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 상승기 과실은 누가 따먹었나 이는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통계로도 증명이 된다. 2000년대 초 중반 상승 사이클을 그리던 부동산 시장은 2007년~2012년 동안에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물가상승률 수준인 연평균 2.7%대로 하락한다. 그리고 이 같은 부동산 시장의 부침은 세대간 자산 불평등으로 연결된다. 국토연구원 천현숙 박사팀은 '세대간.세대내 주거소비특성 변화' 연구를 통해 지난 2006년 당시와 그 이전 5년간, 다시 말해 집값 상승기에 주택을 구입한 가구주들의 연령대에 따라 부동산 매매에 따른 차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는 이렇다. 2006년 당시, 전국 주택을 기준으로 40대(1966년생 이전)의 경우 최근 6년 이내(2000년 이후) 매매한 주택의 구입 가격은 1억5720만원이지만 2012년 현재 가격은 2억2984만원에 달했다. 평균 7264만원의 부동산 차익을 올린 셈이다. 50대(1956년생 이전)의 경우 주택 구입 가격이 1억7929만원이었지만 현재 가격이 2억7724만원으로 평균 9797만 원의 차익을 거뒀다.
반면 가격 상승기였던 2006년대에 나이가 30대 이었거나 그 이하였다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30대(1971년생은 당시 35세다)였다면 1억1891만원에 집을 사서 현재가격은 1억5174만원, 다시 말해 평균 차익이 3283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40대의 절반, 50대의 3분의1 수준도 안 된다. 반면 20대는 더 큰 차이가 난다. 1억406만원에 집을 샀는데 현재 가격이 1억3252만원, 다시 말해 2846만원 밖에 차익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집값을 전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몰려서 사는 수도권으로 한정해 보면 그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 20대는 3405만원, 30대는 4755만원의 부동산 차익을 겨우 올리고 있을 때 40대와 50대는 각각 1억1375만원, 1억4741만원의 차익을 올렸다. 한마디로 1970년대에 태어났느냐, 1960년대 또는 그 이전에 태어났냐는 출생연도에 따라 서로 각자 다른 부동산 경기 사이클을 맞닥뜨려야 했다. '출생연도'라는 그 우연한 요소가 주택을 둘러싼 세대간 불평등으로 이어져 버린 셈이다.
공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머리 좋은 놈 못 따라가고, 머리 아무리 좋아도 운 좋은 놈 못 따라간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할까. 단순히 언제 태어났느냐는 '우연'에 따라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뼈빠지게 빚만 갚아야 하는 세상은 애초에 피할 수가 없었을까.
■ 집은 사는(buy) 곳일까, 사는(live) 곳일까
2007년이 되면서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어선다. 그러면서 공급 부족에 따른 주기적 폭등 현상은 사라졌다. 그리고 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국토연구원 국민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주택의 거주가치가 자산가치보다 크다고 응답한 비율은 35.7%(2010년) → 44.8%(2012년) → 60.8%(2013년)으로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20년 또는 30년 후에 주택의 거주개념이 클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54.0% → 63.5% → 66.2%로 늘어났다.
그런데 설문조사를 따라가다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일반 국민의 87%는 30년 후에는 내 집을 보유하겠다는 의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지 않더라도 이사를 다니고 싶지 않고(64.3%) 한 지역에 오래 살고 싶어서(12.8%) 자가를 소유하고자 했다. 지금 당장은 집은 소유하지 않고 싶지만 먼 미래에 내 집은 꼭 있어야 한다는 자기 모순은 왜 나타날까.
집을 둘러싼 딜레마는 개인이 보유한 가장 큰 자산이자 최소한의 필수 쉼터 역할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산, 투자 대상이란 입장에서 볼 때 집을 가진 사람에게 집값은 항상 올라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집값 상승과 과열은 시장이 안정되는 것이자, 가격 회복이며, 비정상의 정상화로 여겨진다. 마치 주식시장처럼 말이다. 그래서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투자 대상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의식주의 한 축으로서의 주거는 필수 소비재다. 지금 당장은 빌려 쓰더라도 언젠가는 내 것이 있어야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얘기다. 집을 재테크 대상이 아니라 생필품처럼 여기는 다수의 사람들에겐 집값 상승은 가스료, 전기료, 기름값, 쌀값 급등과 같이 생계를 위협하는 악몽이다. 그래서 주택 문제를 보는 시각은 둘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가장 큰 공약이 부동산 시장에 집중되고 부동산 찬반 논쟁이 결국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부동산 문제를 푸는 이상적인 해법은 우리 모두가 동시에 집을, 투자대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노무현 정권 당시 일각에서 제기했던 것처럼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고 부동산 보유에 따른 불로 소득을 모두 사회로 환수해 버리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실적인 해법은 부동산 시장을 성격에 맞춰 둘로 쪼개지도록 해야 한다. 투자대상이자 소비재로서의 집은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시장에서 해결되도록 내버려두는 한편 국민 생활의 기초가 되는 필수재로서 주거문제는 공공 영역에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주거 문제를 순리대로 풀 생각이 있었다면 공공임대 부족 문제부터 풀었어야 했다. 그래야만 정부가 말로만 떠들었던 것처럼 집이 '사는(buy)' 곳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 될 수 있다. 공공임대 비중이 20~30%씩 되는 선진국에서도 치솟는 주거비용 때문에 난리인데 우리나라 공공임대 비축물량은 6%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그나마 공공임대 혜택은 거의 대부분 장년이나 노년층에 몰려 있다. 집 없는 청년층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뉴스테이라는 이름의 민간임대시장을 키우는데만 올인하고 있다. 이러는 와중에 공공임대 몫으로 책정됐어야 할 공공택지들이 뉴스테이란 명목으로 민간 건설업자들에게 헐값에 넘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 당시 보금자리주택이란 명목으로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었다가 일부 부동산 투기꾼들 배만 불리고 아까운 땅만 낭비한 것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다만 그 떡고물을 누가 먹느냐만 다를 뿐이다.
