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폐암으로 사망한 배우 율 브린너는 깨끗이 면도된 대머리와 이국적인 용모로 유명한 대배우였습니다. 1920년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난 브린너는 생전에 자신의 프로필에 관한 한 자세한 언급을 피했었지만 1989년 그의 아들이 출간한 자서전에 의해 비로소 모든 과거가 알려졌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중국, 파리 등 세계 곳곳을 떠돌아 다닌 탓에 정상적인 학업을 하지 못한 브린너는 자퇴 후 러시아인 집시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이트 클럽에서 공연을 하곤 했습니다.
서커스 공중 그네 곡예사 등 각종 직업을 떠돌던 중 미국에 여행을 간 것이 계기가 되어 뉴욕에 눌러 앉아 브로드웨이 무대, TV 시리즈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브린너는 브로드웨이에서 알게 된 배우 메리 마틴의 추천으로 해머슈타인의 뮤지컬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에게 일생일대의 부와 영광을 안겨 준 이 작품이 바로 <왕과 나: The King and I>(1956)였습니다.
* <십계>에서
서양인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지는 태국의 황제를 연기한 브린너는 곧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영화화된 동명의 작품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후 <십계>(1956),<대장 부리바>(1962),<나레르바 전투>(1969) 등에서 특유한 매력을 선보인 율 브리너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에서부터 서부 총잡이까지 섭렵하였고, 사망할 때까지 대머리와 특이한 발음을 고수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왕과 나>의 세계 순회공연에 열중하였고, 폐암으로 쇠약해져 가는 중에도 금연 캠페인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 <왕과 나>에서
[ 아들이 말하는 율 브린너 ]
"아버지는 극동 러시아, 한국 등 그가 나고 자란 극동지방에 많은 향수를 느끼셨습니다."
깨끗이 면도 된 대머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 이국적인 용모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배우 율 브리너(1920∼1985년)의 아들 록 브리너(현재 뉴욕주 마리스트 컬리지대교수)는 그의 자서전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 록 브린너
율 브리너는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7살까지 살다 중국 하얼빈으로 이사를 했고 당시 일제 치하에 있던 조선 땅에서 벌목업과 숙박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매년 여름 북한 함경도 지방에서 보내곤 했다고 록 브리너는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증조부가 체포되고 재산을 압수당하는 바람에 당시 7살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중국 하얼빈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며 "그 후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벌목업을 하는 등 사업을 하는 관계로 아버지는 어린 시절 매년 여름을 한국에서 보내 '서머 코리안 보이'라고 불렸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율 브린너
그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토크 최대 부자 가운데 한명인 자신의 증조부(쥴 브린너)가 혁명군에 의해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투옥돼 사망했다"며 "이 때문에 아버지(율 브린너)는 1927년 할아버지(보리스 브리너)와 함께 중국 하얼빈으로 이주해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율 브린너의 아버지 보리스 브린너는 러시아에서 간신히 몸만 피해왔지만 자신의 아버지(쥴 브린너)가 확보한 한국의 벌채권으로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록 브리너는 "할아버지가 두만강 건너 'Novina'(한국명은 잘 모름)라는 곳에서 산림을 벌채하고 호텔(Russian Hunting hotel)도 운영했다"며 "이 때문에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있는 한국에서 매년 여름을 보내 '서머 코리안 보이'라고 불렸다"라고 소개합니다.
* <왕과 나>에서
그러나 율 브린너의 아버지 사업은 그리 잘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왜냐하면, 하얼빈에 살던 율 브린너가 정상적인 학업을 하지 못하고 프랑스 등지로 떠돌다 13세 때부터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 후 서커스 곡예사로 활동하던 중 사고를 당해 곡예사 활동도 중단했으니 말이죠. 아마 예술적인 끼가 다분했거나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일찍 가출했기 때문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그는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연기 공부를 하고 배우의 길로 접어들어 브로드웨이와 TV 시리즈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고 1951년 뮤지컬 <왕과 나>에서 토니상, 1956년 영화 <왕과 나>에서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최정상급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또 영화 <왕과 나>에서 왕의 역을 하기 위해 삭발한 머리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 <대장 부리바>에서
그의 주요 작품은 <왕과 나>,<십계>,<아나스타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솔로몬과 시바 여왕>,<황야의 7인>,<대장 부리바>,<아디오스, 사바타>,<건 파이터의 초대> 등이 있습니다.
율 브리너는 폐암으로 투병하며 TV에 나와 이런 광고를 하곤 했습니다.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담배만은 제발 피우지 마세요. 여러분이 지금 이 광고를 보고 있을 때 저는 이미 폐암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는 1985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 블라디보스톡의 율 브린너 생가
한편 율 브리너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생가는 지금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남아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 주변 아울렛스카야 16번지에 있는 율 브리너의 생가는 이 항구를 개발했던 주역 중의 한명인 율 브리너의 스위스계 러시아인 할아버지가 1910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직접 수송해온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은 지상 3층 규모의 대저택으로 지금은 '페스코'라는 선박회사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대표작 소개 ]
[ 황야의 7인 ]
일본의 거장 아키라 구로사와의 칼부림 영화 <7인의 사무라이>의 리메이크인 <황야의 7인>은 산적들에게 시달리는 멕시코 깡촌 농민들을 위해 껌값 정도 밖에 안 되는 돈을 받고 70여명은 됨직한 산적들과 대결하는 총알이 콩 튀듯 하는 7인의 건맨들의 액션영화입니다.
