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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드시면 어디선가 큰 소리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우리 동네는 괜찮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십니다. 가스불은 잘 잠갔는지 곤충은 뽑아 두었는지 자다가도 일어나 한 번 더 살피러 가시는 그 마음 저는 잘 압니다. 장마철이 다가오면 또 어디가 잠겼다는 소식이 들겠지? 자식네 집은 안전할까? 잠을 설치십니다. 거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리는 밤이면 가만히 누워 계셔도 마음이 함께 흔들리십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칼처럼 가슴을 베고 지나간 말이면 그 한마디가 며칠을 따라다니며 잠을 빼앗아 갑니다. 자식이 무심코 던진 말 며느리의 표정 한자나 오래된 친구의 변한 눈빛 이런 작은 칼날들이 가슴 안쪽을 가만히 베고 지나갑니다. 새벽면 무서운 꿈에 놀라 계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실 겁니다. 먼저 가신 분이 눈에 보이시기도 하고 까닭 없이 가위에 눌려 한참을 못 움직이실 때도 있으셨을 겁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내 갇힌 듯한 그 기분 버부님들도 잘 아실 겁니다. 손발이 묶인 듯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고 자식한테 말하자니 짐이 될까 싶어. 또 그저 삼키십니다. 미운 사람 얼굴이 자꾸 떠올라 잊으려 해도 가슴 한쪽에 원망이 가시처럼 박혀 빠지지 않을 때도 있으실 겁니다. 평생 한 번도 못 들어본 그 매듭이 들으면 눈앞에 더 또렷이 떠오릅니다. 입자 입자 하시면서도 그 사람 얼굴이 다시 떠오르면 가슴이 또 한 번 젖어내기 쉽니다. 버부님 이런 밤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드시지 않으십니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자꾸 닥치는 것일까? 왜 나만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할까? 그 한숨 한자나 오늘 밤 제가 가만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한숨을 받아들일 뿐이 한 분 더 계심을 오늘 밤 가만히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2500년 전에 우리 일상에 닥치는 모든 어려움을 풀어주시는 길을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굴도 물도 바람도 하늘도 무서운 꿈도 답답한 얽매임도 미운 마음도 일곱 가지 모든 어려움을 한 분께서 다 살피시고 풀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 한 분이 바로 어부님께서도 평생 그 이름을 이대 담아 오신 관세음 보살이십니다. 오늘 밤 버부님께서 들으실 이야기는 바로 그 일곱 가지 어려움을 풀어주시는 자비의 손길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치 캄캄한 밤하늘을 일천재의 별이 한꺼번에 떠올라 고도 한 사람도 어둠 속에 두지 않으시는 그 모습과 달랐다. 별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머리맡을 비추고. 또 다른 별 하나 또 다른 누군가의 한숨을 더 많이 살피시고 그 자비의 손길이 오늘밤 거북이 머리맡에도 가만히 내려와 머무실 것입니다. 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들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잠이 드시면 드시는데 깨어 계시면 계시는 대로 오늘 밤 밤새음 보살에 자비가 버부님 가슴에 작은 씨앗 하나 심어 드릴 것입니다. 그 씨앗이 며칠 몇 주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자라나 고부님 일상에 일곱 가지 매듭을 한자락씩 풀어 드릴 것입니다. 자 이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시고 숨을 한 번 더 길게 내쉬어 주십시오. 오늘 하루의 무게를 베개에 내려놓으시고 관세음. 보살에 자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시겠습니다. 어부님들 이제 본론 첫 번째 마디로 천천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시는 분은 관세연 보살이십니다. 그 이름 한 자 한 자일 이미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관자 즉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세자 즉 이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농작 즉 모든 소리 모든 음성이라는 뜻입니다. 한데 모으며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 소리에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 베개 접시는 눈물 잠든 사이 흘러나오는 흐느낀 그 모두가 관세음보살 깨는 다 들리는 음성입니다. 어부님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가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이름을 정확히 부르지 않아도 그 한숨까지 살펴 들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지 않으십니까? 오늘 밤 그 따뜻함을 천천히 더 깊이 모셔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품의 이름인 보문이라는 두 글자도 가만히 풀어두고 봐야 합니다. 보좌 즉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문자 즉 문이라는 뜻입니다. 한데 모으면 두루 열린 문이라는 말이 됩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열린 문이 아닙니다. 동쪽에서 오시는 분도 서쪽에서 오시는 분도 잘 사시는 분도 어렵게 사시는 분도 누구든 들어오실 수 있도록 사방으로 활짝 열린 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관세음 보살의 자비는 좁은 문이 아닙니다. 신분 따지지 않으시고 학식 따지지 않으시고 살아온 길 따지지 않으십니다. 부르는 한 마음이면 누구든 그 문 안으로 모셔드리십니다. 그 문이 오늘 밤 법은님의 머리맡에도 한자락 열려 있습니다. 법화경 제25 관세영 보살보문품 그 첫머리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으시는 동안 그저 호흡만 가만히 두시면 됩니다. 선남자예요. 만약 한량 없는 100천만 원 중에서 모든 고뇌를 받을 때일 때 관세형 보살이 개심을 듣고 한 마음으로 큰 경호를 부른다. 관세음 보살께서 곧 그 음성을 살피시어 모두 다 해탈을 얻게 하시느니라. 한 마음으로 부르면 곧 살피신다. 2 한 9절이 오늘 본문의 뼈대입니다. 여기 한 마음이라는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 마음은 큰 소리도 아니고 긴 기도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생각 없이 의심 없이 그저 그 명호 하나의 마음을 모으는 자리입니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관세음. 보살 한번 부르시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한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심 측려 즉 한 마음으로 명호를 부른다는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렵지 않으십니다. 다 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2 한 9절만 마음에 담아 두십시오. 또 한 가지 곧 살피신다는 그 고시라는 글자도 마음에 깊이 새겨 드시면 좋겠습니다. 일에 비가 아니고 101 비가 아니고 굿입니다. 불우는 그 자리 그 호흡 그 한 마음 위에서 응답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그 응답을 곧장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살께서는 이미 곧 살피고 계신 것입니다. 응답은 며칠 뒤에 들어오는 좋은 인연으로 한 달 뒤에 풀어지는 부분 매듭으로 어느새벽 가만히 가벼워지는 어깨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부르신 그 밤이 헛된 밤이 아닙니다. 잠드시는 그 시간에 이미 살풨이 시작되어 있는 밤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더 깊은 약속을 하나 더 주셨습니다. 관세음 보살께서는 부처님 몸으로 제도해야 할 이에게는 부처님 몸으로 나타나시고 비구의 몸으로 제도해야 할 이에게는 비구의 몸으로 나타나신다. 이 말씀이 그 유명한 33홍신 즉 33가지 모습으로 응마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은이라는 글자는 응답한다는 뜻입니다. 신이라는 글자는 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가장 알맞은 옷을 입고 다가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어부님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외로울 때 옆집 할머니가 따뜻한 죽 한 그릇 들고 오시던 그 손길 병원에 누워 계실 때 모르는 간호사 한 분이 가만히 손을 잡아주시던 그 온기 자식이 멀리 있어 접적할 때 마침 전화 한 통이 오던 그 시간 그 모든 모습 속에 관세음. 보살께서 계셨다면 어떻겠습니까? 부처님 옷을 입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얼굴 가장 받기 쉬운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것이 음심의 자비입니다. 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그런 분이 계시구나. 그 마음 한 자락만 품으시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부부님 가운데 이런 의심이 드시는 분이 분명 계실 것입니다. 정말 부르기만 해도 정답이 옳을까?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는데 살펴주실까? 내 정성이 부족한데도 들으실까? 자연스러운 의심입니다. 부끄러워하실 일이 아닙니다. 옛 선사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의심하셨습니다. 의심을 풀어드리고자 부처님 시대부터 이 땅까지 내려오는 한 짜릿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드리겠습니다. 신라 때 일입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노힐 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도반의 일화입니다. 두 분은 어릴 때부터 친한 것이셨습니다. 같이 산에 들어 함께 수행하기로 약속하시고 백월상이라는 산 깊은 곳에 두 암자를 지으셨습니다. 노희 부득은 동쪽 골짜기에 발가락은 북쪽 바위 아래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두 분 다 큰 뜻을 품고 묵묵히 정진하시던 어른들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산에 큰 눈이 내렸습니다. 기도 보이지 않고 바람도 거쨔습니다. 그때 한 젊은 여인이 달달박박이 머무는 암자 문 앞에 다가와 하룻밤 묵게 해다가 청하셨습니다. 달달한 빵은 단호하셨습니다. 청정한 수행처에 여인을 드릴 수 없다 하시며 문을 닫으셨습니다. 유를 지키시는 마음 묻으셨던 것입니다. 그 마음 또한 귀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다시 눈을 해치고 또 이우득의 암자로 가셨습니다. 독일 구독은 문을 여시고 나뜻한 자리를 내어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여인이 산길을 느끼셨습니다. 농이 부둑은 깨끗한 물을 길어다 드리고 정성껏 산고라지를 하셨습니다. 유래 형식이 아니라 사람의 한숨 한 음성을 먼저 살피셨습니다. 새벽이 되었을 때 그 여인은 노일 부득에게 따뜻한 물에 몸을 씻게 하셨습니다. 그 물이 노일 부득의 몸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서 노이 부득은 미륵의 모습으로 환히 빛나셨다 합니다. 그제야 그 여인이 누구이신지 드러나셨습니다. 바로 환세음 보살이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약한 모습 가장 도움이 필요한 요소 한밤중에 길을 잃으신 만삭의 여인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응신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거룩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시험받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오십니다. 