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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답사 스크랩 [제주] 제주 삼성혈(三性穴)과 홍화각(弘化閣)
東河 추천 0 조회 151 09.06.29 15:41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삼성혈(三性穴)


시도유형문화재 제15호 (제주시)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이다.

  삼신인 [三神人 :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신라 내물왕 18년(373년)에 신라에 입조. 사성(賜姓)을 받아 양(良)을 양(梁)으로 고침]. 부을나(夫乙那)]이 이곳에서 동시에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마(牛馬)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 3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이 세 개의 지혈은 주위가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하여 경배하듯이 신비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년 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는 성혈로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조선중종 21년(1526) 목사 이수동이 처음 표단과 홍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를 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매년 춘ㆍ추제 및 건시대제를 지내고 있다.

 

 

 

 

 

 

위 내용을 보고 상상해 가면서 아래 전시장 모형도를 보면서 이야기를 그려 보자.

 

 

 

 

 

 

 

 

 

홍화각(弘化閣)


  세종 16년(1434년) 공조참판 최해산은 제주절제사로 부임한 이후, 소실된 절제사영(節制使營)의 건축을 뒤로 미루고 우선 백성들을 구휼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제주목 관아가 모두 불탄 뒤 1435년(세종 17)에는 제주도에 풍년이 들어 백성이 즐거워하자, 못 쓰게 된 사찰의 재목과 기와 등을 가져다가 절도사영 세 칸을 지어 만경루(萬景樓)란 이름을 홍화각(弘化閣)이라 고쳐 썼다.

  사진의 홍화각 아래 부분은「홍화각기(弘化閣記)」로서 홍화각을 짓기까지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고득종(高得宗)으로 하여금 쓰게 한 글인데 여기에는 제주도의 지형과 역사는 물론 최해산의 인품과 백성들에게 베푼 선정 및 홍화각의 건립 내력과 홍화각이라 이름 붙인 이유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재 「홍화각기」와 홍화각 액자는 고양부 삼성재단에서 소장되어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역사를 규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삼성혈의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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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29 20:49

    첫댓글 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 제주도를 두 번이나 가도 여기는 들리지 못하였는데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09.06.30 10:48

    제주가 탐라국이 된 설화가 삼성혈에 있었네요.. 감사해요 동하님 ^^*^^

  • 09.06.30 23:24

    다음에 제주도에가면 꼭들러봐야겠습니다 ...감사하는마음으로 머물렀습니다

  • 09.07.01 23:19

    삼성혈을 향해 있는 나무도 신기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다녀 온 곳을 사진으로 보니 새롭습니다.

  • 09.07.02 09:00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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