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어버이날은 지났지만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님을 허락하심에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주일되길 소원합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인데 그 중에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십계명 중에서는 다섯 번째이지만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고 5-10계명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인데 그 중에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훈훈한 감동을 줍니다. 부모를 섬기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고 미래에 복을 쌓아두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부모를 공경하여 잘 섬기는 사람이라면 사회생활도, 신앙생활도 잘못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잘 하면서 생활이 엉망인 경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는 안하고 싸움질이나 하면서 부모님 앞에서는 전혀 안 그런 척 한다면 부모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부모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부모를 위한다면 모든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부모님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신중할 것입니다.
고려장을 아실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늙은 부모를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리고 온 것을 말합니다. 고려장과 관련된 이야기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머니를 지고 아버지와 함께 산에 간 어린 아들이 아버지 지게를 챙기니까 아버지가 왜 그러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길 지게를 챙겨가야 다음에 저도 아버지 늙으면 내다버릴 때 쓸 것 아니냐고 하니 아버지가 잘못을 깨닫고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어머니가 지게에 타고 산을 오르면서 길모퉁이마다 나뭇가지를 꺾어놓습니다. 아들이 한참 가다가 어머니 하는 행동을 보고 왜 그러시냐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아들이 혼자 내려갈 때 길을 못 찾아갈까봐 올라온 길에 나무를 꺾어서 표시해두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그 말에 뉘우치고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잘 모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려장의 기록은 우리의 역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전혀 나오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도 부모를 극진히 모신 자를 찾아내어 나라에서 큰 상을 내리고 잔치를 열었다는 기록과 부모를 학대하고 소홀히 한 자에게는 2년간 구금형을 선고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장에 대한 기록은 1882년에 미국의 동양학자인 윌리암 그리피스가 ‘은둔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에서 처음 소개됩니다. 고려에는 산채로 부모를 유기하는 고려장 풍습이 성행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미국 작가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사람들로부터 한국에 대해 배운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사실과 전혀 다르게 일본인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열등감을 심어주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일본인들이 제일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역사 조작 아닙니까. 역사 조작의 달인들입니다.
그러나 일본인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극우인사들이 그렇습니다. 임진왜란 때 삼 천 병력의 지휘관을 맡아 선봉대에 서서 동래성전투를 치룬 한 일본장수는 한양으로 진격하는 길에 피난 행렬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 농부가 혼자 피난 가기도 힘든데 늙은 어머니를 업고 무리와 한참 뒤쳐져서 가고 있던 것입니다. 저렇게 늙은 부모를 업고 가는 효성 있는 백성들이 평화롭게 사는 조선을 침범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일까! 이 장수는 평소에 조선이 부모를 잘 섬기는 나라인 줄 알고 있었는데 직접 와서 효를 실천하는 농부의 모습을 보고 번민하다 결국 귀화하여 도리어 일본과 맞서 싸워 조선을 구하는 장수가 됩니다. 그가 사야가, 김충선 장군입니다. 효는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명령은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 왕의 명령도 목숨을 걸고 지키거늘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명령했을까요? 효는 우리가 지켜 행할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명령해놓으신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먼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엡6:1에서 ‘주안에서 네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공경한다면서 순종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공경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불순종하면서 부모를 잘 섬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요구하고 권하는 것을 자식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느니, 시대에 맞지 않느니, 세대차이가 나니 하면서 불순종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시대에 맞지 않아도 순종하면 하나님은 순종하는 것 자체를 더 높게 보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 맞지 않다고 불순종할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 안 맞아도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지 않는지를 하나님께서 테스트하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잠23:25에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즐겁게 하라,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는데 이게 바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기쁘시게 하려면 좋은 자녀가 되면 됩니다. 좋은 부모이기를 먼저 요구할 게 아니라 내가 좋은 자녀가 되면 나로 인해 부모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녀가 잘 되면 부모님이 병원엘 자주 간답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하니 매일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오질 않아서 왔다고 합니다. 한 번 해 보십시오. 억지로는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자녀가 늘 근심, 걱정이 되면 정말 부모가 병이 나서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근심, 걱정하다 보니 스트레스에 각종 신경성 병이 찾아옵니다. 항상 웃게 해드리고 기쁘시게 해드리면 병도 잘 안 걸립니다. 좋은 자녀는 다른 게 아닙니다. 용돈 많이 드리지 못하고 맛있는 것 많이 사다 드리지 못해도 맡은 일에 언제나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면 됩니다. 부모가 근심, 걱정 안하시도록 하는 것만도 좋은 자녀입니다. 재능이 있는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썩혀 두고, 능력이 있는데도 게을러서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좋은 자녀가 아닙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레19:3에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경외하다는 말의 의미는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존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순종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즐겁게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도 없이 부모를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서 존경과 사랑을 품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면 만남도, 섬김도 억지로나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줘도 아깝지 않은데 부모에게 하는 것은 아깝게 여긴다거나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경이 아니며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부모를 즐거워하고 기쁘시게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을 지적하는 것이고 이것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도 어버이날이니까 가야지 하고 가는 것과 정말 보고 싶어 가는 것은 다릅니다. 남들 다 하니까, 안 하면 욕먹으니까, 욕 안 먹으려고 하는 것과 좋아서 하는 것이 어찌 같겠습니까? 성경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경외하고 섬기라고. 사람들은 상처받은 것은 잘 기억하면서 받은 은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에게조차도 그러하다면 그것은 바른 자녀라 할 수 없습니다. 상처가 아무리 커도 낳아주신 은혜에 비하겠습니까? 그 은혜가 더 소중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장수하되 복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복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아프면서 오래 살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복된 것입니다. 효를 다하면 이와 같은 복이 있습니다. 이런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땅에서도 잘 된다고 했습니다. 하는 것마다 잘 되는 것은 분명히 복입니다. 이 복 또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복을 누리리라”고 하십니다. 복을 받지만 말고 그 복을 오래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효를 심으면 효를 거두게 하시고 불효를 심으면 불효를 거두게 하십니다. 고부간에 갈등이 심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기세등등하던 시어머니도 나이는 속일수가 없는지 기력이 쇠하여 식사 때마다 손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숟가락도 놓치고 밥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국을 쏟고 그릇도 깨뜨리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방구석에서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습니다. 고양이 밥그릇은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는 고양이 밥그릇을 씻어서 시어머니 밥을 담아 드렸습니다. 나무 그릇을 하나 더 구해 국도 퍼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릇을 깨뜨리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시장에 다녀와서 보니 열 살 된 아들이 옆 집 친구와 함께 통나무를 잘라서 부엌칼로 나무속을 파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 뭐 하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다음에 엄마 아빠가 사용할 밥그릇을 만들고 있어요.” 꼭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효는 첫 계명입니다.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한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이 어버이주일이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에서도 복을 받고 하나님 앞에 가서도 잘 했다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 앞에 서는 그날까지 효를 다하며 달려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