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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소개 >
하와이 대학 종교학과 Steve Odin 교수의
과정철학과 화엄 불교 책소개
(Process Metaphysics and Hua-Yen Buddhism)
글 | 송광섭 (조계종 국제 포교사)
부처님의 정법안장이 인도에서 기원하여 세계의 수행자들에게 영혼의 반려자가 된 후, 세계 변방의 수행자, 종교인, 철학자들에게도 수행의 등불이 되어 왔다. 그 후 세상의 집단지성이 발아하여 세상과 우주에 대한 지성적 사고능력이 생성 발전되면서 수학자, 학자들의 창조적 학문적 탐구와 혁명적인 영적 발상의 전환으로 인간의 사상과 우주의 생성 변화에 대한 구조적인 안목이 확장되어 왔다.
세계의 철학 사조는 우주의 근원적인 존재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하여 우주론에 대한 탐구를 고대로부터 사색을 통하여 노력해 왔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 구성의 근본 입자에 대한 학문적 연구 결과와 시험을 통한 입증으로 서양의 창조론 보다 동양의 불교 사상에 기반을 둔 연기적 우주론에 기반한 실증적 존재에 대한 탐구가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세계의 중심사상에 부처님의 화엄장(華嚴藏) 세계에 대한 이론과 이를 통한 현대물리학(現代物理學)의 양자역학(量子力學) 이론과 상대성 이론의 출현으로 부처님의 화엄철학이 더욱 주목을 받고, 부처님께서 견성한 세계의 실상을 현대 물리학이 증명해 주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법성원융 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 일미진중 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과 무량원겁 즉일념 (無量遠劫卽一念) 의 사상으로 색즉시공(色卽是空) 과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새로운 사상의 지평(地平)이 확인되고 있다.
불교 수행자, 철학자, 과학자의 지적 근기와 수행 지혜의 역량(役糧)이 동서를 통하여 다르고, 자기 견해(見解)에 대한 인연공덕이 서로 달라서 현생 세계에서 각자 도생하는 수행과 탐구의 과정을 따라가고 있으나, 오직 하나의 목표, 세상의 궁극적인 그 무엇, 세계의 중심 존재, 이 뭣고를 찾는 비젼은 양(洋)의 동서(東西)나 탐구자의 인종이나 지성의 배경을 가리지 않는다. 불교의 핵심 사상인 화엄장 세계와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법성게(法性偈)를 통하여 화엄장 세계의 불이 법문 법성원융 무이상, 시간과 공간과 자성의 일체도인 이사무애 理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 법문과 시공을 아우르는 일념즉시 무량겁과 일미진중 함시방의 실상에 대한 종교철학자와 과학적 구조주의 철학자의 견해를 관조 할 수 있는 저서가 있어 울산대학교 김진 교수, 인제대학교 이찬훈 교수, 서울대학교 조은수 교수의 자료를 참고하여 미주현대불교 독자 여러분께 소개 드린다. 부디 미주현대불교 독자 여러분과 인연있는 수행자들의 불법 수행에 참고가 되기를 기원한다.
-- 편집자 주
제목; Process Metaphysics and Hua-Yen Buddhism; A Critical Study of Cumulative Penetration VS. Interpenetrations
by Steve Odin;
한글 번역판: 과정형이상학과 화엄불교,저자:스티브오딘 |역자:안형관 |출판사:이문출판사
<목차>
제1부 무애 상입의 화엄 원돈승
제1장 화엄변증법적 사유의 융회 패턴, 제2장 상호 인과관계와 상입, 제3장 의미의 동시상호성립에 관한 언어적 분석과 화엄불교, 제4장 열림, 현전함 및 드러남으로 서의 상입,
제5장 상입과 즉각적 깨달음: 화엄이론과 선 수행의 조화,
제2부 화엄불교에 대한 화이트헤드 과정사상에 의한 비판
제6장 창조적 종합과 창발적 새로움, 제7장 느낌의 벡터적 전이로서의 인과성, 제8장 부정적 파악, 제9장 실체에 대한 과정이론, 제10장 누적적 진입의 형이상학
제3부 깊은 무의식의 신학: 과정신학의 재구성
제11장 집단무의식으로서의 화이트헤드의 양극적 신,
제12장 집단무의식과 동시성: 원형적 상상에서의 비시간적 직시
저자 Steve Odin 교수에 대하여
스티브 오딘(Steve Odin) 교수는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의 제자로서,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캠퍼스 (SUNY at Stony Brook)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82년에 하와이 대학 종교학과에 부임했다. 그는 보스턴 대학(1989), 도호코 대학(1994-95), 도쿄 대학(2003-04)에서 객원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의 연구와 교수 분야로는 일본철학, 동서 비교철학, 미국철학,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 현상학, 실존주의, 환경 윤리학, 미학 등이 있다. 그의 저서로는 프로세스 형이상학과 화옌 불교(1982년), 선과 미국의 사회적 자아(1994년), 일본과 서구의 예술적 분리(2001년), 화이트헤드와 일본 미학의 비극적 아름다움(2016년) 등이 있다.
