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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씨가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 자택 안 작업실에서 컴퓨터로 트위터를 하고 있다. 화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최재봉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 ⑦ 이외수의 감성마을
감성마을 가는 길은 새가 일러 주었다.
포천에서 백운산을 넘은 다음 화천군 사내면 소재지에서 점심을 먹고 북쪽으로 길을 잡아 10여분쯤 달렸을까. 다목초등학교 못 미쳐 나타난 군부대 앞에 자그마한 새 조형물이 있고, 그 새의 부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개울을 따라 올라가자 다리 건너에 건물들이 보였다. 근처에 인가는 없었고, 대여섯 마리 개들이 먼저 방문객을 반겼다.
강의실·전시장 손님맞이 공간 마련
연수생·면담신청자 자유롭게 만나
소통비결은 “세대별 편견 없는 것”
이곳은 작가 이외수의 공간인 감성마을. 야트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아늑한 터에 화랑이나 카페처럼 보이는 시멘트 건물이 낮게 엎드려 있다. 화천군이 마련해 준 이 거처에 작가가 들어온 것은 2006년 1월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하악하악> <청춘불패> <아불류 시불류> 같은 에세이들을 냈다. 방송에 출연하고 모델로 활동하는가 하면 트위터를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하면서 연예인급의 인기를 누리게 된 것 또한 이곳에 와서였다.
그러나 작가를 만나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자신의 표현마따나 주침야활(晝寢夜活)이 몸에 밴 그는 아직 기상 전이라고 했다. 대신 부인이 귤과 차 따위로 손들을 접대했다. 작가와 부인의 연출 사진들이 걸려 있는 거실에서 부인 전영자씨는 감성마을의 깨끗한 환경을 칭찬했다. “백만불짜리 공기는 천식이 있는 이 선생의 건강에 좋고, 햇빛에 비타민이 많아서 과일을 안 먹어도 될 정도”라고 그이는 자랑했다.
방세를 못 내서 쫓겨나는가 하면 문우들과 밤새 술 마시고 떠드는 바람에 집주인에게 밉보여 1년이면 여섯 번까지 이사를 다녀야 했던 결혼 초기의 일화들을 얻어듣는 사이 드디어 주인장이 나타났다. 장소를 스튜디오로 옮겼다. 감성마을 작가의 거처는 거실과 스튜디오, 그리고 가장 안쪽의 작업실로 삼분되어 있다. 거실은 손님을 맞는 구역이고, 스튜디오는 그림 작업을 하는 공간이며, 아이맥 27 컴퓨터가 놓인 맨 안쪽 작업실에서는 글을 쓰고 인터넷을 활용한다.
“20세기까지의 세계를 이성이 주도했다면, 21세기에 중요한 것은 감성입니다. 인간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두뇌를 활용한 이성 중심의 형태가 되겠지만, 우주나 자연과의 교감에는 감성이 필수적이에요. 감성마을에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 역시 엄연한 주민입니다.”
작가의 거처가 삼분되어 있는 것처럼 감성마을 자체도 크게 보아 세 덩어리로 이루어졌다. 작가의 거처와 단체로 찾아온 독자들에게 강연을 하는 한옥 강의실 ‘모월당’(慕月堂), 그리고 지금 공사가 한창인 전시장이 그것이다. 내년 5월쯤 개관 예정인 전시장에는 작가의 친필 원고와 만년필, 그리고 타자기와 전설의 워드프로세서 르모3, 초기 286 컴퓨터 및 지금의 맥까지가 전시되어 그의 집필 도구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그가 글쓰기 다음으로 주력하고 있는 예술 장르인 그림 작품들이 걸리는가 하면, 전시장에 흐를 배경음악 역시 그의 자작곡으로 쓸 예정이다. 이밖에 그가 출연한 각종 방송 영상물과 사진들도 만날 수 있으며, 전시장 중정(中庭)에서는 그와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의 공연도 열릴 예정이란다.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고 있는 것은 감성학교 건립이다.
“마음의 중요성을 깨닫고 향상된 삶을 구가하면서 소외 계층에 따뜻해지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사람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그러자면 건물과 교육과정, 그리고 유능한 교수진을 갖춰야겠지요.”
