해서 충분히 알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이치를 논하시지 않습니다..어떤이치에 대해 사람과 논할때 사람은 결코 하나니을 이길수 없습니다..
하나님의이치는 너무 깊어서 사람이 측량할수 없음과 같습니다..저는 그러한 가르침이 있다면 저도 배워보고싶구요..
그이전에도 저는 주님의 이름을 불러왔습니다..그분은 <레18:6절에서 나는 여호와니라..> 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이름을 찬양하라.........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68:4> 이렇게 찬미를 드리는데
반복하면 어떻고 여러번 부르면 어떤지요~~!! <저가 내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91:14>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자라면 여러번 아니 수없이 반복하여 높이는것이
어찌 미신종교와 같이 취급을 할수 있는지요??? 이런분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고 계시는가요?
주께서 정말 전능자심을 믿는다면 어떻게 이런발상이 나와서 미신과 취급을 할수 있을까요?
주예수님이 바로 여호와이심을 알지 못하시는지요?
저는 그분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것으로 주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출3:16-17> 이이름은 특별히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사용된 이름입니다..
우리의 구원부터 장래의 왕국을 얻기까지 여호와의 이름은 광야에서 믿는이들이 갖는 이름이요 우리로 하여금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이름입니다..아마도 광야에 살지 않는다면 이이름의 위대함을 경험해보긴 힘들거 같다고 생각되어집니다..우리사람은 이쪽으로 치우치거나 다른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내가 그진리를 체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진리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셨음 합니다..시간이 좀 흐른다음 언젠가 그런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때문이지요..만일에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께서 이모든일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만님! 헤세드님! 사브낫바네아님! 하토브님! ....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모든것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 이름안에 그 사람의 모든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시요 호흡이시요 능력이시요...그분은 우리의 모든것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시며 놀랍고 영광스러우며뛰어나시며 모든 무릎을 그 이름앞에 꿇게하시는 능력의 이름이십니다
말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호흡이라 하면서 생활은 전혀 따로국밥같이 살수는 없습니다
호흡을 주일날 한번하는분도 계신가요? 수요일예배 금요일 구역예배시간만 호흡하는분도 계신가요?
우리의 입술에 주님의 이름이 떠나지 않고 즐겨하며 늘 기도와 간구의 생활이 이어진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이보다 더 좋은일이 없을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한번부르던지 백번부르던지 그 이름의 가치를 알고 체험하신분들의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어디 비교할데가 없어서 세상 잡신에 비교하였는지 ...
그런 기막힌 발상을 하는 분들의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분들은 최소한 그정도 허탄한 생각을 하시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ㅎㅎ... 처음뵙겠습니다. ^^
창조의 근본이신 이, 만유의 주재, 우리의 구속주, 믿음으로 그분 안에 감추인 우리의 생명......
그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되 그분을 아는 신령한 지식으로 경건에 속하여
그분의 이름에 영광있기를 구할 따름이랍니다. 할렐루야! ^^
이름에 대해서 이런 저런 대화들이 오고 가고 있군요. 어떤 이름은 그 주체의 인격을 대변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쪽이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나...주 예수의 이름이 가지는 인격체
그 한분 안에서 그리고 그 이름의 실재와 연합하여 하늘의 세계를 맛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한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반갑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거듭나(구속주로 영접한 믿음이, 밥티즈마로 죽고
하나님 앞으로 일으킴 받아 삶) 주(主)되신 그리스도와 한 호흡으로 동거동락 동행(Godliness)하므로
모든 [삶으로 그분 이름의 영광을] 구한답니다.
( hw:hy] 의 실체께서 우리에게 그 영원하신 말씀 발라 문질러주시며 동행하시기 위하여 오신
거룩하신 우리 主 jIhsou' cristou'(이에수스 크리스토스)시니요) ^^
저는,...오 주 예수여! 라고 부름의 숫자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는 구원도 원함도 나의 것이나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전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행할려는 습성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이후에 생겨났습니다...다만, 주신 은혜를 감사하므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찬송과 기도는 의식적이 아니라 저절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니까 이렇게 되었다가 아니라...모든 것이 나와 상관없이 구원자의 원함에 따라 나에게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자녀로 삼으신 그 분, 아버지의 뜻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반복으로 부르다 보면...최면상태(또는 흥분)로 들어가는 것들이 성령의 역사로 잘못 오해하는 일들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열 번,백 번, 수 천번을 부른다 하드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