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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답을 달라는 유대인들 10:22~24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신적 정체성을 알리시는 예수님 10:25~31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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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수전절에 성전을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자신들 마음을 의혹하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면 밝히 말씀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셨고 아버지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들이 예수님을 증언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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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답을 달라는 유대인들 10:22~24
수전절은 유대 민족의 해방과 승리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 때 극심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이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켜 성전을 되찾은 데서 유래합니다. 8일간 불을 밝히며 성전을 봉헌했기에 ‘빛의 축제’라고도 하고, 봉헌을 의미하는 ‘하누카’라고도 하며, 성전을 수리한 명절이라는 뜻으로 ‘수전절’(修殿節)이라고도 합니다. 수전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시각 장애인에게 ‘빛’을 준 것을 알기에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그리스도’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하라고 요청합니다(24절).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수전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요청했나요?
예수님에 관해 내가 의심 없이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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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정체성을 알리시는 예수님 10:25~31
예수님은 빛으로, 양의 문으로, 선한 목자로 자신의 신적 정체성을 드러내셨습니다(8:12; 10:7, 11).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하셨음에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속한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음성을 듣지도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는 영생을 얻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으며, 완전한 보호를 받습니다(28절). 어느 누구도 예수님 손안에 있는 자들을 빼앗지 못합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30절).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하시자,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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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을 버리고 주님 앞으로
정직하게 써 내려간 한 칼럼의 일부다. “우리는 대단하지 않다. 대단한 사람은 없다. 다 흠이 많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지쳐 있고 방종한 데다 종종 어쩔 줄 모르는 인간이다. 대개 일상생활의 많은 요구를 감당하기만도 벅차다.” 한편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 영원한 존재라는 점에서 대단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결코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다.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길 때 우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는다. 그것은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우리 문화는 늘 화난 상태로 기진맥진해 있지만, 하나님께 무게 중심을 두고 힘을 뺀 사람은 그 문화 위로 가뿐히 떠오른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자신을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체스터턴은 이렇게 표현했다. “위대한 성인의 특징은 가벼워지는 능력에 있다. 천사도 자신을 가볍게 여기기에 날 수 있다. 교만은 모든 걸 엄중하게 끌어내린다. 사탄은 자기 무게에 짓눌려 망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무거운 책임과 감당 못 할 짐에 눌려 사방에서 사람들의 등골이 휘어지는 시대다. ‘무한한 전체’이신 분이 우리 존재 중심에 계셔서 정체성의 모든 부분에 의미를 부여해 주셔야 한다. 우리를 지탱할 만한 모든 질량과 무게가 예수님께 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애써 잡음만 낼 뿐인 우리를 그분이 아름답게 연주하신다. 우리의 교만한 자아에서 벗어나, 그분께로 나아가라.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 / 사디어스 윌리엄스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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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10장 29절
하나님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세상을 지으신 창조의 손이며, 신으로 추앙받던 애굽 왕 바로를 꺾고 이스라엘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권능의 손입니다. 또한 불의한 제국 앗수르와 바벨론을 무너뜨리신 심판의 손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의 손입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도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구원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예수님의 팔이 우리와 우리의 거처를 감싸고 있음을 안다면, 만물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진다. - 엘리자베스 악트마이어
오늘의 기도
주님,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이들에게 제가 주님의 향기이자 편지가 되길 원합니다. 가정, 학교, 일터, 교회에서 하나님이 제 삶을 통해 행하신 일들을 드러내는 믿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요한복음10:22-31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유대인은 수전절 예수님을 만나서 그리스도이면 말씀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내 양이라고 하면 내 음성을 듣고 너희들이 나를 따랐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꼐서 수전절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셨습니다
먼저 수전절이란? 유대민족의 해방과 승리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다 마케베오를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켜 성전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여 생긴 절기입니다
수전절과 관련하여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줄 메시야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솔로몬 행각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에게 24절에 당신이 그리스도이시면 밝히 말하라고했습니다
예수님은 늘 말씀하셨듯이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나를 증거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말씀하셨는데 너희들이 믿지 않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26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내 양이라고 한다면내 음성을 들었을것이다
양의 특징에 대해 말씀합니다 27절에"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은 빛으로 , 양의 문으로선한 목자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양의 특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양의 특징은 27절에 "내 음성을 들으며 나를 따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음성을 따르며라는 것은 미혹하는 음성 가운데서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말합니다
설령 미혹하는 음성을 듣고 낭패를 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후에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따르는 양의 특징은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양이라고 한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28절 말씀에 영생이 있고, 영원힌 멸망하지 않음이 있으며 그리고 완전한 보호가 있습니다
29절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면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에게 주시는 복과 은혜입니다
여기서 우선순위가 중요함을 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감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영생과 완전한 보호로 인도하십니다
나는 주님의 양으로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따라가는 우리 모두 되시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 대한 비유로 진리를 전하자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로 여겨 배척하는 사람들과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로 나눠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더 많은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데 예수님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질책을 하신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하여 여전히 어둠 속에 사는 사람도 있고 그분을 믿음으로 영접하여 빛 가운데 들어온 사람도 있다.
