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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24절 말씀을 좀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구부러진 말을 내 입에서 버리며 삐뚤어진 말을 내 입술에서 멀리하라
24절을 우리 우리말 성경으로도 좀 볼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여러 번역본을 이렇게 대조해 보니까 가장 쉽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24절 우리 말 성경으로도 한번 같이 읽습니다. 시작
더러운 말을 버리고 거짓되고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라.
아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읽어드릴게요. 더러운 말을 버리고 거짓되고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라.
여러분 왜 우리가 구부러진 말을 우리 입에서 버려야 할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구부러진 말을 우리 입에서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구부러진 말을 내가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은 그 자체도 나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말들이 결국 자기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부러진 말들을 남들에게 하면 자기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근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내가 남에게 구부러진 말을 하면 그 말은 동시에 나에게도 한 말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뇌를 되게 신뢰하잖아요. 뇌는 좋고 되게 합리적일 것이고 또 되게 객관적일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잖아요.
실제로 우리의 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는 잘 구분을 못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진짜 웃는지 내가 가짜로 웃는지 잘 구분을 못해요. 그래서 내가 가짜로 웃어도 진짜 효과가 내 몸에 나타납니다.
또한 우리가 하는 말들이 자기에게 하는 말인지 남에게 하는 말인지도 잘 몰라요. 우리가 뇌에 대해서 좀 착각을 하는 거죠. 뇌는 객관적일 것이다 또 올바를 것이다 이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근데 실제로 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남에게 하는 구부러진 말은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에게 한 말이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든다면 악플을 들 수 있어요. 여러분 악플은 정말 우리가 달면 안 되는 글이에요. 이 구부러진 악한 말은 사람들에게 해서도 안 되지만 흔적으로 이렇게 댓글로도 남겨서도 안 돼요. 왜냐하면 그 악플을 읽고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 만큼 악플은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누군가에 대해서 악플을 달지만 그 악플 때문에 결국 자기의 마음도 병든다는 걸 알아야 돼요.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나쁜 글을 남기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 대해서도 나쁜 글을 남기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게 되어 자신도 타인도 공감하지 못하게 되는 악한 마음을 갖게 돼요. 그래서 우리가 악플을 달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이 악하게 되어서 타인의 괴로움을 즐거워하는 짐승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온라인상에는 짐승들이 많은 거예요. 왜냐하면 처음에는 분명히 남에 대해서 악플을 남겼어요.
그런데 이것이 결국 자기의 마음에 대해서 남긴 것이 되고 그런 영향력을 받아서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도 나쁜 말을 하지 말아야 하지만 자신에게도 나쁜 말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남에게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나쁜 말을 통해서 남들이 개선될 것이라고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면서 나쁜 말을 해요.\
여러분 대부분의 나쁜 말에는 선한 의도가 담겨 있어요. 이렇게 내가 나쁜 말을 하면 내가 혼을 내면 내가 정신 차리게 하면 저 사람이 나아질 것이다. 생각이 바뀔 것이고 삶의 개선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서 사람들이 충격적인 요법으로 나쁜 말을 하는 거야.
문제는 나쁜 말을 듣고 듣는 사람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생각하는 거죠. 나쁜 말을 하면 충격을 받아서 저 사람이 고쳐질 것이다. 실제로 고쳐지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나쁜 말로 표현되지만 그 안에 사랑이라는 의도가 충분히 담겼거나 누가 봐도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담겼을 때는 나쁜 말을 통해서도 우리가 도전을 받기도 하고 개선이 되지만 실제로 나쁜 말 그 자체로는 어떤 개선도 우리의 삶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잔소리 좋은 의도에서 하는 거예요. 목회자들의 권면 좋은 의도예요. 선생님들의 훈계 좋은 의도예요. 친구들의 충고 좋은 의도입니다. 누구도 그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하기 위해서 나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문제는 나쁜 말을 듣는 사람은 점점 더 나빠진다. 내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분명히 나쁜 말을 했는데 나쁜 말을 빈번하게 자주 듣는 사람은 점점 더 나빠진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나쁜 말을 듣는 사람도 나빠지지만 나쁜 말을 하는 사람도 나빠진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남에게 하는 나쁜 말은 말을 듣는 사람은 남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기이기도 하기 때문인 거죠.
