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의 첫 주라 정신없네요.
벌써부터 레포트에 발표 수업에~@.@
머리 녹슨 군바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ㅋㅋㅋ
전에 말씀 드렸다시피 합기도장 입관하여
늦은 밤에나마 나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수련일지도 정기적으로 올리고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모두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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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동을 상당히 늦게 시작한 편이다. 본디부터 운동에 어울리는 체질이 아닌데다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체육 시간에도 틈만 나면 책만 읽었고, 그 흔한 태권도장 한 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보지 못했으니 둔하고 약해빠진 몸임을 굳이 말해 무엇하랴. 그런 주제에 대학 입학과 함께 갑자기 택견에 끌리게 된 이유는 또 무엇일까. 꼴에 남자라고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있었던지, 한복 입고 짚신 신은 채 신이 나서 여기저기 쏘다녔지만, 그보다 더욱 못봐줄 것은 역시나 항상 입만 앞서는 내 실력이었다.
택견을 배우며 큰 잘못을 하고도 그 후 공권유술, 권투 체육관, 검도장, 태극권 도관 등을 조금씩 전전하다가 덜컥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군대에서도 조금씩 시간을 쪼개어 킥 복싱을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잠자기도 바쁜 전경 생활에 직심(直心)조차 없어 몸을 단련하는 일이란 정말 쉬운 길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도 어디 가서 운동한다는 소리는 꼭 하고 싶어서 스포츠 채널에서 가끔 해주는 대한택견협회의 견주기 동영상을 보고, 결련택견전승회의 택견배틀 소식에 귀를 기울였으며, 유행하는 이종격투기 시합 또한 빠지지 않고 챙겨보았다. "풍운의 유도가" 라고 불리우는 추성훈 - 이제는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되어버린 그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마 06년도, 내가 신병 때의 일일 것이다. 내무반을 아직 옮기기 전이라, 창고같이 좁고 어두컴컴한 내무반에서 딱딱한 자세로 앉아 고참들 사이에 끼어 눈알 한 번 돌리지 않고 TV를 보고 있었다. 때마침 K-1 경기가 방영 중이었는데, Sarah Brightman의 Time to say good-bye가 장엄하게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일장기를 한쪽 팔에 찬 눈매 사나운 선수가 도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어깨하며 날렵한 이목구비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건 마치 칼날처럼 빛을 발하는 그의 작은 눈이었더랬다. 그리 크지도 않고 오히려 옆으로 쫙 찢어진 그의 눈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상대를 잡아 먹고도 남을 듯해보였다.
그런데 링 위로 올라온 그의 반대쪽 팔에는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신병이 아니었다면, 군대가 아니었다면, 설레발을 치면서 "야, 뭐야? 뭐야?" 를 연발하며 엄청 궁금해했을 테지만, 속으로 삭여내는 수밖에 없었다. 한쪽 팔에 일장기를, 반대편 팔에는 태극기를 찬 의문의 사내는 1라운드 중반쯤에 그림 같은 뒤돌려차기로 상대의 갈빗대를 강타하여 KO승을 거두었다.
유도 도복을 입고, "쥬도 세이코(유도 최고)!" 를 외치면서도, 입식 타격에 능한 다른 선수들 능가할 정도의 재량을 갖춘 천재적인 파이터 추성훈. 그가 일본인이면서도 또한 한국인이라는, 아니 한국인이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을 때에는, 이미 어지간히 군 생활에 익숙해진 뒤였고, 과연 "풍운의 유도가" 라는 별명에 걸맞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에 대해서도 전부 다 알게 된 뒤였다.
그 후로 나는 운동은 잘 못해도 추성훈 - 아키야마 요시히로의 팬을 자처하며 그의 경기를 거의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일반적으로 격투기 시합이란, 만화나 영화처럼 화려하면서도 비실전적인 아크로바틱한 기술들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갈수록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추성훈은 격투기 마니아나 격투기 선수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이면서도, 동시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 운용과 호쾌한 KO로 격기에 문외한인 관객들조차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그 중 한 요인은, 그의 경기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제 늦은 밤, 합기도 도장에 다녀와서 씻지도 않고 바로 TV를 틀었다. 고대하던 추성훈이 터질 듯한 근육을 고급 양복으로 애써 가리며 순하게 웃고 있었다. 약간 남아 있는 경상도 억양의 한국말을 열심히 하려는 그는, 평범한 젊은이처럼 보였다. 아직은 서른둘이라며, 은퇴한 뒤에는 모델도 해보고 싶고 사업도 해보고 싶고, 또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공부도 한다는 추성훈 -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실로 가능성 많은 남자였다. (오로지 운동에만 매진하다가, 몸이라도 다치고 나면 미래가 막막해지고 만다며 허탈하게 웃었던, 어떤 레슬링 금메달리스트가 떠올랐었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100년 동안 지켜온 한국 국적을 버렸을 때" 를 회상하며, "하바츠(파벌)...." 를 중얼거리던 그의 눈매는, 링 위에서는 전혀 달리 무척이나 쓸쓸해보였다.
