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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랑자대(夜郞自大)
야랑(夜郞)이 스스로 크다고 여긴다는 뜻으로, 터무니 없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용렬하거나 우매한 무리 가운데서 세력이 있어 잘난 체하고 뽐냄을 말한다.
夜 : 밤 야(夕/5)
郞 : 사내 랑(阝/7)
自 : 스스로 자(自/0)
大 : 큰 대(大/0)
(유의어)
옹리혜계(甕裏醯鷄)
정저지와(井底之蛙)
좌정관천(坐井觀天)
관중지천(管中之天)
출전 :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야랑이 스스로 크다고 자부한다는 뜻으로, 하찮은 무리 중에서 제일 잘났다고 뻐기는 자를 비웃는 말이다. 중국 한나라 때에 서남쪽의 오랑캐 가운데서 야랑국이 가장 세력이 강하여 오만한 데서 유래한다.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큰소리만 치는 사람을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고 한다. 속은 제법 찼지만 욕을 얻는 경우는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교훈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넓은 세상의 일을 알지 못해 보이는 것만이 최고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관규려측(管窺蠡測)이란 말이다.
여기 이 성어도 중국 한(漢)나라 때 서남 일대의 10여개 소국 중 하나였던 야랑(夜郞)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크다(自大)고 여긴다는 뜻으로 자신의 처지도 모른 채 과대평가하여 잘난 체하고 뽐내는 행동을 비웃는 말이 됐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에 실린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한 시대에 중국 서남 일대에는 10여개의 소국이 복속되어 있었다. 그중 야랑이란 나라는 면적이 縣(현) 정도로 인구는 적고 토지도 척박했다. 생산물이 얼마 안 되었는데도 임금은 자신의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후기 초(楚)나라의 장교(莊蹻)라는 장군이 야랑 인근의 전지(滇池)지역을 평정하고 귀국하려 했으나 길목을 진(秦)나라에 뺏기자 그곳에 주저앉아 다스리는 일도 있었다. 진이 망하고 세월이 지나 이들 나라는 각각 왕을 칭하고 자립했다.
한나라 때 당몽(唐蒙)이라는 현령을 야랑에, 왕연우(王然于)라는 사람을 사자로 전지에 보냈을 때 전왕이 이들에게 말했다. "한나라와 우리나라는 어느 쪽이 더 큰가? 야랑후도 마찬가지였다(漢孰與我大 及夜郞侯亦然)." 길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왕이나 야랑후 이들 소국은 모두 한나라의 광대한 세력을 알지 못하고 한 주의 군주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술독 속의 초파리'라는 뜻의 옹리혜계(甕裏醯鷄)나 ‘우물 안 개구리’를 뜻하는 ‘정저지와(井底之蛙)’도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다.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는 좌정관천(坐井觀天)이나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본다’는 관중지천(管中之天)도 제 분수를 모르고 잘못된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야랑자대(夜郞自大)
야랑이라는 조그만 나라가 스스로 크다고 여기다
전한(前漢) 시기에 중국 귀주성(貴州省) 지역에 야랑(夜郞)이라는 정말 작은 나라가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군(郡) 단위 정도의 면적을 가졌는데, 완전한 독립국이었다. 그 나라 임금이나 신하는 단 한 번도 밖에 나가 보거나 다른 나라와 교류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야랑국 임금이 나라 안을 순시하다가 신하에게, “이 세상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클까?”라고 물었다. “우리 야랑국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제일 높은 산은?”, “당연히 저 산이지요.”, “제일 긴 강은?”, “당연히 저 강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들으면 우습겠지만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뒤 한나라 무제(武帝)가 야랑국에 사신을 보냈다. 야랑국 임금이 진지하게 묻기를, “우리 야랑국하고 한나라 하고 어느 나라가 더 클까요?” 3000배 정도나 될 한나라하고 야랑국하고 비교하는 질문을 듣고 한나라 사신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야랑국 왕은 견문이 없으니 안목이 생길 수가 없고, 자기 나라의 규모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야랑국 임금은 천추에 남을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남겼다. 생각이 모자라고 견문이 모자라 자기가 최고일 뿐, 남의 대단한 점은 인정하지 않는 잘난 체하는 사람을 비웃는 말로 자주 쓰인다.
필자는 한문학(漢文學)을 전공하다 보니 종가(宗家)나 서원 등을 자주 방문한다. 어떤 종가에 갔더니 종손이 계속 조상 자랑, 자기 부친 자랑이었다. 당연히 자랑할 만했다. 그러나 자랑하려면, 그 종가보다 더 대단한 종가도 많이 있다. ‘3대 대제학(大提學)’, ‘9대 연속 문과 급제한 집안’, ‘양대 연속 영의정 집안’ 등등. 이러면 모든 종가들이 자기 자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자랑하기 전에 “우리 조상이 국가민족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를 한번 자문했으면 싶었다.
