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시에 제법 규모가 큰 이발소가 있었다.
이발소의 사장은 80년대 초부터 이발을 시작하였으며,
머리카락 한 올 튀어나오는 것도 허용치 않는,
매우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써,
그실력으로 많은 손님을 끌어 한 때는 자신의 밑에 20명의 이발사를 거느릴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손님이 줄어들어,
과거에는 하루에 수백명에 달했던 손님들이 요즘에는 50명 받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나이가 지긋한 단골들은,
이 이발관이 실력만은 최고라고 추켜 세워줬지만,
사장은 마음 한편이 쓰려왔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미용실로 탈 바꿈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직원들은 웅성거렸다
사장은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김이발사는 내일부터 펌 담당을하고, 박이발사는 내일부터 염색 담당자로 임명합니다."
이발사들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사장님, ㅇㅇ헤어는 미용실에 일하던 사람들을 스카웃 해와서 이발관들을 교육해줬다던데요..."
"여자 머리를 깎아본적이 없는데.. 염색도 평생 검정색만 해왔고요..."
사장은 기가 찼다
"아니, 다들 이발 경력이 10년이 넘었는데, 그 까짓것을 못하나요??!!"
더욱이 마음이 쓰린것은 옆동네 이씨 때문이었따
이씨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이발사로, 지금은 이발소를 'ㅁㅁ헤어' 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돈을 적잖이 벌고 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으며,
더욱이 이씨는 직접 이발하는 것을 그만두고 사람들만 부리며 돈을 벌고 있다 하였다
과거에 주위 사람들이
'더 이상 남자들이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지 않는다' 고 말할 때
이씨는 재빨리 미용실을 준비했으나
사장은
"아니, 남자가 어찌 체신머리 없이 여자들 노닥거리는데 가서 머리를 하겠어? 면도는 또 어쩌고?"
라고 자신이 떠들고 다니던 게 못내 속을 긁는 듯 했다.
"그래 세상이 변하면 나도 변해야지, 미용실로 바꿔야겠어"
사장은 간판집에 "ㅇㅇ헤어" 간만 의뢰를 맡기고는 직원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말했다.
이발소는 다음 날 바로 간판을 바꾸어 달고 영업을 시작했다.
워낙 기존에 실력으로 인정받던 이발소였기에 오픈 당일 많은 손님들이 모였다.
경력이 많은 이발사들 이었기에 펌이나 염색도 우려햇던 것과는 다르게 그럭저럭 해내기 시작했다.
다만, 남성컷은 큰 문제가 없었으나,
여성컷은 단발머리로만 커트해주었고
펌은 꼽슬거리는 아줌마 파마로만 만들어 주었다.
불과 한나절이 지나기 전에 손님들은 환불을 요청하며 아우성을 쳤고,
2~3일이 지나자 손님이 줄어버렸다.
사장은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했다.
'그래, 너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오픈을 한거야.. 직원들을 교육해야겠어..'
사장은 직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연예인 헤어스타일 사진을 쭉 늘어 놓은 후,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자, 이렇게 깎으란 말입니다. 마음 가짐이 중요해요,
머리카락 한올도 놓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두 시간의 연설을 끝내고 사장은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교육이 되었을거야'
하지만 역시 손님들의 불만은 여전했고, 매출도 줄어들고 있었다.
'흠... 역시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문제로군, 안되겠어 감독을 해야지'
옆에서 지켜온 바로는 이발을 마친 사람들의 머리가 영 지저분한게 아니었다.
자신이 이발소를 운영할 때는 포마드를 바른듯이 단정한 머릿결이 생명이었는데,
지금 이발사들이 깎는 머리는 구불구불하기도 하고, 머리 끝도 각기 길이가 달랐다.
'뭐 레이어드 컷?'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은 컷을 하는 동안 사람을 시켜서 머리카락이 튀어 나온 갯수를 세도록 했다.
손님 한명당 평균 50개나 튀어나온 것을 확인하고는 사장은 대노했다.
