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지몽
장자는 문학인이기보다는 사상가이다. 그러나 표현기법은 상당히 문학적이다. 그의 ‘호접지몽’은 아주 유명하다. 여기에 소개하면서, 그의 다른 작품도 살펴보겠다. 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으로(맹자와 같은 시대), 중국 제자 백가 사상가 중 道家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사상을 요약하면 ‘모든 의견은 결국 각자의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다.’
기준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이야기가 많다. 더 나아가서 가상과 실제도 모호해진다. 호접몽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장자가 자기의 사상을 펼치기 위해서 비유적으로 든 이야기들이 모두 재미 있다.
그가 말하는 ‘道’라는 문제는 철학적인 이야기임으로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그가 비유로 든 이야기에는 호접지몽, 조삼모사, 대붕의 이야기, 포정해우, 혜시와의 대담 등이 있다. 글은 풍자하는 내용이 많다.
그의(장자-본명은 장주이다.) 사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책이 ‘장자’이다. 그의 사상은 다른 곳에서 공부하기로 하고, 그의 풍자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를 읽으면서 그의 문학적 표현을 가늠해보기로 합시다.
1. 곤(鯤) 붕(鵬)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이 곤이다.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 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면 붕이라 하고, 붕도 크 기가 몇 천리가 된다. 날아 오르면 날개가 하늘을 가리는 구름과 같다. 작은 새나, 매미는 붕의 뜻을 알지 못한다. 사람도 소인배는 대인의 뜻을 알지 못한다. 장자의 ‘소요유’의 나오는 첫 구절이다. 너무 난해하여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2. 기준은 상대적이디
짐승의 털 한 개도 크다 할 수 있고, 태산도 작다고 할 수 있다.
특히 美의 기준은 정할 수 없다.
3. 무용지용(無用之用)
혜시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내가 있는 곳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똥나무라 부르오. 그 큰 줄기에는 혹이 많이 붙어 있어서 먹줄을 칠 수도 없고, 그 작은 가지들은 뒤틀려 있어서 자를 댈 수도 없소.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도 거들떠 보지도 않소. 지금 당신의 말도 크기만 했지 쓸 곳은 없으니 모든 사람들이 상대도 안 할 것이오."
장자가 말하였다.
"...(중략) 지금 당신은 큰 나무를 가지고 그것이 쓸 데가 없다고 근심하고 있소. 어찌 아무것도 없는 고장이나 광막한 들에 그것을 심어놓고 하는 일 없이 그 곁을 왔다갔다 하거나 그 아래 어슬렁거리다가 낮잠을 자지 않소? 그 나무는 도끼에 일찍 찍히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것을 해치지 않을 것이오. 쓸 데가 없다고 하여 어찌 마음의 괴로움이 된단 말이오?"
쓸 데가 없다는 무용(無用)이야말로 관점을 좀 달리 생각하면 크게 쓰일 수 있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장자의 생각은 다른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4. 조삼모사(朝三暮四)
신명을 하나로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동일함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침에 3개(朝三)'라고 말한다. 무엇을 '아침에 3개'라고 하는가?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저공)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조삼모사, 朝三暮四)"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냈다.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명분이나 실리에 있어서 손해본 것이 없는데도 기뻐하고 화내는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이로 인해서이다.
5. 호접지몽(胡蝶之夢)
예전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나비가 진실로 자기로 생각되어 기뻤다. 갑작스레 깨고 보니, 놀랍게도 자기는 나비가 아니고 장자였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알지 못하겠구나. 장자와 나비는 틀림없이 구분이 있는 것인데.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내가 나비인지, 장자인지 구분이 안 되어서 고민했다는 것이다.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절대적인 나 인지를 의심을 가진다.
해석을 하자면 우리가‘나’라는 틀에 갇혀서 세상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내가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집착을 벗어나서 더 른 흐름을 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