달달 박박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아시고 목이 부둡게 달려가셨고 남은 물에 몸을 씻으시면 그분 또한 무량 수불의 모습으로 깨달음에 드셨다 합니다. 두 도반이 모두 함께 자비의 강에 드신 것입니다. 어부님들 이 옛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져갈 마음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황태영 보살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모습 가장 가까운 얼굴로 오십니다. 둘째 그분을 알아보는 길은 유레 칼날이 아니라 한숨을 살피는 따뜻한 손길에 있습니다. 녹이 부득의 그 손길이 곧 관세염의 손길과 만난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밤 한 번 잠자리에 드시기 전 가족의 한 숨 이웃의 한숨을 살짝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살함의 자리에 이미 관세한 보살께서 함께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자락이 있습니다. 노기의 구두께서 그 여인의 산바라질을 하시던 그 새벽 마음속으로 큰 소리로 보살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눈앞에 한숨을 살피셨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관세음 보살께서 이미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자리입니다. 살피는 마음이 곧 보살의 마음입니다. 부르는 잎과 살피는 손길이 만나는 자리 그 자리에서 관세음 보살에 응답이 환히 드러납니다. 그러니 법은 영어를 부르시는 이유가 곁에 한숨을 살피시는 일을 서로 다른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두 일이 만날 때 보살의 자비는 한층 더 또렷해집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비율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그림 한 폭입니다. 시골 마을 한밤중에 마당에 나가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십시오. 바늘에 별이 떠 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1000개의 별이 떠 있습니다. 그 별빛이 어느 한 집에 지붕만 비추겠습니까? 큰 기와집도 비추고 외딴 초가집도 비추고 길 잃은 나그네의 발끝도 비춥니다. 어느 한 사람도 어둠 속에 두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모두에게 골고루 빛을 내려줍니다. 관세 음보살의 자비도 불화합니다. 누구는 살피시고 누구랑 마트리 씨는 그런 자비가 아닙니다. 온 마음으로 부르는 모든 음성을 다 살피십니다. 부르는 사람의 처지가 잘났든 못 났든 정성이 깊든 얕든 그 별빛은 똑같이 내려옵니다. 게다가 그 별빛은 우리가 잠들 사이에도 묵묵히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잠들어 별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별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 눈만 잠시 감겼을 뿐입니다. 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관세음 소살의 자비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보살을 입고 살아온 세월이 있어도 보살께서는 그 세월 동안에도 우리 머리맡을 그대로 계셨습니다. 다만 우리 쪽 문이 잠시 감겨 있었던 것뿐입니다. 오늘 밤 한 마음으로 한 번 부르시는 그 호흡이 잠시 감겼던 우리 눈을 살려신 다시 뛰게 해 드립니다. 또 하나 더 가까운 자리에서 비유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백마다 손주를 키워보신 어른들이 계실 것입니다. 손주와 마당에서 놀다가 작은 한숨을 한번 쉬어도 할머니께서는 그 소리를 귀신같이 들으십니다. 부엌에 계셔도 들으시고 빨래터에 계셔도 들으시고 멀리 마실 가셨다가도 그 한숨이 떠오르시고 누가 가르쳐 드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귀가 그렇게 열리는 것입니다. 손주가 할머니 부르지 않아도 그 작은 한숨 하나만으로 할머니의 길이 돌아옵니다. 관세연 보살께서 우리 용서를 살피시는 그 마음이 꼭 그러합니다. 우리가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한자락 한숨을 이미 살피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 쪽에서 한번은 입술을 깨어 그 면모를 불러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한 마음을 또렷이 모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손주 한 숨을 다 들으시지만 손주가 할머니 한방 부를 때 비로소 두 사람의 마음이 한 줄로 이어집니다. 관세영 보살을 부르는 일도 그러합니다. 보살께서는 이미 다 살피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 명호를 한번 부를 때 우리 자신의 마음이 한 줄로 모이고 그 자리에서 응답이 또렷해집니다. 부르는 것은 보살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자신의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일입니다. 그러니 법원님들 오늘 밤 잠자리에 드실 때 한 마음으로 가만히 한번 불러보십시오. 큰 소리도 필요 없습니다. 정자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관세음 보살 한 번 부르시면 충분합니다. 그 한 번이 보문품 천 머리의 약속과 곧장 이어집니다. 한마음으로 부르면 곧 그 음성을 살피시어 해탈을 얻게 하신다. 그 약속이 오늘 밤 버드님의 베개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본론 첫 번째 마디는 여기까지 모시겠습니다. 관세음 보살이라는 이름의 뜻 고문이라는 두루 열린 문의 뜻 한 마음으로 부르면 살피시는 약속 33 가지 응신으로 다가오시는 잠이 그리고 노예 부득과 달달 밥과 두 도반의 옛 이야기 이 5자락이 오늘 잠자리에 첫 베개가 되어 드릴 것이고 다음 마디에서는 그 자비가 우리 일상의 일곱 가지 어려움을 어떻게 한 가닥씩 풀어 주시는지 고문품의 진란을 한 분 한 분 따라 모셔보겠습니다. 호흡을 그대로 2시고 어깨의 힘만 살며시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버부님들 이제 두 번째 짜락으로 가십니다. 보문품의 자비를 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셨다면 그 자비가 본인이 이상에 닥친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주시는지를 살펴보실 차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문품 안에서 그 어려움을 7 가지로 묶어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신란 즉 일곱 가지 어려움이라 부릅니다. 이 곱이라는 숫자가 어렵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풀어보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두 번씩은 다 겪어 본 일들입니다. 천천히 한 자락씩 손바닥 펴 보이듯 풀어 드리겠습니다. 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드시면서 귀로만 흘려 들으셔도 충분합니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시려 애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저 따뜻한 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듯이 이 소리가 귀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잠속으로 흘러가도록 주십시오. 먼저 첫째와 말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봄은 만큼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불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못하고 큰 물에 떠내려가도 곧 얕은 곳을 얻으리라. 첫째는 혼란 즉 불의 어려움이고 둘째는 순환 즉 물의 어려움입니다. 옛 사람들에게 불과 물은 가장 무서운 재난이었습니다. 지금 부부님들의 일상 안에서도 그 결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려두고 가스 다른 일을 하시다. 놀라셨던 점 한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또 큰 비가 며칠을 내리실 때 마당 한쪽으로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철렁하셨던 이유도 있으실 겁니다. 가까운 친지가 화재로 집을 잃으셨다는 소식에 며칠 잠을 설치신 일도 있으실 겁니다. 부처님 말씀은 이런 작고 큰 두려움을 모두 안에 품고 계십니다. 한 마음으로 관세음을 부르면 그 불이 그 자리에서 찾아들고 그 물이 곧 얕힌 자리를 보여 발을 디딜 곳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외부의 불만을 끄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한복판에서 활활 타오르던 분노의 붐 후회의 불 걱정의 불도 그 자리에서 한 자락씩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셋째와 넷째입니다. 몸은 품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바람이 배를 흔들어 험난한 바다에 떨어져도 그 면모를 부르면 큰 바람이 가라앉으리라. 칼날의 마리마디 끊어질지라도 그 칼이 부서지리라. 셋째는 풍란 거센 바람에 어려움입니다. 넷째는 도난 칼의 어려움입니다. 부부님들 바람이 우리에게만 별일이겠습니까? 태풍이 지나가는 밤 창문이 덜컹거릴 때 잠 못 이루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또 바깥 바람만이 바람이 아닙니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바람 갑자기 일이 잘못되시지 않을까 하는 불안의 바람 자식들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미래의 바람도 모두 이 풍란 안에 들어 있습니다. 또 칼은 부엌의 칼만이 칼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가장 깊은 칼입니다. 자식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가슴 한복판이 그어지는 듯하셨던 점 며느리나 사위의 차가운 한마디가 며칠을 마음에 박혀 빠지지 않으셨던 일 그것이 다 도난입니다. 관세영을 한 마음으로 부르면 그 바람이 가라앉고 그 칼이 마음 안에서 부서져 도로 배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칼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칼날이 무뎌져 더 이상 우리 가슴을 깊게 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섯째 여섯째 7잔입니다. 저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차 마찰의 어둠이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손과 발이 흉태에 묶여도 풀려나리라 원수 도적의 험한 길에서도 다 자비심을 일으키리라 다섯는 비난 어둠과 무서운 기운에 어려움입니다. 6째는 봄만 묶이고 갇힌 듯한 어려움입니다. 일곱는 원정란 미운 사람과 원망의 어려움이 있다. 부부님들 새벽 3시에 깨셨다가 천장이 무겁게 내려앉는 듯 이후 그것이 원정난의 결입니다. 평생 살아오신 동안 그 한 사람이 누구이신지 지금 천천히 떠오르실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은 이 색도 관음의 자비 안에서 다 풀린다. 하셨습니다. 어둠은 멀어지고 묶임은 풀리며 미운 사람의 얼굴이 어느 날 측은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일곱 가지를 다시 한번 가만히 헤아려 보십시오. 불 물 바람 칼 어둠 묶임 미움. 우리네 일상이 이 일곱 자락 안에 다 들어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미 2500년 전에 우리 1분 한 분의 살림살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살림살이에 굽이굽이마다 관세음 보살의 손길이 미치도록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명호 한마디입니다. 어렵고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관세음 보살 이 다섯 글자만 한 마음으로 부르시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한 분의 옛 어른을 잠깐 모셔 오겠습니다. 삼국유사일 광덕과 엄장이라는 두 도반의 일이 적혀 있습니다. 