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교회는 오늘 초기 교회의 성인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를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성 고르넬리오는 251년경 로마의 주교로서 노바시아누스 이단을 거슬러 열렬히 투쟁했고 치프리아노의 도움으로 교황의 권위를 강화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성인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갈로 황제의 박해로 순교하게 됩니다. 한편 성 치프리아노는 210년경 카르타고의 이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개종하여 사제가 되고, 249년 카르타고의 주교가 됩니다. 매우 험난한 시대에 치프리아노는 자신의 모범과 저술로써 교회를 탁월하게 다스리는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에 순교하게 됩니다.
이 같은 두 순교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병들어 죽게 된 백인대장의 노예를 낫게 하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기적 이야기 가운데 우리의 관심과 시선은 당연히 백인대장에게로 집중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을 믿는 유다인도 아니었으며 로마 군사를 이끄는 이교도인이었고 어찌 보면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빌라도로 대표되는 로마 세력과 같은 인물로 분류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청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 청을 드리기 위해 보내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유다인의 원로들입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청을 올리기 위해 유다인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원로를 하나도 아닌 여러 명을 예수님께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백인대장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드리는 청의 내용을 살펴보면 놀라움은 더 커집니다. 백인대장이 유다인의 원로들을 보내면서 드리는 청은 그가 데리고 있는 노예를 낫게 해달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인대장이면 의당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살아갈 터인데 고작 노예 한 명을 위해 유다인들의 원로를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을 예수님께 보내 한낱 노예 하나를 낫게 해달라고 청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며 청을 올리는 이유를 오늘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제시합니다.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루카 7,2)
복음서가 분명히 이야기하듯 백인대장에게 그 노예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염치 불구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 노예를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소문에 유명하다는 예수를 모셔 자신이 아끼는 노예를 낫게 하려는데 여기서 그가 보인 믿음이 예수님을 탄복하게 만듭니다. 백인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6ㄷ-7)
노예지만 그 노예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백인대장, 그 노예가 중병에 걸려 죽을 위험에 처하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아끼지 않으며 그를 낫게 하려는 그의 의지 그리고 그가 예수님께 보이는 겸손과 겸양의 자세는 다른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놀라게 만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ㄴ)
예수님을 놀라게 만든 백인대장의 믿음이란 다름 아닌 노예라 할지라도 한명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수 있는 겸손의 자세였습니다. 백인대장이 보인 이 같은 믿음의 자세를 예수님은 칭찬하시고 우리는 매일 미사 가운데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기 전에 백인대장의 이 고백을 우리의 입으로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오늘 복음은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그 분을 모시기에 합당한 우리의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이 같은 점에서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는 코린토 교회의 사람들은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인 보인 믿음의 자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 안에서 분파를 만들어 분열을 조장하고 주님 만찬을 위한 식사 자리에서 서로 기다려 주지 못하고 자신의 잇속만을 채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한 주를 여는 이 아침, 여러분 모두가 전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가 진정 하느님께로 다가가고 그 분을 합당히 모시기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믿음의 자세, 곧 모든 이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겸손의 자세를 통해 오늘 하루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합당히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