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6월.29일
날씨: 하늘 가장자리에 구름 몇점.
참석자: 최성근, 이규순,김경일, 이해승, 김형묵, 최길성,서기완,최성중(야영)
임성관,이주안,윤지현(당일)
성민제(뒤풀이)
D-2 목요일.
갑자기 변경된 출장일정을 핑계 삼아 제대로 된 땡땡이를 치기로 했다. 하지만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기고 사무소로 돌아오고 나니 지금껏 성실?하게 규칙과 규율을 지키며 살아온 지난날의 시간과 맞바꾸어야 한다는 이성이 서울행으로 들떠있던 감정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성은 자신의 주특기인 지구력을 앞세워 끈질기게 넘나들며 이성을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 목요일 오후에 출발하는 것과 금요일 아침에 출발하는 것이나 근무에 큰 지장이 없잖냐?", " 무엇보다 지난 10월 이후로 쉴 틈 없이 용맹정진 해왔으니 땡땡이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아? 안 그래?" "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야, 더 좋은 비유가 있다면 <이성> 니가 답해봐?" " 종진이가 장가 가잖아. 가서 축하라도 해주고 간단한 애피타이저 후에 곧바로 뒤풀이로 이어지는 환상의 코스를 거부할 이유가 있어? 있냐구? 끝없이 이어 질것 같은 감성의 다그침에 이성이 질색을 하고 줄행랑을 쳤다.
6시에 서울역 도착이라던 개대감은 시청역 앞으로 만남의 장소를 변경하고서도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선그라스에 지팡이를 집고 나타난 개대감은 당당하고 뻔뻔했다. 늦게 도착한 합당한 이유는 있었다. 전철이 갑자기 정차하고 15분이나 기다린 뒤에 환승을 했다는 개대감의 말에 지팡이를 빼앗아 흠씬 두들겨 주고 싶었지만 장애인.. 그것도 시각장애인을 폭행한다고 신고가 들어 갈까봐 나무관세음 보살을 수없이 되 뇌이며 국수 집으로 향했다.
출판기념식장은 장소가 협소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종진의 손때가 묻고 따듯한 마음이 담긴 사진들을 슬라이더로 보았다.. 사진 감상을 마치고 사이사이 뮤지션들의 공연이 볼만도 했지만 출판기념회를 빌려 싼값에 프로포즈를 마친 종진의 경제관념에 박수를 보내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진지한 충고를 해주었다. 종진은 바로 자취를 감췄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등반사랑회원들과 평창동 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못한 몇몇 회원들은 허겁지겁 안주를 걸터듬었고, 늦은 시간까지 술이 고픈 사람들은 술잔을 빠르게 돌렸다. 그리고 주변이 돌고, 실내 조명이 돌고 사람도 돌았다. 어디선가 공수해온 아이스크림 케익도 돌았다.
D-1 금요일.
벽면과 천정이 우유 빛인 방안에서 눈을 떴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아 가슴을 쓸어 내렸다.
코에 붙은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던 스님이 생각났다. 그 뒤로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자리에 일어나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스팸을 제외한 두건의 문자가 있었다. 스님이 보낸 문자에는 만남의 약속 장소와 시간이 적혀있었다. 다른 하나는 뜬금없는 문자였다. " 경일 형님... 13살 터울이 정말 감당하기 힘들까요? 사랑으로 극복 못할게 없는 거 아니예요? " 쓴 웃음이 났다. 지난 밤 출판회장에서 프로포즈를 했던 종진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재고해보라는 말에 고무됐던 종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녀석이 안부를 묻는 방법이 특이하긴 했다. 전화기에서 키패드를 찾아 바로 답장을 보냈다. " 걱정이 많은거니? 확신이 없는거니? 사랑으로 극복 못할게 이 세상에는 없겠지.. 다만 그 유효기간이 짧다는 것만 잊지 말기를... 나무관세음보살.<청뫼 합장> "
문자에 찍힌 장소에 도착해 출장 본래의 업무를 마치고 나니 서울 종로 바닥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종로 5가 장비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만한 곳도 없다 싶었다. 전화로 개대감을 불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날처럼 되도 않은 구라를 치지 말고 제시간에 나오라고 협박성 문자를 겸했다. 장비점은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이 것 저것 둘러보고 구경하다가 재밍용 장갑을 사고 헤드랜턴도 비싼 넘으로 하나 개비했다. 개대감도 도착하여 이것 저것 살피다가 내가 산 헤드랜턴에 관심을 보였다. 전시된 헤드랜턴은 포장이 견고해 열어 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표정에서 읽기는 앉아서 캠 박는 것보다 쉬웠다. 여튼 흉칙한 넘이었다. 저녁 장소는 성북동에 있는 면사무소였다. 마침 마치는 시간이 비슷한 형묵의 차로 해승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해승이 헤드랜턴을 궁금해하였지만 보여주지 않았다. 면사무소는 종업원들이 가게 문을 연 직후였다. 종업원들이 문 앞을 쓸고 주방을 정리하고 야외용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가게를 정리정돈 하는 종업원들을 바라보았다. 그 중 이제 20대 초반? 많이 봐야 복학생 4년생 쯤 뵈는 남자 종업원을 불러 우선 돼지고기 숙주볶음을 주문 한 다음에 맥주를 마시며 면사무소의 면을 하나씩 섭렵해 나갔다. 식도를 넘어가는 부드럽고 익숙한 면발. 쫄깃하고 탱탱한 면발, 오랜만의 방문이라 기대치가 높았지만 면사무소 품질은 변하지 않았다. 