두부는 가까운 도반으로 먼저 점토에 드는 이가 남은 이에게 알려주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광덕은 가난한 산림에 집신을 삼아 식구를 먹이며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는 늘 관세형 보살의 명호가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신을 삼으시는 동안에도 식구의 끼니를 차리시는 동안에도 가난이 등을 휘게 하는 그 한복판에서도 광덕의 입에서는 늘 관세연 보살이 흘러나오셨습니다. 마침내 인종을 맞으시던 날 광덕은 자리에 누워 마지막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날 밤 엄장의 방 위로 초마한 음악과 빛이 머물렀고 광덕이 정토에 들었음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고부님들 광덕의 일생에는 우리네 일곱 어려움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가난의 옴난 사람 사리의 도난 병의 귀난 그러나 그분은 그 어려움 한복판에서 관세음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한 마음이 임종의 자리를 정토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 부르시던 그 면모가 마지막 숨에서도 그분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또 한 일화를 짧게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분황사의 천수관음 앞에서 1000일을 기도하셨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눈먼 아이를 안고 그 어머니는 매일같이 절 마당을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1000일째 되던 날 아이가 마침내 눈을 떴다는 일은 이미 한 번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떠올려 보시면 그 안에 진란이 다 들어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난의 움난 아이를 향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도난 새벽마다 일어나야 했던 비난 그리고 이 아이가 어찌 살아갈까 하는 미래의 풍란 그 어머니 또한 실감의 한복판을 통과해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을 풀어 주신 분이 바로 관세음 보살이셨습니다. 천일이 길지 않으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한 번씩만 부르시면 1000번이 차는데 3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그 한 번 한 번이 어머니의 칠란을 한 자락씩 풀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법원님들 한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정말 부른다고. 불려질까? 내가 평생을 고생하며 살았는데 어찌 이제와 한 마음으로 부른다고. 일이 풀리실까? 그 마음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의심하지 않으시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문품 안에는 한 가지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관세음 보살은 우리가 구하지 않을 때에도 먼저 살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부를 때 그 응답이 한결 빠르다 하셨습니다. 의심은 자비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자비가 머무를 자리를 가리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는 햇살 앞에서 천천히 거칩니다. 부르시는 한 마음 한 마음이 그 햇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의심이 드시거든. 그 의심을 누르려 하지 마시고 그 의심을 안으신 채로 한 번 더 부르십시오. 의심을 안고 부르는 한 번이 의심 없이 부르는 백번보다 깊은 자리에 가닿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마음으로 관세음을 모시고 살아가실 때 본인 일상 안에 네 가지 변화가 천천히 자라납니다. 첫째 변화입니다. 일상의 두려움이 한자락 가벼워집니다. 큰 비가 와도 자식의 차가운 말 한마디가 들려와도 예전처럼 오래 마음에 박히지 않습니다. 그저 한 자락 바람이 지나갔구나 하시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십니다. 둘째 변인입니다. 자비심이 자랍니다. 가장 신기한 변화입니다. 늘 미웠던 그 사람의 얼굴이 어느 날 측은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때는 칼처럼 느껴지던 그 사람의 한마디도 그 사람도 그 사람대로 어려웠겠구나 하는 자리로 옮겨 앉습니다. 셋째 변화입니다. 좋은 인연이 다가옵니다. 마음의 안개가 거치면 사람의 결도 달라 보이기 시작합니다. 평소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한 사람이 어느 날 따뜻한 말을 건네드립니다. 그것이 인연이 다가오는 결입니다. 넷째 변화입니다. 마음의 깊은 표만이 자리 잡고 잠이 깊어집니다. 새벽 3시에 자주 깨시던 분이 어느 날부터 5시까지 한 번도 안 계시고 주무시기도 하십니다. 아침에 일어나셨을 때 어깨가 한결 가볍고 거울에 비친 얼굴이 부드러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모님들의 마음 깊은 곳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귀로 들으시고 계신 이 한마디 한마디가 잠든 마음속까지 스며들어 그 자리에 관세음에 자비를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해서 외우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속의 마음이 더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이 변화가 어떤 결로 다가오는지를 다섯 단계로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단계입니다. 첫 사흘에서 일의 사이입니다. 잠자리에 드시는 시간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머리맡에 가벼운 솜이불 한 자락이 더 원친 듯한 평온이 옵니다. 둘째 단계입니다. 두 주에서 한 달 사이입니다. 새벽에 깨시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깨셔도 다시 잠드시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한 번씩 깨셨다가도 가슴 한복판이 두근거리지 않으십니다. 셋 단계입니다. 한 달에서 석 달 사이입니다. 미웠던 한 사람의 얼굴이 측은해 보이기 시작하십니다. 그분이 보내신 메시지에 화답할 마음이 천천히 일어납니다. 넷째 단계입니다. 석 달에서 여섯 달 사이입니다. 본인 일상에 작은 일들이 한결 매끄럽게 풀려가심을 느끼십니다. 병원에 가셔서도 의사의 말이 한결 부드럽게 들리고 며느리와의 대화에 가시가 빠집니다. 자식들이 먼저 안부를 여쭙는 일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다섯째 단계입니다. 여섯 달 이후입니다. 마음 한복판을 관세음의 자비가 자리를 잡으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곧장 한 마음으로 관세음을 부르실 수 있게 되십니다. 이 자리에 이루시면 신란이 와도 칠란이 아니게 되는 별을 만나십니다. 어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한복판에서 관세음과 함께 계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법원님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보문품 칠란의 가르침을 한 사람이라도 더 들으시도록 가족이나 가까운 분길 이 법문을 들려 드리시는 이 그 자체가 큰 벚꽃이 됩니다. 한 분이 들으시면 한 분의 지난이 풀리고 두 분이 들으시면 두 분의 친란이 풀립니다.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잠드시기 전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 소리를 흘려 드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부르시는 그 한 마음 한 마음이 본인 일상 안에 불을 찾아들게 하시고 물을 얕은 자리로 보여 주시며 바람을 가라앉히시고 칼을 부서지게 하시며 어둠을 멀어지게 하시고 묶인 손발을 풀어 주시며 미운 사람의 얼굴마저 측은하게 바꾸어 가심을 천천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 자락이 다 풀리는 자리 그 자리가 곧 관세음. 보살의 자비가 머무르시는 자리입니다. 보부님도 둘째 갈래까지 들으시며 신란이 어떻게 풀어나는지 마음 깊은 곳에 변화가 어떻게 자리 잡아 가는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셋째 갈래로 넘어가시겠습니다. 셋째 갈래는 관세연 보살과 함께 사는 일상의 작은 실촌 열2 가지 마음길입니다. 다 외우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흘려 들으시면 마음 깊은 곳이 알아서 죽습니다. 듣고 잊어버리셔도 좋습니다. 잊어버리신 자리에서 보살님이 대신 기억해 주십니다. 먼저 한 일화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신라의 큰 승인 의상대사 이야기입니다. 의상대사께서는 동해 바닷가 낙산이라는 곳에서 반세음 보살을 친견하시려고 발언을 세우셨습니다. 그 바닷가 동굴에 들어가 일주일을 한 마음으로 관세연 보살을 부르셨습니다. 파도 소리만 밤낮으로 들려오는 자리였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보살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의상 스님께서는 절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일주일을 더 부르셨습니다. 그제서야 돈불 안에 푸른 빛이 가득 차고 관세영 보살께서 친히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보살님께서는 한 자루의 시정 염주와 하날의 여의고주를 의상 대사께 전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리 위에 산이 있고 그 산 위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자리에 저를 세워라. 의상 대사께서 그 말씀대로 저를 세우시니 오늘날까지 동해를 굽어 보며 서 있는 낙산 사가 바로 그 절입니다. 버부님들 이 일화에서 우리가 살필 자리는 화려한 친견의 장면이 아닙니다. 의상 스님께서 일주일이 지나도 응답이 없을 때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주일을 부르신 그 한 마음 거기가 자리입니다. 한 마음으로 부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살님께서는 더 깊은 자리에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 내 일상도 같은 이치입니다. 한 번 두 번 불러서 응답이 없는 듯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살피고 계십니다. 의심의 자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시는 그 한 걸음이 곧 응답을 부르는 걸음입니다. 이제 함께 사는 길 열두 가지를 하나씩 풀어 드리겠습니다. 앞에 일곱 가지는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재물 없이 베푸는 7 가지 무죄 치시라 부르는 길입니다. 비의 다섯 가지는 시니어 부부님들 일상에 맞춰 추려본 길입니다. 모두 관세음 보살의 자비로 일상의 칠란을 풀어가는 같은 한 마음입니다. 들으시면서 아 이건 내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이네 하시는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보살의 자리입니다. 첫째 부드러운 얼굴로 사람을 대하시는 일입니다. 예쁜 들께서는 이를 화한시라 하셨습니다. 얼굴이 곧 베푸는 자리입니다. 달이라는 뜻이지요. 관세음 보살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그 얼굴에는 늘 잔잔한 미소가 머물러 있습니다. 그 미소 한 자락이 1004람의 마음을 풀어 줍니다. 부부님들께서 자녀나 손주를 보실 때 이웃 어르신을 만나실 때 잠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십시오. 그 한자랑 미소가 그 자리에 있는 어둠 한 조각을 풀어 갑니다. 거울 앞에서 한 번 연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 안에 자비가 있으면 얼굴은 저절로 그 자비를 따라갑니다. 둘째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시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이를 언씨라 하셨습니다. 말씀이 곧 약이 된다는 뜻입니다. 칼 같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베어 칠란을 만들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칼을 무디게 합니다. 