오딘 교수는 현대의 대표적인 화이트헤드 학자 중의 한 사람이자 화이트헤드 철학과 화엄불교의 비교연구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서양인들에게는 상당히 난해하게 여겨질 화엄불교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오딘 교수가 화엄불교에 가한 해석, 그리고 그것과 화이트헤드 철학과의 비교연구는 화이트헤드 연구자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화엄학 연구 분야에서 그의 영향력은 단지 서구 학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전문 연구 영역간의 간극 탓으로 화엄불교가 비교적 낯선 한국내의 많은 화이트헤드 연구자들도 이 분야에서 오딘 교수의 견해를 대체적으로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엄의 불이사상
화엄의 세계관은 모든 구성원들 간에 무한히 반복되는 상관성이 있는 우주를 상징하기 때문에 동시적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이라고 한다. 화엄의 가르침은 총체성을 상징하며, 우주는 스스로 창조하고 유지하고 정의하는 존재로서 유기체(有機體)이다. 이러한 상황을 기술하는 전통적인 용어가 법계(法界)연기(緣起)이다. 화엄불교의 중요한 관심사는 상호(相互) 인과적(因果的) 관계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주를 설명하는 것이다. 화엄철학에서 인과관계란 일반적으로 상호(相互) 의존성(依存性) 또는 상호 조건성(條件性)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엄철학에서는 인과관계라는 개념을 대체적으로는 시간적 선후와 상관없이 사물들의 상호 의존관계(依存關係)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한다. 인과개념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화엄불교에만 독특한 것이 아니고, 대승불교 전반에 공통된 용법이다. 만물의 상호의존성을 말하는 상입, 相入이라는 개념도 단순하게 시간적인 인과 작용(因果作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화엄 승교분제장 (華嚴 乘轎粉劑章)의 마지막 부분에서 건물과 그 부분들의 관계라는 유비(類比)를 통해서 우주 만물의 상호의존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위에서 방금 말한 인과개념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으며, 우주 속에 존재하는 만물의 관계를 육상(六相) 원융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 육상의 뜻에서, 총상(總相) 이란 하나에 많은 덕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며, 별상(別相) 이란 많은 덕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니, 개별이 전체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전체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동상(同相)이란 많은 구성요소의 취지가 서로 어긋나지 않아 함께 하나의 전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상(異相)이란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서로 마주하지만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성상(成相)이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구성 요소가 연기를 이루기 때문이다. 괴상(乖常)이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스스로의 존재형태로 머물러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뜻을 설명한다. 총상이란 집과 그 부분들의 관계라는 유비를 통해서, 집이 서까래 등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포함하면서 하나의 집을 이루는 것처럼, 이 우주가 하나의 보편적 존재임을 말한다. 서까래 등과 같은 부분들은 각기 다르면서도 하나의 집을 이루는 부분들이라는 의미에서 집 전체라는 보편적 존재에 통합되어 있어 서로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기도 하다. 동상(同相)이란 이 우주의 모든 존재자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육상(六相)에 대한 해설에서 집 전체와 그 부분들이 상호 의존하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우주 속의 만물이 서로 상즉 상입의 상관관계 속에서만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 만물의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생각은 불이사상(不二思想)이다. 불이(不二)라는 말은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우주의 전체와 부분, 그리고 각 부분들은 서로 둘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라고 할 수도 없고, 둘이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둘이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것들이 서로 전혀 다른 둘이라고 한다면, 그것들은 하나의 우주를 구성할 수 없다. 둘이라고 하면 그것들이 하나의 우주(宇宙)를 구성한다는 서로 다르지 않은 성질을 갖고 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애당초 하나라고 한다면 역시 다양한 만물을 포함하는 우주는 있을 수가 없다. 애당초 그것들이 하나라면 만물들 사이의 어떠한 구분도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아무런 관계도 있을 수 없으며, 만물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우주도 없다. 그러므로 결국 전체(全體)는 부분(部分) 때문에 그러한 전체일 수 있고, 부분은 전체 때문에 그러한 부분일 수 있다. 전체는 부분에, 부분은 전체에 의존한다. 이처럼 부분(部分)은 전체(全體)의 원인이며 전체는 부분의 원인이다.
