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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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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스크랩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고찰
김홍필 추천 0 조회 1,501 11.09.09 18:31 댓글 3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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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9.09 20:05

    첫댓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원문(原文)에서 "太祖高皇帝"(태조고황제)를 검색해 보니까, 총 185건이 나옵니다.
    하나씩 모두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 작성자 11.09.09 20:13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원문(原文)에서 "中國"(중국)과 "東國"(동국)이라는 낱말을 검색해 보면...
    中國(중국)은 총 2,386건이 나오고 東國(동국)은 모두 346건이 나옵니다.
    여기서 中國(중국)을 "황제국"이라고 하면, 東國(동국)은 "제후국"이 되겠지요...
    中國(중국)의 입장에서는 東國(동국) 이외에 西國(서국), 南國(남국), 北國(북국)이 있어야 마땅한데...
    東國(동국)은 東夷(동이), 西國(서국)은 西戎(서융), 南國(남국)은 南蠻(남만), 北國(북국)은 北狄(북적)일까요??

  • 작성자 11.09.10 13:58

    따라서, 천상희 선생님이 결론에서 주장하신 바 대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제후국"의 가치관을 기록한 사서(史書)인 동시에 "황제국"의 가치관을 기록한 사서(史書)이기도 합니다.

  • 작성자 11.09.09 21:25

    영조 44년(1768년) 5월 10일(정유) 1번째 기사

    임금이 숭정전 월대에 나아가 망배례(望拜禮)를 거행하였는데, 이날은 명(明)나라 태조(太祖)의 기신이었고 또한 우리 태종 대왕의 기신이었다. 유신(儒臣)을 명하여 《명사(明史)》를 읽도록 하고, 또 《태종조보감(太宗朝寶鑑)》을 읽으라고 명하였다.

    丁酉/上御崇政殿月臺, 行望拜禮。 是日卽皇朝太祖忌辰, 亦我太宗大王忌辰。 命儒臣讀《明史》, 又命讀《太宗朝寶鑑》。

  • 작성자 11.09.10 13:48

    여기서는 태종황제(太宗皇帝)가 아니고... 아태종대왕(我太宗大王) 곧 "우리 태종대왕(太宗大王)"이네요...
    황조태조(皇朝太祖)라는 표현을 쓰고요...

  • 작성자 11.09.14 11:56

    제가 이 대목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이렇게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곡 날조의 흔적일까요???
    "황제(皇帝) = 대왕(大王)"인가요???

  • 작성자 11.09.09 21:33

    영조 30년(1754년) 5월 9일(정해) 3번째 기사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의 계상(階上)에서 태종황제(太宗皇帝)의 기신(忌辰)의 망배례(望拜禮)를 행하였다.

    上行太宗皇帝忌辰望拜禮于明政殿階上。

  • 작성자 11.09.10 11:15

    여기서는 날짜가 5월 10일이 아니군요... 그리고, 태종대왕(太宗大王)이 아니고요...

  • 작성자 11.09.09 21:45

    영조 29년(1753년) 5월 11일(병인) 1번째 기사

    임금이 친히 기우제를 지냈다. 초헌(初獻)이 있은 뒤에 비가 좍좍 내릴 조짐이 있어 기뻐하였다. 임금이 한참 동안 밖에 서 있었는데 곤룡포(袞龍袍)가 모두 젖었다.
    하교하기를, “이는 곧 우리 고황제(高皇帝)와 성조(聖祖) 태종(太宗)께서 하사하시는 것이다” 하였다.
    환궁할 때 효장묘(孝章廟)에 들렀다. 추조(秋曹)와 금오(金吾)에 명하여 가벼운 죄수를 석방시켰다.

    丙寅/上親行祈雨祭。 初獻後喜雨有霈然之漸。 上露立良久, 袞袍盡濕。 敎曰: “此卽我高皇帝及聖祖太宗之攸賜也。” 還官時, 歷臨孝章廟。 命秋曹、金吾, 輕囚放釋。

  • 작성자 11.09.09 22:07

    여기서는 대명고황제(大明高皇帝)가 아니네요...

  • 작성자 11.09.10 11:05

    영조 29년(1753년) 5월 10일(을축) 1번째 기사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의 월대(月臺)에 나아가 망배례(望拜禮)를 행하였는데, 명(明)나라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의 휘일(諱日)이기 때문이었다.

    乙丑/上御明政殿月臺, 行望拜禮, 太祖高皇帝諱日也。

  • 작성자 11.09.10 11:07

    영조 29년(1753년) 5월 10일(을축) 1번째 기사에서는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라고 합니다.

  • 작성자 11.09.09 21:55

    영조 35년(1759년) 5월 10일(기축) 1번째 기사

    임금이 익선관(翼善冠)과 무양흑단령포(無揚黑團領袍)를 갖추고 명정전(明政殿)의 월대(月臺)에 나아가 망배례(望拜禮)를 행하였으니, 명(明)나라 고황제(高皇帝)의 기신(忌辰)이기 때문이었다.