수고했어 한마디 고마워 한 마디 고생했지. 한마디 짧은 말이 마음 안에 작은 온문을 엽니다. 자녀가 무뚝뚝하게 지나치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그 한마디는 자녀의 잠든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가라앉아 어느 날 문득 그 자녀의 입으로 다시 흘러나옵니다. 셋째 진심으로 듣는 일입니다. 예쁜 분들께서는 일을 싱실화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베푼다는 말씀이지요. 관세연 보살께서는 우리 음성을 살피실 때 한 마음으로 들으십니다. 다른 일을 하시면서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손지의 이야기 배우자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잠시 손에 든 일을 내려놓고 그 사람을 바라봐 주십시오. 그 짧은 들음이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살립니다. 답을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들어주시는 그 한 자락이 그 사람의 친란 한 가지를 풀어 줍니다. 사람은 들어 줄 자리만 있어도 절반은 살아납니다. 넷째 부드러운 눈빛으로 보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이를 안 싫어하셨습니다. 천 가지 눈으로 살피시는 관음에 그 눈빛 가운데 한자락이 우리 아내도 깃들어 있습니다. 손주의 얼굴을 보실 때 자녀의 흰머리를 보실 때 그 눈빛이 잔잔해지면 그 자리에 자비가 흐릅니다. 못마땅한 눈으로 보던 자리를 한번 부드럽게 바꾸어 보십시오. 그 한 번의 눈빛이 그 사람의 하루를 어쩌면 그 사람의 한 평생 한 자락을 바꿉니다. 다섯째 몸으로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일을 신실화 하셨습니다. 무릎이 아프시고 허리가 굽으셔도 짐 한 자락 들어들이실 수 있고 문 한번 잡아 드리실 수 있고 자리 한번 닦아 드리실 수 있습니다. 그 작은 몸짓이 곧 천손 가운데 한 손이 됩니다. 큰일을 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주가 먹다 흘린 자리를 닦아주시는 그 한 번의 손길이 부엌에서 며느리가 일하실 때 그릇 하나 헹궈주시는 그 한 번의 손길이 천손 가운데 그 한 손입니다. 6질 자리를 양보하시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일을 상주하시라 하셨습니다. 시내버스에서 절집 마루에서 지하철 자리에서 자리 하나를 비워 드리는 그 마음이 보살의 마음자락입니다.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에 자비가 들어옵니다. 다리가 아프셔서 자리를 못 비우시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은 마음 안에 자리를 비워 보십시오. 미운 사람 한 분에게 마음 한 자락을 내어 드리는 일도 곧 자리 양보입니다. 일곱째 편안히 쉬어 가실 자리를 내어 드리는 일입니다. 예쁜 분들께서는 이를 방사시라 하셨습니다. 손님 한 분을 마루에 앉히시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 드리는 이 지친 이웃에게 잠시 쉬어 가시라 권하는 일 그 작은 자리 하나가 누군가의 큰 어려움 한 자락을 풀어줍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이를 가리켜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한 자리를 베어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 한 자리가 그 사람의 칠란을 푸는 자리이고 동시에 본인 댁에 독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부부님들 여기까지가 옛 부처님께서 이어주신 일곱 가지 베푸지입니다. 다 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에 닿는 한 가지만이라도 오늘 한번 행해 보시면 그 한 자락이 곧 관음의 천손 가운데 하나가 되어 본인의 칠란도 함께 풀어갑니다. 베프 년 베품 만큼 본인 마음의 어둠이 먼저 가벼워지는 까닭입니다. 베푸는 자리에 신란이 머무르지 못합니다. 자비가 들어오면 어둠이 자리를 내주는 까닭입니다. 이제 시니어 부부님들 일상에 맞는 길 다섯 가지를 더 권해 드리겠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큰 절에 가시지 않으셔도 무릎이 아프셔서 절을 못하셔도 대개의 머리를 얹으신 그 자리에서 곧 행하실 수 있는 길입니다. 여덟 질 매일 밤 잠자리에 누우시기 전 베개에 머리를 얹으신 그 자리에서 관세음 보살 면모를 일곱 번 가만히 불러보십시오. 일곱 번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보문품에서 일러주신 일곱 가지 어려움 불난 순안 풍난 도난 비난 온난 원정남 그 유자락이 한 번 한 번 부르실 때마다 한 자락씩 가벼워진다는 마음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첫 번째는 갑자기 닥칠 큰일의 두려움이 한 자락 가라앉고. 두 번째는 거센 비바람의 걱정이 한자락 잦아들고 그렇게 일곱 자락이 차례로 풀려갑니다. 큰 소리 내실 필요 없습니다. 입술만 움직이셔도 마음 안에서만 부르셔도 보살님께서는 살피십니다. 일곱 번을 다 채우지 못하시고 잠드셔도 좋습니다. 그 잠든 자리까지 보살의 천손이 따라 들어가십니다. 아홉 질 자녀나 손주에게 잔소리 대신 한마디 권해 드립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관세연 보살길 너희 어려움 풀어 주시도록 매일 빌고 있단다. 이 한마디면 됩니다. 자녀가 그 자리에서 무어라 답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그 말씀은 자녀의 마음 깊은 곳에 천천히 가라앉아 어느 어려운 날 문득 떠오르는 등불이 됩니다. 잔소리 100마디보다. 이 한마디가 그 아이의 칠란 한 자락을 푸는 큰 힘이 됩니다. 자녀의 인생을 다 책임지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살님께 자녀를 한번 맡기시는 그 한자랑 마음이 자녀에게도 본인에게도 큰 휴식이 됩니다. 열질 무서운 일이 갑자기 닥칠 때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깜짝 놀라거나 무언가 큰 일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그 자리에서 즉시 단 한 번이라도 좋습니다. 관세연 보살 한 마음으로 부르십시오. 길게 부르실 필요 없습니다. 그 한 번에 마음의 거센 바람이 한자락 가라앉습니다. 보문품에서 이어주신 그대로 한 마음으로 부르는 그 음성을 보살님께서는 곧 살피십니다. 약속 드리듯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한번 부르신 그 자리에서 마음 깊은 곳이 한옥 가라앉는 것을 직접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한 호흡이 신란 한 자락을 푸는 자리입니다. 열한 째 먼저 떠나신 이웃을 위한 회향입니다. 사별의 슬픔을 겪으신 이웃이 곁에 계시다면 그분을 위해 하루 한 번이라도 마음속으로 관음 자비를 회양해 드려 보십시오. 그분의 슬픔이 부처님 자비 안에서 가벼워지소서. 이 짧은 한 마음이 그분의 마음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회향이 본인의 마음 안에서도 함께 자비를 키워갑니다. 베푸는 자리가 곧 받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사별의 슬픔을 겪고 계시는 법원님이시라면 그 슬픔의 자리에서 다른 한 분을 떠올려 회향에 드려 보십시오. 슬픔이 슬픔을 만나면 가벼워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열두째 이자리는 잘 들어두시기 바랍니다. 부부님들께서 매일 밤 이 수면 법문에 귀를 기울이시며 잠드시는 일 그 일 자체를 본인 일상의 진란을 푸는 관음 기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 법문을 들으시는 동안 마음은 가만히 보살의 명호를 따라가고 호흡은 잔잔해지고 잠든 마음 깊은 곳에는 자비가 한켜 한켜 쌓여 갑니다. 이 곳 번 명호를 부르시고 잠드신 그 밤이 곧 이곳까지 어려움이 한 자락씩 가벼워지는 밤입니다. 큰 절에 가시지 않으셔도 큰 시간을 내시지 않으셔도 베개에 머리를 얹으시는 그 자리가 곧 관음의 자리입니다. 매일 밤 듣고 잠드시는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 한 달 뒤에는 본인도 모르시는 사이에 마음자락이 가벼워져 있을 것입니다. 1년 뒤에는 식구들이 먼저 알아챌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요즘 얼굴이 참 환해지셨다고. 그 환해지신 얼굴이 곧 의상 스님께서 동굴에서 챙겨나신 그 푸른 빛 한자락입니다. 버부님들 두 가지를 한 번에 다 행하시려 애쓰지 마십시오. 오늘 밤 단 한 가지 잠들기 전 관세음 보살 일곱 번 부르는 그 한 가지만이라도 시작해 보십시오. 그 작은 시작이 의상 스님께서 동굴에서 일주일 또 일주일을 부르신 그 한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새벽 마음 안의 동굴에 푸른 빛이 가득 차고 본인 일상의 칠란이 한 자락씩 풀려가는 자리를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는 멀지 않습니다. 베개에 머리를 얹으신 바로 그 자리 보살님께서 이미와 계신 자리입니다. 갈래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자리에서는 오늘 들으신 세 갈래를 가만히 내듭짓고 잠자리로 함께 들어가시겠습니다. 버부님들 이제 오늘 말씀드린 내용을 한 번 더 가만히 짚어 보겠습니다. 잠드시는 마음으로 천천히 따라오시면 됩니다. 오늘 첫 번째로 말씀드린 것은 보물품의 자비였습니다. 관세음 보살은 모든 음성을 살피시는 분이시라 한마음으로 그 면모를 부르면 즉시 응답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녹이 부득과 달달박박 두 도반이 깊은 산속에서 관음을 친견한 일화도 함께 풀어 드렸습니다. 부르기만 해도 응답이 5는가? 그 의심마저 어머니의 자비처럼 따뜻하게 풀어드린다는 그 자리에 머물러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린 것은 칠란 일곱 가지 어려움이었습니다. 분란과 순환 풍란과 도남 비난과 옹남 그리고 원정란 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큰 물에 떠내려가도 곧 얕은 곳을 얻으며 거센 바람도 가라앉고 칼날도 부서지며 어둠의 두려움도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그 말씀 광덕과 엄장의 임종장면도 같이 떠올려 보셨습니다. 칠랑이 풀려갈 때엔 자비심이 자라고 좋은 인연이 다가오며 마음 깊은 곳을 평안히 자리잡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 번째로는 일상 12 가지 실천을 풀어 드렸습니다. 부드러운 얼굴과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으로 듣는 마음 부드러운 눈빛 몸으로 드리는 보살핌 자리 양보 편안한 자리 그리고 잠들기 전 7번 부르기 잔소리 대신 한마디 기도 무서운 일에 즉시한 마음 이웃을 위한 회양 매일 밤 이 본문 듣는 일 자체를 칠란푸는 기도로 삼는 것까지 의상 대사가 낙산사. 동굴에서 관음을 친견한 그 자리도 함께 머물러 주셨습니다. 이 세자락의 말씀을 짧은 회양계 한 줄로 거두어 드리겠습니다. 한국어로 풀어올립니다. 원하옵건대. 이 공덕이 모든 곳에 두루 미쳐 저와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부처를 이루어지이다. 법원님들 2 한 9절만 마음에 얹고 다음 자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제 잠드시는 몸을 한 번 더 풀어 드리겠습니다. 다 따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들으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먼저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갑니다. 이마가 부러지십니다. 미간이 풀어지십니다. 눈썹 사이에 작은 힘이 사르르 가라앉으십니다. 두 눈꺼풀이 무거워지시고 그 무게가 베개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으십니다. 작가의 힘도 풀어지시고 어금니에 모였던 힘도 사르르 풀어지십니다. 목과 어깨로 내려갑니다. 평생 자식을 업고 키우신 어깨 평생 살림을 이곳 사신 어깨이십니다. 그 어깨가 베개 양옆으로 흘러내리듯 풀어지십니다. 가슴이 한번 부풀고 다시 한번 가라앉으십니다. 등기에 굳은 자리도 내트리스 안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가십니다. 허리에 묵은 힘도 무릎에 시린 자리도 함께 풀어주십니다. 법은 님들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잠드시는 머리맡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세연 보살엘 천 가지 손이 그 어둠을 가만히 살피고 계십니다. 한 손은 이마 위에 한 손은 가슴 위에 한 손은 발취 또 한 손은 창문 너머 멀리까지 펼쳐져 계십니다. 그 손은 무겁지도 않으시고 차갑지도 않으십니다. 어머니가 잠든 자식의 이 말 살짝 얹어 주시는 그 손길과 다르지 않으십니다. 옛날 만공 선사 교실 적의 일이라 합니다. 늦은 저녁 절 마당에 가난한 노부인 한 분이 찾아오셨답니다. 