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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
90년대에서 초반에서 중반 그리고 후반 당시엔 사회의 변동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을 입학할 때만 해도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전화기를 집에 설치한 친구는 거의 없었고 연탄을 때고 사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중반 복학 이후 90년대 후배들과 세대차이도 느꼈지만 당시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컴퓨터였습니다.
군대에 가기전 컴퓨터는 일부 공대생의 전유물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고서(숙제)는 워드프로그램을 이용했고 군대 가기전 끽해야 타자기로 숙제를 내던(이것도 좋은 점수) 저에게 군대에서 타자기는 약간 만저 봤어도 워드의 등장이 가져온 충격은 너무나 컷고 군대가지전 보던 사회과학서적이나 역사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막걸리 한잔을 하며 후배들에게 떠들어 봐야 지나간 시절의 헛소리고 유행 같던 학생운동도 소수의 전유물로 바뀌고 있을 무렵 그렇게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섰는데 저는 오히려 역으로 연탄불에 자취를 하고 10여년을 다운 하는 듯한 생활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연탄불이 꺼져 있고 연탄불을 피울 동안 침낭안에 들어가 당시 유행하던 모형잡지나 군사관련 서적을 보는 재미는 혼자살면서 누구에게 방해 받지 않던 시기였는데 그땐 그게 무언지 몰랐습니다.
아무튼 제 또래 치고서 어릴적 조립식 모형을 손대보지 않은 분들은 없었겠지만 성인이 되어 그것도 직장을 다니면서 색을 칠하고 책을 봐가며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연히 그 취미는 저의 전유물 밖에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혼자 살던 시기다 보니 친구들의 왕래가 잦았고 돈은 못벌어도 술은 꼭 사고 비싼 술집은 갈 수 없으니 친구들과 지인들은 저의 좁은 집에 모여 치킨을 시켜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면서 지난 80년대를 추억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이면 일상에 다시 바빠지고 그중 일자리가 없는 친구는 집에서 제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당시 친구는 방을 다치우고 남는 시간에 방에 있는 킷트를 만들고 혹은 솜씨가 있고 재미를 느끼는 친구는 붓질을 하여 인형을 도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중 부천에 누님이 문방구를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휴가를 받은 겨울이나 여름에는 그 친구가 가게를 보던 곳에 가서 킷트를 샀거나 학생들이 만들기를 하면 만들어 주고 방과 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보통 모형점에 죽치고 앉아(속칭 죽돌이) 모형을 만든것이 아니고 문구점을 친구와 같이 보면서 휴가를 즐겼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천원미동인가 심곡동인가에 정원킷트라는 작은 모형점이 있었는데 그곳을 우연히 지나다 본 디오라마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밤이 늦은 시간 친구와 술한잔을 걸치고 그곳 앞을 지나는데 진열장 앞에 만들어진 디오라마를 보닌 상당한 실력이었던 것 같고 30분간을 그 친구와 한참 보다가 간적이 있습니다. 그 후 부천과 가까운 인천의 제물포 과학도 들려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얼마후 시골살림을 정리하고 안양에 정착을 했습니다. 당시에도 혼자사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연탄을 때지 않고 기름 보일러로 바꿨는데 이게 조작만 잘하면 방도 뜨끈하고 퇴근 후에도 바로 식사도 할 수 있고 가장 좋은 건 자리펴고 모형을 만드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시내에 있는 모형점을 순례했습니다.
그전 시골에 살때는 서울의 모형점을 주로 갔는데 이때 부터는 수원과 과천 그리고 안양 그리고 관악구 구로구 넓게는 부평으로 싸돌아 다녔습니다.
일단 시골 살때 다니던 서울의 모형점의 면모를 소개 하겠습니다.