음식이 담긴 접시가 비워지는 것에 비례하여 테이블을 이어 붙여 만든 좌석 수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한대감 만큼은 전날부터 불통이었다. 전날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 보낸 카톡 문자를 지금까지 확인조차 않고 있었다. 참을성이 냥이 마빡 만큼도 못한 개대감이 전화를 했다. ". 왜 전화를 안 받구 지랄이야? ... 성북동 면사무소... 갱대감이랑... 여기 와 봤었잖아?"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개대감이 짧고 굵게 통화를 끝냈다. 씻고 바로 출발한다던 한대감은 두어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도착하지 않았다. 7시 가 넘어서 까지 수술을 했다는 성대감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가로 질러 도착 하였지만 오지 않고 있었다. 한대감이 늦는다며 툴툴거리면서도 개대감은 틈틈이 헤드랜턴이 들어 있는 가방을 흘금거렸다. 끈질기고 독한 넘 이었다. 지난날 금영이를 들고 황망해 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좌석 벽면 한구석으로 가방을 밀어 넣고 개대감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하고서 술잔을 들어올렸다. 개대감도 온화한 미소로 마주하며 들어올린 술잔을 부딪혀왔다. 순간 머리 어느 한구석에서 빛이 튀듯 한 단어가 튀어 올랐다. ." 써글넘!. "
윤정이 참석하겠다는 뜻밖의 전화가 오고 나서야 한대감도 전화질을 했다. 성북동 주민 자치센타 앞이라고... 그럴만했다 남의 말을 1.3.5.7.9나 2.4.6.8.10.으로 듣는 한대감이었으니... 개대감은 투덜거리면서도 종업원에게 주민자치센타 위치를 묻고는 한대감을 맞으러 나갔다. 한성대 방면으로 300여 미터 아래 쪽이라는 종업원의 말에 개대감을 따라 걸어 내려가며 한대감에게 전화를 하였으나 또 불통이었다. 400여 미터를 걸어 내려가다 보니 달아오른 아스팔트 열기에 술이 확 달아오르고 있었다..
어렵게 도착한 한대감은 상점 간판을 보고 나서야 면사무소의 의미를 이해했다. 성북동 면사무소는 면 전문점 간판이었다. 아픈 다리를 끌고 상점 폐점시간에 앞서 성대감 집 옥상에서 2차를 시작했다. 시끄럽다는 민원전화에 야간경비들이 난처해하고 민제 옆지기가 술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노숙을 했다는 후일담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
D- day. 토요일.
벽면과 천정이 우유 빛인 방안에서 눈을 떴다. 어제와 같은 아침환경이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처럼 자고 일어나면 자신에게만 시간이 반복되는 마법에 걸린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와 똑같은 라디오 멘트를 듣고 똑같은 상황,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산서회행사를 아침부터 카톡을 이용해 성대감이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다. 빨리 나오라는 압박이었지만 게으름을 피우며 리머콘으로 월드컵 중계방송을 찾아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보내며 정오가 지나도록 딩굴거렸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사회자가 연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서둘러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국립공원 생태 연구자가 나와 지구촌 환경과 지켜야 할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당췌 집중이 안돼 알아 듣지를 못했다. 어떻게 해야 저리 산만하게 연설을 할수 있는건지? 돈주고 배워도 못 따라 갈 것 같았다.그리고 김영도 산서회 고문이 강사로 나섰다. 90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있는 목소리와 체력으로 강연장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다. 산을 대하는 태도, 산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연륜과 경험이 없으면 결코 풀어낼 수 없을 주옥 같은 말씀이었다. 이어지는 경품추첨에서 산서회원이 경품을 양보하는 덕에 월간 잡지 이-마운틴 6개월 짜리 구독권을 쥐어들고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선인봉 야영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손발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잠이 부족하고 혈당량이 바닥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약수터를 지난지 이미 오래였다. 서둘러 올라가 밥이라도 먹어야 나아질 것 같았다. 앞서 가던 형묵과 개대감이 다리 쉼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표정이었다. 활달했던 두사람이 잘 웃지를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강연장에 들어섰을 때도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했건만 어색한 미소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정말이지 하기 싫은 숙제를 앞에 둔 초딩도 저런 표정을 지을까 싶었다. 드런넘 들이었다. 야영가자고 소집을 한것도 아니고, 하기싫다는 사람을 협박해 산으로 불러낸 것은 더욱 아니었다. 다만 챙긴 짐 꾸러미에 소주 두어병 챙겨 넣으라는 부탁을 정중히 했을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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