어떤 서원에 갔더니 안내를 맡은 후손이 “여기 모신 우리 선생만이 참된 선비로서, 임금이 여러 번 불러도 안 나갔고…” 등등 자랑을 한참 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은데, “어떤 선생은 학자로 이름났지만 속으로는 벼슬을 좋아하고, 권력자들과 친하여 참된 학자라고 할 것도 못 되면서 서원에 모셔…” 등등 다른 선현들 폄하(貶下)하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지난 3월에 작고하신 퇴계선생 16대 종손 이근필(李根必) 옹은 종가나 서원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퇴계선생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늘 다른 훌륭한 선현들의 좋은 일만 이야기해 왔다. 남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자기와 관계되는 것은 겸허한 태도를 취하면 세상은 더욱 화목해지고 갈등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자기 자랑을 계속하면 결국 남과 경쟁하게 되고, 경쟁하면 분열과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야랑국(夜郞國)에 관한 이야기
중국의 사자성어중에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무 것도 아닌 인물이 스스로 잘난 것으로 알고 까분다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데, 서남이열전에 의하면, "서남지역에는 오랑캐의 군장들이 십여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야랑이 가장 크다"라는 말이 나오고, 한나라 무제때 당몽(唐蒙)이 명을 받아 기원전 135년에 남월국에 사자로 가면서 이쪽 지방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한나라에서온 사신에게 야랑국의 군왕은 "한나라와 우리 야랑국은 누가 더 큰가?"라고 물어, 한나라의 일개 군현규모에 불과한 야랑국이 이렇게 세상넓은 줄을 모르는데 대하여 사신이 기가 막혔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여기에서 "야랑자대"라는 성어가 유래되었다.
야랑국은 한나라 성제때(기원전 28-23년), 야랑국과 남방의 작은 나라들간에 분쟁이 발생하였는데, 한나라 조정의 중재를 듣지 않자, 한라라의 군수 진입심이 야랑국에 들어가서 당시 야랑국의 마지막 국왕을 참하고 평정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이후 사서에 야랑국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야랑국에 대하여는 아직까지도 학설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분히 나누어져 있는데, 네가지 주요한 이슈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야랑국의 강역과 중심지역은 어디였는가?
이 문제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가장 많은 분야이고, 논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이다. 통상적으로 국가라면 자기의 통치범위가 있고,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있어야 한다. 야랑국의 중심지역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10여개의 학설이 있다. 귀주성내의 안순, 동재, 육기, 망모, 혜수, 장순, 삼도등이 야랑국의 중심이라는 설도 있고, 운남의 선위, 광서와 호남에서는 자기 지역이라는 설도 있다. 각자 중심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는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야랑국의 주체민족은 누구인가?
여기에는 야랑국을 구성하는 가장 많은 인구가 속한 민족이 어디인지도 포함된다. 야랑의 족속에 대하여는 주로 4가지의 견해가 있다. 묘족이라는 설, 이족이라는 설, 포의족이라는 설, 걸로족이라는 설. 지금까지 4개민족은 모두 자신의 민족학회를 만들어서 야랑족이 자신들의 선조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고 있다.
셋째, 야랑의 사회성격은 어떤가?
야랑의 경제발전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평가에 근거하여 야랑국의 사회성격에 대하여도 크게 4개의 견해로 나뉜다. 하나는 노예제사회의 초기단계라는 설, 둘째는 원시사회의 말기단계라는 설, 셋째는 봉건사회의 초기단계라는 설, 넷째는 복합경제체제 즉 봉건사회의 정치, 경제적인 요소가 야랑국에 큰 영향을 주어 당시의 사회상태를 점진적으로 변경시서 일종의 과도적인 단계에 있었다는 설이 있다.
넷째, 야랑국은 얼마나 오래 존속하였는가?
야랑국이 존재한 시간에 대하여도 학계에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야랑국이 멸망한 사건은 사서에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다. 이에 따라 보편적인 견해는 야랑국이 300년가량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랑국이 언제 건국되었는지, 상한은 언제인지에 대하여는 전혀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 않다. 야랑국에 대한 남아있는 기록이 워낙 부실하다보니, 이점에 대하여도 의견이 여러가지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부소장인 백운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네가지 수수께끼는 실제로 모든 야랑국에 대한 수수께끼가 모여져 있다. 역사연구는 단지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뿐이고, 절대 복원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매력이다."
