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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
강릉경포대 江陵鏡浦臺
강원도 강릉시 저동(苧洞)의 경포호수 북쪽 강기슭에 있는 누각.
‘경포대(鏡浦臺)’라는 것은 ‘여름밤의 밝은 달과 담소의 맑은 물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거울 경(鏡)자와 물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물가 포(浦),
그리고 누각 혹은 정자임을 나타내는 대(臺)자가 이루어진 것이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와 밝은 달빛, 그리고 주변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함축적인 한자어로 표현하였다.
[건립경위]
강릉 경포대는 1326년(충숙왕 13)에 강원도의 관리였던 존무사(存撫使) 박숙정(朴淑貞)이
신라 4선(四仙)이 놀던 인월사 옛터[현재 방해정(放海亭) 뒷산]에 세웠다고 한다.
강릉시 경포로 365[저동 94번지] 위치하며 경포호수로 향하는 도로 좌측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다.
1508년(중종 3) 강릉부사(江陵府使)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옮겨 지은 후,
여러 차례의 중수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 정면의 계단은 근년에 새로 조성하였다.
[현황]
강릉 경포대는 1971년 12월 16일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 12월 30일에는 경포호와 함께 명승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경포 호수 나루터
경포호
경포호 鏡浦湖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65 일원에 있는 천연 호수[석호].
예로부터 경포호에는 다섯 개의 달(월 5)이 뜬다고 하였는데,
월 5는 하늘에 떠 있는 달, 바다에 비친 달, 호수에 비친 달, 기울이는 술잔에 비친 달,
마주 보고 앉은 님의 눈동자에 비친 달을 말하고,
또 죽도봉에서는 3개의 달(월 3)이 보인다고 하는데,
월 3은 월탑(바닷물이 찰랑일 때 물결 따라 달빛이 비쳐 마치 탑처럼 보인다는 의미)·
월파(바닷물이 찰랑일 때 물결 따라 달빛이 비치는 모습이 파도와 같다는 의미)·
월주(바닷물 속에 길게 늘어진 달기둥의 모습)를 말한다.
『택리지』 산수승지에는, ‘경포대는 작은 산기슭 하나가 동쪽을 향해 우뚝한데 축대는 그 산 위에 있다.
앞에 있는 경포호는 주위가 이십 리이며, 물 깊이는 사람의 배꼽에 닿을 정도여서 작은 배는 다닐 수 있다.
동편에 강문교(江門橋)가 있고, 다리 너머에는 흰모래 둑이 겹겹이 막혀 있다.
경포호는 바다와 통했고, 둑 너머에는 푸른 바다가 하늘에 연한 듯하다.’고 했다.
『증보문헌비고』 전지 23 여지고 산천에는, ‘경포호는 물이 거울처럼 깨끗하고,
깊지도 얕지도 않고 사방이 하나같아 겨우 어깨까지 찬다. 서쪽에 경포대가 있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북동쪽 15 리에 있다. 포의 둘레가 20 리고, 물이 깨끗하여 거울 같다.
깊지도 얕지도 않아, 겨우 사람의 어깨가 잠길만하며 사방과 복판이 같다.
서쪽 언덕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위에는 누대가 있으며 누대 가에 선약을 만들던 절구가 있다.
포 동쪽 입구에 판교가 있는데 강문교라 한다. 다리 밖은 죽도이며 섬 북쪽에는 5리나 되며 백사장이 있다.
백사장 밖은 창해만리인데 해돋이를 바라볼 수 있어 가장 기이한 경치다.
또 경호(鏡湖)라 하기도 하며 정자가 있다.
일찍이 우리 태조와 세조께서 순행하다가 여기에 어가(御駕)를 멈추었다.’고 했다.
조선조 선조 때 강원관찰사로 부임한 송강 정철이 관동지역을 순회하고 쓴 가사체 문학인 〈관동별곡〉에는
‘우개지륜(羽蓋芝輪)이 경포로 내려가니, 십리빙환(十里氷紈)을 다리고 고쳐 다려,
장송 울한 속에 싫도록 펼치시니, 물결도 자도 잘사 모래를 헤리로다,
고주해람(孤舟解纜)하여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은 곁에 대양이 거기로다.
