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23, 11, 12)
제목 : 자발적 순종
성경 : 마 16 : 13-18
예전에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이솝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바람과 해가 시합을 벌렸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남자의 외투를 벗기는 시합입니다.
먼저 바람이 시작을 했습니다.
바람은 세찬 바람을 불어서 외투를 벗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바람을 불었습니다.
그러나 웬걸 그 남자는 외투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꼭 붙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럴수록 바람은 더 세차게 불어보았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몸을 움츠리며 외투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람은 외투를 벗기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해가 나섰습니다.
해는 외투를 입은 남자에게 햇볕을 쬐였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투를 입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해는 이번에는 자기 있는 힘을 다해 그 남자를 향해 햇볕을 쬐였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자신이 입고 있는 외투를 벗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외투 벗기기 시합은 해가 이겼습니다.
여러분 바람과 해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바람은 외투를 강제로 벗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해는 외투를 스스로 벗도록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설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17)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서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먹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 선악과는 금단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자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더 이상 에덴동산과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불 칼(창3:24)을 두어 지키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진작 선악과 주변에 불 칼을 두어 지키게 하지 않았을까요?
왜 아담과 하와가 자유롭게 선악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셨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창1:27)으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로버트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실 때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고전15:45)으로 불리어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왜 하나님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을 이토록 기뻐하셨을까요?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기뻐하신 것일까요?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자발적 순종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저와 여러분, 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계획하셨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아들 예수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일에 예수님이 기쁨으로 나선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요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요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러한 예수님의 자발적 순종을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변국들인, 블레셋, 암몬, 모압, 에돔, 아람을 차례로 정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자신이 거할 궁전을 백향목으로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궁전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겼던 다윗은 자신만 궁전에 거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궤는 임시 처소라 할 수 있는 휘장 아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불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하 7: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여러분 하나님이 다윗에게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신하 중에 다윗에게 성전을 지으라고 조언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은 순전히 다윗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것입니다.
다윗이 자발적으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 짓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다윗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역상17:8) 또한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 것이다.(삼하7: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집은 바로 다윗 왕조를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역상17:10)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의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집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대를 이어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발적 순종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한 해를 돌아보며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예물을 정성껏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때 중요한 것은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미국의 대 부흥 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가난해지는 길이 아니라 주님께 공급받는 길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풍성하게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추수감사예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런데 자발적 순종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은혜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발적으로 순종을 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서 우러나서 무엇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즉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막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성막 만들 재료를 가져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너도 나도 성막 만들 재료를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가져왔습니다. 즐거움으로 가져왔습니다. 자원함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출35:21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출35:22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출35:29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도 교회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교회는 목회자 혼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세워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교회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은혜 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면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꿈꾸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 순종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 은혜 받은 사람,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자발적 고백을 들으시고 기뻐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고백이 하나님이 역사하신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바울이 크게 기뻐한 적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바울을 물질로 도운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바울이 기뻐한 것은 물질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바울이 기뻐한 것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그 하나님의 역사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바울에게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게 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이렇게 썼습니다.
요삼 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요삼 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교회 나오고, 자발적으로 예배드리고,
자발적으로 기도하고, 자발적으로 전도하고, 자발적으로 큐티 하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러면 목회자인 저도 얼마나 기쁠까요?
그러면 본인도 신앙생활이 즐거운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받고 하나님을 체험하여 자발적 신앙을 소유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