전자에게 예수님은 매우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며 후자에게는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순종과 배척, 두 길을 제시하시는데 이 선택이 우리의 영원을 결정하게 된다.
나의 생각과 주님의 뜻이 다를 때 과감히 자신을 내려놓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양인 우리들을 일일이 불러내시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한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큰 복을 받았다.
이 땅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 그것은 성도가 누리는 큰 복으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취소하거나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이 허락하신 풍성한 은혜를 맘껏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생명을 버리시면서까지 사랑한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다.비록 살아가는 동안 어려움이나 고통, 원하지 않는 질병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기억하고 세상이 흔들 수 없는 평안을 유지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여호와 닛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30절)”
그들 앞에서 이미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을 여러 번 선포했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정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신성모독이라는 죄악을 주님께 씌우기 위해 반복적으로 그의 입술을 통해 그들의 무리를 분노하게 할 증언을 뱉게 해서, 그가 하나님과 동일시하려 한다는 정죄의 돌을 들기 위한 획책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전절이라는 절기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들의 육신과 예배처소가 회복되기를 구하였던 조상의 피와 땀을 기억하려 애쓰지만,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드려 그 영혼 깊숙한 곳까지 구원과 회복의 손길을 뻗는 것은 냉정하게 거부하고, 맹목적 무지함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춥지만, 주님의 그 삶은 멈춰질 수 없고, 빛으로 오신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증언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사명이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반복하여 선한 목자인 자신의 음성을 듣고, 주시는 영생을 받아 하나님 안에 온전하게 보호받는 자녀가 되고, 육신의 심판을 두려워하기 보다 육신과 영혼을 모두 심판의 불로 태우실 여호와의 크심과 광대하심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들이 주님께 던지려고 집어 든 돌은, 자신들의 성전을 더럽히기 위해 수많은 우상 숭배와 타락한 습관들을 가져다 놓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갈망했던 그들의 거룩을 향한 열정을 오히려 기득권을 고수하고 자신들의 죄를 덮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진정으로 성전이 되시고, 거룩과 새롭게 하심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향해서는 자신들을 더럽힌 이방의 지도자보다 더 분노하는 그들의 모습 안에 우리의 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들보를 돌아 바라보고, 세상을 향해 선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순종과 겸손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겨울철 수전절에 성전 솔로몬 행각에 오셨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입니다
우선 겨울철은 육의 배고픔과 목마름의 가장 추운 고난을 상징하고, 수전절은 영의 배고픔과 목마름의 가장 추운 고난을 상징하며, 솔로몬 행각은 그 모든 추운 고난을 끝낼 가장 영화로운 나라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점에서 이 장면은 소망이 넘치게 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철은 육의 추위의 막바지를 의미하고 수전절은 영의 추위의 막바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겨울철이 지나면 따뜻한 봄철이 올 것이 분명하고, 수전절이 지나면 모든 것을 회복하는 절기가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이 겨울철 수전절에 솔모몬 행각에 서신 장면은 이제 곧 우리 주께서 모든 겨울의 추위와 모든 고난의 추위를 끝내시고 솔로몬의 전무후무한 영화롭고 영원한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러나 감은 눈과 닫힌 귀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에워싸고 위협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요10:24)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 되심을 처음부터 거리낌 없이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척을 하면서, 자기들이 믿지 않아서 발생한 의혹을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지 않아서 의혹이 일어났다면서 자기들의 불신을 예수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대가 악해서 자기들의 불신을 하나님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다시 그들의 믿음 없음 탓임을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10:25~26)
그러나 우리는 주만 믿고 듣고 따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의 손에 기르시는 양떼이기 때문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27~30)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2-26절 성전을 더럽힌 안티오쿠스 4세에게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한 일을 기념하는 ‘수전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다시금 그러한 독립을 가져다줄 ‘그리스도’(메시아)가 맞냐고 묻습니다.