조용하다 이 기상 원활하다 저 경계, 이도곤 갖춘데 또 어디 잇단말가 홍장고사(紅粧古事)를 헌사타 하리로다,
강릉대도호부 풍속이 좋을시고 절효정문(節孝旌門)이 골골이 버리시니, 비옥가봉(比屋可封)이 이제도 있다 한다.’라고 하였다.
[명칭유래]
경포호는 물이 거울같이 맑은 호수여서 생긴 이름이다. 호는 수심이 깊지 않아 사람이 빠져도 상하지 않는,
마치 선비와 같은 덕을 가진 호수 같다고 해서 군자호, 어진개라고도 한다.
[현황]
경포호는 경포대와 함께 2013년 12월 30일 명승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경포호에는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장자못 전설,
고려 말 강원감사인 박신과 강릉 기생 홍장과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홍장암 전설이 있다.
또 호수 안에 있는 새바위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鳥岩)’이란 바위가 있고,
호 주위에는 경포대를 비롯한 활래정·해운정·금란정·방해정·호해정·상영정·창랑정·
경호정·석란정·취영정·월파정(경포호 안에 있는 정자), 환선정 등이 있다.
경포호 주위에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경치가 아름다워
경포 8경[강문어화(江門漁火)·죽도명월(竹島明月)·홍장야우(紅粧夜雨)·증봉낙조(甑峰落照)·
환선취적(喚仙吹笛)·녹두일출(綠荳日出)·한송모종(寒松暮鐘)·초당취연(草堂炊烟)]이 있고,
경포호에는 겨울철에는 청둥오리·고니·흰 죽지오리·새 오리 등이 날아오고,
부새우가 자라고 있으며 그밖에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경포습지 조성으로 가시연꽃 등 다양한 희귀 식물과 동물들을 볼 수 있다.
그늘에서 쉬고 있는 구름님과 칭런님
점심 식사 후... 3.1 광장 앞에서 바우님들을 기다리는 구간지기 테라님....(13:12)
후미에서 수고한 구간지기 연초록님. 사무국 실땅님.
햇살이 뜨거운 경포 호수길을 걸어간다.
미수기님과 키키 님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절은 지나고... 시들어 가고 있는 연꽃...
조용한 바우님들
아름다운 령관이 아빠, 엄마
홍길동과 그의 동생 문짱돌...
(문짱돌 혼자서 중얼거린다...'우리 형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불쌍하고 억울한 형이었다')
길동이 보다 국장님 포즈가 더 리얼하다...(현대판 이길동이라고 아시는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국장님 어릴 적 모습...
국장님 어릴 적 첫사랑 그 소녀...
뜨거운 햇살 아래... 경포 호수를 돌아 강문으로 발 길을 옮긴다...(13:55)
강문 솟대 다리
강문 해변에 있는 강문 솟대다리는 이 다리를 기점으로 강문 해변과 경포 해변으로 나누어진다.
솟대는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볍씨를 주머니를 넣어 장대를 높이 달아맨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도 하고 민간신앙의 상징물로 장대 끝에 새를 나무로 깎아서 달기도 했던 장대를 말한다.
강릉에서는 이 솟대를 옛날에는 진또배기라고 불렀다.
강문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 4월 보름, 8월 보름 세 번에 걸쳐 서낭제를 모신다고 한다.
진또배기는 서낭신을 보필하고 삼재(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 마을의 안녕과 풍어, 풍년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강문해변
강문동 江門洞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법정동.
‘강문’은 ‘강이 흐르는 입구 또는 강릉의 문’ 이란 뜻인데,
옛날 강릉 시내로 관류하던 물줄기가 공제(홍제동), 경방을 지나 옥거리(옥천동)에서
궁개(포남동), 보남이,
강문으로 흘러 경포호 하구 죽도봉 앞에서 바다로 빠졌다.
그래서 ‘강문’은 강릉 시가지로 흐르는 물줄기 끝,
또는 바다에서 강릉 시가지로 들어오는 물줄기와 맞닿는 곳이란 뜻이다.
[변천]
강문동은 고대에는 예(濊)의 속국으로 있었으며,
기원전 127년에 창해군으로 편입되었고, 한무제(漢武帝) 때에는 임둔의 땅이었다.
