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9,화요산문(61)/응, 날 이뻐하는 사람이야/김용원
짝꿍이 가르쳤던 아이 중에 쌍둥이 여자아이가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로 어찌도 그리 예쁘게 생겼는지 신의 미적 경지를 그 녀석들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녀석들에게서 나는 한 가지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두 녀석 다 이갈이를 하였는데, 한 녀석은 이미 앞니가 났는데도 다른 한 녀석은 아직 앞니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늘 궁금하게 여기던 중 마침내 계제가 있어 꼬치꼬치 그 원인을 캐물었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앞니가 나지 않은 녀석은 평소 손가락을 빠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입에 넣은 손가락이 앞니의 생장을 방해하여 아직 ‘이빨 빠진 새앙쥐’ 꼴이 된 것이다. 나름대로 손가락 빠는 습관을 없애려고 그 녀석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나서서 손가락에 테이프도 붙여 보고 쓴 약도 발라보고, 별의별 수단을 다 썼는데도 그제껏 그 버릇을 확실하게 고치지는 못하고 있댔다.
똑같은 조건에서 단순히 손가락 빠는 버릇 하나로 치아가 있고 없고가 결정되는 결과를 보면서 “습관은 무섭다”라는 여섯 음절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중 한 분과는 호형호제간으로 지냈는데, 어느 날 대선배 작가 분을 만난 자리에서 전화 통화 중 그 대선배 분을 만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그는 “아 그 분, 내가 잘 아는 분이야. 날 무척 예뻐하시는 분이지.”라는 대답을 주었다. 그 말을 전했더니 선배님은 피식 웃으면서 그랬느냐는 식인데 영 그 표정이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둘 사이는 어떤 이유로 상당히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뒤로도 그 ‘호형’은 남을 두고 일컬을 때는 같은 값이면 좋게 말하고 결코 비난하거나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어느 날 매스컴에서 그의 이름이 붕붕 날아다녔고, 언론인으로서, 정치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성공한 인생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잘 아는 ‘이 분’은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을 헐뜯거나 조롱하는 투가 입에 배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분이 공개석상에서 ‘그분’을 비판함은 물론 아주 험하게 조롱했단다. 이분과 그분은 씹던 껌도 입에서 꺼내 나눠먹을 사이였는데, 그땟일로 적이 되었다. 서로를 인격모독성 발언으로 공격함은 물론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방해를 놓기까지 하였다. 그리저리하여 결국 두 사람은 끝내 인생 파멸까지 겪고 말았다. 이분은 대학강단 진출을 포기해야 했고 그분은 신경을 너무 써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 아주 하찮게 볼 수 있는 미덕이 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반면, 또한 누구나 있게 마련이라며 하찮게 지나칠 수 있는 결점이 영혼의 육질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혀 마침내 그의 일생이 그르쳐져 헛된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특히 여기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미덕과 맞선 뜻인 악덕이 자기합리화, 또는 사회편의상 ‘개성’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의 결점이나 약점, 또는 사소한 실수를 확대재생산시킴은 물론 그 사실을 교묘하게 조롱화하여 인격모독까지 겪게 하는 이른바 악질적 논객, 사이비 언론인, 편파적 평론가라는 자들이 대표적인 사례인물들이다. 그들은 칼은 살을 베지만 말은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말종들이다. 그 말종행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평소 악덕이 세포화되어 인성으로 정착화되는 과정을 겪은 자들이라서 비만처럼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事必歸正, 自繩自縛, 因果應報의 사자성어를 그들이 스스로 입증해 주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는 그때마다 카타르시스적 통쾌함을 맛보게 된다. #인과응보#자승자박#인과응보#사이비언론인#편파적평론가#읽어보고또와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