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교준비를 어떻게 했는가
목회자로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설교준비는 주일 설교문을 만드는 작업만은 아니었다. 성경을 읽고 주석을 살피는 일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며 내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경험한 설교준비는 책상 앞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신문을 읽다가,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하느님 앞에 앉아 있을 때 설교의 씨앗이 생겨났다.
젊은 목회자 시절에는 설교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교인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러 주석과 설교집을 읽었고, 좋은 문장을 찾아 원고에 담기도 했다. 그러나 목회가 깊어지면서 설교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설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삶과 말씀을 연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다.
농촌에서 목회할 때는 농민들의 삶이 성경을 읽는 중요한 창이었다. 논밭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 병든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성경 속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도시목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외로운 사람도 많았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 문제, 질병, 자녀 문제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의 삶을 외면한 채 성경만 해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 먼저 본문을 여러 차례 읽었다. 처음부터 주석에 의존하지 않았다. 본문 자체가 내게 무엇을 말하는지 들으려고 했다.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왜 이 말씀이 오늘 내 마음을 붙드는지 물었다. 그다음 역사적 배경과 문맥을 살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들었는가, 복음서 기자는 왜 이 이야기를 기록했는가, 다른 본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공부했다. 그렇게 본문을 충분히 살핀 뒤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질문이 내 설교준비에서 중요했다.
칼 바르트는 설교자의 책상 위에 성서와 신문이 함께 놓여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 말은 내게 오랫동안 중요한 설교 원리가 되었다. 성서만 읽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설교가 되기 쉽고, 현실만 바라보면 설교가 사회평론으로 흘러갈 수 있다. 설교자는 성서와 세상 사이에 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신문을 읽었다. 정치와 경제, 노동과 복지, 전쟁과 평화, 생태와 기후위기 같은 문제를 살폈다. 설교에 사회문제를 억지로 끼워 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교인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설교자는 사람들의 삶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피로를 모른 채 사랑을 말하기 어렵다.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사람에게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삶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설교는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며도 사람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교인들의 말을 들으려고 했다. 상담하면서 들은 한마디, 장례식장에서 유족이 흘린 한숨, 병원에서 들은 짧은 탄식, 예배 뒤 교회 문 앞에서 나눈 대화가 설교의 재료가 되었다. 어떤 때는 내가 준비한 설교보다 한 교인의 삶이 더 깊은 설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교준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어쩌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었다. 사랑을 설교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용서를 말하면서 마음속에 원망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평화를 말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적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설교자는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의 뜻처럼 말할 위험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도덕적 기준을 복음의 이름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내 말이 정말 복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내 감정과 편견에서 나온 것인지 살피려고 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값싼 은혜’에 대한 경고도 내 설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본회퍼에게 은혜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종교적 위안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요구하는 은혜였다. 이 생각을 붙들면서 나는 설교가 사람을 위로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복음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부름이다. 우리 안의 욕망과 편견을 돌아보게 하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며, 익숙한 삶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먼저 내게 물었다. ‘이 말씀을 나는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늘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설교자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다. 설교문을 쓸 때도 처음부터 완성된 원고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본문에서 떠오른 생각, 책에서 만난 문장,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 산책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어놓았다. 흩어진 생각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을 만들면 그때 원고를 구성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버렸다. 좋은 문장이라고 해서 모두 넣지 않았다. 많이 말하는 것보다 꼭 필요한 말을 남기는 것이 중요했다. 설교는 길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 문장이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을 때도 있었다.
기도 역시 중요한 준비였다. 설교를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설교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말씀 앞에 서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을 수 있다.
젊을 때에는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생각하려고 했다. 그리고 목회 후반에는 함께 걸으려고 했다. 설교도 그렇게 변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다음에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중에는 ‘이 말씀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물었다. 돌이켜보면 설교준비는 결국 성서를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을 읽고, 나 자신을 읽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 앞에 가져가는 일이었다.
예수의 말씀은 강단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처럼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평화를 이루며, 작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억눌린 이웃의 편에 서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강단에서 내려오는 순간 설교를 끝내는 사람이 아니다. 강단에서 전한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이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준비한 설교보다 나를 준비시킨 삶이 더 컸다. 성서를 읽었고 세상을 읽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설교를 준비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성서를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나 자신을 말씀 앞에 세웠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만든 말을 내려놓고 말씀을 하느님께 맡겼다고. 설교자는 말씀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배운 설교준비였다.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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