얼마 전 추성훈 선수에게 사커 킥을 날려 무효 경기를 치뤘던 미사키 카즈오(三崎和雄)는 코피를 흘리며 링을 내려가는 추성훈을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고, "일본인은 강합니다!" 를 외쳤었다. 그가 진심으로 추성훈을 그리 생각했건, 아니면 그냥 단순히 경기의 유희를 위해서 그랬건 간에, 그에 대한 판단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무인은 경기 결과로 말하는 법이니까. (기왕이면, 재경기에서 추성훈 선수가 꼭 이겨줬으면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 경기를 통해 추성훈-아키야마 요시히로는, 그가 선택하지도 않았던 핏줄의 문제로 인하여,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한일 양극 반목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강렬하게 느껴졌다. "나는 한국에서는 일본 사람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한국 사람이라고 해요." 라며 어눌하게 말하던 추성훈. 무도인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꼭 필요한 사회적 정체성이 그에게는 상실되어 있는 듯해보여서, 그게 참 안쓰럽고 슬펐다.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갈 무렵, 추성훈은 초심(初心)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 문득 생각나는 인터뷰가 있었다. 내가 군대에 있었을 무렵, 초보자용 흰띠를 매고 출전한 추성훈 선수에게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유단자를 상징하는 검은띠는 오래 매고 다니면 하얗게 바래어, 결국 흰띠로 돌아가고 만다. 내가 유도에 입문했을때부터 맸던 흰띠를 항상 매고 다니는 이유는 그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나처럼, 혹은 일부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가 강한 몇몇 선수들이었다면, 그렇게 기억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사람은 추성훈이었다. 아키야마 요시히로로서 한국에서 설움을 받았던 남자였고, 일본에서도 추성훈으로서 굴곡진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했던 인터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토록 무겁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부산아시안게임에서,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연습했던 바로 그 경기장에서, 일본 국가대표가 되어 돌아온 추성훈-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한국인 선수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십거리 가득한 스포츠 신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인터넷에서 보게된 모모일보의 "추성훈, 대한민국을 메치다." 라는 헤드라인이야말로 언론이 바라보는 추성훈에 대한 시각의 정점이었다. "난 그냥, 나를 국가 대표로 뽑아주 않았던 사람들에게 '성훈이 아깝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MC를 맡은 강호동의 다소 파격적인 질문에, 추성훈은 다소 쑥스러운 듯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의 실력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어하고, 그에 따른 대접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복수심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그를 "대한민국의 배신자" 로 몰아붙인 것은, 파벌과 분파로 가득 차 있었다는 대한민국 유도계였고, 예나 지금이나 말 바꾸기가 여반장(如反掌)인, 우리 나라 언론들이었다. 그 언론들이 지금은, 풍운의 유도가, 비운의 유도가, 어쩌고 하면서, 추성훈의 삶을 조명하기 바쁘다.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그들의 펜은, 칼은커녕, 추성훈의 주먹보다도 가볍기 짝이 없다.
"미사키 카즈오가 다른 이종격투기 리그로 옮겼다고 하니, 끝까지 쫓아갈 겁니다." 라는 발언에서 추성훈의 눈은 빛났다. 대부분의 방송이 그렇듯이, TV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든 모습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추성훈이 풍운의 유도가 라는 별칭에 걸맞는 사나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세간의 모진 시선과 풍파를 겪으며 그의 심신은 차돌처럼 단련되어 있었다. 여러 영역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을 보이고, 그럼에도 자신의 실력에 흔들림이 없는 그의 모습에는 다른 선수들에게 볼 수 없는 여유와 품격이 느껴졌다.
"고수를 찾아서" 의 저자 한병철 박사는 그의 책에서 "고수" 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철학과 무도철학을 정립하여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며,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입문하더라도 중수(中手) 이상의 실력자로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요건은 확인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철학에 있어서 추성훈은 훌륭한 고수의 덕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쉼없는 혼란의 시대에서 사회적 편견까지 받고 있는 정점의 파이터 추성훈. 이제까지 그의 팬으로서, TV 프로그램을 보고 괜시리 감격에 젖어 홀로 긴 글을 적었다. 그의 길이 꺾이지 않는 한, 강자를 존경하는 약자들의 동경과 흠모도 계속될 것이며, 비록 그와 같은 고수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에게 작은 찬사나마 보내고 싶다. :-)
첫댓글 노래부르는 추성훈 선수의 모습에서 서글픔마저 느껴지더군요. 여러가지로 상처가 많은 남자인 것 같습니다. 그 상처의 크기만큼이나 멋지구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