내가 누구에게 나쁜 말을 해요?
그러면 그 말은 듣는 사람도 그 말을 듣지만 하는 사람도 그 말을 듣잖아요. 제가 막 제 입으로 막 욕을 해요. 여러분 그 욕이 여러분의 귀에만 들립니까?
아니요. 제 귀에도 들려요. 우리가 이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돼요. 욕이든 나쁜 말이든 내 입에서 나와서 상대방만 그 말을 들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도 그 말을 듣고 상대방과 동일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남에게 하는 나쁜 말은 결국 자기에게 하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나쁜 말은 자신에게도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는 말이 돼요.
이런 거죠. 내가 나쁜 말을 하는 것을 주변의 사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제 자녀들에게 나쁜 말을 하는 것을 주변의 사람이 들은 거예요. 주변은 완전히 제3자잖아요. 근데 중요한 것은 들은 그 사람도 나빠진다는 거죠. 직접적으로 나쁜 말을 들은 사람도 나빠지고 나쁜 말을 한 사람도 나빠지고, 주변에 있으면서 그 나쁜 말을 들은 사람도 나빠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주체와 객체, 사실과 거짓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그래서 혼돈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나쁜 말을 계속 듣게 되면 이상하게 된다는 거죠. 좋지 않은 말을 1년만 들어도 사람들은 다 이상해집니다. 건강한 사람이 좀 안 좋은 직장에 들어갔어요. 그 직장 생활을 딱 1년 했는데 이상해져요. 분명히 건강했는데 군대를 갔어요. 아주 못된 상사를 만났어요. 그래서 평생 들어보지 못한 말을 군에서 들은 거예요. 1년만 해도 충분히 이상해질 수 있습니다. 학교를 갔는데 친구를 만나서 나 못된 말 나쁜 말을 하는 친구예요. 1년을 함께 어울렸더니 자기도 결국 나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나쁜 말들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커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그래서 우리 주변에 여러분 이런 말을 함부로 하면 어렵 좀 안 좋긴 하지만 그냥 들으십시오.
저도 해당될 수 있는 말이긴 하니까 어쨌든 이상한 사람이 많은 공동체도 공동체는 자세히 살펴보면 나쁜 말이 많아요. 이상한 사람이 많은 교회에도 나쁜 말이 많고요. 이상한 사람이 많은 가정에도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나쁜 말이 자녀들을 이상하게 만든 거고 성도를 이상하게 만든 거고 백성을 이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더 이상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거예요.
여러분 알아야 할 것은 좋은 말을 들어야 좋은 시민이 되고 좋은 말을 들어야 좋은 성도가 되고 좋은 말을 들어야 좋은 부모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계속해서 나쁜 말을 듣는데 좋은 성도도 될 수 없고 좋은 시민도 될 수 없고 좋은 부모도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나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않게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돼요.
여러분 나쁜 말은 하는 사람도 내상을 입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만큼 이 악한 영향력이 나쁜 말이 있어요. 근데 이 나쁜 말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냥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정말 조심하고 주의할 사람이에요. 만약에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멀어지셔야 하고 우리 사회에 그런 부류의 사람이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멀어져야 돼요.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도 결국 이상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에 대해서 선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주변에 여러분을 향해서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찾아다니십시오. 그 사람을 만나십시오. 그럼 여러분은 선한 사람 결국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녀들이 막 좋아져요.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좋은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의 주변에 나빠지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여러분이 나쁜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더 상황이 안 좋아진다는 것은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나쁜 말들이 더 자녀들에게 많이 전달되어 여러분의 자녀가 좋아진다는 것은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좋은 말들이 자녀들에게 많이 전달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참 나쁜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죠 지금 뭐 폭동이 일어나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잖아요. 언론을 통제하고 뭐 이래서 잘 모를 뿐인 거지 전 세계적으로 폭동이 일어나고 쿠테타가 일어나는 지역들 나라들이 점점 더 늘어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좀 정치인을 경계해야 될 것은 정치인은 나쁜 말을 해서 자기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말을 해서 자기 것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더 악한 말을 누가 누가 하나 경쟁하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조심하고 정말 주의해야 됩니다.
