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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엄숙히 진행되었지만 침묵이 흐르지는 않았다
흠 없는 수컷 짐승을 선호 … 신분의 차이는 물론 남녀의 차별도 없어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제사를 공부할 차례다. 앞서 말한 대로 제사의 종류는 다섯 가지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중 소제는 곡식의 제사이고 나머지는 짐승의 제사다. 우리는 각 제사들을 공부하기 전에 성경의 제사의 몇 가지 특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짐승을 바치는 제사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특징을 갖는다. 당장 레위기 1:2~5의 번제 규정에 몇 가지 특징들이 확인된다.
1) 가축이어야 한다.
레위기 1장 2절는 모든 희생 제사의 서론적 진술이다. 여기서 명시되는 희생 제물의 첫 번째 원칙은 그것이 ‘가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개역의 ‘소나 양’으로에서 ‘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쫀(tson)은 작은 가축인 양과 염소를 의미하므로 가축은 소, 양, 그리고 염소를 가리킨다. 가축의 요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요행이나 불로소득으로 얻은 것보다는 제사자 본인의 땀과 정성이 깃든 소득과 생산물을 제물로 바칠 때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산양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의 사례처럼 예외는 있지만, 원칙은 자신의 노력의 산물인 가축이었다. 소제물의 경우도 자신이 직접 재배하고 기른 농산물이 제단에 오를 자격이 있었으며 자연에서 채취한 것은 배제되었다. 가난한 사람의 경우에는 기르던 비둘기를 바쳤는데, 다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형편이라면 야생 비둘기를 잡아 드릴 수 있었다.
2) 흠 없는 짐승이어야 한다.
레위기 1장 3절은 그 가축이 ‘흠 없는’ 가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가축 중에서 가져오되 대충 골라오지 말고 흠이 없는 상품의 가축을 선별해서 가져오라는 명령이다. 짐승의 흠들의 목록은 레위기 22:19~25에 제시되는데, 몸에 문제가 있거나 병이 있는 가축은 배제되었다. 아마도 겉으론 흠이 없다 해도 너무 마른 짐승은 속병이 의심되어 제외되었을 것이다. 애써 키운 가축이라는 조건과 그것이 흠이 없어야 한다는 요구는 모두 정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짐승을 키우는 사람들은 평소에 이미 어떤 녀석이 최상품의 물건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바로 그것을 아깝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갖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제사일 것이다. 흠 없는 짐승이 요구된 이유는 거룩하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께 걸맞은 짐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수컷이 선호된다.
레위기 1장 3절은 번제물에만 해당되는데 ‘흠 없는 수컷’이라고 명시한다. 다시 말해 번제물은 모두 수컷이 요구된다. 다만 비둘기의 경우 암수 구분이 불필요했다. 아마 너무 작은 짐승이라 암수 판별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제 외 다른 제사들에서도 수컷 우월성은 확인된다. 속죄제의 경우 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속죄제는 ‘수소,’ 족장은 ‘숫염소’를 바치고, 평민은 족장보다 낮은 등급인 ‘암명소나 암양’을 드린다. 속건제에서는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죄인이 ‘숫양’을 바친다. 수컷 우월성은 특히 속죄제에서 평민은 암염소, 족장은 숫염소를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다만 대부분의 고기를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던 잔치의 제사인 화목제의 경우 암수의 구별 없이 원하는 대로 바칠 수 있었다(레 3:1). 그렇다면 수컷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당시 수컷이 더 비쌌다거나(Wenham), 수컷이 종자 가축으로서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가 빈약하다. 종자 가축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예나 지금이나 가축의 시장 가격은 수컷보다 암컷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물로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우위에 있는 이유는 제사에서는 시장 가치가 아닌 제의적 가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수컷 선호는 수컷의 존재론적 가치와 대표성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스라엘은 가부장적 중동 문화의 영향권에 속했다. 하나님께서는 문화적·역사적·지리적 한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부여하셨다. 따라서 제의 체계에서는 시장 가치가 아닌 율법에서 정한 제의적 가치에 따라 수컷이 우월하게 여겨졌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의 본질과 정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컷은 본질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틀에 불과하다. 본질은 더 나은 것, 최고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대적 관점에서 수컷이 제물로서 우월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여 구약의 성차별적 경향을 따지고 들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흠 없는 짐승을 선택해야 했다. 자신이 기른 짐승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4) 짐승의 등급이 나뉘었다.
