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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미라지콤프에 들어 온지 한달 가까이 되는 이병장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규정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mmzone에서 뵌 분들도 계시고 2000년 부터 2011년까지 주로 defence korea라는 사이트에서 이병장이라는 아이디C133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모형 실력은 그냥 초보에서 벗어난 정도(제 생각)이고 나이가 40대 중반이다 보니 비슷한 또래가 그렇다 보니 어릴적 문방구에서 조립식을 사서 만들던 추억을 더듬다 성인이 되어 취미가라는 잡지가 등장하면서 도색도 하고 디오가 뭔지도 알게된 그런 사람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남양주인데 어릴땐 양주군이었습니다. 당시 동네엔 전기가 없었는데 제가 살던 곳은 군부대주변이라 운이 좋게도 전기가 가끔들어오는 곳이었고 주변 한강의 풍광이 좋았던 곳으로 70년대 중반 팔당댐이 생기고 당시에 특전훈련의 주장소였고 어릴적 보는 것이 군인아저씨였고 아버지도 직업군인이셨는데 지금은 부사관이라고 부르는 하사관이셨습니다. 때문에 주변환경이 군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군에 가서 느낀 건 겉에서 보는 것과 병으로 입대하여 생활하는 것은 천양지차였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당시엔 청량리 대왕코너에서 장난감트럭이나 차를 사거나 어머니를 따라 동대문 시장과 남대문시장에 시장을 보러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70년대 초 한강 대홍수로 부대가 침수되고 당시 용인에 3군사령부가 베트남전이 끝나고 생길때 쯤 저는 용인으로 이사를 가서 당시 용인읍에 있는 초등학교를 입학했는데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많았는데 얼마전 까지도 가서 mmzone에서 구하시는 물건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곳은 전국에서 몇 안되는 곳으로 프라모델 킷을 문방구에서 살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2년 이후 경기도 광주에서 살았는데 이곳에서도 초등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옆집은 문방구 그리고 광주에서 가장 큰 만화가게가 있었고 주변엔 특전사의 야외훈련장과 수시로 낙하산이 투하되고 가끔씩 학교 담 공사를 하면 불발탄이 많이 나왔고 군인들의 야외훈련을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동네 골목골목에선 킷트조립하는 동년배들이 많았고 중학생 정도의 형들은 2차세계 대전의 만화와 잡지 그리고 킷트에 해박한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모델러들에겐 나름 천국이었던 것 같고 조금 발품을 팔면 형들과 당시 막 개발되던 강남과 성남에 가서 마음에 드는 모터2개 든 전차도 사고 외제 킷트도 살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아쉽게도 아버지의 퇴직으로 6학년때 충청북도의 시골로 전학을 갔습니다.
이사간 동네엔 프라를 만드는 친구들이 없었으나 중학교 다니는 형들 중엔 통신판매로 사서 만들거나 주변 읍내에 가서 어렵게 사서 만들었는데 당시엔 시골풍경이 다 그런지 모르지만 이웃 동네를 지나다 보면 인사 안하거나 아는척 안하고 갔다가는 집합을 당하기도 하고 속된말로 군기가 잡힐 수 있던 상황이라 자전거나 걸어서 읍내로 가는 것은 모험을 걸어야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간혹 가끔식 어른들과 버스를 타고 인근 읍내에 일을 보러가서 큰 문구점이나 완구점에서 킷트를 사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소도읍 가꾸기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동네에 가게를 확장하여 당시 슈퍼를 여는 아저씨가 계셨는데 물론 당시에 소량의 모형 킷이 있었으나 대량으로 품목별로 모형킷을 입고했는데 읍네 완구점이나 문방구 못지 않게 다양했고 저는 그집을 드나들면서 모형을 사게 되었는데 만드는 것을 본 사장님은 당시 가게 진열장에 장식할 모형중 저에게 아카에서 나왔던 크리스탈 드럼을 만들게 했는데 저는 당시 부족한 솜씨나마 자랑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시골 동네엔 1시간 30분이면 서울을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었고 당시 팀스피리트 훈련으로 국군과 미군의 야외훈련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중략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다 군에 입대하고 세월이 지났습니다. 제대를 하고 모형은 잊고 있었는데 당시 헌책방에서 디오라마 가이드 북 같은 책을 보고 놀랐는데 더 놀란건 친구의 자취방에 있던 취미가 잡지였는데 당시 창간호가 나온지 한달 정도 되었을까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대학4학년 졸업반이고 모형은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하러 내려간 시골 자취방에서 모형만들기는 시작됩니다. 당시 취미가의 과월호를 인근 도시의 모형점에서 구하고 부족한 것은 당시 1시간 반이면 다을 수 있는 동서울 부근의 모형점을 다니기도 하고 더 시간을 내서 홍대앞 우주모형도 들렸습니다.