여러분 나쁜 말로 좋은 국가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데 과연 그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거예요. 좋은 말이 있어야 좋은 나라가 되는 거예요. 가정도 똑같아요. 좋은 말이 있어야 좋은 가정이 돼요. 교회도 똑같습니다. 좋은 말이 있어야 좋은 교회가 됩니다. 나쁜 말로 나라를 이상 국가로 만들려는 이상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리더들은 저부터 포함해서 누가 누가 선한 말을 하느냐라고 이게 경쟁을 해야 정상인데 지금 이 사회는 누가 누가 막말을 하느냐 누가 누가 악한 말을 하느냐고 경증을 하는 거예요. 목회자들끼리 경쟁을 붙어도 성한 말을 통해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악한 말을 해서 이기려고 하는 거예요.
사회 그러니까 우리 자녀들도 학교에서 선거를 하면 반장 선거를 하면 정상적으로는 좋은 말을 해서 반장이 되려고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앞에서는 좋은 말을 하고 뒤에서 나쁜 말을 막 소문을 퍼뜨려요. 왜요? 어른들의 행위를 그대로 다 배운 거죠. 그래서 나쁜 말을 해서 반장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영적인 환경이 점점 더 악해져 가는 것은 나쁜 말을 하거나 듣고 있기 때문인 거죠.
여러분 말은 힘이 있어요.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요. 내면을 파괴하기도 하고요. 내면을 완전히 내상을 회복시키기도 하고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교회든 가정이든 그 영적인 환경이 점점 더 파괴되어져 갑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주변에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멀어지십시오. 친구라도 멀어지셔야 돼요. 왜냐하면 그 나쁜 말로 결국 여러분은 어느 순간 나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을 거예요.
할 수만 있다면 좋은 말을 하는 사람 옆에 있으십시오. 좀 부담스럽지만 진지한 말을 하는 사람 옆에 있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살 길이 열리고 희망이 보여요.
제가 어머니가 그리운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집은 좀 나쁜 말을 하는 집이에요. 그런데 어머니에게만 가면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에게 가는 것을 되게 좋아했어요. 전화하는 것도 좋아하고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고 어머니 옆에 가까이 있는 것도 아주 좋아했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있어서 오아시스 같았고 또 한 편의 안식처와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가면 왠지 목회를 잘할 것 같고 어머니에게 가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고 어머니에게 가면 왠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 같고 어머니에게 가면 없던 희망도 다시 살아날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전화하고 만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제 저희 집안에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저나 제 인생에 대해서 제 결정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저에게는 한 분의 어머니가 또 있습니다. 이 어머니도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저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서 살아계시지만 그리운 분이에요. 그러니까 항상 만나면 좋은 이야기를 사위에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져요.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자신감도 생겨요. 외형적으로는 겉보기에는 사위인 제가 어머니가 외롭지 않을까 해서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이제 제가 친은 어머니로부터는 좋은 말을 못 듣는 거잖아요. 돌아가셨으니까.
근데 이제 장모니로부터는 아직 살아계시니까 좋은 말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전화하고 가게 됩니다.
여러분 좋은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요?
