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갈등은 칡넝쿨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을 합친 말이다. 한편으로는 상호 간 의견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복잡한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심리적 상황의 근원인 마음을 가늠하는 어떤 근거나 이를 유추하기 위한 단서도 없다. 그렇다면 칡넝쿨과 등나무의 단순한 합이 어떤 연유에서 자신의 내면이나 세상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 이른 봄날에 괭이를 어깨에 메고 서너 살 앞선 나이의 동네 형들을 따라나섰다. 헐벗은 산자락 두렁에서 칡뿌리를 캐기 위해서 가는 길이다. 형들이 알려 준 마른 칡넝쿨 주위를 괭이로 긁었다. 날이 무뎌 짧아진 괭이지만 비탈진 돌 틈에서 칡뿌리를 캐기란 나의 힘에는 버거웠다. 도움을 받아 겨우 얻은 칡뿌리는 해마다 캐낸 탓으로 튼실하지 못했다. 깡마른 칡뿌리를 캐서 질근질근 씹으며 돌아오던 그때, 그 칡의 맛과 향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장자리 뿌리지만 빈손으로 오는 사람 없이 나누어준 형들이 고마웠다.
등나무도 꽤나 귀했던 것 같다. 동네에서 가장 부자인 골기와 집 솟을대문에는 등나무 터널이 있었다. 이곳에는 굵은 등나무가 덮고 있었고 나지막한 살평상이 세워져 있었다. 탐스러운 보랏빛 꽃이 드리워지는 때는 그윽한 향기로 가득했다. 할머니를 따라 마실 갔다가 향기에 취해 그늘 아래에 놓인 살평상에서 잠들곤 했다.
칡넝쿨과 등나무가 사람들의 사건에 얽힌 사연은 이러하다. 창조주는 우주의 미물조차도 다른 모양으로 만들었고, 성질 또한 제각각의 특성대로 창조하셨다. 칡에게는 왼쪽으로 감으면서 성장하게 하였고, 등나무에게는 오른쪽으로 감아 자라게 하였다.
칡과 등 사이를 갈라 경쟁하고 원수지도록 부추긴 것에는 인간이 한몫을 했다. 비슷하게 생긴 이들에게 하나는 나무라고 이름 지어 자존심을 세워주었고 다른 하나에게는 넝쿨이라고 불러 자존심을 구기게 했다. 이때부터 칡넝쿨과 등나무는 서로 경쟁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한 삼각관계의 구애가 물고 물렸다.
등은 구불구불한 나무이지만 인간에게 편안함을 주는 안락의자로 총애를 받았다. 이에 뒤질세라 칡은 뿌리를 통해 즙으로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나아가 건강을 내세워 도전장을 냈다. 여성에게는 갱년기와 피부에 그리고 혈관청결과 당뇨에, 남성에게는 숙취해소와 해독의 효과로 구애했다.
칡과 등은 사람의 총애를 받기 위한 경쟁의 과열로 인간의 속마음까지 파고들었다. 정당한 경쟁을 넘어선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여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되었다. 서로 살겠다고 옆에 있는 나무들까지 감고 올라가므로 오히려 사람에게 제거당하는 대상이 되었다.
넘치지 않은 적당한 갈등은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여 각자의 성장을 촉진한다. 칡넝쿨의 보잘것없는 보랏빛 꽃도 등나무의 화려한 보랏빛 꽃도 인간의 성장과 발전에 긍정적 보랏빛 청사진의 상징으로 회자되었을 테고, 칡은 주린 배와 건강을, 등은 건강한 사람의 안락함과 평화로운 휴식을 감당하였다면 제거되는 비극 없이 서로 윈-윈(win-win) 하였을 텐데.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남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은 다른 힘에 의해서 도태된다는 것이 칡넝쿨과 등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큰 가르침이다. 산천에서 지천인 칡과 등의 이야기는 세상 속에 이웃하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와 아주 닮았다.
첫댓글 조장래 선생님,
대구문학 신인상 수상을 거듭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고 문운이 활짝 열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