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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모독에 대한 반론 10:32~36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 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 모독이라 하느냐
행하신 일을 믿으라는 호소 10:37~42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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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신성 모독을 이유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가 스스로 하나님 아들이라 함은 신성 모독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아버지 일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잡으려 하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으로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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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모독에 대한 반론 10:32~36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중대한 죄목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서 신성 모독의 죄목으로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합니다(33절). 예수님은 재판장들을 ‘신’이라고 표현한 시편 말씀(시 82:6)을 근거로 자신을 변호하십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폐하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35절). ‘폐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괴하다’라는 의미로, 성경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절대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인식은 유대인들에게 공통된 신념입니다. 신성 모독으로 자신을 정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토대로 변론하는 지혜를 발휘하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에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을 변호하셨나요?
절대 권위인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내가 분별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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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신 일을 믿으라는 호소 10:37~42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지 못합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자신이 지금까지 행한 ‘일’을 믿으라고 하십니다(38절). 예수님이 하신 일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결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론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다시 잡으려고 합니다(39절).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신 예수님은 요단강 동편 세례 요한이 처음 세례 베푼 곳(1:28)으로 가십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대로 예수님을 참빛으로(1:7),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1:29), 그리스도로(3:28~30) 증언했습니다. 신실한 증언자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습니다(41~42절).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무엇을 믿으라고 하셨나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앞에서 내가 해야 할 고백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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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뜻은 좁지 않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베풀고, 자유롭게 거룩해질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순종할 방법을 정하는 데 집착한 나머지 실제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일련의 금령으로 율법을 좁히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더 중시하신다. 구원자께서 은혜를 베푸신 대로 은혜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기 싫어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부각했다. 반면 예수님은 해서는 안 될 일보다 해야 할 일에 더 시간을 들이셨고, 그러다 바리새인들의 노여움을 사셨다.
하나님 뜻은 좁고 답답하고 괴로운 게 아니라 넓게 활짝 열려 있다. 하나님 뜻은 덤불을 헤치고 조심조심 나뭇가지와 말벌을 피하며 찾아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뜻은 작은 배가 떠가는 도도한 강이다. 목표는 강어귀로 나가는 것이다. 강의 범위는 분명히 양쪽 강둑 사이지만 그 강물 위를 나는 어디든 누빌 수 있다. 하류 쪽으로 가고 있는 한, 내 재량대로 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공동체의 소리를 경청하고, 우리가 돌봐야 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한, 우리는 자유 안에서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다.
혁신하는 교회 / 스콧 코모드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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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10장 35절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과 재판관들은 신과 같은 존재로 예우를 받았습니다(시 82:6). 예언자나 재판관으로 세워진 '개인'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하신 '직무'의 특별함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백성을 이끄는 예언자, 공의로운 재판으로 질서를 세우는 재판관은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그들이 직무를 행할 때 필요한 자질은 '성결'입니다. 겸손히 하나님 말씀을 받아 성결함으로 전하는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습니다.
당신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당신도 그분을 잘 알게 되기를 원하셔서 당신을 부르시고 말씀하신다. -헬렌 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알아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구약의 말씀, 신약의 말씀도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온전히 깨닫게 됨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더 깊이 깨닫게 하소서.
요한복음10:32-42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당신을 하나님과 하나라하여
신성모독으로 돌로 치려 하였는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성경은 알고 있지만
믿지 않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에 대해 영생과 완전한 보호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과 하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영생과 완전한 보호를 주실수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이라 하여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시편 82: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34절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한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35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신들이란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제사장들이라든지 종교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미가 있습니다
너희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그리고 믿고 있다고 하면서
정작 성경은 믿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36절입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신성 모독이라 하느냐"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유대인들 자신들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성경을 믿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믿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앞서 말씀한 영생과 완전한 보호가 있습니다
영생이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라 이땅에서 영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갑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고 사는 것은 예수님을 놓치고 산다고 할수 있습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궁을 찾았습니다
성경의 전문가라고 하는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경배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예수님을 놓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주심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현장에 흘러가 많은 생명을 살리도록
기도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말씀에 대해 거절할 때, 불의를 행합니다(31~33절).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선언하시는 말에 유대인들은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을 가져 예수님을 돌을 들어 치려 하였습니다(31절). 이에 예수님은 ‘..