■ 부동산 거품은 누가 키웠나
사람들은 부동산 시장 가격 거품은 투기적 수요에 의해 생겨났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금융 당국이 DTI, LTV 규제를 완화한 게 부동산 투기를 부추겼고 그 결과 가계부채가 1300조원대까지 부풀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을 부양해 경기 활성화에 나섰던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사망하자 정부는 곧바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한 숨통을 바짝 죄이고 중도금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중산층 전용 장기고정금리상품인 보금자리론에 대해 연소득 7000만원 이하 기준을 신설하고 구입 가능 주택과 대출가능금액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장마가 오니 우산부터 빼앗는다'는 식으로 금리가 오를 조짐을 보이자 은행 창구 지도를 통해 중산층용 정책 모기지론을 사실상 없애 버리고 부동산담보대출 금리를 일제히 인상시켰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1.5%에 묶어둔 채로 말이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때문에 대출금리를 올려야 했다면 기준금리부터 올렸어야 한다. 정부 정책, 특히 금리는 국민 모두에게 불편부당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을 장기 컨트롤할 능력이 없는 정부가 DTI, LTV, 창구지도 등 금융 규제를 통해 단기 수요 관리에만 골몰하게 되면 시장의 모순을 키우고, 그 결과가 주택 가격의 급등락을 부추게 된다. 이 같은 가격 급등락은 다가올 미래에 부동산 투기의 씨앗을 뿌리면서 결국 부동산을 둘러싼 세대간 양극화의 주범이 된다.
그리고 가계 대출 증가가 부동산 시장 거품 주범이기 때문에 수요만 조이면 된다는 사고 방식은 동전의 앞면만 보는 어리석음의 전형이다. 대출 억제란 규제만 쓰게 되면 풍선효과처럼 강남 재건축처럼 부동산 시장에서 심화되고 있는 지역별 가격 양극화와 이로 인한 불평등만 부추길 뿐이다.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이를 일컬어 "종이를 자르는 것은 가위의 윗날도 아니고, 아랫날도 아니라 가위의 양날인 것처럼 수요와 공급이 함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 신도시 아파트는 가구다
민간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를 막으려면 규제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해서 공급 규제를 풀어 해결해야 한다. 우리 동네 집값이 오르면 새 집이 얼마든지 들어서겠지라는 인식이 사람들 머리 속에 자리 잡힐 때, 투기가 사라진다. 집값을 잡겠다고 각종 대출 규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억누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금융 파이낸싱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 또 다른 불평등과 시장 왜곡이란 부작용을 더 키울 뿐이다.
용인, 김포 등 수도권 2기 신도시 일대 집값을 보라. 수도권 시장이 조금 회복된다 싶으면 건설사들이 물량을 대량으로 쏟아내는 바람에 집값이 도통 오르지를 않는다. 오히려 새 아파트들이 들어설 때마다 기존 새 아파트들은 헌 집이 된다. 주변에 개발 대기중인 땅이 수두룩한 곳은 가격 상승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건설사들도 최소 마진만 남긴 채 물건을 공급할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신도시 부동산은 점점 가구처럼 되고 있다. 수요만 있으면 공급은 재깍재깍 이뤄지고 디자인과 기능, 입지, 브랜드 값에 따라 가격차가 벌어진다.
반대로 서울시 규제에 꽁꽁 묶여 있는 재건축 시장은 갈수록 골동품이 되고 있다. 더 좋은 주택이 공급될 가능성이 낮으니까 부르는 게 값이다. 강남 재건축 불패 신화는 다름 아닌 그들을 가장 시기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단견의 덫이다. 좋은 일자리, 그리고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학군과 학교, 학원이 다 강남에 몰려 있다면 수도권 외곽이 아니라 규제를 풀어 강남 한 복판에 주택 공급을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 그게 몇 층이 됐던 말이다.
매일경제, 이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