이처럼 만물의 공간적인 상즉 상입의 관계 이외에, 시간적인 상즉 상입의 관계를 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동시구족 상응문(同時具足 相應問)과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理性問)이다. 먼저 동시구족 상응문(相應問)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동시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으며 서로 상응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법문. 이 위의 열 가지 뜻이 동시에 서로 상응관계를 이루어서 하나의 연기를 이룬다. 이것들은 앞뒤 시작과 끝 등의 구별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으며, 자유자재로 역과 순을 섞으면서도 또한 뒤섞여 엉키지 않고, 연기의 궁극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해인삼매(海印三昧)에 의하여 환하게 동시(同時)에 나타나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상(六相)의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화엄철학에서 인과 관계는 대체적으로 시간적 선후와 상관없이 사물들의 상호 의존관계를 나타낸다는 것, 그리고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세상 만물은 불이적 관계라는 것을 보았다. 또한 우리는 사사무애(事事無碍) 법계를 설명 하는 십현문(十玄門)을 중심으로 화엄의 상즉 상입은 만물의 완전한 동일성(同一性)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각기 서로를 포함(包含)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르지 않으면서도 또한 여전히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는 불이적(不二的) 관계에 있음을 의미(意味)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사물들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았다. 화엄철학이 과거, 현재, 미래를 마구 뒤섞어 과학적 인과율(因果律)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개개의 사건이 갖는 창조성, 자유, 개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총체적(總體的) 결정론(決定論)도 아닌 특성(特性)이 있다.
화엄철학에서는 우주(宇宙)에서 만물이 상호의존(相互依存)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인 사사무애법계(事事 無碍法界)임을 강조한다. 만물은 서로 서로 의지하고 있으며, 개별은 전체에, 전체는 개별에 의존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사물이라 할지라도, 만일 그것이 없다면, 우주는 이미 같은 우주라 할 수 없다. 만물(萬物)을 포섭(包攝)하는 동시에 만물(萬物)에 포섭(包攝)되는 사물(事物) 하나하나는 우주 전체를 지금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절대적(絶對的)인 가치(價値)를 갖고 있다. 이 우주는 그러한 절대적 가치를 갖고 있는 다양한 만물들이 어우러져 엮어내고 있는 장엄(莊嚴)한 화엄 세계이다. 세상 만물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만 존재한다.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모든 것은 다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다른 것에 영향을 주면서 존재(存在)한다. 화엄철학에서는 이러한 만물의 상호관계를 철저하게 불이적(不二的)인 상즉상입(相卽 相入)의 관계로 파악한다.
의상의 『법계도』는 법(法)으로부터 출발하여 불(佛)로 되돌아오는 모양을 도식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법(法)과 불(佛)이 똑 같이 한 가운데 배치되어 있다. 이는 현실(법)로부터 부처(불)에로 이르는 길은 두 길이 아닌 하나의 길(中道)임을 깨우치기 위한 메타포이다. 이는 바로 모든 존재의 실상을 잘못 읽고 극단적 대립으로 논리화하고 추상화해온 전통에 대한 실천지향적 대안이다. 범부든 부처든 어떠한 맥락에서 읽혀지는가에 따른 두 얼굴일 뿐, 보면 동일자이다. 일즉다(一卽多)와 다즉일(多卽一)의 화엄적 구조가 바로 의상의 『법계도』의 요체이다. 말하자면 범부와 부처가 다름이 아니다. 생멸(生滅)과 진여(眞如)가 다름이 아님을 일깨워준 화엄의 요체가 이 『법계도法界圖』안에 절제된 메타포로 함축되어 있다 있는 그 대로의 세계란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현실(現實)을 뜻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란 현실(現實)을 떠나 열반(涅槃)이 따로 없음은 바로 번뇌(煩惱)가 열반(涅槃)임을 깨우치기를 주문한다.
의상이 간결한 《법계도》를 통해 중생에게 던진 메시지는 바로 자유(自由)이다. 진리란 이름 하에 조작된 온갖 대립을 넘어 중도(中道)에 이른 자의 자유를 강조한다. 온갖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대립(對立)을 넘어 진정한 깨달음의 자유(自由)를 얻은 그 중생이 바로 부처이다. 우리는 의상의 화엄사상이 지니는 실천적 지향성(指向性)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법계도』에 나타나는 중도설(中道說)을 정독할 필요가 있다. 이론적-논리적 대립을 벗어나 자유로운 실천을 역설한 의상의 생각이 바로 절제된 언어로 각인(刻印)되어 나타나는 곳이 바로 『법계도』이다. 7언 30구의 절제된 형태로 일종의 게송류의 양식으로 짜여 있는 이 저서는 210자를 4면 4각으로 도인화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법자(法字)로 시작하여 불자(佛字)로 다시 돌아오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이념이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 즉 현실적 존재(法)으로부터 출발하여 부처(佛)에 이르는 길이 한 길로 이어져 있고, 법과 불자가 똑같이 한가운데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 존재의 모습 그대로가 깨달은 자의 모습임을 상징화(象徵化) 해준다. 현실과 이상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융합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생사(生死)와 열반(涅槃), 범부(凡夫)와 부처, 이(理)와 사(事)의 이원적 대립을 넘어 존재의 실상(實相)인 중도(中道)에로 돌아오기를 주문하는 실천강령적인 메타포이다. 극단적인 이론적 혹은 교조적 대립에 휘둘리어 진정한 존재의 실상을 놓치고 있는 자들에게, 모든 것은 본래가 분별이 없음(無自性)을 깨우쳐주는 메시지이다.