"이러니 우리 미용실이 망해가는 겁니다"
머리카락이 130개나 튀어나온 이발관은 감봉 조치를 받았고,
이발사들엑는 머리를 깎는 도중 몇 개의 머리카락이 튀어나왔는지 세어서
보고하도록 명령했다.
몇 일이 지나자 이발사 한명이 조심스럽게 사장에게 말했다.
"저기 사장님,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세느라 컷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손님들이 짜증을 냅니다
숫자를 세자니 시간이 길어지고, 그렇다고 머리깎는 속도를 빠르게 하자니
컷이 엉망이 됩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력이 길다고 똑똑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마음이 급해진 사장은 자존심을 접어두고 이씨네 미용실을 몰래 찾아갔다.
찾아간 미용실에서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분명 같은 시절에 일했던 이발사들이 세련된 머리를 척척 깎고 있었고,
손님이 대기하는 공간에는 커피, 녹차 등이 제공되었다.
머리를 깎는 중간에는 젊은 여자가 머리스타일에 맞는 옷/신발/장신구 등에 대해
팜플렛을 보여주며 조언을 해주었고,
쇼핑몰과 협업하여 손님이 원하는 경우, 의류등을 직접 구매할 수도 있었다.
손님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 여자는 전직 연예인 코디라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이씨를 바라보니 이씨는 머리깎는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올해 하반기 어떤 스타일이 유행할지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사장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저거군,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이렇게 뻔히 답이 정해져있는 질문을 해놓고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는 꼬락서니라니..
사장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어 소리를 질렀다.
"아니 , 당연하거 아닌가요? 둘다 해내야지!
머리를 빨리 깎으면서 머리카락을 빨리 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내일까지 보고하세요"
겁을 먹은 이발사는 다음 날
"가위질 속도를 더욱 빨리하도록 노력해서, 문제가 없도록 해결하겠다"
라는 보고를 했고 사장은 만족해하며 생각했다
'그것 봐, 다 방법이 있으면서 무조건 안된다고 하다니.. 요즘 이발사들은 패기가 없다니까'
하지만 이발사들이 가위질을 더 빨리하느라 머리 스타일은 더 엉망이 되었고
손님은 더욱 더 줄어들었다.
사장은 직원들을 다시 불러모아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앞으로 컷 시간은 6분으로 하되, 시간을 넘기면 혼쭐을 내겠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미용실의 사정이 어려워 4명의 이발사로 운영하려고 하니,
나가려는 사람은 말하라했다.
의외로 가장 젊은 5명이 바로 손을 들었고,
사장은 평소 자신에게 미용기술을 외부에서 교육받게 해달라고 떼를 쓰던 1명을 잘라버렸다.
그들은 6분내에 컷을 하고,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세느라 엉망으로 머리를 깎았다.
손님들은 6분밖에 깎지 않았는데 요금은 비싸고, 머리도 엉망이라고 항의했고,
경영 상황은 점점 나빠져갔다.
사장은 속상한 마음에 근처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순간 사장은 마음속에 번개가 뚫고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미용실이 망해가는 이유는 남들이 하는대로 해왔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었다.
남들과 다른것이 필요했다.
'만약 머리카락 끝에 머리빗을 매단다면 어떨까..'
'언제든지 머리를 빗을 수 있을거야.
이런 획기적인 생각을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지'
사장은 기분이 좋아졌다.
'당장 내일부터 이발사에게 머리끝에 빗을 매달라고 해야겠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이씨가 하던대로 미용실로 바꾸고,
교육도 철저히 시켰고,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세는 디테일도 있었고
대기실에 음료도 놓았으며, 어울리는 의류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컷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여 인건비도 대폭 줄였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미용실은 점점 어려워지고만 있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씨네 미용실은 머리카락을 윤기있게 만들어
빗질이 필요없을 정도의 영양 케어를 내놓자 대박을 치고 있었다.
'튀어나온 머리카락 숫자도 10개까지 허용하던 걸 1개까지로 줄여야지.
컷시간은 4분 30초로 줄이고
지금까지 해오던 걸 과감히 개혁하는거야..
사장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비틀비틀 일어나 집으로 가는 골목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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