사림은 난무하시고 김문구부셨고 손에는 작은 보따리 하나뿐이셨답니다. 시자가 막아서려 하니 만공 선사께서 손수 마당으로 내려오시어 그 노부인을 따뜻한 방으로 모시고 들어가셨다 합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수 따라 드리시고 그 노부인의 한숨 한 자락 한 자락을 끝까지 들어 주셨다 합니다. 노부인께서는 자식 잃은 슬픔을 한참 오신 뒤에야 보따리를 풀어 작은 떡 한 덩이를 내미셨고 만공 선사께서는 두 손으로 그 떡을 받아 부처님 앞에 먼저 올리셨다 합니다. 빛날 시작은 엿주었답니다. 스님 어찌 그리 작은 노부인 한 분께 그토록 정성이셨습니까? 만공 선사께서 가만히 웃으시며 답하셨답니다. 관세연 보살께서 그 모습으로 오신 줄을 어찌 모르겠느냐.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곧 관음을 만나는 자리이니라. 법원님들 그 말씀이 그저 옛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관세연 보살께서는 부처의 몸으로도 비구의 몸으로도 평범한 노부인의 모습으로도 잠든 버부님 머리맡에 어둠으로도 오십니다. 지금 이 자리도 마찬가지 이슈입니다. 머리맡의 어둠은 텅 빈 어둠이 아니십니다. 1000 가지 손이 깃들어 계신 자비의 어둠이십니다. 법원님 자신께서도 누군가의 머리맡을 그 천손 중 한 손으로 다녀가신 적이 분명 있으실 것입니다. 한밤중 자식의 이불을 다시 덮어 주신 그 손 시린 손지의 손을 잡아 대우신 그 손 아픈 어른의 등을 가만히 쓸어들인 그 손이 다 관세염 보살을 천손 가운데 한 손이셨습니다. 오늘 밤은 그 손이 다시 법원님께로 돌아오시는 밤이십니다. 평생 누군가를 살피신 그 자리에 이제는 살풨을 받으시는 자리이십니다. 손가락 끝 작은 떨림까지 가만히 살피시고 가슴 안쪽 미세한 한숨까지 가만히 받아주십니다. 잠드신 비에도 그 손은 거두어지지 않으십니다. 새벽까지 그리고 다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계십니다. 한 손은 100의 깃의 주름까지 가만히 펴주시고 한 손은 이불 끝자락이 발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가만히 잡아 주십니다. 이 감각을 한 홉 더 머금으시며 잠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버그님들 다시 보문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머문 자리는 결국 한 권의 겸 법화경 제25 관세음 보살보문품에 그 한자락이었습니다. 보문이라는 두 글자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넓을 보 문문 모든 문이 열려 있다는 뜻이십니다. 부자의 문도 가난한 분의 문도 아픈 분의 문도 외로운 분의 문도 잠든 버부님의 작은 방문도 그 자비의 문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어떤 문 하나도 닫혀 있지 않으십니다. 신란의 어느 한 자락도 그 문밖에 있지 않으십니다. 불이 일어나도 그 문 안이시고 물이 차올라도 그 문 아니시며 바람이 일고 칼이 들이쳐도 그 문 안이십니다. 어둠이 가까이 와도 그 문 안이시고 사슬이 조여 와도 그 문 안이시며 미운 마음이 일어나도 그 문 안이십니다. 7자락의 어려움이 모두 보문 안에서 풀어진다고. 보문품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 잠드시는 이 자리도 봄은 아니십니다. 베개 한자라 이불 한 자락도 봄은 아니십니다. 잠드신 호 한자락도 봄은 아니십니다. 부부님께서 따로 어디로 가실 일이 없으십니까? 다만 누우신 채로 한마음으로 그 명호를 가만히 머금어 주시면 그 문이 안에서 열려오십니다. 부처님께서 보문품에서 거듭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한마음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관세영 보살이 곧 그 음성을 살피시어 모두 해탈을 얻게 하시느니라. 곧 이라는 한 글자가 오늘 본문의 가장 깊은 자리이십니다. 사흘 비가 아니시고 49일 비가 아니시고 고지십니다. 부르신 그 자리에서 부르신 그 호흡 안에서 이미 응답이 시작되십니다. 버부님들 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보문 안에 누워 계시다는 그 한 가지만 가만히 머금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잠드시는 그대로 호흡만 가만히 두시면 됩니다. 오늘 밤 이 법문을 들으시는 동안 부부님 일상의 일곱 자락 어려움이 한 자락씩 풀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닥치는 일이 가라앉으시고 거센 비바람이 잔잔해지시고 칼처럼 베어오던 말이 무뎌지시고 새벽 무서운 꿈이 멀어지시며 답답하던 마음의 사슬이 풀어지시고 미운분의 얼굴이 측은한 얼굴로 바뀌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한자락이 풀리실 때마다 잠이 한겹 더 깊어지실 것입니다. 이 공덕을 버부님 한 분만 가지지 마시고 옆에 누우신 배우자분께 멀리 계신 자녀분과 손주분께. 먼저 가신 부모님 영갑길 그리고 이름 모를 이웃 한 분께도 가만히 회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양하신 만큼 부부님 머리맡에 천 가지 손이 한 겹 더 두터워지십니다. 한 분께 회함하실 때마다 그분의 머리맡에도 같은 천손이 함께 머무르십니다. 회향이라는 두 글자는 어렵지 않으십니다. 그저 마음 안에 떠오르는 한 분의 이름을 잠드시는 호흡 판자락에 가만히 얹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 호흡이 그대로 그분께 가다으십니다. 이제 호흡 한 자락마다 보살님 한 분씩 가만히 모셔 보시겠습니다. 따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들으시기만 하셔도 그 자리에 보살님이 머무르십니다. 들쑤멜 석가모니 부처님 날스멜 아미타 부처님 들스멜 약사열에 부처님 말씀에 비로자나 부처님 들쑤밀 시장보살린 말씀일 문수 보살님 들쑤멜 보윤 보살님 그리고 오늘 밤에 자리이신 관세영 보살린 관세연 보살님 관세영 보살님 이 일곱 분의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신 자리 위에 한 줄 회양제를 다시 한 번 올리겠습니다. 원하옵건대. 이 공덕이 모든 곳에 두루 미쳐 저와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부처를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잠드시는 호흡 끝에 가만히 한 구절을 얹어 드리겠습니다. 따라하실 필요 없으시고 그저 귀로만 받으시면 됩니다. 옷마니 밤내훈 옷만이 밤내훈 옷만이 밤매훈 이 여섯음절은 관세음 보살의 자비가 그대로 소리가 되신 것이라 옛 어른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부르지 않으셔도 귀로 들으시는 것만으로 그 자비가 잠든 마음 깊은 곳까지 가만히 스며드십니다. 한 음절은 칠란을 품어 주시고 또 한 음절은 잠을 깊게 해주시며 또 한 음절은 새벽까지 머리맡을 지켜주십니다. 버그님들 잠드시는 자리에 다시 한번 처음의 세 문장을 얹어 드리겠습니다. 깊고 편안한 밤입니다. 오늘도 베개를 베신 버부님들 천천히 어깨에 힘을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은 관세음 보살님과 함께 잠드시는 밤이십니다. 부르시지 않으셔도 이미 머리맡에와 계십니다. 이 곱자락의 어려움을 한 자락씩 풀어 주시며 잠드신 호흡까지 끝까지 살피고 계십니다. 보문의 문 안에서 천 가지 손이 머무신 자비의 어둠 안에서 깊고 깊은 잠으로 천천히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형이라는 뜻입니다. 한데 모으면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 소리에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 베개 접시는 눈물 잠든 사이 흘러나오는 흐느낀 그 모두가 관세음 보살께는 다 들리는 음성입니다. 고부님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가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이름을 정확히 부르지 않아도 그 한숨까지 살펴 들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지 않으십니까? 오늘 밤 그 따뜻함을 천천히 더 깊이 모셔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품의 이름인 보문이라는 두 글자도 가만히 풀어두고 가야 합니다. 보자 즉 득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문자 즉 문이라는 뜻입니다. 한데 모으면 두루 열린 문이라는 말이 됩니다. 어느 한 종으로만 열리는 분이 아닙니다. 동쪽에서 오시는 분도 서쪽에서 오시는 분도 잘 사시는 분도 어렵게 사시는 분도 누구든 들어오실 수 있도록 사방으로 활짝 열린 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관세음 보살의 자비는 좁은 문이 아닙니다. 신분 따지지 않으시고 학식 따지지 않으시고 살아온 길 따지지 않으십니다. 부르는 한 마음이면 누구든 그 문 안으로 모셔드리십니다. 그 문이 오늘 밤 법은님의 머리맡에도 한자락 열려 있습니다. 법화경 제25 관세형 보살보문품 그 첫 머리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으시는 동안 그저 호흡만 가만히 두시면 됩니다. 손 남자요. 만약 할 량 없는 100 천만 억 중생이 모든 고뇌를 받을 때에 관세형 보살이 개심을 듣고 한 마음으로 그 면모를 부르면 관세음 보살께서 곧 그 음성을 살피시어 모두 다 해탈을 얻게 하시느니라. 한 마음으로 부르면 곧 살피신다. 2 한 9절이 오늘 본문의 뼈대입니다. 여기 한 마음이라는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산 마음은 큰 소리도 아니고 긴 기도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생각 없이 의심 없이 그저 그 명모 하나의 마음을 모으는 자리입니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환세하고 사업 한번 부르시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한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심 측려 즉 한 마음으로 명호를 부른다는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렵지 않으십니다. 다 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2 한 9절만 마음에 담아 두십시오. 또 한 가지 곧 살피신다는 그 곳이라는 글자도 마음에 깊이 새겨 드시면 좋겠습니다. 일에 귀가 아니고 100일비가 아니고 굿입니다. 부르는 그 자리 그 호흡 그 한 마음 위에서 응답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그 응답을 곧장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살께서는 이미 곧 살피고 계신 것입니다. 응답은 며칠 뒤에 들어오는 좋은 인연으로 한 달 뒤에 풀어지는 묵은 매듭으로 어느새벽 가만히 가벼워지는 어깨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부르신 그 밤이 헛된 밤이 아닙니다. 잠드시는 그 시간에 이미 살풨이 시작되어 있는 밤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더 깊은 약속을 하나 더 주셨습니다. 관세연 보살께서는 부처님 몸으로 제도해야 할 이에게는 부처님 몸으로 나타나시고 비구의 몸으로 제도해야 할 이에게는 비구의 몸으로 나타나신다. 이 말씀이 그 유명한 33신 즉 33가지 모습으로 응하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은이라는 글자는 응답한다는 뜻입니다. 신이라는 글자는 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가장 알맞은 옷을 입고 다가오신다는 약속입니다. 부부님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외로울 때 옆집 할머니가 따뜻한 죽 한 그릇 들고 오시던 그 손길 병원에 누워 계실 때 모르는 간호사 한 분이 가만히 손을 잡아주시던 그 온기 자식이 멀리 있어 적적할 때 마침 전화 한 통이 오던 그 시각 그 모든 모습 속에 관세음. 보살께서 계셨다면 어떻겠습니까? 부처님 옷을 입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얼굴 가장 받기 쉬운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것이 응심의 자비입니다. 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그런 분이 계시구나. 그 마음 한 자락
품으시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보부님 가운데 이런 의심이 드시는 분이 분명 계실 것입니다. 정말 부르기만 해도 응답이 올까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는데
살펴주실까? 내 정성이 부족한데도 들으실까?
자연스러운 의심입니다. 부끄러워하실 일이 아닙니다.
옛 선사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의심하셨습니다. 그 의심을 풀어드리고자 부처님 시대부터
이 땅까지 내려오는 한 짜락긴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드리겠.