일단 취미가에 알려진 측면도 있었지만 가장 먼저 들렸던 곳이 왕십리 디오라마였는데 간판 자체가 마포디오라마와 같이 프랜차이즈가 아닌가 생각을 했었는데 동서울에서 가까워 자주 들렸습니다. 사람 좋은 김문규사장님 교수님 스타일로 손님이 가면 질문에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시고 간혹 저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방문객에게도 인상 한번 안쓰고 '이런것은 지금 없고 언제쯤 입고되며 아마 이렇게 기다리면 된다!'등으로 제가 열정있고 돈있으면 당시 모형점을 차려 사업을 한다면 김사장님을 닯고 싶을 정도로 정감있는 모형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대공원 근처에 있던 갑산과학 이곳은 사장님 보다는 젊은 알바생이 자리를 지켰던 것 같은데 이분 또한 손님이 오면 참 친절했었는데 당시 저는 그렇게 찾던 105mm 101곡사포를 6천원에 구했는데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당시는 카다록을 보고 점찍어 샀는데 모형사의 사장님이나 점원의 정보가 없으면 엄청난 발품을 팔고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당시 갑산과학에서 꿈에서 보던 모형을 사면서 그 당시의 기억은 크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송파쪽 장미 아파트 안에 있던 알파과학도 킷트가 산을 이룬 곳이 었는데 제가 가면 운이 없었는지 문을 닫는 날이 많아서 사장님과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메이커의 제품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삼선교와 성북의 과학사들을 다녀봤는데 이쪽은 군에 있는 후배 녀석이 철원에 있을때 면회를 다녀오다가 꼭 들렸는데 아침에는 문을 닫아 볼 수 없어 꼭 오후 쯤에 모형점에 다녀가기 위해 철원에서 아침을 먹고 겨울엔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서울에 들어와 이곳 모형점을 들렸는데 제품의 가짓수는 여느 모형점과 비슷했는데 놓여진 작품을 구경하기여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모형의 중심지 신촌... 특히 취미가에 늘 광고가 나왔고 통신판매가 용이하도록 제도화 해놓은 곳이었는데 직접 찾아 가는 재미 또한 좋았습니다. 당시 진열장엔 취미가에 나왔던 작품이 직접 진열되어 실물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당시 긴 장포신의 M107 이 마포 디오라마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사장님이 계실적도 있었지만 주로 모형을 즐기는 알바생들이 있었는데 당시 비행기 패널을 파는 용도의 템플레이트를 이분들에게 샀고 사장님에게 모형에 대한 것을 여쭈니 친절하게 말씀해 주시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역사속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촌 청기와 주유소 근처의 우주모형 지금도 근처에 있는데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게라지 킷 대리점으로 김정욱 사장님님과 회원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특히 기억나는 것은 패널라인이 뚜렸한 비행기 모형과 '이걸 어떻게 해야 멋지게 칠할까'물었을 때 도료와 신너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던 김사장님이 기억나고 이곳은 인젝션 킷트도 많았지만 게라지 킷과 각종 자료집 그리고 과월호가 많이 비치되어 있던 곳이고 지금도 게라지 메이커를 공급하는 총본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촌 다주쇼핑에 있던 과학사가 기억나는 데 이곳은 사장님이 연세드신 여자분이셨는데 만들어 놓은 작품 중엔 오래된 작품이 많았는데 과학사의 역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서구 쪽의 곰달래 길에 곰달래 하비라는 모형점이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주인은 젊은 두분이 동업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오래된 제일과학의 인형들을 구할 수 있었고 비슷한 또래 내지 저보단 젊은 분이셨는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근처 대로상에 모형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깔끔한 실내와 다양한 구색의 모형점이 있었는데 당사 바깥양반은 물건을 해오시고 다른 직장을 다니셨는지 사모님이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무척 친절하시고 이곳에도 자주 들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서대문 대신고 앞의 대신모형이 기억나는데 실내가 참 깔끔하고 사장님이 조용하시고 차분하셨는데 제품 진열과 자료집 구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가장 중심인 남대문 시장안 백화점 안에 있던 모형점 그 후 신용산역 앞으로 이전을 하는데 이곳에 가면 이로코이즈 헬기가 있는 디오라마가 유리케이스에 멋지게 있었습니다. 근처 화방골목이나 문구점을 들리면 꼭 들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근처의 동학사 ... 이곳을 찾는다고 근처를 기웃거리면 제 인상이 않좋은지 아닌면 비상시국이라 그런지 꼭 저를 세우고 용건을 묻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동학사를 찾다가 효자동 안쪽의 문구사를 갔는데 문구사 답지 않게 타미야의 인형킷이 가득있는 것이 신기해서 산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동학사 연륜이 느껴지는 가게 답게 앞에는 오래된 디오라마와 작품이 있었는데 남향이라 그런지 태양빛에 많은 것이 바래져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 가니 당시에도 연세가 드신 사장님이 가게를 보시고 안에는 무선비행기와 오래된 킷이 걸려 있고 간혹 오래된 킷과 가게의 역사를 증명하는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그 후 13년이 지난 시간에 들렸을때도 사장님은 건강하셨고 모형점은 나름 어렵지만 추억을 팔고 계셨습니다.