감독은 <O.K. 목장의 결투>와 <건힐의 마지막 열차> 등 웨스턴의 거장 존 스터지스로, 영화의 재미의 정수는 각기 개성이 뚜렷한 앙상블 캐스트의 남성적인 매력과 연기에 있습니다.
율 브린너, 스티브 매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로버트 본, 브래드 덱스터 및 독일의 젊은 배우 호르스트 부크홀츠 등이 7인의 건맨이고 성격파 배우 엘라이 월랙이 금이빨을 한 간악한 산적 두목 칼베로로 나오죠.
구로사와는 이 영화의 원작인 <7인의 사무라이>를 자신의 ‘일본판 웨스턴’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그와 웨스턴 명장인 스터지스는 서로 번갈아 가며 영향을 주고받은 셈입니다. 구로사와는 <황야의 7인>을 보고 좋아해 만족의 뜻으로 스터지스에게 일본도를 선사했다고 합니다.
스터지스는 그의 다른 영화 <대탈주(역시 스티브 매퀸 주연)>에서처럼 나무랄 데 없는 앙상블 캐스트를 모아 그들 각자 자신의 페이스대로 연기토록 해 기막힌 남성적인 연기를 끌어냈습니다.
이 영화에서 또 다른 멋있는 것은 엘머 번스틴의 음악입니다. 7인의 건맨이 대형 화면을 가로 지르면서 말을 달리는 오프닝 크레디트 장면을 타고 흘러나오는 속도감 있고 강건하고 의기양양한 음악이 없었더라면 영화의 박진감이 훨씬 감소되었을 것입니다.
* 스타 등용문이 되었던 영화 <황야의 7인>
<황야의 7인>은 대 배우인 율 브리너를 제외하고는 모두 촉망받는 기대주들이 우루루 출동한 영화였습니다.
7인의 면모를 살펴보면 율 브리너를 위시하여 후에 60년대 최고의 인기 스타로 부상하는 스티브 맥퀸, 70년대를 대표할 액션흥행스타가 되는 찰스 브론슨, 60-70년대 개성있는 악역으로 이름을 날린 제임스 코반, 독일 출신의 인기배우 홀스트 부크홀츠, <0011 나폴레옹 솔로시리즈>로 유명해지는 로버트 본이 그들이죠. .브래드 덱스터를 제외한 6인 모두가 후에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특별히 두드러질게 없는 영화지만 무엇보다 7인 7색의 개성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가 있는 명작 서부극이었죠. 각각의 인물들이 율 브리너에게 포섭될 때 보여주는 멋진 개성들 속에서 서로 돋보이려고 애쓰는 치열한 경쟁심도 보이고...
영화 첫 부분에서 브린너와 매퀸 등 7인이 소개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으로 남성미 물씬 풍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서부 사나이들의 쓴맛 다시는 듯한 표정이 일품입니다.
모두 다 말수가 적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과묵한 사람이 칼 잘 쓰는 브릿 역의 제임스 코번. 그는 영화 내내 달랑 20여단어만 말하지만 팬들에게 짙은 잔영을 남긴 연기를 합니다.
특히 거칠고 강한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찰스 브론슨과 제임스 코반의 모습은 기존 50년대까지의 잘 생기고 근사한 주인공들과는 다른 투박하고 야만적인 매력을 보여줍니다. 스티브 맥퀸은 인간적인 면모를 함께 갖춘 총잡이로 등장하여 율 브리너와 좋은 콤비를 보여주었고, 양복을 쫙 빼입고 장갑까지 낀 깔끔신사 로버트 본은 예의 능글능글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원래 스티브 맥퀸이 맡을 뻔도 했던 풋내기 총잡이 역의 홀스트 부크홀츠는 천방지축이지만 겁없이 용감한 신출내기 역을 그럴싸하게 해 냅니다.이러한 개성있는 스타들이 보여주는 모습들도 볼만하지만 무엇보다도 검은 모자에 검은 상하의를 입은 율 브리너의 강인한 매력이 큰 볼거리였습니다.
율 브리너의 이런 검은 서부 복장은 60년대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후에 그가 출연한 다른 서부극들인 <건 파이터의 초대>,<아디오스 사바타>,<돌아온 황야의 7인>,<웨스트 월드>에서도 그대로 표현되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
멕시코의 한 농촌의 빈농들은 1년에도 몇 차례씩 마을에 나타나 식량과 재물을 약탈해 가는 산적 떼를 견디다 못해 미국인 건맨들을 고용키로 결정, 3인의 대표를 미-멕시코 접경마을로 파견합니다.
이어 이들은 7인의 건맨들을 하나씩 고용하는데 보수는 숙식과 푼돈 몇 푼. 그런데도 건맨들은 정의감 때문에 멕시코로 향합니다. 사실 총 쏘는 것이 생활인 이들은 뭐 특별히 다른 할 일도 없죠.
7인은 농민들을 훈련시켜 일단 마을을 습격한 산적들을 퇴치하나 되돌아온 산적들에 의해 붙잡힙니다. 그러나 산적 두목 칼베로는 7인으로부터 총을 회수한 뒤 이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7인의 건맨은 서부 사나이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산적들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고 결국 세 명만이 살아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