.내가 아버지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너희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32절,새번역)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행한 선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돌로 치려고 한다(33절)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편견과 자신들만의 기준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도록 보내신 메시야를 돌로 치려 하는 적대적인 행동으로 어어졌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편견과 조롱 그리고 위협이 가득한 세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하며, 담대히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 것처럼 미움과 조롱이 있는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에 근거하고, 말씀대로 실천하여 하나님 앞에 불의를 행하지 않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말씀을 믿고 살아갈 때, 비밀을 얻습니다(34~42절).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시 82:6)는 말씀을 인용해서 반문(34절)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이라 하셨고(35절,새번역), 성경 말씀은 영원하고 참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36절)이라는 것입니다.
즉, 신성모독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적대적인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보고 믿을 수 없다면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적들을 보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37~38절)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은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38절b)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요단 강 건너 편, 요한이 처음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르셨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는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것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된 것(41~42절)입니다.
행함과 삶으로 말씀을 증명하신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내 자신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있음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겠습니다. 삶으로 믿음을 증명해야 하겠습니다. 체험과 자기 확신 위에 믿음을 세우는 삶이 아니라 성경 말씀 그대로, 성경에서 말씀 하시고,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가까이하고,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 들일 때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생생하고 활력 있는 믿음은 날마다 말씀에 근거하며 살아가고, 말씀으로 세상을 분별하며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므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얻어,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거세게 몰아치는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언제나 변함없으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말씀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여, 참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영생을 맛보는 길을 매일 매일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요 10:22~42)...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요10:32) 그들이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신성모독 때문이라 대답하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요10:34~36)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들이며 지존자의 자녀들입니다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시82:1~6)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아론과 백성 앞에서 하나님 같이 되었습니다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16~17) 또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신 같이 되었습니다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출7:1)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신학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는데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 하신다는 이유로 돌로 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대적한 것은 그리스도께 무슨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신학적인 무슨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단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7~38)
주님은 아버지의 일을 많이 행하셨고, 지금도 지극히 선하신 아버지의 지극히 선한 일들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스3:11)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아버지의 지극히 선하신 일들을 많이 이루셔서 은총의 표적을 보이시고 우리를 돕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로 자랑케 하실 줄 믿습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시86:15~17)
신성모독 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하자 예수님은 죄를 지은 일도 없고 선한 일을 했는데 왜 돌로 치려고 하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예수님이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는 말이 신성모독이라고 말하고 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말씀대로 믿는 사람에게는 성육신의 진리가 생명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행하는 일을 보고 믿음
예수님은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당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행하시는 일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사탄으로부터 인지 판단하라고 도전하신다.
편견을 버리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믿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자기 마음에 결론을 내려놓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증거를 통해 믿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고 특히 세례 요한에게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의 말이 진리라고 고백하며 믿었다.
모든 성도는 세례 요한과 같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도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를 알기 위해 겸손한 자세가 필요함을 교훈하고 있다.
성도는 겸손하게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를 따라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
그렇게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7~29절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는 양들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 목자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고 그 아버지는 세상 모든 것보다 크시기에, 아무도 그 백성을 하나님의 손에서 앗아갈 수 없고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 빼앗기거나 빼앗을 수 없는, 자녀의 자격이 상실됨 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러니 만물이 아니라 만물보다 크신 주를 의지하십시오. 올 한 해 끝까지 이 하나님께 나와 내 모든 형편을 맡겨보지 않겠습니까?
27-30절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자 예수님의 손에서, 그리고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양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이 마음을 헤아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아들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더라도, 목자의 마음으로 하나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만은 결코 의심하지 맙시다.