화이트헤드와 구조주의 철학
오랫동안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세계관(世界觀)은 세상 만물을 고립(孤立)된 실체(實體)로 간주(看註)하는 원자론(原子論)적이고 기계론적(機械論的)인 세계관이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인간과 자연, 나와 너, 몸과 마음을 비롯한 세계의 온갖 것들을 독립(獨立)된 개체(個體)로 취급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 나와 너, 몸과 마음, 세상 만물을 고립되고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필연적(必然的)으로 모든 것의 분리(分離)와 경쟁(競爭)과 정복(征服)과 지배(支配)의 논리(論理)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결국 생태계의 위기, 공동체 붕괴의 위기, 인간적 삶의 상실과 같은 현대문명의 심각한 위기상황(危機狀況)을 가져왔다. 이와 비교해 볼 때, 화이트헤드의 관점은 보다 더 과학적(科學的)이고 이론적(理論的)이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이 세계 전체를 상호 의존적으로 통합된 전체와 발전을 향하여 진보하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유기체적(有機體的)인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관점(觀点)을 제시한 현대 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哲學者) 중의 한 사람이다.
이러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有機體) 철학, 과정(過程) 형이상학(形而上學)은 서구의 원자론적(原子論的)인 실체론(實體論)에 대한 중요한 대안(代案)적 세계관으로서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화이트헤드는 과학적으로 정교한 우주론을 제시하는 일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설명하려고 하는 철학의 구도를 유기체(有機體)의 철학(哲學)이라고 하면서 그가 의도하는 목표는 제 우주론의 관념(觀念)들을 압축(壓軸)시킨 구도를 제시하고, 궁극적(窮極的)으로는 모든 특수한 논제를 서로 결합시킬 수 있는 충분(充分)한 우주론(宇宙論)을 정교(精巧)하게 구축(構築)하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관계(關係)와 과정(過程) 속에서 존재(存在)하는 것으로 파악(把握)한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유기체의 철학이라 부른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다른 것들과의 관계(關係)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어떠한 존재도 우주의 체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파악될 수 없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볼 때 화이트헤드가 파악하는 우주는 그 속에 존재하는 만물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 관계 속에서 결합되어 있는 상호 의존성(依存性)의 우주(宇宙)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우리가 본 화엄불교(華嚴佛敎)의 우주관과 매우 유사(類似)하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현실적 존재가 어떻게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는가를 설명할 때, 그것을 주로 현실적 존재가 과거의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또 미래의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으로 객체화되어 가는 시간적(時間的) 과정(過程) 속에서 설명한다. 이런 화이트헤드의 생각은 역시 화엄불교가 얘기하는 시간적 상즉 相卽, 상입 相入의 관계와 유사(類似)하다. 다만 화이트헤드는 화엄불교와는 달리 현실적 존재들의 구체적인 생성 메커니즘을 보다 과학적으로 상세히 기술한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가 주어진 여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활동(活動)을 파악(把握)이라고 부른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파악은 세 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1) 파악하는 주체(主體), 즉 그 파악을 자신의 구체적인 요소로 하고 있는 현실적(現實的) 존재(存在), (2) 파악되는 <여건(與件)>, (3) 그 주체가 그 여건을 파악하는 방식인 <주체적(主體的) 형식(型式)>이다. 그리고 파악하는 주체가 파악되는 여건을 파악할 때 거기에는 두 종류의 파악이 있다. 그것은 느낌이라고 부르는 긍정적 파악과 느낌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이라고 부르는 부정적 파악이다. 하나의 현실적 존재가 생성되려면 우선 과거의 여건들로부터 어떤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것이 곧 긍정적 파악이다. 그러나 어떤 일정한 현실적 존재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또한 주어진 여건(與件) 가운데서 어떤 것들을 배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주어진 여건(與件) 모두를 받아들인다면 독특한 성격을 가진 현실적 존재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정적 파악이다. 현실적 존재는 주체가 과거의 여건으로부터 어떤 것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것들은 배제하면서, 그것들을 그만의 독특한 형식으로 만들어 나갈 때 생성된다. 이것은 변증법에서 말하는 변증법적 지양의 과정과 흡사하다.
