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뉴 페이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낯익어 자연스러워져 버린 얼굴. 마주대하면 참으로 소탈해 보이는 인상인데 필드에서는 금새 폭발할 것 같은 격렬한 힘을 거느린 사람이 바로 '이적생 27번 김종현'이다. 운동선수치고는 비교적 작은 체격인데 필드를 누빌 때의 모습은 겁없는 맹수처럼 거침없고 과감하다. 그래서인지 남성 팬들조차 그 앞에 서면 영혼을 빼앗길 것같은 두려움에 호흡이 가빠진다고 한다.
- K리그 정복을 향한 길고 험한 여정. 그러나 좌절은 결코 없었다
단양 도당 초등학교 시절 절친한 동네친구를 따라 축구부를 찾았다가 우연히 감독의 눈에 띄여 축구를 접하게 되었다는 그가 이젠 '대전의 영웅'으로 불리는 축구선수가 되어있다. 어린시절 특출할 거라고는 남들보다 큰 신장이 전부였던 그에게 맡겨진 첫 역할은 엉뚱하게도 골키퍼였다. 비오는 날 다이빙 캐칭하는 것이 싫어서 한달만에 골키퍼에서 풀백으로 돌아섰다는 당시의 일화를 그는 빠른 호흡으로 엮어갔다. 본격적인 축구를 하겠다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청주 덕성초등학교로 전학한 그는 다시한번 게임메이커로 포지션을 전환했다. 대전시티즌으로 둥지를 옮긴 지금은 윙 포드로 활약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채로운 경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창조도 발명도 아니다. 다만 동료와 호흡을 맞춰 팀 플레이를 하고 많이 뛰어다니며 적당한 기회를 잡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체력소모가 많은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효과적인 돌파로 팀 동료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빛나는 조연이 되고싶다."는 그 소박한 고백이야말로 주연을 압도하는 조연의 진면목을 느끼게 만든다.
고등학교 시절 운동선수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안정된 체육교사가 되고자 충북대에 진학해 임용고시를 거쳐 교사자격증까지 취득한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실업팀(국민은행)에서 3년 동안 무명선수로서 평이한 생활을 했다. 걸음발이 느렸던 그는 당시에 선수로서 살아남기 위해 치고 뛰는 공간활용의 묘를 익히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연습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철저한 몰입과 억센 오기야말로 그만이 갖는 선수로서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 녹슨 절망의 사슬을 끊고 냉혹한 킬러로 부활하다.
타고난 잿더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씨와도 같은 그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는 선수로 불리워지길 바란다. 노력을 그친다는 것은 선수생활의 마감을 의미하기에 그는 선수생활을 청산하기 까지는 멈추지 않는 바람처럼 계속 달릴 것이라고 말한다. 당분간 그에게서 쉼표나 서행의 조짐은 발견하기 힘들 것 같다. 계속 달리고 꿈을 꾸면서 불씨의 뜨거움을 간직하며 살고자 하는 그는 축구화를 벗기전에 반드시 헤트트릭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는다. 프로입단 첫해에 '짐싸들고 당장 돌아가라. 너 따위가 축구선수냐'며 감독으로부터 신통치 않다는 평가와 모진 수모를 당한 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에 열중한 그에게 있어 '헤트트릭의 꿈'은 참으로 축구선수다운 야무진 설계다. 이제 그는 자신을 가두는 그물을 찢고 한계에 맞서며 마지막 선수로서의 생을 대전이라는 매력적인 도시와 팀에 투사하고자 한다.
그는 팀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성실히 노력하는 선수다. '전남시절의 숙소에는 웨이트장이 없었어요. 대전에 올 때 솔직하게 시설면에서는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시설을 보유하고 있더군요. 덕분에 단 하루도 웨이트를 거르지 않고 개인훈련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이야기 하며 행복한 미소를 수줍게 건내는 그의 모습이 더욱 그를 신뢰하게 만든다. 아무튼 판에 박힌 어투가 아님에도 그의 말에는 나사못처럼 박혀드는 강인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약싹빠름, 이기심, 헛된 명예 따위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마치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는 자신의 야심을 자꾸 안으로만 감추고 있었다.
- 킬러의 표정에서 피어난 수줍은 미소
최근 자신의 프로생활을 통털어 소녀팬들로부터 인형을 선물받았다며 즐거워하는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음을 실감하고 있단다. '홈에서 이기는 가장 큰 힘이 바로 경기장을 찾아주신 홈 팬들의 성원이라고 생각해요. 대전의 분위기를 접하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대전의 서포터며 시민들의 축구사랑은 인정받을만 합니다. 팬들의 함성과 탄식을 듣다보면 범람하는 홍수처럼 거대함마저 느껴집니다. 선수가 열심히 뛰고 좋은 성적을 내면 한번도 경기장을 찾지 않은 시민들도 아마 닫힌 마음의 품을 열겠지요.' 그는 이제는 어엿한 팀 공격의 노른자위다. 온실 속을 벗어나 거친 야생에서 자신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의 김종현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축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결사적인 자기노력을 통해 팬들의 가슴에 비수와 같이 날카롭게 파고든 그를 우리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우리는 필드에서 뚜닌 그의 거친 호흡을 귀기울여 들을 것이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며 나는 온 몸의 때를 깨끗이 씻어낸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