일화입니다. 두 분은 어릴. 1입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노희 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도반의 일화입니다. 두 분은 어릴 때부터 친한 버셨습니다. 같이 산에 들어 함께 수행하기로 약속하시고 100월
산이라는 산 깊은 곳에 두 암자를 지으셨습니다 노희 부둑은 동쪽 골짜기에 달가의 박박은 북쪽 바
위 아래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두 분 다 큰 뜻을 품고 묵묵히 정진하시던 어른들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산에 큰 눈이 내렸습니다. 길도. 보이지 않고 바람도 거셨습니다. 그때. 한 젊은 여인이 달달박박이 머무는 암자 문 앞에 다가와 하룻밤 묵게 해다가 처마셨
막박은 단호하셨습니다. 청정한 수행처에. 여인을 드릴 수 없다 하시며 문을 닫으셨습니다. 유를 지키시는. 마음이 고드셨던 것입니다. 그 마음. 또한 귀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다시 눈을 해치고 노일 부득의 암자로 가셨습니다. 노일 부득은 문을 여시고
따뜻한 자리를 내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여인이 산길을 느끼셨습니다. 녹이 부둑은 깨
물을 길어다 드리고 정성껏 산바라질을 하셨습니다. 유래. 형식이 아니라 사람의 한숨 한 음성을 먼저 살피
새벽이 되었을 때 그 여인은 노일 부득에게 따뜻한 물에
몸을 씻게 하셨습니다. 그 물이 노일 부득의 몸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서 노일 부득은 미륵의 모습으로 환히 빛나셨다 합니다.
그 여인이 누구이신지 드러나셨습니다. 바로. 관세음 보살이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약한 모습 가장 도움이 필요한 모습 한밤중에 길을 잃으신 만삭의 여인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신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거룩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시험받는 가장 가까운 자리의 옷입니다. 달달박박은
비늦길 그 사실을 아시고 노일 부득께 달려가셨고 남은 물에 몸을 씻으시면
그분 또한 무량 수불의 모습으로 깨달음에 드셨다 합니다. 두 도
모두 함께 자비의 강에 드신 것입니다. 고부님들. 이 옛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져갈 마음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관세음 보살께
상상하는 모습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모습 가장 가까운 얼굴로 오십니다. 둘째 그분을. 알아보는 길은 유래 칼날이 아니라 한숨을 살피는 따뜻한 손길에 있습니다. 노이 부득의. 그 손길이 곧 관세음의 손길과 만난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밤 한 번 잠자리에 드시기 전 가족
한숨 이웃의 한숨을 살짝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살함의 자리에 이미 관세연 보살께서 함께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있습니다. 노일. 뿐입니다. 그 여인의 산바라질을 하시던 그 새벽 마음속으로 큰 소리로 보살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눈앞에. 한숨을 살피셨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관세음 보살께서 이미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자리입니다. 살피는 마음이. 곧 보살의 마음입니다.
부르는 잎과 살피는 손길이 만나는 자리 그 자리에서 관세음 보살의 응답이
환히 드러납니다. 그러니 법부님들 명호를 부르시는 일과 곁에 한숨을 살피시는 일을 서로 다른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두 일이 만날 때 보살의
한층 더 또렷해집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비유를 더 드리고 싶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그림 한 폭입니다. 시골. 마을 한밤중에 마당에 나가
한번 올려다 보십시오. 하늘에. 별이 떠 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1000개의 별이 떠 있습니다. 그. 별빛이 어느 한 집에 집옷만 비추겠습니까?
기와집도 비추고 외딴 초바집도 비추고 길 잃은 나그네의 발끝도 비춥니다. 어느. 한 사람도 어둠 속에 두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모두에게 골고루 빛을 내려줍니다.
관세음 보살의 자비도 그러합니다. 누구는 살피시고 누구는 빠뜨리시는 그런 자
아닙니다. 한. 마음으로 부르는 모든 음성을 다 살피십니다. 부르는. 사람의 처지가 잘났든 못났든 정성이 깊든 얕든 그 별빛은 똑같이 내려옵니다. 게다가. 그 별빛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묵묵히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잠들어 별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별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 눈만 잠시 감겼을 뿐입니다. 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관세음 보살의 자비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보살을 입고 살아온 세월이 있어도 보살께서는 그 세월 동안에도 우리 머리맡에 그대로 계셨습니다. 다만 우리 쪽 문이 잠시 감겨 있었던 것뿐입니다. 오늘 밤 한 마음으로 한번 부르시는 그 호흡이 잠시 감겼던 우리 눈을 살려시이게 해드립니다. 또 하나 더 가까운 자리에서 비유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백마다 손주를 키워보신 어른들이 계실 것입니다. 손주가 마당에서 놀다가 작은 한숨을 한번 쉬어도 할머니께서는 그 소리를 귀신같이 들으십니다. 부엌에 계셔도 들으시고 빨래터에 계셔도 들으시고 멀리 마실 가셨다가도 그 한숨이 떠오르십니다. 누가 가르쳐 드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귀가 그렇게 열리는 것입니다. 손주가 큰 소리로 할머니 부르지 않아도 그 작은 한숨 하나만으로 할머니의 발길이 돌아옵니다. 관세음 보살께서 우리 음성을 살피시는 그 마음이 꼭 그러합니다. 우리가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한자락 한숨을 이미 살피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 쪽에서 한번은 입술을 떼어 그 면호를 불러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한 마음을 또렷이 모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손주 안숨을 다 들으시지만 손주가 할머니 한 번 부를 때 비로소 두 사람의 마음이 한 줄로 이어집니다. 관세형 보살을 부르는 일도 그러합니다. 보살께서는 이미 다 살피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 명호를 한번 부를 때 우리 자신의 마음이 한 줄로 모이고 그 자리에서 응답이 또렷해집니다. 부르는 것은 보살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자신의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일입니다. 그러니 부부님들 오늘 밤 잠자리에 드실 때 한 마음으로 가만히 한번 불러 보십시오. 큰 소리도 필요 없습니다. 정자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관세음 보살 한번 부르시면 충분합니다. 그 한 번이 보문품 천 머리의 약속과 곧장 이어집니다. 한 마음으로 부르면 곧 그 음성을 살피시어 해탈을 얻게 하신다. 그 약속이 오늘 밤 법부님의 베개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론 첫 번째 마디는 여기까지 모시겠습니다. 관세음 보살이라는 이름의 뜻 보문이라는 두루 열린 문의 뜻 한 마음으로 부르면 살피시는 약속 30세 가지 응신으로 다가오시는 자비 그리고 노예 부득과 달달 박박 두 도반의 옛 이야기 이 다섯 자락이 오늘 잠자리의 첫 베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다음 마디에서는 그 자비가 우리 일상의 일곱 가지 어려움을 어떻게 한 가닥씩 풀어 주시는지 보문품의 칠란을 한 분 한 분 따라 모셔 보겠습니다. 공급을 그대로 2시고 어깨의 힘만 살며시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버부님들 이제 두 번째 자락으로 가십니다. 보문품의 자비를 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셨다면 그 자비가 본인 일상에 닥친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주시는지를 살펴보실 차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문품 안에서 그 어려움을 7 가지로 묶어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7년 즉 일곱 가지 어려움이라 부릅니다. 이곱이라는 숫자가 어렵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풀어보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두 번씩은 다 겪어 본 일들입니다. 천천히 한 자락씩 손바닥 펴 보이듯 풀어 드리겠습니다. 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드시면서 귀로만 흘려들으셔도 충분합니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시려 애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저 따뜻한 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듯이 이 소리가 귀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잠속으로 흘러가도록 두십시오. 먼저 첫째와 말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문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불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못하고 큰 물에 떠내려가도 곧 얕은 곳을 얻으리라. 첫째는 분란 즉 불의 어려움이고 둘째는 순환 즉 물의 어려움입니다. 옛 사람들에게 불과 물은 가장 무서운 재난이었습니다. 지금 버부님들의 일상 안에서도 그 결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려두고 깜빡 다른 일을 하시다 놀라셨던 적 한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또 큰 비가 며칠을 내리실 때 마당 한쪽으로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철렁하셨던 일도 있으실 겁니다. 가까운 친지가 화재로 집을 잃으셨다는 소식에 며칠 잠을 설치신 일도 있으실 겁니다. 부처님 말씀은 이런 작고 큰 두려움을 모두 안에 품고 계십니다. 한 마음으로 관세음을 부르면 그 불이 그 자리에서 찾아들고 그 물이 곧 얕힌 자리를 보여 발을 디딜 곳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외부에 불만을 끄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한복판에서 활활 타오르던 분노의 불 후회의 불 걱정의 불도 그 자리에서 한 자락씩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셋째와 넷째입니다. 보문품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바람이 배를 흔들어 험난한 바다에 떨어져도 그 면모를 부르면 큰 바람이 가라앉으리라. 칼날의 마디마디 끊어질지라도 그 칼이 부서지리라. 셋째는 풍란 거센 바람의 어려움입니다. 넷째는 도난 칼의 어려움입니다. 부부님들 바람이 우리에게만 별일이겠습니까? 태풍이 지나가는 밤 창문이 덜컹거릴 때 잠 못 이루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또 바깥 바람만이 바람이 아닙니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바람 갑자기 일이 잘못되시지 않을까 하는 불안의 바람 자식들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미래의 바람도 모두 이 풍란 안에 들어 있습니다. 또 칼은 부엌에 칼만이 칼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가장 깊은 칼입니다. 자식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가슴 한복판이 그어지는 듯 하셨던 점 며느리나 사위의 차가운 한마디가 며칠을 마음에 박혀 빠지지 않으셨던 일 그것이 다 도난입니다. 관세음을 한 마음으로 부르면 그 바람이 가라앉고 그 칼이 마음 안에서 부서져 더 베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칼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칼날이 무뎌져 더 이상 우리 가슴을 깊게 베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섯째 여섯째 7장입니다.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차 낙찰의 어둠이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손과 발이 흉틀에 묶여도 풀려나리라. 원수 도적의 험한 길에서도 다 자비심을 일으키리라. 다섯 눈 귀난 어둠과 무서운 기운의 어려움입니다. 