반란 주동자로 로마 당국에 고소하려는 유도 질문임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으시고 ‘행하는 일들’(아버지 하나님의 권세로 38년 된 병자와 날 때부터 눈먼 자를 고치신 일)만을 증거로 제시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양이라면 그 일들에서 목자의 음성을 듣고(10:4), 정치적 해방이 아닌 영혼의 구원을 쟁취할 그리스도를 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떤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듣고 날마다 목자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살고 있습니까?
27-30절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자 예수님의 손에서, 그리고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양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이 마음을 헤아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아들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더라도, 목자의 마음으로 하나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만은 결코 의심하지 맙시다.
31-38절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라는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여긴 유대인이 돌을 들어 치려 하자, 예수님은 ‘호칭’이 아닌 ‘아버지의 일’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시편 82:6이 율법을 받은 백성에게 ‘신’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백성에게 생명을 주고 또 그 일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선한 목자’(10:11)의 일에 아버지와 한마음이신 예수님이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시는 것 또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호칭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아버지의 일들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유대인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이 서로 그 안에 거하는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 부르는 주님과의 관계를 세상에 어떻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에만 안주하며 선한 일에 소홀한 삶은 아닙니까?
기도
공동체-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씀이 주는 영향력은 무엇입니까?
➲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영생을 얻습니다(22~30절).
예수님이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습니다(22~23절). 수전절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물리치고 성전을 회복한 날을 기념하는 유대인의 절기입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그리스도이면...’(24절)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달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미 말하였고,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한 일들을 통해 당신이 누구신지 증언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그들이 자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25~26절)임을 밝히십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고 따른다(27절)고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하고, 빼앗을 자가 없는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28절)하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과 하나(30절)이심을 분명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이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주로 믿고 따르지 않았던 이유는 그리스도가 아닌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이 다르면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 자신과 세상의 가치가 내 삶의 주인이 된다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을 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자로 내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인생에 닥치는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상실의 문제 더 나아가 죽음마저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영생의 삶을 누리고, 영생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수전절 때에 일어난 논쟁입니다. 수전절은 헌신절(the feast of the Dedication)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누카입니다. 기원전 160년대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됩니다.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을 모욕하기 위해서 돼지의 피를 성전에 뿌리고, 성전에서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섬기기를 강요했습니다. 이때 마카비 혁명이 일어나고 몇 년에 걸친 투쟁 후에 기원전 164년에 잠시 독립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성전을 깨끗게 하고 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고 지키는 절기를 수전절이라고 합니다.
수전절이 지나고 4개월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유월절이 옵니다.
바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의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유대인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들은 지난 2년 8개월 동안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면서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가르침이나 행동은 그들이 열망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수전절이 있게 한 마카비와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영웅이 로마에서 그들을 해방할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7가지의 기적이 나옵니다. (가나 혼인 잔치,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38년 된 중풍 병자를 고치심, 오병이어의 기적,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치심, 나사로를 살리심) 이러한 기적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메시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쫓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7가지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보여 주는 사건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은 이 기적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유익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29절에서 예수님께 속한 양에게 드러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양은 목자를 따르는 것이 본능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와 교인 중에는 목자를 걱정해 주는 양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인가 봉사를 하고, 예수님께 욕을 먹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양은 목자를 걱정하거나 목자에게 갈 길을 제시하는 자가 아닙니다. 목자가 가라면 가고 먹으라면 먹는 것이 양으로써 해야 할 도리입니다.
예수님께 속한 양은 영생을 소유한 자입니다. 영생을 소유했다고 고백한다면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잃어버렸던 자였고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던 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부패 속에서 살았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의 양을 하나님의 나라까지 이끌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입니다. 양의 지혜와 열심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자이신 예수님의 열심으로 양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일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하나님은 하나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일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신성 모독을 하는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던 유대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 되심을 인정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목자 되심이 드러나는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시82:6 / 출21:6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시 16:3)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4-15)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 16:7-11)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요한복음 17:11
날마다 천안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 인도하시는 초장이나 골짜기를 담대하게 걸어가며,
마지막 때 영생을 주시는 그 권세와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도 하신 주님의 고백과 같이,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우리가 하나 되어 세상 가운데 거룩한 자녀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보이지 않는 곳,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드려 아버지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수많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아버지의 참치와 회복에 광선을 따뜻하게 비쳐 주시옵소서.
언젠가 다툼으로 덮여 버린 이 나라와 백성들을 불쌍히 하게 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 사명을 감당하게 부족함이 없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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