기원전 30년에 동예의 땅으로 계승되어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 하슬라로, 신라 하서소경의 땅으로,
고구려 동원경의 속현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시대에는 진관부에 속해 있었다.
강문은 초당과 역사를 같이 하고 있는데, 강문리는 원래 남일리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군내면, 1916년 강릉면, 1931년 강릉읍에 편입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경포면, 성덕면과 병합하여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행정동인 초당동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강문교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강릉의 7개면(왕산면·성산면·구정면·사천면·덕 방면·성남면·정동면)에서 흘러온다.
강문 한가운데는 마을의 수재, 풍재, 화재 즉 삼재를 막아주는 진또배기가 우뚝 서 있고, 포구가 있다.
이곳 포구에서 여름에 바다에 나가 불을 켜 놓고 고기 잡는 모습이 아름다워 경포팔경의 하나인 강문 어화라 했다.
강문 진또배기가 있는 곳에서 강문교를 건너 북쪽에는 죽도봉이 경포호와 바다 사이를 가로막고 서있다.
또한 최근 강문항의 솟대다리가 명소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현황]
강문동은 강릉시의 경포동과 초당동에 각각 있는 법정동으로서, 총면적은 1.21㎢이다.
강문동의 동쪽 기슭에는 여서낭당이 있고, 내 건너에는 남서낭당이 있다.
여서낭당에서는 3년에 한 번씩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안위와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올린다.
강문동의 주요 문화재 및 관광지로는 1892년(고종 29)에 취영계 계원들에 의해 건립된
취영정·창랑정·석란정·죽도봉·강문동 서낭당·강문 진또배기·철기 시대 유적·
신라 시대 주거지 유적·강문동 신라 토성 터 등이 있다.
최근 솟대다리와 씨마크호텔이 새롭게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으며, 해변에는 강문항과 회맛집촌이 즐비하다.
강문에서 안목 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 초입에서 바우님들을 기다리면서 잠시 쉬어 간다...(14:16)
바다 호수길의 자랑.... 송정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면서..
송정동 松亭洞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송정동·견소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북쪽은 초당동, 서쪽은 포남동, 남쪽은 성덕동,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있으며,
법정동인 송정동과 견소동을 관할하고 있는 행정동이다.
[명칭 유래]
고려 말 충숙왕의 부마 최문한(崔文漢)과 부인 숭명 공주가 송도에서 강릉으로 올 때,
여덟 그루의 소나무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 심어 푸른 숲을 이뤘다 하여 팔송정(八松亭)이라 하였다가,
후에 ‘팔’ 자를 없애고 송정이라고 했다.
[변천]
송정동은 강릉군 21개 면 중 남일리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북일리면, 북이리면, 남일리면의 3개 면을 병합하여 군내면으로 개편하였다.
1916년 군내면은 강릉면으로 개칭되었고, 남일리면은 하남면으로 개칭되었다.
1920년 11월 1일에는 하남면의 반분된 일부가 정동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 4월 1일 부령 제221호로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이 법률 제369호에 의하여
강릉시로 승격되었고 동시에 강릉군을 명주 군으로 개칭하여 분리하였다.
1988년 1월 25일과 1989년 1월 1일에 각각 송정동 일부가 포남동에 편입되었다.
1997년 2월 1일에는 송정동 일부가 포남동에, 견소동 일부가 병산동에 각각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송림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잘 조화된 지역으로 강릉시의 동부 지역에 있다.
북·서·남쪽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남쪽에는 남대천이 흐르고 있다.
동쪽에는 해안을 따라 모래톱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져 있어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송정은 남대천 하구 북쪽에 넓은 들을 끼고 있는 마을로 크게 앞말과 넘말로 나뉜다.
마을 형국이 연꽃 형국 또는 거미 형국이라고 한다.
행정동인 송정동은 법정동인 송정동, 견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정동주민센터는 강릉시 경강로 2451에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송정 해수욕장, 안목 해수욕장 등이 있다.
교육시설로는 동명초등학교와 특수학교인 강릉오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주요 간선 도로는 동해 변을 따라 경포 도립 공원을 일주하는 관광 도로와 2차선 지방 도로가 있다.