여섯째는 옴난 묶이고 갇힌 듯한 어려움입니다. 일곱는 원정란 미운 사람과 원망의 어려움입니다. 고부님들 새벽 3시에 깨셨다가 천장이 무겁게 내려앉는 듯한 어둠 속에서 가슴이 두근거리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비난의 결입니다. 또 병원 침상에 한참을 누워 계실 때 또는 자식이 모셔다 놓은 요양원에서 손목 한쪽이 침대 난간에 닿아 있을 때 마치 형틀에 묶인 듯한 답답함이 밀려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옴난의 결입니다. 몸이 건강하시던 분도 늙어가며 무릎이 굳고 허리가 굽어가는 그 자체가 웅난해 한 자락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가운데가 굳어지고 잠이 달아나는 그 미운 그것이 원정난의 결입니다. 평생 살아오신 동안 그 한 사람이 누구이신지 지금 천천히 떠오르실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은 이 색도 관음의 자비 안에서 다 풀린다 하셨습니다. 어둠은 멀어지고 묶임은 풀리며 미운 사람의 얼굴이 어느 날 측은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곱 가지를 다시 한번 가만히 헤아려 보십시오. 불 물 바람 칼 어둠 묶임 미움. 우리네 일상이 이 일곱 자락 안에 다 들어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미 2500년 전에 우리 1분 한 분의 살림살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살림살이에 굽이굽이마다 관세음 보살의 손길이 미치도록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명우 한마디입니다. 어렵고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관세음 보살 이 다섯 글자만 한 마음으로 부르시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한 분의 옛 어른을 잠깐 모셔오겠습니다. 삼국유사일 광덕과 엄장이라는 두 도반의 일이 적혀 있습니다. 두 분은 가까운 도반으로 먼저 점토의 되는 이가 남은 이에게 알려주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광덕은 가난한 산림에 집신을 삼아 식구를 먹이며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는 늘 관세음보살의 명호가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신을 삼으시는 동안에도 식구의 끼니를 차리시는 동안에도 가난이 등을 휘게 하는 그 한복판에서도 광덕의 입에서는 늘 관세연 보살이 흘러나오셨습니다. 마침내 인종을 맞으시던 날 광덕은 자리에 누워 마지막 한 마음으로 관세음 보살을 부르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날 밤 엄장의 방 위로 총화한 음악과 빛이 머물렀고 광덕이 정토에 들었음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거부님들 광덕의 일생에는 우리네 일곱 어려움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가난의 옥난 사람 사이의 도난 병의 귀난 그러나 그분은 그 어려움 한복판에서 관세음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한 마음이 임종의 자리를 정토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 부르시던 그 면모가 마지막 순에서도 그분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또 한 일화를 짧게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분황사의 천수관음 앞에서 1000일을 기도하셨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눈먼 아이를 안고 그 어머니는 매일같이 절 마당을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1000일째 되던 날 아이가 마침내 눈을 떴다는 일은 이미 한번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떠올려 보시면 그 안에 진란이 다 들어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난의 움난 아이를 향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도난 새벽마다 일어나야 했던 귀난 그리고 이 아이가 어찌 살아갈까 하는 미래의 풍란 그 어머니 또한 신남의 한복판을 통과해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을 풀어 주신 분이 바로 관세음 보살이셨습니다. 1000일이 길지 않으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한 번씩만 부르시면 1000번이 차는데 3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그 한 번 한 번이 어머니의 칠란을 한 자락씩 풀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부님들 한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정말 부른다고. 풀려질까? 내가 평생을 고생하며 살았는데 어찌 이제와 한 마음으로 부른다고 일이 풀리실까? 그 마음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의심하지 않으시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은품 안에는 한 가지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관세음 보살은 우리가 구하지 않을 때에도 먼저 살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부를 때 그 응답이 한결 빠르다 하셨습니다. 의심은 자비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자비가 머무를 자리를 가리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는 햇살 앞에서 천천히 거칩니다. 부르시는 한마음 한 마음이 그 햇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의심이 드시거든. 그 의심을 누르려 하지 마시고 그 의심을 안으신 채로 한 번 더 부르십시오. 의심을 안고 부르는 한 번이 의심 없이 부르는 백번보다 깊은 자리에 가닿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마음으로 관세음을 모시고 살아가실 때 본인 일상 안에 네 가지 변화가 천천히 자라납니다. 첫째 변화입니다. 일상의 두려움이 한자락 가벼워집니다. 큰 비가 와도 자식의 차가운 말 한마디가 들려와도 예전처럼 오래 마음에 박히지 않습니다. 그저 한 자락 바람이 지나갔구나 하시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십니다. 둘째 변인입니다. 자비심이 자랍니다. 가장 신기한 변화입니다. 늘 미웠던 그 사람의 얼굴이 어느 날 측은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때는 칼처럼 느껴지던 그 사람의 한마디도 그 사람도 그 사람대로 어려웠겠구나 하는 자리로 옮겨 앉습니다. 셋째 변화입니다. 좋은 인연이 다가옵니다. 마음의 안개가 거치면 사람의 결도 달라 보이기 시작합니다. 평소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한 사람이 어느 날 따뜻한 말을 건네 드립니다. 그것이 인연이 다가오는 결입니다. 넷째 변화입니다. 마음의 깊은 표만이 자리 잡고 잠이 깊어집니다. 새벽 3시에 자주 깨시던 분이 어느 날부터 5시까지 한 번도 안 계시고 주무시기도 하십니다. 아침에 일어나셨을 때 어깨가 한결 가볍고 거울에 비친 얼굴이 부드러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부님들의 마음 깊은 곳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비로 들으시고 계신 이 한마디 한마디가 잠든 마음속까지 스며들어 그 자리에 관세음에 자비를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해서 외우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속의 마음이 더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이 변화가 어떤 결로 다가오는지를 다섯 단계로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단계입니다. 첫 사흘에서 일의 사이입니다. 잠자리에 드시는 시간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머리맡에 가벼운 소미불 한 자락이 더 원친 듯한 평온이 옵니다. 둘째 단계입니다. 두 주에서 한 달 사이입니다. 새벽에 깨시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깨셔도 다시 잠드시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한 번씩 깨셨다가도 가슴 한복판이 두근거리지 않으십니다. 셋 단계입니다. 한 달에서 석 달 사이입니다. 미웠던 한 사람의 얼굴이 측은해 보이기 시작하십니다. 그분이 보내신 메시지에 화답할 마음이 천천히 일어납니다. 넷째 단계입니다. 석 달에서 여섯 달 사이입니다. 본인 일상의 작은 일들이 한결 매끄럽게 풀려가심을 느끼십니다. 병원에 가셔서도 의사의 말이 한결 부드럽게 들리고 며느리와의 대화에 가시가 빠집니다. 자식들이 먼저 안부를 여쭙는 일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다섯째 단계입니다. 여섯 달 이후입니다. 마음 한복판에 관세음의 자비가 자리를 잡으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곧장 한 마음으로 관세음을 부르실 수 있게 되십니다. 이 자리에 이루시면 신란이 와도 칠란이 아니게 되는 별을 만나십니다. 어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항복판에서 관세음과 함께 계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부부님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보문품 칠란의 가르침을 한 사람이라도 더 들으시도록 가족이나 가까운 분길 이 법문을 들려드리시는 이 그 자체가 큰 벚꽃이 됩니다. 한 분이 들으시면 한 분의 칠란이 풀리고 두 분이 들으시면 두 분의 칠란이 풀립니다.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잠드시기 전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 소리를 흘려 드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부르시는 그 한 마음 한 마음이 본인 일상 안에 불을 찾아들게 하시고 물을 얕은 자리로 보여주시며 바람을 가라앉히시고 칼을 부서지게 하시며 어둠을 멀어지게 하시고 묶인 손발을 풀어주시며 미운 사람의 얼굴마저 측은하게 바꾸어 가심을 천천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 자락이 다 풀리는 자리 그 자리가 곧 관세음. 보살의 자비가 머무르시는 자리입니다. 버부님들 둘째 갈래까지 들으시며 칠란이 어떻게 풀려나는지 마음 깊은 곳에 변화가 어떻게 자리 잡아 가는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셋째 갈래로 넘어가시겠습니다. 셋째 갈래는 관세음 보살과 함께 사는 일상의 작은 실촌 12 가지 마음길입니다. 다 외우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흘려 들으시면 마음 깊은 곳이 알아서 죽습니다. 듣고 잊어버리셔도 좋습니다. 잊어버리신 자리에서 보살님이 대신 기억해 주십니다. 먼저 한 일화를 드려 드리려 합니다. 신라의 큰 승인 의상대사 이야기입니다. 의상 대사께서는 동해 바닷가 낙산이라는 곳에서 관세연 보살을 챙견하시려고 발언을 세우셨습니다. 그 바닷가 동굴에 들어가 일주일을 한 마음으로 관세연 보살을 부르셨습니다. 파도 소리만 밤낮으로 들려오는 자리였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보살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의상 스님께서는 절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일주일을 더 부르셨습니다. 그제서야 동굴 안의 푸른빛이 가득 차고 관세연 보살께서 친히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보살님께서는 한 자루의 시정 염주와 하날의 여의보주를 의상 대사께 전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리 위에 산이 있고 그 산 위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자리에 저를 세워라. 의상대사께서 그 말씀대로 저를 세우시니? 오늘날까지 동해를 굽어보며 서 있는 낙산 사가 바로 그 절입니다. 버부님들 이 일화에서 우리가 살필 자리는 화려한 친견의 장면이 아닙니다. 의상 스님께서 일주일이 지나도 응답이 없을 때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주일을 부르신 그 한 마음 거기가 자리입니다. 한 마음으로 부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살님께서는 더 깊은 자리에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네 일상도 같은 이치입니다. 한 번 두 번 불러서 응답이 없는 듯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살피고 계십니다. 의심의 자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시는 그 한 걸음이 곧 응답을 부르는 걸음입니다. 이제 함께 사는 길 열두가지를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 앞에 일곱 가지는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제물 없이 베푸는 7 가지 무죄 출시라 부르는 길입니다. 비의 다섯 가지는 시니어 버브님들 일상에 맞춰 추려본 길입니다. 