화이트헤드는 수많은 파악들을 통일하여 하나의 현실적 존재가 생성(生成)되는 과정(過程)을 합생(合生)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합생의 과정에는 창조성(創造性)의 원리(原理)가 작용(作用)한다. 합생 과정에서 주체는 주어져 있는 여건을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생성하는 현실적 존재는 여건으로 주어진 기존의 현실적 존재들의 내적 구조에 의해 어느 정도는 결정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현실적 존재의 생성 과정에는 주체 자신의 결단에 맡겨지는 측면, 주체 자신의 주체적 성격, 주체적 지향에 의해 규정되는 측면도 또한 분명히 있다. 이런 측면을 화이트헤드는 창조성이라 부른다. 그에 따르면 창조성은 새로움의 원리이다.
현실적 계기는 그것이 통일하고 있는 다자에 있어서의 어떠한 존재와도 다른, 새로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창조성은 이접적인 방식의 우주인다자의 내용에 새로움을 도입한다. 창조성은 여건으로 주어진 현실적 존재들에다 주체가 지향하는 새로움을 끌어들이면서 하나의 새로운 현실적 존재를 생성해 낸다. 그러므로 창조성(創造性)은 이접적(離接的) 방식(方式)의 우주인 다자(多者)를, 연접적(連接的) 방식의 우주인 하나의 현실적 계기로 만드는 궁극적(窮極的) 원리(原理)이다. 현실적 존재는 주체가 주어진 여건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결정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체적인 지향에 따라 그것들을 선택하고 가공해 가면서 만족에 이르게 될 때 존재하게 된다. 그 때 비로소 독특한 개성을 지닌 새로운 하나의 현실적 존재가 생성된다. 만족은 현실적 존재를 구성하는 합생(合生) 과정의 마지막 위상(位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생 과정 속에서 생성된 새로운 현실적 존재는 결코 실체적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그 자체가 하나의 현실적 존재로서 새로이 생성하는 현실적 존재들의 한 여건(與件)으로서 그것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에 객체화(客體化)되어 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주 속의 모든 현실적(現實的) 존재(存在)들은 서로 연결(連結)된 거대(巨大)한 하나의 유기적(有機的) 체계(體系)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우주의 존재론적 결합성(結合性), 공재성(共在性), 연대성(連帶性)을 보다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화이트헤드는 연장적(延長的) 연속체 (連續體)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현실적 생기들에 의하여 원자화되는 가능적 관계성의 도식이다. 이것은 화엄불교에서의 법계, 즉 개개의 다르마에 의하여 현실화된 우주적 상호관계의 망 또는 보편적 상호(相互)인과관계(因果關係)의 모체(母體)와 유사(類似)하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연장적 연속체는 모든 가능적 대상화가 그 속에서 자신들의 적소를 찾아내는 그런 하나의 관계적인 복합체이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세계 전체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현실적 존재 자들은 이러한 연장적 연속체의 원자화로서 기능하고 있다. 모든 현실적 존재자는 다른 현실적 존재 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연속체 내의 어느 곳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 의해서 제공되는 여건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보면 그것은 연속체의 어느 곳에나 存在한다. 왜냐하면 현실적 존재자의 구조는 현실세계를 대상화시켜 포함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연속체를 포함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속체는 각 현실적 존재자 속에 현재하고 그리고 각 현실적 존재자는 그 연속체에 침투해 있다.
이상과 같은 화이트헤드의 언표는 수축하면 모든 사물들이 한 터럭의 먼지 속에 드러나고, 확장되면 한 조각의 먼지는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퍼져 간다. 화이트헤드의 사변(思辨)구조(構造)가 화엄불교에 의하여 정식화되고 있는 걸림 없는 상입(相入)과 무애(無碍)한 상호(相互) 융섭(融聶)의 우주론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모든 현실적 존재자는 다른 모든 현실적 존재자(存在者)속에 현성(現成)하고 있다. 현대 물리학은 뉴턴의 절대(絶對) 시공이론(時空理論)보다는 데카르트의 물체 연장 이론을 취하여 물리장(物理場, Physical field)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화이트헤드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연장적 연속체(延長的 連續體, Extensive continuum)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굴하였다. 그가 말하는 연장적 연속체는 모든 가능적인 객체화가 그 속에서 자신들의 적합한 장소를 찾아내는 그런 하나의 관계적인 복합체, 또는 단위 경험과 이에 의하여 경험된 현실적 존재들이 하나의 공통 세계의 연대성(連帶性)에 있어서 결합되는, 경험(經驗) 내의 일반적(一般的)인 관계적(關係的) 요소(要素)를 의미(意味) 한다.
그러므로, 화이트헤드 철학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은 동양의 여러 철학 사상들 중에서 불교의 화엄사상과 화이트헤드의 철학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동안 서구의 많은 화이트헤드 이론 철학자들은 화엄불교와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을 비교 연구하여 왔다. 화엄철학과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은 세상 만물을 유기적 연관성과 과정 속에서 파악하는 유사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양자 사이에도 세계 발전 본성에 대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스티브 오딘은 화엄철학과 과정 형이상학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을 인정하면서도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강조한다.