▶️ 夜(밤 야, 고을 이름 액)는 ❶형성문자로 亱(야, 액)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저녁 석(夕; 저녁)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亦(역, 야)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亦(역, 야)는 사람 몸의 양 겨드랑, 夜(야)는 하루를 사람의 몸에 비겨 그 옆구리에 달을 그린 모양으로 새벽녘을 이른다. 夕(석)은 月(월; 달)과 같다. 나중에 해질녘에서 새벽까지의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는데 낮에 대하여 밤은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❷회의문자로 夜자는 ‘밤’이나 ‘저녁 무렵’, ‘한밤중’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夜자는 夕(저녁 석)자와 亦(또 역)자와 결합한 모습이다. 亦자는 사람의 겨드랑이에 점을 찍어놓은 모습을 그린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夜자는 이렇게 겨드랑이를 가리키고 있는 亦자에 夕자를 더한 것으로 깜깜한 ‘어두움’을 뜻하고 있다. 금문에 나온 夜자를 보면 사람의 겨드랑이에 夕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두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夜(야, 액)는 성(姓)의 하나로 ①밤 ②저녁 무렵, 새벽녘 ③한밤중, 깊은 밤 ④침실 ⑤어두워지다 ⑥쉬다, 휴식하다 그리고 ⓐ고을의 이름(액) ⓑ진액, 즙(액)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밤 소(宵),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낮 주(晝)이다. 용례로는 밤중을 야반(夜半), 밤 사이를 야간(夜間), 밤중을 야중(夜中), 야광주 따위가 밤 또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내는 빛을 야광(夜光), 밤중을 야분(夜分), 밤에 내리는 비를 야우(夜雨), 밤의 경치를 야경(夜景), 밤에 하는 싸움을 야전(夜戰), 밤에 곡함을 야곡(夜哭), 밤에 하는 일을 야근(夜勤), 낮과 밤을 주야(晝夜), 깊은 밤을 심야(深夜), 어떤 일을 하느라고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것을 철야(徹夜), 한밤중을 반야(半夜), 깊은 밤을 중야(中夜), 가을 밤을 추야(秋夜), 새벽녘을 잔야(殘夜), 이슥한 밤을 모야(暮夜), 어젯밤을 전야(前夜), 한밤중에 몰래 도망함을 야반도주(夜半逃走), 수놓은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으로 공명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야행피수(夜行被繡), 밤에 시작하여 낮까지 계속함의 뜻으로 어떤 일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한다는 야이계주(夜以繼晝), 밤에 세상을 밝혀 주는 밝은 달을 야광명월(夜光明月), 밤에 대문을 닫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태평하여 인심이 순박하다는 야불폐문(夜不閉門) 등에 쓰인다.
▶️ 郞(사내 랑/낭)은 ❶형성문자로 郎(랑)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良(량, 랑)으로 이루어졌다. 본디 魯(로)로 나라의 지명, 사나이의 뜻으로 쓰인 것은 良(랑)의 음(音)이 같기 때문이다. ❷형성문자로 郞자는 '사내'나 '남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郞자는 良(어질 량)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良자는 황제가 거주하던 궁궐의 복도를 그린 것으로 '좋다'나 '어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좋다'나 '어질다'는 뜻을 가진 良자에 邑자가 결합한 郞자는 '좋은 고을'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전에는 郞자가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한 지명이나 황제의 시종들이 머물던 궁을 뜻했었다. 다만 한위(韓魏) 시기부터는 郞자가 '사내'나 '남편'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젊은 남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郞(랑/낭)은 ①사내 ②남편(男便) ③낭군(郎君) ④아들 ⑤주인(主人) ⑥행랑(行廊: 대문 옆방) ⑦벼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내 남(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女), 아가씨 뉴(妞), 예쁜 여자 년(姩), 예쁠 왜(娃), 여자 낭(娘), 예쁜 여자 오(娪), 여자 원(媛), 아리따울 교(嬌), 여자 애(嬡), 아가씨 양(孃)이다. 용례로는 짐승을 잡는 데 쓰는 큰 그물을 낭고(郞罟), 혼인 때 신랑이 가지는 붉은 부채를 낭선(郞扇), 남의 집의 총각을 낭자(郞子), 신랑감을 낭재(郞材), 왕자를 높이어 이르는 말을 낭군(郞君), 갓 결혼한 남자를 신랑(新郞), 남의 사위를 높이어 일컫는 말을 서랑(壻郞), 사위를 달리 이르는 말을 탄랑(坦郞), 재질이 있는 훌륭한 신랑이나 얌전한 총각을 가랑(佳郞), 여인이 남편이나 애인을 친근하게 일컫는 애칭을 아랑(阿郞), 너르고 환함이나 밝고 명랑함을 통랑(通郞), 사내 같은 기질과 재주가 있는 여자를 여랑(女郞), 여자가 남편 외에 정을 둔 사내를 정랑(情郞), 남의 아들의 경칭을 영랑(令郞), 언니의 남편을 형랑(兄郞), 풍치가 있고 멋들어진 젊은 남자를 일컫는 말을 풍류랑(風流郞), 혼인 때 신랑이 색시집에 타고 가는 말을 일컫는 말을 낭기마(郞騎馬),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노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야유랑(冶遊郞),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백면랑(白面郞), 아름답고 얌전한 신랑이나 젊은이를 일컫는 말을 옥인가랑(玉人佳郞), 강랑의 재주가 다했다는 말로 학문이 두각을 나타낸 후 퇴보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강랑재진(江郞才盡), 음악을 잘못 연주하면 주랑이 곧 알아차리고 돌아본다는 뜻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고곡주랑(顧曲周郞),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면서랑(白面書郞) 등에 쓰인다.
