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다인 달변가 아폴로는 아카이아로 건너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받을 것이고 아버지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8,23-28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형님 집에 놀러 갔다가 어린 조카 녀석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네 살 동생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여섯 살 오빠가 빼앗으려다가 싸움이 난 것입니다.
집안 여기저기에 수많은 장난감이 쌓여 있는데도
동생의 장난감이 탐난 모양이었습니다. 동생도 만만치 않습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용을 쓰다가 장난감을
끌어안은 채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오빠가 흠칫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납니다.
그러고는 곧장 엄마에게 달려가
“나 저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어요.” 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두 아이 사이에서 형수는 엄마로서 먼저 오빠에게 충고합니다.
동생을 괴롭히면 안 된다고, 다른 장난감도 많으니
그걸 가지고 놀라고. 그러고는 네 살 동생에게도
오빠랑 사이좋게 놀아야 한다고 다독입니다.
여섯 살 조카 녀석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집안은 다시 평화로워집니다.
입시 철이 다가오면, 자식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해 달라는 부모들의 기도가 줄을 잇습니다.
미사와 기도의 지향에 대 놓고 ‘합격하게 해 달라.’는 말은 못 하지만,
결국 그런 의향으로 미사도 봉헌하고 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의 앞날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기도를 들으셔야만 하는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난처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합격하면 좋겠지만, 누군가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불합격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합격하게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정의와 공정의 하느님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하느님,
내 가족만을 위한 하느님이 되어 주십사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놀고 싶으니, 엄마에게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아
달라는 여섯 살 아이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을 묵상하며,
먼저 우리가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만을 위하여 하느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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