스티브 오딘의 화엄학 분석
스티브 오딘(Steve Odin)은 그의 저서 Process Metaphysics and Hua-Yen Buddhism(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Albany, 1982)에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사상과 화엄불교를 비교한다. 오딘은 이 책을 통해 화엄철학과 과정 형이상학(過程形而上學)의 유사점을 먼저 밝히고, 이 들 사이의 차이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화엄사상의 원리인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원리를 전체론적 혹은 총체론적 결정론으로 비판하면서, 화이트헤드의 과정형이상학을 통해 극복하는 관점을 제시해 보인다. 특히 오딘은 이 책의 의상의 화엄사상을 책머리에 소개하면서 시작하여 책의 말미 부록에서 다시 의상을 소개한다. 오딘은 한국 화엄사상의 진수를 의상에서 찾고 있으면서, 의상의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화엄 요체를 교리적 공식(公式)으로 규정한다.
오딘은 화엄과 화이트헤드 사이의 유사성(類似性)을 인정하며, 화엄의 요체를 인식론적(認識論的) 차원에서 결정론(決定論)으로 해석(解析)한다. 상즉상입의 형이상학이 아무리 부분들의 총체적 힘을 강조한다고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개별자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존재의 총체성에 강조를 둔다는 점에서, 오딘의 화엄해석 역시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 부분이 있다. 부분 즉 개체의 창조성 및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대칭적인 구도로 형식화하지 않을 수 없다. 오딘의 접근방식이 가지는 문제점은 우선 화엄사상의 역동적 사유체계를 인과론적 결정론이라는 서구적 모델로 분석하면서, 화엄사상, 특히 한국화엄의 요체인 의상의 사유체계에서 발견되는 자유의 메커니즘을 고려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오딘 역시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過程形而上學)은 20세기의 사변적 사유에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아시아적 사유, 그리고 특히 화엄불교(華嚴佛敎)를 해석하는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범주 도식에서 현 실태의 근저에 있는 일반성의 궁극적(窮極的) 개념(槪念)인 창조성 또는 창조적 종합은 화엄의 사변체계(思辨體系)를 지배하는 제1 원리인 공(空, s’u’nyata’)과 같다는 것이다. 오딘은 화엄의 동시상호 인과 관계와 상입의 형이상학(the Hua-yen metaphy-sics of simultaneous intercausation and interpenetration)은 화이트헤드의 현실태의 유기적 과정이론(Whitehead's organic process theory of actuality)과 구조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오딘의 저서에는 의상과 원효, 그리고 지눌과 같은 우리나라의 스님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의상 대사는 668년 그의 중국 유학시절에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작성하였는데, 이것은. 화엄경의 사상을 7언 30구 210자의 한자어로 압축한 것이다. 박성배 교수의 영향을 받아서 화이트헤드와 화엄불교를 비교연구한 스티브 오딘은 의상의 법계도에서 그 토대를 발견한다.
화엄의 궁극적 통찰력인 해인삼매(海印三昧)는 보편적 원리와 개별현상 사이의 걸림이 없는 융통인 이사무애(理事無碍)와 개별 현상들 사이의 걸림이 없는 융통인 사사무애(事事無碍)를 포괄하는 명상적 직시(contemplative envisage-ment)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편원리들과 보편원리들을 동일시하는 이이상즉(理理相卽)까지도 포함된다. 의상의 법계사상에서 존재의 본성(法性)은 원만하게 상입하여 두모습이 아닌 것(圖融無二相)으로 묘사되는 법계(法界) 안에서, 움직임이 없고 고요할 뿐이며(不動本來寂,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차별이 없다(無名無相絶-切). 지극히 심오하고 미묘하며 장엄하여(甚深極微妙), 자성에 묶이지 않으나 인연에 따라 현현한다(不守自性隨緣成). 하나가 전체 속에 있고 다수(전체)가 하나 속에 있으며(一中一切多中一), 하나가 전체와 같고 다수(전체)가 하나와 같다(一卽一切多卽一). 하나의 티끌 속에 온누리가 포함되어 있고 (一微麗中含十方), 셀 수 없는 오랜 세월이 한 생각 찰나와 같다(無量遠劫卽一念). 이 때문에 事(개별현상)와 理(보편원리)는 구별 없이 완전하게 융섭되고(理事冥然無分別), 생사와 열반은 항상 조화를 이룬다(生死涅槃常共和).