과월호를 구하고 국방화보 같은 자료도 보면서 모형을 만들긴 했지만 신통치 않았고 지금 보다 더 자주 모형전시회를 다녀보고 했지만 당시 제가 알고 있는 경험으로 동호회를 만들고 작품을 전시하시는 분들의 작품은 지금도 속칭 넘사벽이었고 간혹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더라도 모형점의 점원에게 물어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사용하는 용어라든가 구사하는 솜씨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많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상대를 배려하지 않게 되고 묻는 쪽이나 답을 하는 쪽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것도 몰라? "혹은 취미가 안보냐 ... 아니면 당신은 속칭 맛간 모델러라 유별나기 때문에 이런 것은 우리가게에 없고 혹은 난 이것밖에 안되나 라고 생각하며 모형잡지에서 나온 것들과 솜씨를 비교하다 보면 갈길이 멀고 그러다 보면 만들기도 힘을 잃어 갈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직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 힘든 일 하고 일상에서 가볍게 만들고 즐겨야 할 모형이 잘만든 것만 부러워 하고 자책할 것이 아니고 자신이 가진 관심을 더 하여 만족을 하거나 재미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디오라마 만든다고 시골들판을 다녔고 아크릴 판 을 오려 쇼케이스를 만들고 큰 것은 동네 유리점에 부탁하여 디오라마라고 만들어 집에 진열을 하고 부족하지만 많이 만들고 당시 이탈레리의 미군의 야포 종류는 다 만들어 봤습니다.
사회에 진입한지 얼마 안된 시기였던 90년대 중반 친구들은 저의 자취방에 자주 놀러왔고 제가 만드는 모형을 보고 '이거 장난 아닌데..." 했고 당시 디오라마의 깃발만든다고 컬러프린터기를 거금 주고 사고 일만 끝나면 집에서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얼마 안되는 월급인데도 연탄은 안 들여나도 킷트를 사고 취미가 잡지와 모델러 잡지는 꼭 사서 보고 군사잡지도 나오면 사서 읽었습니다. 그것도 서울이나 인근 도시를 다니며 사 모았는데 지금 보다 더 많이 서울 중심가나 서점을 다니지 않았나 생각하고 그때가 그래도 친구들이 찾아오고 술도 자주하고 혼자 모형에 대한 지론을 펴며 침을 튀기며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대학로 디자인 센터에서 열리는 모형전시회나 취미가나 모델러를 보면 너무나 큰 차이에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그게 또 다른 재미이고 아마추어에겐 또 다른 일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여의 시골에서 직장을 마무리하고 정착한 곳이 경기도 안양이었는데 당시엔 안양모형(주로 무선 모형)과 고려과학등지에 들렸는데 당시의 흐름은 모형점의 영업이 하향세였고 인근의 수원에 가면 경기과학이 있었는데 이곳의 사장님도 2~3년 사이에 많은 것이 하향세라고 하셨는데 그 후 IMF가 왔습니다. 직장은 다니는 데 월급을 받으면 자주 사던 킷트도 줄어들고 사회분위기가 참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새로 사기 보다는 있던 것을 만들곤 했습니다. ...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에--------------
첫댓글 카하.ㅣ 저하고 거의 10년정도 차이가 나는듯 싶네요.. 선생님 첫 보셨다던 취미가를 전 고입시험 당시 연합고사라는걸 치고 발견했거든요.. 긴 글이지만 쭈욱 읽으면서 잠시나마 어랄적 추억우로 잠기었습니다. 어릴적 취미가 문방구를 뒤지던 그세대가 이젠 사회의부축으로 섰습니다. 저도 세아이의 아빠지만 애네들이 우리나이되서 부담없이 모형이라는 취미를 해나갈수 있게 다리를 놓고 체계적으로 정라해둘 필요성을 느낌니다 정말 한국적인 모형문화가 활짝 꽃필수있게 열심히 노력하고 싶네요
미라지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니 제가 굉장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어색합니다. 그냥 평범한 소시민을 융숭하게 대우해주시면 민망합니다. 모형카페를 이렇게 알차게 이끌어 가시는 미라지님이야 말로 지도자시고 선생님이십니다. 원래 저같이 솜씨 없는 사람이 별작품이 없다 보니 그냥 써본 내용입니다.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 겠지만 어떤 분들은 진짜 솜씨 좋은 작품을 그러나 어떤 분들은 만드는 재미에 어떤 분은 지난 시절의 추억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슨 학자들의 이론논쟁 공간도 아니고 다름을 잘 인정하지 않고 정치판 처럼 내편 니편 싸우는 공간은 아닌데... 아무튼 미라지콤은 따뜻한 곳입니다.