송정 해변... 쉴 만한 그늘이 많아서인지 경포 해변 보다 피서객들이 많았다.
송정해변 松亭海邊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해변.
길이 700m, 면적 2만8천여㎡의 백사장과 주변의 송림이 유명한 해변이며,
이들 소나무로 인해 임진왜란 때에 강릉이 왜군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고려 충숙왕의 부마 최문한(崔文漢)이 송도에서 강릉으로 올 때, 소나무 8그루를 가져와 이곳에 심고 팔송정이라 하였다.
그 후 마을 이름이 송정으로 바뀌었고, 송정 해변은 마을 이름을 따른 것이다.
[위치와 교통]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산 1-4에 위치하고 있다.
승용차로 강릉시내에서 강릉대로나 경강로를 이용하여 송정마을을 지나면 바로 송정 해변으로 이어진다.
거리는 10㎞이며 약 15분정도가 소요된다.
[현황]
송정해변은 길이가 700m, 백사장 면적이 2만8천여㎡이다.
해변입구 바로 옆 우거진 소나무 숲에 아주 잘 형성된 산책로(딴봉마을산책로)가 있어
피서객들이 해변과 숲속 산책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
송정해변 바로 옆에 인접하여 있는 안목해변과 강릉항 일대는
커피거리로 조성되어 있어 연중 수시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안목에 도착하자... 바다호수길을 함께 한 바우님들이 기다리면서..
뒤에서 함께 걸어온 울트라 참석자들과 완주를 축하해 주었다...(15:26)
안목 초입에서 울트라 6구간을 마무리하면서 울트라 참가자 단체 인증 샷
안목에서 버스를 타고 사무국으로 이동한다....(15:32)
안목 安木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있는 어촌 마을.
안목마을은 원래 견조(見潮)라고 했다. 그런데 안목마을 앞의 견조봉(堅造峰)에 올라가
남대천에서 흘러온 물이 바다로 빠지는 것을 보면 물살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견소(見召)가 되었다.
『대동여지도』에는 ‘견조’로 표시되어 있다.
견조봉은 원래 육지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해류의 작용에 의해 육지와 섬 사이가 모래로 연결되었다. 이것을 '육계도(陸繫島)'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견조봉에 봉수대가 있었는데 소동산 봉수로 불렸다.
이 마을은 앞목 또는 안목(安木)이라 부르는데 이는 견소동 마을 전체의 지명이기도 하다.
물 건너 남쪽의 남항진과 한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남대천이 가로질러 다른 마을이 되었다.
‘앞목’이란 ‘남항진에서 젠주와 송정으로 가는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란 뜻이다.
또한 마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서 왼쪽에 새로 생긴 마을인 새말이 있다.
안목항은 1991년 1월 1일부로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그 결과 관리청은 해양수산부장관으로 귀속되고 위치는 강릉시 견소동에 있다.
강릉항은 1991년 기본시설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면서 개발에 착수한 후 1995년 수차례에 걸쳐 모형실험을 실시하였다.
항만 시설로는 강릉항을 중심으로 북동쪽을 향해 나온 방파제와 남쪽을 막은 방파제로 구분된다.
그리고 남대천 하구로부터 직접 유입되는 모래 공급을 차단하기 위하여 방사제가 조성되어 있다.
강릉항은 ‘안목항’으로 불리다가 농림수산식품부 제2008-21호(2008.5.29)에 의하여 ‘강릉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무국 도착...(15:55)
울트라 100km를 무사히 마무리하면서 국장님 인사말..
울트라 최연소 완주를 한 령관이 학생 (중2)
처음에 이 사람... 울트라에 도전한다기에... 긴가민가 하였다... 근데, 멋지게 마무리를 하였다
완주 소감을 말하면서 눈물을 비친 키키 님...
처음부터 끝까지 No2의 자리를 고수하면서 끈기로 완주한 새치미님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완주한 령관이네....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이 강했던 주디 님....(사진이 어둡게 나와 너무 죄송...)
한동안 주말에 혼수상태(?)에 빠진 이상한 사람들과
함께 웃기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그렇게 걷다 보니 그들과 동지애가 생겼다
하여, 나는 그들을 동지라 불렀다.