사진에 나온 잡지들이 나온 90년대 똑같이 창간호를 냈지만 어떤잡지는 10년 이상을 유지했지만 어떤 잡지는 단기간에 그치고 또 어떤 경우는 제목이 바뀌어 합병을 하거나 발간하는 사장님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취재라는 곳도 봐왔습니다. 같이 일하다가 헤여지기고 하고 독자 입장에서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만큼 이땅에서 계속적으로 책을 낸다는 것을 어려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혹자는 볼것이 없다 혹은 인터넷에 만족한다고 하지만 종이책은 종이책 나름의 매력이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책을 사보고 궁금해 하던 시절이 행복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여건에도 계속 발간되는 책이 있는데 저도 5년전 까지는 샀었는데 지금은 여건이 허락하지 못하여 다 사지 못하고 간간히 사긴 하는데 어렵게 책을 펴내는 분들의 저작물을 사서 못보고 있는 점 아쉽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소한 것들이라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보물찾기 하듯 하는 것 보다는 미리 간직하고 곁에 두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일 땐 누구나 다 사서 보지만 사람이 없을 땐 별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모임과 직장 그리고 만남이 그렇듯이 사람이 모이고 떠들석 할 때 유행처럼 만나는 것이 재미도 있고 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솔직한 만남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90년대를 기억하면서 지나고 나니 그 당시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던 시간이었고 지금이 10년 후엔 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첫댓글 참 90년대는 모형계의 봄이였죠.. 말씀하셨던 왕십리 디오라마는 초기 모형점의 선구자격인 곳으로 성지와 같은곳이였는데 아쉽게도 2000년도 IMF의 벽을 넘지 못하고 페점했고요 (한때는 잘되서 분점도 내고 하셨다는데..) 신촌과학과 의정부과학인가는 아버지들가 심촌이 운영하다 아들이 물러(혹은 딸이라고도 함..) 오늘의 네이버하비가 되었다고 하고요..참 한국 모형사도 알고보면 재미난 일들도 많고 알려지지 않은 일들도 많쵸 암튼 그 어려운 IMF 시기 이후 경제여파의 직격타를 맞아 사그러드나 했더니 용케 버텨 온라인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 씨리즈 재밌나네요.. ^^
왕십리 디오라마의 경우 제가 고등학생때도 에나멜 하나 사러 자주가곤 했는데 참 친절하게 잘 알려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막판에는 하비그라프트 (구 아이디어) 사 제품을 전속으로 출시하기도 했지만 모델러2000 쪽하고 무슨관계가 있었는지 (아마 여기 출신이 모델러2000 운영진 이였나봅니다.) 2000년대초반 아쉽게 문을 닫았습니다.
왕십리나 신촌의 우주모형의 경우는 성인회원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이 모델러 2000의 필진으로 작품을 만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왕십리나 우주모형은 모델러 2000의 스폰서로 계속적인 역할을 했는데 모델러2000은 초창기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편성체제를 바꾸고 결국은 군사잡지를 내던 군사세계와 합쳐지고 그곳에서 컴뱃암스를 내고 그리고 군사세계는 군사세계라는 잡지가 나왔는데 군사세계는 안승범님이 그리고 모델러2000쪽에선 임지현님이 하시다가 현재는 디펜스 타임스코리아라는 군사잡지까지 이어지는데 한 7~8년전에는 김재우님이 발행인이었고 그전에 갈라진 것이 군사연구라는 곳이며 그 잡지가 밀리리뷰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정확한 것을 모르나 모델러2000의 경우 취미가도 그러했지만 창간호 부터 반품이 발생하고 그것중 재고가 빨간페인트로 처리되어 나와 있는 것을 너무 아까워 삿던 기억이 납니다. 취미가도 있긴했는데 정도가 덜했던 것 같고 당시 느낌은 모형의 내용이나 이런 걸 떠나서 편집의 노하우나 출판사의 상황을 독자 입장에서(단순히 제 사견입니다.)판단했을때 모델러2000의 상황이 취미가 보다 어렵지 않았나 생각하고 모델러 2000의 경우 킷트나 과월호도 출판사에 가서 구할 수 있었고 취미가도 당시는 어려웠지만 나름의 내공으로 버틴 것 같습니다. 모델러 2000이 없어진 것을 큰 충격이었습니다.