짐승은 크기에 따라 소, 염소/양, 그리고 비둘기의 세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제사 드리는 사람의 신분과 조건에 따라 짐승의 등급과 서열이 결정되었다. 번제나 화목제의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짐승의 크기가 달라졌을 것이며, 속죄제의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가 기준이 되었다.
5) 짐승의 머리에 안수한다.
레위기 1장 4절은 ‘그는 번제물에 안수할지니’라고 명령한다. 이후 모든 희생 짐승들에 이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기서 ‘그’는 제물을 바치는 제사자를 의미한다. 제사자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레위기 1~5장의 제사 규정에 ‘손’(히. yad)이 단수로 쓰였다는 점을 들어 이를 한 손으로 간주하면서 아사셀 염소 위에 시행된 두 손(레 16:21)과 구별 짓는다. 그들에 의하면 한 손으로 안수하느냐 두 손으로 안수하느냐에 따라 안수의 내재적 기능은 물론 그 효과도 달라진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한 손이든 두 손이든 안수의 목적에 따라 안수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우리는 나중에 안수 문제를 다시 살펴볼 것이다. 특히 속죄제/속건제에서는 안수의 기능이 중요한 쟁점이다.
6) 피는 제단에 처리한다.
레위기 1장 5절은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그’는 안수와 마찬가지로 제사를 바치는 사람, 즉 제사자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이 도살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제사장은 자신의 제사와 더불어 공적 제사에서 안수와 도살을 직접 집행할 뿐이다. 제사장은 양푼에 받은 짐승의 피를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안수와 도살 모두 제사자가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만일 제사자가 심약하거나 신체적 문제로 도살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제 삼자가 대신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제단에서 피를 처리하는 방식은 네 가지가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속죄제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7) 제물에서 나온 모든 기름은 하나님께 바쳤다.
피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하고 ‘모든 기름은 야웨의 것’(레 3:16)이기에 인간은 피와 기름 중 어느 것 하나 먹을 수 없었다(레 3:16~17). 따라서 희생 짐승의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살라 하나님께 드렸다. 번제에서는 모든 것을 태워 하나님께 바쳤지만, 속죄제/속건제와 화목제에서는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제사에서 동물의 내장의 기름 부위는 반드시 제단에 바쳐야 했다. 내장의 기름 부위란 내장을 덮고 있거나 내장에 붙어 있는 기름 덩어리, 간엽 및 콩팥을 말하며(레 3:9~10; 4:8~9), 양의 경우 기름진 꼬리를 포함했다(레 3:9). 제의 법안에서는 종종 이것들이 통틀어 ‘기름’이라 표현된다(레 4:19, 26, 31, 35). 기름은 왜 항상 하나님께 바쳐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화목제를 다룰 때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8) 고기의 처리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번제의 경우 모든 고기를 제단에 태웠다. 그러나 속죄제/속건제, 그리고 화목제에서는 기름과 일부 내장만을 제단에 바치고 살코기는 인간이 먹었다. 속죄제의 경우 중대한 제사에서는 기름을 제외한 부위를 진 밖에서 태웠으나(태우는 속죄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제사에서는 제사장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먹는 속죄제). 속건제를 드릴 때는 숫양을 바쳤는데 이때도 기름을 제외한 고기는 언제나 제사장에게 돌아갔다. 반면 화목제의 짐승은 제사장에게 일부를 할당하고 거의 대부분은 제사자가 가져가 가족과 친족,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9) 제사 중에는 침묵하지 않았다.
제사는 엄숙히 진행되었지만 그러나 침묵이 흐르지는 않았다. 아마도 출산과 병으로부터 회복되었을 때는 감사의 고백과 찬양이, 죄나 부정결의 문제로 제사를 드릴 때는 죄의 고백과 자신의 부정함에 대한 설명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제사를 다 마친 뒤에는 제사장의 축복의 선언과 죄사함이나 정결함의 선언이 뒤따랐을 것이다.
10) 제사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모든 제사는 신분과 빈부의 차이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남녀의 차별도 없었다. 남녀평등의 원칙을 따라 여성도 언제든 제사를 바칠 수 있었다. 다만 가정에서 바치는 번제나 화목제, 또한 절기에 의무적으로 성전에 올라와 바쳐야 하는 제사들은 가장인 남자가 주도했을 것이다. 한나의 사례에서 보듯이 여자라 해도 개인적인 감사와 헌신을 위해 번제나 화목제를 바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속죄제와 속건제의 경우 죄인의 여성이라면 당연히 그녀가 제물을 들고 올라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