어제 자축 회식을 하면서 주니정님이 내게 말했다
"아 그동안 주말에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는데...당분간 주말에 무얼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
어린양들을 혼수상태 사탄의 길로 인도하시느라 수고해 주신 교주님.
어린양들을 위해 적재적소에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준 탐사대장님.
어린양들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 여러모로 협조해 준 사무국.
그리고, '우리는 하나'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배려하면서
함께 고생하면서 웃고 즐기며 걸었던 울트라 동지님들.
당신들과 함께 여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당신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바우길을 사랑하면서 바우님들과 좋은 인연 만들면서 아름다운 발걸음 계속 이어가시길 ...
비둘기만 날아가다 / 국립극장
컨템퍼러리 현대 무용단 / 이화여대
연출, 무대 디자인 / 강세윤
연극이 끝난 후 (1980) -샤프(Sharp)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무대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있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힘찬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책망만이 흐르고있죠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영화 친구 OST 레인보우 연극이 끝난 후
첫댓글 울트라바우길 완주를 마치신
걷자님, 령관네 3가족(령관,보리님,보리사랑님) 키키님, 새치미님, 주디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저는 아직 1, 3구간이 남아있는데,
이 무더운 여름에 숙제를 하려니 겁이 나긴 하네요 ㅋㅋ
여러분들과 함께 한 울트라바우길은 정말 재밌었습니다.
짧으면 짧고..길면 길다고 할 수 있던 함께 한 울트라 길..
제법 오랜 시간 장거리 산행을 하고 나면 항상 느끼게 되는 감정이지만
누군가 와 함께 고생하면서 걷는 길은 더더욱 애틋한 감정이 싹 틀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지라고 부르곤 하지요
구름님과 함께 한 구간 구간 산행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갑니다.
특히, 2 구간...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구름님이 대단했었습니다.
1.3 구간은 여름이 지나고 여유 있을 때 천천히 도전해 보시길....유종의 미...ㅎ
함께 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
구름님도 꼭 완주하시리라 믿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길고 뜨거운 여름~
울트라바우길 완주는 예전에 마치셨지만
함께 동참하시며 추억을 남겨 주신 걷자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저번에 다치셨던 다리가 다시 재발되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찡~했었답니다..
불편한 다리로 마지막 구간까지 애써주신 걷자님
댓글로 느꼈던 걷자님의 애환은 이제 모두 날려 보내시고 자자손손 볻 받는 일만 가득하세요~
울바6구간에 포함된 바다호숫길~
함께 하시며 아름다운 사진들 남겨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완전 회복되도록 치료 잘 받으세요~^^
오랜 시간...춥고 무더운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산에 오르곤 했었는데..
이번 여름은 산행 하면서 더위 보다는 너무 습하다 보니 걷기가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육신은 시간이 약인 것 같고...정신은 스스로의 마음이 약인 것 같습니다.
댓글을 보니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고운 마음에 감동이 밀려 옵니다.
이리 보면 테라님은 악으로 깡으로 참 열심히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더운 날에 대단히 수고 하셨고 고마움을 전 합니다.
함께 고생하며 쌓인 동지애가 어떤 것인지도 저도 잘 알지요~^^
무더운 여름
함께 울트라바우길에 발걸음을 남긴 완주자 여러분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그 모든 여정에 함께 하신 걷자님
너무 애쓰셨습니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
항상 애정 어린 댓글.....
이 글을 보는 동지들 입가에 미소가 흠뻑 일 것 같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함께 하신 울트라 바우님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댓글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아직 완주하지 못하신 분들에게는
꼭 완주할 수 있도록 제가 응원해드리겠습니다. 파이팅~~~
그동안의 소중한 기록들을 잘 담아주신 걷자님께도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
령관 아빠....
이제 령관이를 자주 볼 수 없다는 게 섭섭할 따름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격려 하면서 걷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다음에 령관이네를 꼬셔서 설악산으로 함 올라야겠습니다.
함께 여서 참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걷자님, 울트라바우길 기록도 남겨주시고, 어마어마한 정보도 알려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꾸뻑.
함께 여서 즐겁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될 때 못 다한 숙제 산행 함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