    己丑/上, 具翼善冠, 無揚黑團領袍, 詣明政殿月臺, 行望拜禮, 以大明高皇帝忌辰也。

  • 작성자 11.09.10 11:17

    여기서는 아고황제(我高皇帝) 곧 "우리 고황제(高皇帝)"가 아닙니다. 대명고황제(大明高皇帝)이네요...

  • 작성자 11.09.09 21:59

    영조 38년(1762년) 5월 10일(계묘) 1번째 기사

    임금이 숭정전에 나아가 망배례(望拜禮)를 행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은 바로 고황제(高皇帝)의 기일(忌日)이다. 고황제는 큰 덕이 있어 72세의 수를 누리셨고, 우리 태조(太祖)의 수 역시 74세이다.”

    癸卯/上御崇政殿, 行望拜禮。 上曰: 今日乃高皇帝忌日也。 高皇帝以大德, 享壽七十二歲, 我太祖壽亦七十四歲。

  • 작성자 11.09.10 11:11

    여기서 아태조(我太祖) 곧 "우리 태조(太祖)"는 누구인가요?? 또한, 고황제(高皇帝)는 누구일까요??

  • 작성자 11.09.14 10:01

    영조 29년(1753년) 5월 10일(을축) 1번째 기사에서는 "太祖高皇帝"(태조고황제)라는 낱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太祖"(태조)와 "高皇帝"(고황제)가 서로 분리되어 있네요...
    왜곡 날조의 흔적일까요???

  • 작성자 11.09.09 22:17

    영조 39년(1763년) 5월 10일(병인) 3번째 기사

    임금이 숭정문(崇政門)에 나아가 망배례(望拜禮)를 행하고, 승지에게 명하여 오늘 빈대(賓對) 때 명(明)나라 고황제(高皇帝)의 본기(本紀)를 가지고 들어오게 하였다.

    上詣崇政門, 行望拜禮, 命承旨, 今日賓對時, 持入皇明高皇帝本紀。

  • 작성자 11.09.09 22:18

    여기서는 황명고황제(皇明高皇帝)라고 하네요...

  • 작성자 11.09.09 22:19

    영조 43년(1767년) 5월 10일(계유) 1번째 기사

    임금이 숭정전 월대에 나아가 황명(皇明) 효릉(孝陵)의 기신(忌辰)에 망배례(望拜禮)를 행하고, 승지에게 황단(皇壇)을 봉심(奉審)하라고 명하였다. 내국 도제조 김상철(金尙喆)의 체직을 허락하고 김양택(金陽澤)으로 대신하였다.

    癸酉/上御崇政殿月臺, 行皇明孝陵忌辰望拜禮, 命承旨奉審皇壇。 內局都提調金尙喆許遞, 以金陽澤代之。

  • 작성자 11.09.09 22:21

    여기서는 황명효릉(皇明孝陵)의 기신(忌辰)이라고 나옵니다.

  • 작성자 11.09.10 09:42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원문(原文)을 기준으로, “구묘”(九廟)에 관한 기록은 중종(中宗) 때에 집중적으로 나오며, 모두 26건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명종(明宗) 즉위년(卽位年) 기사에 나오는, “중종(中宗) 조(朝)에는 상국(上國)에 대한 모든 일을 성의(誠意)를 다하여 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진하(進賀)함이 지당(至當)하다”는 대목과 관련된다고 보입니다.
    여기서 중종(中宗)이 “상국”(上國)으로 받들었던 나라는 구체적(具體的)으로 어디에 있었을까요?
    당시의 중종(中宗)은 황제(皇帝)가 아니었을까요?

  • 작성자 11.09.10 09:42

    명종(明宗) 즉위년(1545년) 8월 19일 3번째 기사

    지금(只今) 사은사(謝恩使) 성세창(成世昌)의 장계(狀啓)를 보니 ‘중원(中原)에서는 구묘(九廟)의 수리(修理)가 끝나 열성(列聖)의 신주(神主)를 봉안(奉安)하고 대제(大祭)를 거행(擧行)한 뒤에 천하(天下)에 반사(頒赦)했다’고 합니다.

    尹仁鏡、柳灌啓曰: 今見謝恩使成世昌狀啓則 ‘中原九廟畢修, 奉安列聖神主, 行大祭後頒赦天下。’ 云。

  • 작성자 11.09.10 09:43

    바로 위의 명종(明宗) 즉위년(1545년) 8월 19일 3번째 기사에서, 구묘(九廟)가 있었던 "중원"(中原)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요???

  • 작성자 11.09.10 09:45

    효종(孝宗) 2년(1651년) 6월 12일 2번째 기사

    정원(政院)이, 대제(大祭)가 바로 앞에 닥친 때에 혹시 옥체(玉體)가 손상되는 문제가 있을까 염려되어 도로 침전(寢殿)으로 납실 것을 청하니, 답하였다.
    “구묘(九廟)의 신령(神靈)이 편안한 다음에 과인(寡人)의 몸이 편안할 수 있다. 이제 사당(祠堂)의 신주(神主)가 노천(露天)에 계시는데 내가 어찌 감히 마음을 놓고 편안히 있을 수 있겠는가.”