좋은 말이 있는 가정이에요.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좋은 말이 있는 교회예요. 원래 오늘 청년들이 이제 여름 사역을 성도들이 도와줬다고 도와주신 분들에 대해서 이렇게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서 이렇게 스티커를 붙여서 이렇게 나눠줬어요. 저도 받고 제 친구 걸 제가 대신 받고 저는 두 개를 받았어요. 그거 보면 누구누구누구 감사합니다.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교회는 이처럼 좋은 말들이 통용되는 공간이어야 돼요. 그래야 가고 싶고 오고 싶은 곳이 돼요.
여러분 실제로 교회가 막 크고 그 안에 막 사역이 막 웅장해서 교회를 찾는 게 아니라 사람들은 좋은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찾아요. 근데 만약에 제가 이 강단에서 맨날 여러분을 정제를 하고 막 야단을 치면 제가 얼굴도 안 그래도 심각한데 말까지 생각해 봐 여러분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 강단에서 좋은 말이 들려야 여러분이 교회를 찾고 함께 식사를 하는 성도들에게 좋은 말이 들려야 함께 식사하고 싶고 함께 사역하는 성도들에게도 좋은 말이 들려야 함께 사역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은 은혜 받길 원해서 또 아니면 뭐 어떤 도움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오지만 진짜 그 중심에 잘 찾아보면 좋은 말을 들으려고 오는 거죠. 내 영혼을 살릴 말 내 인생을 회복시킬 말을 교회에서는 듣고 싶은 거야 왜 세상에 못 들으니까 여러분 자존감 자존심과 자존감은 좀 다르죠.
여러분 자존감이 어떻게 형성되냐 하면 듣는 말에 의해서 형성이 돼요. 그러니까 나쁜 말을 들으면 자존감이 바닥인 인생인 거죠. 어려서부터 나쁜 말을 많이 들은 사람은 자존감이 바닥인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 중에 자존감이 낮은 분들이 있죠. 늘 자기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도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좋은 말을 못 들은 거예요. 나쁜 말을 듣고 자란 거예요. 그래서 자존감이 바닥인 거죠. 왜냐하면 대부분의 말에는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좋은 말이나 나쁜 말에는 나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는 거예요.
자존감은 그 사람이 어떤 말을 듣고 자랐는지를 알려주는 지퍼예요. 그래서 20절처럼 말하는 겁니다. 같이 한번 20절 읽습니다. 시작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내 귀를 기울이라
왜냐하면 그것이 생명이 되고 육체의 건강이 되는 말이기 때문인 거죠. 여러분 좋은 말은 한 사람의 가치를 상승시킵니다. 좋은 말은 사역의 가치도 상승시켜요. 좋은 말은 교회의 값어치도 상승을 시킵니다.
근데 우리는 좋은 말을 할 능력이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내면적으로 최악의 상태가 되면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목회자들의 심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여러분도 힘이 필요하지만 목회자들의 힘이 필요해요. 제가 보니까 이 힘이 없으니까 언어가 정제되지 않더라고요. 쉼이 있어야 언어가 좀 정제가 돼요. 하나님과 깊은 교제 후에 또 깊은 묵상이 있고 또 책들을 이렇게 읽은 그런 시간들이 쌓여야 제 입에서 정제된 언어가 나와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사람인지라 정제되진 언어가 되지 않는 언어가 나가고 그 언어 때문에 성도들이 상처를 입는 것을 가끔씩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좋은 말을 할 수 없는 부모, 좋은 말을 할 수 없는 목회자, 좋은 말을 할 수 없는 스승이 많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짧게 네 가지로 나누고 기도합니다. 첫 번째로는 내가 좋은 말을 하려는 사람이 되려면 기도를 해야 돼요.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기 때문에 기도의 시간이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기도를 통해서 내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듣게 되고 내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말씀이 기도 시간을 통해서 내게 오는 거예요.
여러분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생각도 오고요. 말씀도 오고 참 많은 것들이 내게 와요. 특별히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내 영혼과 내 자존감과 내 삶을 회복시키는 말씀이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범죄한 인생인 사람의 언어가 파괴의 언어라면 하나님의 언어는 창조의 언어인 거죠. 그러니까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창조의 언어가 내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말을 들으려고 해야 돼요.