화이트혜드의 철학이나 화엄사상에서 인과관계 또는 연기법계 사상은 각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화이트헤드에서 개개의 사건은 우주 속의 모든 다른 사건과 인과관계를 맺음으로써 순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건은 자기자신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로서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존재론적 공재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우주지평으로서의 공간시간적 연속체(the entire spatiotemporal continuum)는 각각의 생기에 현전하여 있으며, 또한 각각의 생기는 그 연속체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의존적인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언제나 다른 모든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엄불교에서 각각의 다르마(法) 또는 사건 역시 우주 속의 모든 다른 사건을 위한 원인이나 또는 지지(支持)조건(條件)으로 기능한다.
오딘은 의상의 해인도(海印圖)에 의거하여 우주의 모든 다르마는 공간적 의미에서 상입(相入)융통(融通)하여 온 우주(十方)가 한 티끌의 먼지 속에 내재할 뿐만 아니라 엄격한 시간적 상호융섭(相互融聶)의 의미에서도 상입하여 무한히 긴 영겁(永劫)이 한 생각 찰나와 동일하다. 화엄의 개념체계에 의하면 다르마는 선행하는 것들뿐만 아니라 동시적(同時的)인 것과 후속(後續)하는 것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인과적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화엄세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들은 동시에 상입상즉(相入相卽)이 가능하지만, 화이트헤드에서는 인과적 영향이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에로 한 방향으로만 누적적으로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딘은 이처럼 누진적으로 작동되는 비대칭적(asymmetrical) 인과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화이트헤드의 입장을 누적적(累積的) 융섭(cumulative fusion)이나 누적적 내재성(cumulative immanence) 또는 누적적진입(累積的進入, Cumulative penetration)의 형이상학으로 규정하면서, 대칭적(symmetrical) 인과관계에 기초하여 사건들 사이의 상입(interpenetration)과 상호융섭(interfusion), 또는 상호내재성(mutual immanence)의 화엄학적 우주론과 대비시키고 있다.
화엄과 화이트헤드에서 현 실태는 궁극적으로 통일성과 다수성, 주체성과 대상성과 같은 양극적인 대립자들의 변증법적 진입(dialectical Penetration)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화엄의 경우에 이것은 통일성(統一性)이 다수성(多數性)으로 다수성이 통일성으로, 주체성이 대상성으로, 대상성이 주체성으로 와 같이 대립적인 것들 사이의 대칭적 진입이나 상입을 뜻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경우에 이것은 다수성이 통일성으로, 대상성이 주체성으로와 같이 한 방향만으로 의 진입을 뜻하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오딘은 화엄사상과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사이에서 제기되는 변증법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하여 상입과 누적적 진입, 동시상호융섭(simultaneous-mutual-fusion)과 시간연속적 융섭(temporally-successive-fusion)의 개념을 구분하면서, 화이트헤드의 입장에 서서 화엄사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오딘은 누적적 진입의 과정이론은 경험적 직접성이나 원초적 느낌이라는 전반성적 여건이 의하여 경험적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이들 경험적 직접성이나 원초적 느낌은 현실태의 시간 인과적 계기성에 의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로 이행하는 경험적 여건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화엄사상에서의 다르마는 실체나 자성(svabha’ba)과 같은 자기존재성의 자기를 전혀 갖지 않고 있으며, 그 구성적 원인들(因)과 지지조건들(緣)로 철저하게 분해, 환원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총체적 결정론에 구속되여 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 현 실태인 각각의 생기(生起)인과 조건에 의하여 순간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원인은 환원적으로 분석되거나 철저하게 분해될 수 없다. 인과적 전이(trans-mission)를 통하여 계승될 수 없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현실태 안에 생긴 모든 원인들의 통일성이기 때문이며, 여기에서 창발적 종합(emergent synthesis)또는 창조적 행위(creative act)가 요구되는 것이다. 오딘은 화이트헤드의 생기 개념이 단순 정위, 독립존재, 영원한 존속 등 화엄 불교에서 부정되는 실체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적 특성이나 자기창조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환원될 수 없는 개성과 독자성을 가진 하나의 실체라고 주장하였다. 오딘이 말하는 무애 상입의 화엄 원돈승(the Hua-yen round-sudden vehicle of non-obstructed interpenetration)이나 화엄 변증법적 사유의 융회패턴(the syncretic harmonization pattern of Hua-yen dialectical thought)은 모두 화엄불교가 보편자와 특수자 사이의 무애 상입(理事無碍)뿐만 아니라 개별자와 개별자작 무애상입(事事無碍)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창조적으로 종합하고 융회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구조주의 철학 관점으로 보는 화엄사상의 비판
지금까지 화엄철학과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을 비교 연구한 철학자들은 상당히 많으며, 그 중에서도 프란시스 쿡(Francis H. Cook)은 화엄불교와 화이트헤드 과정 형이상학의 유사점을 강조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쿡의 이론에 의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원인의 영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화이트헤드의 진술은, 하나의 원자에서부터 우주 그 자체까지 우주 내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다른 모든 것들을 위한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화엄의 우주관과 매우 유사하다 주장한다.