    政院以大祭當前, 恐有添傷之患, 請還御寢殿, 答曰: “九廟神靈安而後, 寡躬得以安。 今廟主露處, 予安敢放心安處乎?”

  • 작성자 11.09.10 09:46

    여기서, 효종(孝宗)은 황제(皇帝)이었을까요??

  • 작성자 11.09.10 09:53

    광해군(光海君) 14년(1622년) 5월 3일 1번째 기사

    임진년(壬辰年)에는 왜적들이 난리를 일으켜 양경(兩京)이 함락되고 구묘(九廟)가 잿더미가 되었으며, 팔도(八道)에 피비린내가 나고 백성들이 어육(魚肉)이 되어 국세(國勢)가 위태로와 장차 멸망하게 될 판이었다.
    다행히도 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천하의 군병을 동원하여 문무 대관에게 만 리 길을 떠나 정벌하라고 명하신 덕분에 전후 7년에 걸쳐 요기(妖氣)를 깨끗이 없애 버리고 대란을 구원하였다.

    而粵在壬辰島夷搆亂, 兩京不守, 九廟灰燼, 八路腥膻, 萬姓魚肉, 國勢岌岌, 將㡳滅亡。 幸賴我神宗皇帝勳天下之兵, 命文武大官萬里征討, 首尾六七年, 克淸妖氛, 拯濟大亂。

  • 작성자 11.09.10 10:08

    바로 위의 기사에서는 "我神宗皇帝"(아신종황제)가 나옵니다. "우리 신종황제(神宗皇帝)"는 누구인가요??

  • 작성자 11.09.10 16:10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황조기일(皇朝忌日)>이라는 책이 있다고 합니다.

  • 작성자 11.09.10 16:13

    내용은 크게 8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나 그 체제가 일관되지 못하며, 帖冊의 양면을 모두 이용하여 기재한 점이 특이하다. 앞면에는 주로 왕실과 법령에 관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는데, <皇朝忌日>은 명(明)나라 역대 황제의 諱·忌日·在位年度·陵號 등을 기록한 것으로 明 太祖의 즉위 이후 추숭된 仁祖 淳皇帝부터 毅宗까지의 사실이 수록하였으며, <國忌>에는 태조-정조대의 조선의 역대 임금과 왕비의 忌日·陵號·諡號 등을 기록하였다.
    본문에 정조대까지의 사실만이 기재된 것으로 보아 순조대 무렵 필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 11.09.11 18:47

    명이 곧 조선이고 조선이 곧 명이 맞는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숭명하고 명을 부르짓었던 모든 사대부이신 조상님들은 조선의 충신이었을 뿐입니다. 이제 조상님들의 누명을 벗겨야 할 떄인것 같습니다.

    얼마전 명의복을 중국에서 공개하였습니다. 그냥 한복이더군요. 건승하십시오.

  • 11.09.12 01:06

    김홍필 선생님....
    본인이 본인의 글에 댓글을 다시는 형태...회원임들을 지치게 하시는 글습관 같아 안타깝습니다.

  • 작성자 11.09.14 10:04

    오랜만입니다. 홍진영 선생님...
    위 본문은 천상희 선생님의 글인데, 제가 스크랩하였습니다.
    댓글을 많이 쓰는 습관은 저의 연구 스타일입니다.
    저는 생각이 나는 대로 즉시 인터넷 포털에서 관련 자료를 찾으며 검토합니다. 앞으로도 양해를 구합니다.

  • 작성자 11.09.15 12:41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명(明)나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부음(訃音)이 이른 시기가 12월 22일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명(明)나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기신일(忌辰日)은 12월의 22일입니다.
    ---------------------
    이것은 천상희 선생님의 주장입니다.

  • 작성자 11.09.15 12:41

    朱 元璋[しゅ げんしょう、天暦 元年 9月 18日(1328年 10月 21日)~ 洪武31年 閏 5月 10日(1398年 6月 24日)、在位:1368年 1月 23日 ~ 1398年 6月 24日]は、中国の明朝の創始者であり、初代皇帝である。
    廟号は太祖(たいそ)。諡号は開天行道肇紀立極大聖至神仁文義武俊德成功高皇帝。
    [출처=위키백과(일본어)]

  • 작성자 11.09.15 12:42

    명(明)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 원(元) 천력(天暦) 원년(元年) 9월 18일(1328년 10월 21일) ~ 홍무(洪武) 31년 윤(閏) 5월 10일(1398년 6월 24일)]는 명(明) 나라를 건국한 초대(初代) 황제(皇帝)[재위(在位) 1368년 ~ 1398년]이다.
    [출처=위키백과(한국어)]

  • 작성자 11.09.15 12:46

    바로 위의 자료에 따르면,
    명(明)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의 기신일(忌辰日)은 음력(陰曆)으로 윤(閏) 5월 10일입니다.
    따라서, 천상희 선생님의 주장에 오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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