전혀 가보질 못한곳 들이라 알수가 없지만 왠지 제가 그 흔적을 찾아 다니는듯 합니다.^^
깜장 고무신님!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지방에 살고 있을 때라 자세한 면면은 몰랐었습니다. 그냥 잡지에서 소개되었던 곳을 순례하던 정도였습니다.
혹시 쥐띠 아니신지요~~~ 옛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지금은 너무 다들 너무 좋은 환경에 있는듯 하네요....열정은 예전만 못하지만....
혹시 쥐띠라면 60년생~ 절대 그 연세는 아닙니다. 그럼72년생 그럼 좋겠습니다. 양띠이구요. 90년대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전쟁기념관이 용산에 개관하고 국군의 날 행사도 크게하고 군사잡지들도 많았고 모형점도 걸어서 다닐 만큼 많았구요. 단 지금처럼 모형킷을 정리하여 사는 것을 어려웠습니다.
예전 모형점 생각하면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시대가 바뀌니 어느날 썰물처럼 사라진 모형점들과 그때 사장님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참 궁금할 때도 많네요.
이병장님의 과거 고해성사를 들으니 저도 비슷한 느낌이 계속해서 드네요. 역시 모형 좋아하는 사람들은 연배를 떠나 다 비슷한 모양입니다.
여튼 덕분에 과거 추억에 젖게 되니 왠지 아련한 느낌도 드는군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이 추억하고 경험하신 것에 비하면 그냥 들은 수준일겁니다. 저야 뭐 변방에서 그냥 들은 이야기이고 정확한 것은 첨삭되고 윤색되서 전설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취미가나 네오라는 잡지 그리고 모델러 2000이 있었던 시절이 행복했었는데 인터넷의 등장도 등장이지만 독자가 변하고 특히 솜씨있는 모델러나 자신들이 주류라고 생각하는 선구자들이 조금더 의지를 가지고 버티고 서로 감싸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옛 기억이 나는 글입니다.....그나마 서울에는 많았지만.....이곳 대구는 몇군데 없어서......발품 팔고 돌아 댕겼던 기억이......
그런데 막상 서울에 살게 되면서 모형점엔 발길을 뚝 끊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등장한 것도 등장한 것이지만 살수 있는 모형킷트도 제한되고 파는 것도 대동소이하고 오히려 모형점 보다 읍단위의 오래된 문방구에 많은 재고가 쌓여 있었는데 어느 순간 광풍이 힘쓸고 가고... 아무래도 모형점의 장점은 진열장의 모형과 실력있는 주인장과 그 손님들의 손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련한 추억입니다..............어릴적 서울가면 마포보다 왕십리, 고속터미널쪽은 꼭 돌아다녔었습니다... 용산 대성사까지요~ㅋ
이상하게 다른지역은 모형점이 줄지만 대구는 올해만 2곳이 늘었네요...ㅋㅋㅋㅋ
고속터미널 주변에 있던 모형점이나 용산의 대성사도 한때는 번창하는 것 같더니 문들 닫고 IMF이후엔 눈에 띠게 감소하고 폐점을 하는데 안타까웠습니다. 가끔 RC와 병행하고 규모를 줄이는 경우도 있었으나 잘나가고 도매를 하시는 곳도 실제 발품을 하는 외부일은 사장님이 하시고 나머지는 가족이나 알바생을 쓰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글 읽는 동안 잠시나마 붓도색하며 즐겁게 만들던 옛날이 생각났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즐거우셨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좋은 기억들은 사는데 활력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것이 확실한것 같습니다. 작품의 수준이나 실력을 떠나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고 신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