저도 이제는 눈이 침침한 시절이 왔네요. 참 많이 공감이 가는 세월 입니다.
ㅎㅎ 타 동네를 지날때는 많이도 조심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저는 중간중간 이었다 끝었다를 반복 했습니다. 거제도의 환경은 이병장님과 비슷했지만 더 열악했지요.
국민학교6학년때 부산으로 유학?가서 본격적인 만들기가 시작 되었고요...이래저래 시간이 흘러흘러 결혼후 조금 손대다
아이들이 생기니 또 손놓고.^^ 그러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게되어 그간 모아 왔던킷을 만지작 거리니 눈에 노안이 왔네요..
돋보기를 쓰지만 많이 귀찮고...작은 부품을 제자리에 한번에 붙이기가 정말 예전 같지가 않군요..그렇지만 이제는 원없이 킷을 만져보게 됩니다.
깜장고무신님 저도 별로 어른이 아닌데 눈이 침침할 때가 있습니다. 서울 근교 소읍에 살다 농사을 하는 인구가 많은 시골에 갔을때 참으로 동네사이사이를 다닌 다는 것을 분위기 파악 못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땐 그리고 무섭던 선배들 지금 만나면 참 잘 대해 줍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엔 시골 나름의 정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밥먹고 살고 농사일로 바쁜데 모형킷트 산다고 싸돌아 다니니 입장 바꿔생각하면 얼마나 속터지는 일이겠습니까? 이젠 좀 만들어 볼만하니 여러가지로 여건이 안되고 그러나 그틈에서 해방을 맛보는 재미로 모형킷을 열어보고 신너냄새도 맛보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 너무나 너무나 가슴에 새겨지는 글입니다.
이병장님의 글에 제 얘기를 댓글로 달기엔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비록 나이차는 있어도 비슷한게 너무 많습니다.
다음에 소주 한잔씩 기울이며 이야기 보따리 풀 기회 꼭 기다립니다.
반갑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군대 추억록 처럼 바인더에 철해 놓으셔도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릴적 중학생이나 저의 선배들은 지금처럼 공부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살아가는 일상이 산교육이 아니었난 생각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떠나 당시엔 학생을 위한 잡지 어린이 신문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영화 음반도 있었고 지금처럼 혼자 가지고 있다고 혼자 노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유하고 함께하는 분위기였던것 같습니다. 한번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며 혹시 저를 보시고 실망하시지 않으실까 걱정은 되지만 제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어쩜......저도 취미가를 고등학교 1학년때 처음 본거 같은데.....모형 좋아하시는분들...다들 비슷한 길을 걸어 오신거 같습니다....ㅎ
맞습니니다. 취미가는 당시 모형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모아 시대가 원하는 분위기를 잘 표현했던 잡지이며 연결통로이고 용어의 통일과 흐름을 잡아준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처럼 모형동호인들이 대화를 터 놓고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공로는 당연히 취미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 취미가 2호 나올때 첨 알았습니다....다른반 친구가 보고 있더군요..ㅋㅋ 하교해서 책방으로 가니........다행히 창간호와 같이 있어서 둘다 구할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격월간지라 2달기다리는게 정말 일년 기다리는듯한 느낌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