우리는 기도할 때 너무 많은 말을 하잖아요. 충분히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말은 하나님의 소리를 들은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은 언어의 차이가 있어요. 우리가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기도가 안식이 되고 기도가 회복이 되고 또 기도가 능력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좋은 말을 하려면 좋은 말이 우리에게 있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돼요. 큰 소리로 읽거나 묵상해야 됩니다. 말씀은 생명의 언어라서 듣는 이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요. 영혼의 언어이기 때문에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영이 회복이 돼요. 치유의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과 삶의 치유가 일어나요. 세상에서 들은 온갖 종류의 나쁜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과 내 귀에서 씻어내는 거예요. 부모에게서 들은 나쁜 말을 내 귀에서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나쁜 말을 많이 듣고 살아요. 교회에서도 나쁜 말을 많이 들어요. 그냥 두면 계속 나쁜 말이 내게 머물러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할 거 씻어내야 되죠?
그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첫 번째는 기도고 두 번째로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삶에 있는 마귀의 언어들을 이겨내게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우리의 입술에 마귀의 언어가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의 언어가 있어야 되는데 마귀의 언어가 있는 거예요. 어떻게 이 마귀의 언어를 떨칠 수 있어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해야 이 마귀의 언어를 떨칠 수 있는 겁니다. 세 번째는 우리 눈이 좋은 것을 봐야 합니다. 25절입니다. 같이 한번 25절 읽습니다. 시작
내 눈은 바로 보며 내 눈꺼풀은 내 앞을 곱게 살펴
그래서 여러분 가장 용량이 많은 데이터 데이터가 뭐냐 하면 영상이나 이렇게 그림이에요. 그러니까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가장 양이 많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짧게 본 어떤 장면이 우리의 뇌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이 짧게 어떤 장면을 봤어요?
근데 말은 차지한 공간이 되게 작아요. 근데 시각적 시각의 데이터는 정보는 엄청나게 데이터 용량이 커요. 커서 내 뇌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돼요. 그러니까 뇌의 공간도 차지하게 되고 우리의 마음의 공간도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은 앞만 보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라고 합니다. 따라 하겠습니다.
눈이 돌아가면 마음도 돌아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여행을 하나요?
좋은 것을 보려고 여행을 다녀요. 근데 사람들이 좋아져야 되는데 여행을 하고 난 후에 안 좋아져요. 왜 그럴까요?
좋은 곳에 갔는데 좋은 곳을 보지 않은 거죠. 유튜브는 되게 좋아요. 근데 거기서 좋은 곳을 보지 않으면 이 좋지 않은 것이 내 뇌와 내 마음의 공간을 다 차지해 버리는 거죠.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설교를 열심히 들었어요. 정말 평상시에는 졸았는데 안 졸고 막 눈을 부릅 뜨고 들었어요. 여러분 식사하면서 영상 하나 딱 틀어보십시오. 이제 그 영상이 안 좋은 거면 여러분이 30분들은 이 설교 다 날려먹어요. 아니 평생 들은 말씀도 좋지 않은 영상 하나가 다 날려버려요.
여러분 유튜브는 좋아요. 근데 그 안에 좋지 않은 것이 많아요. 특별히 유튜브는 알고리즘과 프레임을 가지고 여러분과 저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배받기 정말 좋은 도구가 유튜브예요. 여러분 나라의 지배받는 것보다 유튜브에 지배받는 게 훨씬 더 빠를걸요. 어떤 조직의 지배받는 일보다 우리가 유튜브에 지배받는 일들이 훨씬 더 친숙할 거예요. 왜냐하면 유튜브는 알고리즘과 프레임을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랑은 아닌데 제가 운동을 하고 있어요. 남이 운동한다고 해도 좀 좋아해 주실 텐데 일주일에 한 3일 4일 아들한테 끌려가서 이제 헬스를 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 제 유튜브에 헬스 영상만 떠요. 근데 제가 검색한 적도 없어요. 이럴 수는 있겠죠. 제가 우연치 않게 헬스 영상 하나 정도는 이렇게 누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자꾸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지.