▶️ 自(스스로 자)는 ❶상형문자로 사람의 코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사람은 코를 가리켜 자기를 나타내므로 스스로란 뜻으로 삼고 또 혼자서 ~로 부터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나중에 코의 뜻에는 鼻(비)란 글자가 생겼다. ❷상형문자로 自자는 ‘스스로’나 ‘몸소’, ‘자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自자는 사람의 코를 정면에서 그린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코와 콧구멍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自자의 본래 의미는 ‘코’였다. 코는 사람 얼굴의 중심이자 자신을 가리키는 위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을 가리킬 때는 손가락이 얼굴을 향하게끔 한다. 이러한 의미가 확대되면서 自자는 점차 ‘자기’나 ‘스스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自자가 이렇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畀(줄 비)자를 더한 鼻(코 비)자가 ‘코’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自(자)는 어떤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부터, ~에서(~서)와 같은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 시간이나 공간에 관한 낱말 앞에 쓰임의 뜻으로 ①스스로, 몸소, 자기(自己) ②저절로, 자연히 ③~서 부터 ④써 ⑤진실로 ⑥본연(本然) ⑦처음, 시초(始初) ⑧출처(出處) ⑨코(비鼻의 고자古字) ⑩말미암다, ~부터 하다 ⑪좇다, 따르다 ⑫인하다(어떤 사실로 말미암다) ⑬사용하다, 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몸 신(身),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를 타(他)이다. 용례로는 제 몸을 자신(自身),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함을 자유(自由), 제 몸 또는 그 자신을 자체(自體),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을 자연(自然), 제 몸이나 제 자신을 자기(自己),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서 죽음을 자살(自殺), 스스로 자기의 감정과 욕심을 억누름을 자제(自制), 스스로 그러한 결과가 오게 함을 자초(自招), 스스로 움직임을 자동(自動), 제 스스로 배워서 익힘을 자습(自習),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다스림을 자치(自治),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함을 자립(自立), 자기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신함을 자신(自信),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몸이나 마음을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자존심(自尊心), 어떤 일에 대하여 뜻한 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굳센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신감(自信感), 스스로 나서서 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자발적(自發的), 자기의 언행이 전후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가당착(自家撞着), 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버린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되는 대로 취한다는 말을 자포자기(自暴自棄),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한다는 말을 자강불식(自强不息),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자랑함을 이르는 말을 자화자찬(自畫自讚), 자기가 일을 해놓고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격지심(自激之心),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 곧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자기의 줄로 자기를 묶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망치게 한다는 말이다. 즉 자기의 언행으로 인하여 자신이 꼼짝 못하게 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승자박(自繩自縛), 잘못을 뉘우쳐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자원자애(自怨自艾),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동안 또는 그 사실을 일컫는 말을 자초지종(自初至終),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으로 대화함을 이르는 말을 자문자답(自問自答), 제 뜻이 항상 옳은 줄로만 믿는 버릇이라는 뜻으로 편벽된 소견을 고집하는 버릇을 이르는 말을 자시지벽(自是之癖) 등에 쓰인다.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❶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大자는 ‘크다’나 ‘높다’, ‘많다’, ‘심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大자를 보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크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大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의미에서 ‘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러니 大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大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크다’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大자가 본래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거의 같고 조금 다르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대실소망(大失所望), 큰 글자로 뚜렷이 드러나게 쓰다라는 대자특서(大字特書), 매우 밝은 세상이라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