오딘(Steve Odin)은 화엄불교와 화이트헤드에 의해 전개된 우주론적 인과관계론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두 체계에 의해 전개된 논의 모두가 개개의 사건은 우주 속의 모든 다른 사건과 인과관계를 맺음으로써 순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건은 그 자신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서 그들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으로 본다. 또한 오딘은 화이트헤드가 정식화한 현 실태의 유기체적 개념이 원융 회통과 걸림 없는 호용이라는 화엄이론과 분명히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특히 그는 연속체는 각 현실적 존재자 속에 현재하고 그리고 각 현실적 존재자는 그 연속체에 침투해 있다는 화이트헤드의 말은 수축하면 모든 사물들이 한 터럭의 먼지 속에 드러나고, 확장되면 한 조각의 먼지는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퍼져간다고 하는 화엄철학과 상통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오딘은 화엄불교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이 상당한 유사점(類似點)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중대한 차이점(差異点)도 지적하고 있다. 오딘이 양자의 중대한 차이점(差異点)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인과관계(因果關係)에 대한 설명(說明)이다. 그가 보기에 화엄불교와 화이트헤드는 모두 만물이 인과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공통점(共通點)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방식에서는 커다란 차이(差異)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오딘은 의상의 해인도를 분석하여 화엄불교의 인과 관계론을 설명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화엄불교에서 모든 법(dharma)은 공간적(空間的) 의미에서 상입(相入)할 뿐 아니라 보다 엄격한 시간적(時間的) 의미(意味)에서도 상입(相入)하여, 하나의 법은 그 선행하는 것들로부터 인과적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동시적인 것들과 후속하는 것들로부터도 마찬가지로 인과적 영향을 받는다. 즉 그가 보기에 화엄의 입장에서 작용인(作用因)은 과거, 현재, 미래의 방향에서 동일한 힘으로 흘러나와 세 시간대에 있는 모든 사건들 사이에 동시 상입의 조화와 무애 상호(相互) 함용(含㼸)을 이룬다. 이러한 화엄불교의 입장을 오딘은 전적으로 대칭적(對稱的)인 인과관계(因果關係) 이론(理論)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과정이론에 의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은 화엄불교에서 처럼 하나의 사건 속으로 모두 상입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인과적 영향이 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그 후속자들에 누적적으로 진입한다. 즉 인과관계는 과거로부터의 인과관계이거나 선행자들에 의해 조건 지어진 것으로, 생애를 통한 사건에서 진입이나 내재성은 구조적으로 항상 누적적이다. 이러한 입장을 오딘은 엄격히 비대칭적인 인과적 전이의 이론에 의해 구성된 누적적 융섭, 누적적 내재성, 누적적 진입의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며, 구조주의 이론과 차이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오딘은 전적으로 대칭적인 양식으로 만물의 완전한 상입 또는 상호 융섭과 같은 동시 상호 인과 관계나 동시 상호성립을 주장하는 화엄의 입장은 상당한 문제점이 있으나, 사건들의 비대칭적인 누적적 진입을 주장하는 현 실태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과정 모형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오딘은 현실을 대칭적인 상호의존관계로 설명하려는 화엄철학의 문제점은 각 사물들의 개별성과 새로운 존재의 발생에 따르는 창조성이나 새로움 및 자유 같은 것들을 모두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화엄불교의 이론은 결국 총체적 결정론이라고 보았다. 오딘은 이런 화엄불교에 비해, 화이트헤드의 누적적 진입의 형이상학이 인과과정에 대한 설명이론으로서 더 명확하며, 그것이 자유 대 결정론과 같은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보다 정합적이고 논리적인 해답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 만물은 모두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환원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오딘은 화엄불교가 개별적 특성을 지닌 실체라는 범주를 전적으로 포기하는 데 반해, 화이트헤드의 학설은 실체의 범주를 철저하게 재정식화해서 살려내고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오딘은 과정 형이상학의 입장에 서서 화엄사상을 비판한다.
화엄사상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분석이 화엄철학은 과거, 현재, 미래를 뒤섞어 과학적 인과율을 무시하고, 개개의 사물들이 갖는 창조성, 자유, 개성 같은 것들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총체적인 결정론이 성립되는지에 관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화엄철학에서 말하는 상즉과 상입, 사사무애 같은 개념들이나 거기에서 드러나는 인과관계의 개념에 대한 오해, 그리고 특히 그러한 개념들을 관통하고 있는 불이사상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화엄철학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불이사상이며, 화엄의 상즉과 상입, 사사무애 등의 개념에서 드러나는 불이사상에 기초해서 이 세계의 존재방식을 이해할 때에 비로소 화엄불교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때 비로소 다시 그것을 과정 형이상학과 소통시킬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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