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①이 19세 때 어느 상점 종업원으로 일하게 되었다.(Abraham Lincoln(1809~ 1865), the 16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worked as a shopkeeper at the age of 19.)
어느 날 링컨은 밤늦게 상점 문을 닫고 그날의 수입(收入, income)을 정리하다가 실수(失手, error)로 한 부인한테 3센트의 돈을 더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One day, Lincoln closed the store late at night and found out that he had received an extra three cents from a lady by mistake while organizing his income for the day.)
곰곰히 생각한 링컨은 곧 영수증을 갖고 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시간을 수소문 하며 헤맨 끝에 간신히 그 부인의 집을 찾아냈다.(Lincoln soon got up with the receipt and searched for hours, barely finding the lady's house.)
"부인, 정말 죄송합니다.
아까 제 상점에 오셔서 물건을 구매하셨 을 때 제가 잘못 계산해 서 3센트가 더 왔습니다.("I am so sorry, madam. When you came to my store and bought the product earlier, I miscalculated and received 3 cents more.)
돌려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링컨은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 3센트를 내밀었다.(I'm here to return it." Lincoln apologized politely and offered the three cents.)
맨 처음에는 의아(疑訝, suspicion)하게 생각하던 부인이 링컨의 얘기를 듣고는, "어머나! 이 돈은 백금보다 더 귀한 3센트군요.(At first, my suspicious wife heard Lincoln's story and said, "Oh, my God! This money is worth three cents more than platinum.)
이 몇 푼 안 되는 작은 돈을 되돌려 주려고 먼 길까지 이렇게 찾아오다니요?(You're coming all the way to give me back this tiny little money?)
젊은이! 청년의 그 고귀하고 정직한 마음씨는 틀림없이 인정받을 날이 올 거예요!"라며 감탄과 칭찬을 연발했다. (Young man! There will surely be a day when the young man's noble and honest heart will be recognized!" he said, expressing admiration and praise.)
결국 그 부인의 감격과 칭찬은 현실로 나타났다. 일생을 흐트러짐 없이 진실 한 삶의 자세를 견지한 링컨은 대통령이 되었다.(In the end, the lady's emotion and praise came true. Lincoln, who maintained a true attitude of life without disruption, became president.)
그는 지금까지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다.(Until now, he has been praised as a great person who is respected not only by Americans but also by people around the world.)
3센트의 돈이라면 우리 돈으로 따져도 불과 몇 십원의 작은 돈이다. 어쩌면 너무 작은 돈이라서 돌려주기조차 귀찮다 고 생각하기 쉽다.(Cent's money is only a few dozen won in our money. It's easy to think that it's too small to even give back.)
그러나 그 돈은 비록 작았지만 그것을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씨만은 몇 백만 불짜리 진심이다.(But even though the money was small, the heart to return it is a few million dollars.)
눈앞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불로소득만 을 탐해 황금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많다.(Many people become slaves of gold for immediate profit and only for unearned income.)
이권을 얻는 자리라면 체면 불구하고 아우성치는 오늘의 현실을 부정하지 는 못할 것이다.(If it is a position to gain interests, the shouting will not deny today's reality despite its face.)
그러나 언제나 진실은 참된 의미의 대가를 가져다준다. 작은 진실의 큰 행복, 이런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But truth always comes at a price of true meaning. The great happiness of a small truth, this meaning should not be forgotten.)
많은 사람들이 잘 사는 비결(秘訣, secret)을 물으면 요령(要領, ropes)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익만 을 쫓고 그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다.(Many people say that you should have a knack when asked about the secret of living well. So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only chase profits and cling to it.)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참된 의미에서 인생을 낭비(浪費, squandering) 하는 것이다.(But these people are wasting their lives in the true sense.)
= 華谷·孝菴 公認 大法師(佛學硏究員)의 좋은글 중에서 =
* 주석(註釋, annotation)
①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o 출생:1809. 2. 12 미국 켄터키 호젠빌
o 사망:1865. 4. 15 워싱턴 D. C
o 국적:미국관련 사건노예해방, 남북전쟁
o 업적:미국 노예해방령 선포,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통일된 미국을 건설, 민주주의 정부의 핵심을 규정하는 게티즈버그 연설
[요약(要約, summary)]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재임 1861~1865). 남북 전쟁에서 북군을 지도하여 점진적인 노예 해방을 이루었다.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이듬해 암살당 하였다. 게티즈버그에서 한 연설 중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다.
[본문(本文, the text)]
켄터키주(州) 호젠빌 출생. 가난한 농민 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노동을 하였기 때문에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독학하여 1837년 변호사가 되어 스프링필드에서 개업하였으며,
1834~1841년 일리노이 주의회 의원 으로 선출되었다. 1847년 연방 하원의 원으로
당선되었으나, 미국이 멕시코 전 쟁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인기가 떨어져 하원의원직은 1기로 끝나고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다.
1850년대를 통하여 노예문제가 전국적 인 문제로 크게 고조되자 정계로 복귀하 기로 결심하고,
1856년 노예반대를 표방하여 결성된 미국 공화당에 입당하여, 그해 대통령선 거전의 공화당후보 플레먼트를 응원함 으로써 자신의 웅변이 알려지게 되었다.
1858년 일리노이주(州) 선출의 상원의 원선거에 입후보하여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S.A.
더글러스와 치열한 논전을 전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더글러스와의 공개논전에서 행한 “갈려서 싸운 집은 설 수가 없다. 나는 이 정부가 반은 노예, 반은 자유의 상태에서 영구히 계속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는 유명한 말을 하여 더글러스의 인민주권론을 비판하였다.
선거결과에서는 패하였으나, 7회에 걸친 공개토론으로 그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대통령후 보로 지명 받았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것은 노예제에 대한 그의 견해가 과히 급진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 쪽에서 노예제 유지의 브리켄리지 와 인민주권의 더글러스의 두 명의 후보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링컨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당선과 함께 남부 제주(諸州)는 잇달아 합중국을 이탈하여 남부연합국을 결성하였다.
링컨은 이미 노예제를 가지고 있는 남부 제주의 노예를 즉시 무조건 해방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앞으로 만들어질 준주(準州)나 주(州)는 자유주의로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1861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 링컨은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 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4월 섬터 요새에 대한 남군의 공격으로 마침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남북전쟁 이 시작되었다.
전쟁 중 그는 의회에 대하여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요청하고, 독재적 권한을 행사하여 인신보호령장의 정지, 언론집 회의 자유의 제한을 강행, 반대당으로부 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여러 세력을 조정하 여, 북부의 강경론자들을 누르면서 노예 해방을 점진적으로 단행하는 것이었다.
전황은 처음에는 북군에게 불리하였으 나, 1862년 9월 남군이 수세로 몰린 때를 노려 노예제 폐지를 예고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함으로 써, 북부와 해외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전황을 일거에 유리하게 전개하는 데 성공 하였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설 립 기념식 연설에서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다.
전쟁 중인 1864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는, 재선 전망이 불투명하였으나, U.S. 그랜트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승리가 계속된 것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1865년 4월 9일 남군사령관 R.E.리가 애포매턱스에서 그랜트에게 항복함으로써 남북전쟁은 종막을 고하였다.
전쟁이 종막에 가까워짐에 따라 관대한 조치를 베풀어 남부의 조기 연방 복귀를 바랐으나,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 에서 연극관람 중 남부인 배우 J.부스 에게 피격, 이튿날 아침 사망하였 다. <끝>
첫댓글 좋은 작품 감상 감명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