30절 유대인들의 도발적인 질문(24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하십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양들을 향한 ‘사랑과 뜻’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돌을 맞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선언이지만 위협에도 포기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사탄이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을 깨트릴 수 없다면 목자이신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깨트릴 수 없을 것입니다.
31-38절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라는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여긴 유대인이 돌을 들어 치려 하자, 예수님은 ‘호칭’이 아닌 ‘아버지의 일’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시편 82:6이 율법을 받은 백성에게 ‘신’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백성에게 생명을 주고 또 그 일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선한 목자’(10:11)의 일에 아버지와 한마음이신 예수님이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시는 것 또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호칭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아버지의 일들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유대인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이 서로 그 안에 거하는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 부르는 주님과의 관계를 세상에 어떻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에만 안주하며 선한 일에 소홀한 삶은 아닙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2~24절 분쟁(19절)은 의혹을 키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에워싸며’ 정체를 분명히 밝히라고 다그칩니다. 여태 믿음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표적(25절)을 보여주었는데도 더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증거가 부족해서 못 믿은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만든 거짓 증거가 그들 안에 너무 많기 때문에 안 믿는 것입니다. 안 믿기로 작정한 이 시대의 궤변에 마음 흔들리지 맙시다. 도리어 겸손한 확신으로 신실하게 진리를 말하고 성실하게 진리를 살아냅시다.
25~27절 예수님의 양인지 아닌지는 양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속한 백성이 아니기에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도 그분을 참 목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내가 바라는 예수님만을 고집한다면 성경이 증언하는 참 예수님을 끝내 모를 수 있습니다. 또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서 주님을 사랑하고 구원에 감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기도
세상의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주님 안에서 참 생명과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해주셔서 감사합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하는 이유는 신성모독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선생으로는 인정하는데 하나님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추앙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삶에서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문제요. 이단의 문제요. 자유 신학자들의 문제입니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라”라는 유대인의 고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시편 82편 6절을 인용하여 답하십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 사사들의 호칭을 가지고 본인을 변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신이라 칭하셨는데 직접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반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82편을 인용하신 것을 참뜻을 알기 위해서 인용 구절의 후에 나오는 구절을 보아야 합니다. 시편 82편 7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그렇습니다. 신이라고 불렸지만 그들은 죽음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36절에 “하물며”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신들이라 불렸던 사사들과 자신을 비교하십니다. 죽음 앞에서 무능했던 사사들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예수님 자신을 비교하시는 것입니다. 신성 모독으로 고소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는 사건을 통해서 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살펴볼 11장의 나사로의 사건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독교만이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선한 일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선한 일을 통해서, 즉 우리의 의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의로서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을 아무런 공로 없이 받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온통 선하게 살라는 도덕적 교훈만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선하게 살 것인가에 지대한 관심을 둡니다. 어떻게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인가, 어떻게 좋은 직장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경을 통해 이야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예의상 한두 번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또는 세상의 잣대로 도덕적인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던 유대인들도 선한 일을 행했던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나가서 예수님을 돌로 치는 행위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선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전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전하시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오늘 하루도 선한 일을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선한 삶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지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길 소원합니다. 그 삶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광이 오늘 여러분 삶 속에서 풍성하길 소원합니다.
롬8:35 / 요14:9 / 시82:36 / 요15:4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 4: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출 7:1~2)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레 24:1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시 82:6~7)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슥 12:8)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죽음의 권세를 향해 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자신의 육신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온전히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자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드러내려 하고 세상이 위협하는 순간에 뒤로 물러서서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 보며 아버지 앞에 회개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충만케 하심의 역사로 날마다 더 분명하고 악한 세상 가운데 더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곳곳마다 주님을 증거하는 열방의 선교사님 되게 하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는 아버지의 돌보심과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수많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을 헤아려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광선을 비추사,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분쟁과 다툼, 미움과 분노, 온갖 죄악으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와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