근데 어느 순간 그러니까 헬스 영상으로 2배가 되는 거예요. 유튜브는 우리에게 알고리즘과 프레이밍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성도가 이 시대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의해야 돼요. 좋지만 안 좋은 것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됩니다.
네 번째로는 악한 길을 걷지 말아야 됩니다. 27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내 발길을 끊어버려라.
이 말의 의미는 벗어나지 말라는 거예요. 아무리 이익이 되어도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익을 따라서 진리를 벗어나는 인생이잖아요. 이익이 되면 하나님의 길을 가볍게 버리는 게 우리잖아요. 이 말씀은 이익이 되더라도 진리를 바른 길을 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왼쪽도 악한 길이고 오른쪽도 다 악한 길이에요.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사람은 오른쪽이 옳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왼쪽이 옳다고 해요. 근데 성경은 똑바로 걸으라는 거예요.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내 발길을 끊어버리라는 거예요. 똑바로 걸으라는 거예요. 이익이 된다고 해서 유익이 된다고 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거예요. 말씀의 길을 걸으라는 거죠.
여러분의 삶이 신앙이 좋아지지 않고 있다면 바른 길에서 벗어난 겁니다. 여러분 바르다는 건 큰 의미가 있어요. 금방 회복을 가져와요. 여러분 바른 길 몇 걸음 걸어도 회복을 가져오더라고요.
제가 헬스를 얼마 안 했어요. 한 달 반 했어요. 일주일에 한 3일 많으면 4일 정도 하루에 1시간 반 길면 2시간 정도 헬스를 해요.
근데 딱 한 달 반 만에 바뀐 게 하나 있어요. 하나가 체력이 달라졌어요. 체력이 그러니까 피곤이 훨씬 더 덜 느껴져요. 여러분 바른 길은 한 번만 걸어도 효과가 있어요. 바른 길은 올바른 길은 한 번만 걸어도 효과가 있어요.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싸우면 좋은 말을 하게 되고, 사람과 싸우면 나쁜 말을 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온다는 건 내가 지금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다는 거예요. 더 잘 믿기 위해서 죄를 이기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싸우고 있다는 거죠.
사람과 싸우면 악한 말이 나오고 하나님과 싸우면 좋은 말이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과 싸우면 마음이 온전해지고 사람과 싸우면 마음이 병들어요. 내 마음이 지금 병들고 있다는 건 내가 지금 사람과 싸우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안 좋아지는 그 지점에 한번 가보세요. 여러분이 싸우고 있는 사람이 꼭 있어요. 아내와 싸우든 남편과 싸우든, 직장 동료와 싸우든 누군가 싸우고 있어요. 여러분의 심정이 안 좋아지는 그 시점으로 한번 가보세요. 반드시 하나님이 아닌 내가 싸우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안 좋아지는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는 최악의 사회입니다. 왜냐하면 나쁜 말을 경쟁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말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법을 가르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좀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 4가지 정도 5가지 정도 쭉 읽을 텐데 여러분이 제가 축복합니다고 하면 평상시에는 아멘을 죽어도 안 하셨지만 오늘은 아멘을 좀 크게 한번 해보십시오. 우리 안에 회복의 언어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치유의 언어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사역에 창조의 언어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만남에 성장의 언어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하루에 감사의 언어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과 저의 만남에 성장의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만나보고 나면 자라야 돼요. 만나고 나면 저 구석으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나면 성장해야 돼요. 그러려면 우리에게 좋은 말이 있어야 됩니다. 생명의 언어가 있어야 되고 창조의 언어가 있어야 돼요. 이 언어가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