최근에 낸 에세이 <절대강자>에서도 그는 감성의 중요성을 특유의 경구적 문장에 담았다. 이런 식이다. “앎이 머리에 소장되어 있을 때는 지식이고, 앎이 가슴으로 내려오면 지성입니다. 그리고 지성이 사랑에 의해 발효되면 지혜가 됩니다.” “이 세상에 학교 아닌 공간이 어디 있으며 스승 아닌 사물이 어디 있으랴. 천하는 모두 열려 있으되 사람의 마음만 굳게 닫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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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씨가 감성마을 집 앞에서 문하생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과 함께 환히 웃고 있다. 화천/이정아 기자 |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원고지
악플엔 “사랑합니다, 고객님”
“독자들 덕분에 왕성한 창작”
지난해 펴낸 <하악하악>에 이어 새로 낸 <절대강자>의 글들도 대부분 그가 트위터에 쓴 것들을 간추리고 재배열한 것이다. 여느 작가들이 잡지를 주요 발표 매체로 삼는 것과 달리 이외수에게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원고지요 트위터가 잡지 구실을 한다. 그는 팔로어 110만을 거느린 최강의 트위터리언이다.
“피시통신 시절부터 채팅을 열심히 한 편이었죠. 직접 채팅 방을 개설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도 제 독자를 중심으로 1만여명을 팔로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분들 중에는 만화가 강풀, 가수 호란, 개그맨 김제동,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 정신과 의사 정혜신, 그리고 얼마 전 감성마을을 찾아왔던 울랄라 세션의 임윤택 같은 이들을 맞팔하고 있어요.”
‘소통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에게 소통의 비결, 그리고 트위터의 매력을 물었다.
“우선 세대별 편견이나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에서 소중한 의미와 메시지를 찾는 일에 부지런해야 하죠. 저에게 트위터는 새로운 정보나 시대의 흐름을 앞서서 간파할 수 있는 공간이자 요긴한 메시지를 농축해서 전달하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트위터와 방송 활동 등으로 그는 수많은 대중 독자를 얻었다. 서울에서 부지런히 달려도 두 시간 반은 좋이 걸리는 거리임에도 한 달이면 400명 이상이 감성마을을 찾는다. 게다가 그는 ‘트위터 문학교실’ 연수생 40여명을 한 달에 한 번씩 감성마을에 불러 1박2일 일정으로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기도 하다. 연수생들한테서 돈을 받지는 않는다.
“제 책을 읽어 준 독자들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라 생각해요. 시골의 상 듣보잡 출신인 저 같은 사람이 이 나이까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게 다 조악한 사회 환경과 따뜻한 독자들 덕분 아니겠습니까? 평론가들이 제 문학을 그리 좋게 평가해 주지 않는 건 잘 알지만, 독자들 덕분에 외롭지는 않아요.”
물론 그를 지지하는 독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그가 정치·사회적으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발언을 자주 하면서 그에 대한 악플과 비난의 글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새로 낸 책 <절대강자>에는 그런 험담꾼들을 겨냥한 듯한 글들이 여럿 보인다.
“어떤 이들은 이외수의 책은 돈 주고 사 보기에는 돈이 너무 아깝다고 말합니다. 제기럴. 사랑합니다, 고객님.”
“마음이 비뚤어지면 온 세상이 비뚤어져 보인다. 게다가 푸헐, 자기가 잘난 줄 안다.”
그는 지금 물 위를 걷는 사람 이야기를 다음 소설로 구상 중이다. 소설 배경인 화천강에서 춘천댐까지를 틈나는 대로 답사하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글을 빨리 쓰는 연습을 충분히 했으니까, 일단 시작하면 금방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정보다 길어진 인터뷰가 끝나고 거실로 나가 보니 다음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네 시 반이 넘었고, 작가는 잠에서 깬 뒤로 오디 주스 한 잔을 마셨을 뿐이었다. 그는 “배가 고플 때, 하루 한 끼 정도만 먹는다”고 했다. 잠은 하루 네 시간. 집 앞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 앞에서 ‘귀여운’ 자세를 취해 보이는 작가를 뒤로하고 감성마을을 빠져나왔다. 12월의 끝물이었다.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이외수 <12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