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다 씽 은 1889년 인도 펀잡 지방의 람퍼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부유했고, 부모님은 독실한
시크교도이었습니다. 선다 싱은 이러한 시크교의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싱은 국립학교가 집에서 멀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영국계
미션 스쿨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는 성경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14세 되던 해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시크교에
더욱 심취하면서 기독교를 저주하는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선교사들에게까지 나쁜 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지 없는 고통을 드 견디지 못하고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삼일간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지냈습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데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29세
되던 1918년부터 그의 이름은 인도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에 감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29년 40세의 선다 싱은 티벳 설교를 위하여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그는 실종되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실종과 관련하여 구구한 억측들이 나돌았습니다. "티벳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다.",
"시력이 악화되어 눈길 위에 쓰러졌다가 맹수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그럴듯한 추측이었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실한 답이 되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최후의 순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지금은 하나님 품에 안겨져 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인도에서 당대 사람들로부터 '성자'라는 칭호를 들었다는 것은 그의 삶이 어떠하였다는 것을 힘 있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한 가지 일화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네팔 지방의 한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온 여행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가는 방향이 같았음으로 그들은 동행자가
되었습니다. 살을 에이는 추위와 거친 눈보라를 맞으며 그들은 인가를 찾기 위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지만 인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참을 걷다가 한 노인이 눈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다 싱은 동행자에게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우리 노인을 데리고 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 겁니다” 그러자 동행자는 화를 내며 거절했습니다.“무슨 소리요? 우리도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저런 노인네까지 끌고 간다면 우리 함께 죽게 될거요”
그러나 선다 싱은 불쌍한 노인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노인을 업고 눈보라 속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동행자는 혼자 잰 걸음으로 먼저 달려가고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노인을 등에 업은 선 다싱은 갈수록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참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노인은 점차 무거워졌고 그의
온 몸은 땀으로 젖어 갔습니다.
선다 싱의 몸이 더운 기운으로 가득하게 되자 등에 업힌 노인이 차츰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조금도 춥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마을 입구에 그들은 꽁꽁 언 채로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앞서 가던 그 동행자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