모두 관세음 보살의 자비로 일상의 칠란을 풀어 가는 같은 한 마음입니다. 들으시면서 누가 이건 내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이네 하시는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보살의 자리입니다. 첫째 부드러운 얼굴로 사람을 대하시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이를 화한시라 하셨습니다. 얼굴이 곧 베품은 자리라는 뜻이지요. 관세연 보살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그 얼굴에는 늘 잔잔한 미소가 머물러 있습니다. 그 미소 한 자락이 1004람의 마음을 풀어 줍니다. 어부님들께서 자녀나 손주를 보실 때 이웃 어르신을 만나실 때 잠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십시오. 그 한자랑 미소가 그 자리에 있는 어둠 한 조각을 풀어 갑니다. 거울 앞에서 한 번 연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 안에 자비가 있으면 얼굴은 저절로 그 자비를 따라갑니다. 둘째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시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이를 언씨라 하셨습니다. 말씀이 곧 약이 된다는 뜻입니다. 칼 같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베어 칠란을 만들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칼을 무디게 합니다. 수고했어 한마디 고마워 한마디 고생했지. 한마디 짧은 말이 마음 안에 작은 옹문을 엽니다. 자녀가 무뚝뚝하게 지나치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그 한마디는 자녀의 잠든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가라앉아 어느 날 문득 그 자녀의 입으로 다시 흘러나옵니다. 셋째 진심으로 듣는 일입니다. 예쁜 분들께서는 이를 싱실아 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베푼다는 말씀이지요. 관세음 보살께서는 우리 음성을 살피실 때 한 마음으로 들으십니다. 다른 일을 하시면서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손주의 이야기 배우자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잠시 손에 든 일을 내려놓고 그 사람을 바라봐 주십시오. 그 짧은 들음이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살립니다. 답을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들어 주시는 그 한 자락이 그 사람의 친란 한 가지를 풀어 줍니다. 사람은 들어줄 자리만 있어도 절반은 살아납니다. 넷째 부드러운 눈빛으로 보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이를 안 싫어하셨습니다. 천 가지 눈으로 살피시는 관음에 그 눈빛 가운데 한자락이 우리 아내도 깃들어 있습니다. 손주의 얼굴을 보실 때 자녀의 흰머리를 보실 때 그 눈빛이 잔잔해지면 그 자리에 자비가 흐릅니다. 못마땅한 눈으로 보던 자리를 한번 부드럽게 바꾸어 보십시오. 그 한 번의 눈빛이 그 사람의 하루를 어쩌면 그 사람의 한 평생 한자락을 바꿉니다. 다섯 질 몸으로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옛 분들께서는 일을 신실하였습니다. 무릎이 아프시고 허리가 고프셔도 짐 한 자락 들어 들이실 수 있고 문 한번 잡아 드리실 수 있고 자리 한번 닦아 드리실 수 있습니다. 그 작은 몸짓이 곧 천손 가운데 한 손이 됩니다. 큰일을 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주가 먹다 흘린 자리를 닦아 주시는 그 한 번의 손길이 부엌에서 며느리가 일하실 때 그릇 하나 헹궈 주시는 그 한 번의 손길이 천손 가운데 그 한 손입니다. 여섯째 자리를 양보하시는 일입니다. 옛분들께서는 이를 상주하시라. 하셨습니다. 시내 버스에서 절집 마루에서 지하철 자리에서 자리 하나를 비워 드리는 그 마음이 보살의 마음자락입니다.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에 자비가 들어옵니다. 다리가 아프셔서 자리를 못 비우시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은 마음 안에 자리를 비워 보십시오. 미운 사람 한 분에겐 마음 한 자락을 내어 드리는 일도 곧 자리 양보입니다. 일곱질 편안히 쉬어가실 자리를 내어 드리는 일입니다. 예분들께서는 이를 방사시라 하셨습니다. 손님 한 분을 마루에 앉히시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드리는 니 지친 이웃에게 잠시 쉬어 가시라 권하는 일 그 작은 자리 하나가 누군가의 큰 어려움 한 자락을 풀어 줍니다. 옛 어른들께서는 이를 가리켜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한 자리를 내어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 한 자리가 그 사람의 칠란을 푸는 자리이고 동시에 본인 되길 복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버부님들 여기까지가 옛 부처님께서 이어주신 이곳까지 베푸지입니다. 다 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에 닿는 한 가지만이라도 오늘 한번 행해 보시면 그 한자락이 곧 관음의 천손 가운데 하나가 되어 본인의 칠란도 함께 풀어갑니다. 베풀면 베푼 만큼 본인 마음의 어둠이 먼저 가벼워지는 까닭입니다. 베푸는 자리에 신랑이 머무르지 못합니다. 자비가 들어오면 어둠이 자리를 내주는 까닭입니다. 이제 시니어 부부님들 일상에 맞는 길 다섯 가지를 더 권해 드리겠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큰 절에 가시지 않으셔도 무릎이 아프셔서 저를 못 하셔도 베개에 머리를 얹으신 그 자리에서 곧 행하실 수 있는 길입니다. 여덟째 내일 밤 잠자리에 누우시기 전 베개에 머리를 얹으신 그 자리에서 관세음 보살 면모를 일곱 번 가만히 불러보십시오. 일곱 번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보문품에서 일러 주신 일곱 가지 어려움 불난 순환 풍란 도난 비난 온난 원정남 그 유곡 자락이 한 번 한 번 부르실 때마다 한자락씩 가벼워진다는 마음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첫 번째에는 갑자기 닥칠 큰일의 두려움이 한 자락 가라앉고. 두 번째는 거센 비바람의 걱정이 한자락 잦아들고 그렇게 일곱 자락이 차례로 풀려갑니다. 큰 소리 내실 필요 없습니다. 입술만 움직이셔도 마음 안에서만 부르셔도 보살님께서는 살피십니다. 이 곱번을 다 채우지 못하시고 잠드셔도 좋습니다. 그 잠든 자리까지 보살의 천손이 따라 들어가십니다. 아홉 질 자녀나 손주에게 잔소리 계신 한마디 권해 드립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관세연 보살길 너희 어려운 풀어주시도록 매일 비고 있단다. 이 한마디면 됩니다. 자녀가 그 자리에서 무엇아 답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그 말씀은 자녀의 마음 깊은 곳에 천천히 가라앉아 어느 어려운 날 문득 떠오르는 등불이 됩니다. 잔소리 백마디보다 이 한마디가 그 아이의 칠란 한 자락을 푸는 큰 힘이 됩니다. 자녀의 인생을 다 책임지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살님께 자녀를 한번 맡기시는 그 한자랑 마음이 자녀에게도 본인에게도 큰 휴식이 됩니다. 열질 무서운 일이 갑자기 닥칠 때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깜짝 놀라거나 무언가 큰 일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그 자리에서 즉시 단 한 번이라도 좋습니다. 관세음 보살 한 마음으로 부르십시오. 길게 부르실 필요 없습니다. 그 한 번에 마음의 거센 바람이 한자락 가라앉습니다. 봄은 품에서 이어주신 그대로 한 마음으로 부르는 그 음성을 보살님께서는 곧 살피십니다. 약속 드리듯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한번 부르신 그 자리에서 마음 깊은 곳이 한어읍 가라앉는 것을 직접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한 호흡이 칠란 한 자락을 푸는 자리입니다. 11 째 먼저 떠나신 이웃을 위한 회향입니다. 사별의 슬픔을 겪으신 이웃이 곁에 계시다면 그분을 위해 하루 한 번이라도 마음속으로 관음 자비를 회양해 드려 보십시오. 그분의 슬픔이 부처님 자비 안에서 가벼워지소서. 이 짧은 한 마음이 그분의 마음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회향이 본인의 마음 안에서도 함께 자비를 키워갑니다. 베푸는 자리가 곧 받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사별의 슬픔을 겪고 계시는 버부님이시라면 그 슬픔의 자리에서 다른 한 분을 떠올려 회향해 드려 보십시오. 슬픔이 슬픔을 만나면 가벼워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열두째 이 자리는 잘 들어두시기 바랍니다. 부부님들께서 내일 밤 이 수면 법문에 귀를 기울이시며 잠드시는 일 그 일 자체를 본인 일상의 진란을 푸는 관음 기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 법문을 들으시는 동안 마음은 가만히 보살의 명호를 따라가고 호흡은 잔잔해지고 잠든 마음 깊은 곳에는 자비가 한켜 한켜 쌓여 갑니다. 일곱 번 명호를 부르시고 잠드신 그 밤이 곧 일곱 가지 어려움이 한 자락씩 가벼워지는 밤입니다. 큰 절에 가시지 않으셔도 큰 시간을 내시지 않으셔도 베개에 머리를 얹으시는 그 자리가 곧 관음의 자리입니다. 내일 밤 듣고 잠드시는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 한 달 뒤에는 본인도 모르시는 사이에 마음자락이 가벼워져 있을 것입니다. 1년 뒤에는 식구들이 먼저 알아챌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요즘 얼굴이 참 환해지셨다고. 그 환해지신 얼굴이 곧 의상 스님께서 동굴에서 친견하신 그 푸른 빛 한자락입니다. 부부님들 두 가지를 한 번에 다 행하시려 애쓰지 마십시오. 오늘 밤 단 한 가지 잠들기 전 관세음 보살 일곱 번 부르는 그 한 가지만 이라도 시작해 보십시오. 그 작은 시작이 의상 스님께서 동굴에서 일주일 또 일주일을 부르신 그 한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새벽 마음 안의 동굴에 푸른 빛이 가득 차고 본인 일상의 칠란이 한 자락씩 풀려가는 자리를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는 멀지 않습니다. 베개에 머리를 얹으신 바로 그 자리 보살님께서 이미와 계신 자리입니다. 갈래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자리에서는 오늘 들으신 세 갈래를 가만히 내듭짓고 잠자리로 함께 들어가시겠습니다. 버부님들 이제 오늘 말씀드린 내용을 한 번 더 가만히 짚어 보겠습니다. 잠드시는 마음으로 천천히 따라오시면 됩니다. 오늘 첫 번째로 말씀드린 것은 보문품의 자비였습니다. 관세용 보살은 모든 음성을 살피시는 분이시라 한마음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즉시 응답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녹일 부득과 달달박박 두 도박이 깊은 산속에서 관음을 친견한 일화도 함께 풀어드렸습니다. 부르기만 해도 응답이 5는가? 그 의심마저 어머니의 자비처럼 따뜻하게 푸어 드린다는 그 자리에 머물러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린 것은 칠란 일곱 가지 어려움이었습니다. 분란과 순환 풍란과 도난 비난과 옹남 그리고 원정란 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큰 물에 떠내려가도 곧 얕은 곳을 얻으며 거센 바람도 가라앉고 칼날도 부서지며 어둠의 두려움도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그 말씀 광덕과 엄장의 임종 장면도 같이 떠올려 보셨습니다. 질강이 풀려갈 때 자비SIM이 자라고 좋은 인연이 다가오며 마음 깊은 곳에 평안이 자리 잡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 번째로는 일상 12가지 실천을 풀어드렸습니다. 부드러운 얼굴과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으로 듣는 마음 부드러운 눈빛 몸으로 드리는 보살핌 자리 양보 편안한 자리 그리고 잠들기 전 7번 부르기 잔소리 대신 한마디 기도 무서운 일에 즉시한 마음 이웃을 위한 회양 매일 밤 이 본문 듣는 일 자체를 칠란푸는 기도로 삼는 것까지 의상대사가 낙산사 동굴에서 관음을 친견한 그 자리도 함께 머물러 주셨습니다. 이 세자락의 말씀을 짧은 회양계 한 줄로 거두어 드리겠습니다. 한국어로 풀어올립니다. 원하옵건대. 이 공덕이 모든 곳에 두루 미쳐 저와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부처를 이루어지이다. 법원님들 2 한 9절만 마음에 얹고 다음 자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제 잠드시는 몸을 한 번 더 풀어드리겠습니다. 다 따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들으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먼저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갑니다. 이마가 부러지십니다. 미간이 풀어지십니다. 눈썹 사이에 작은 힘이 사르르 가라앉으십니다. 두 눈꺼풀이 무거워지시고 그 무게가 베개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으십니다. 입가의 힘도 풀어지시고 어금니에 모였던 힘도 사르르 풀어지십니다. 목과 어깨로 내려갑니다. 평생 자식을 업고 키우신 어깨. 평생 살림을 이곳 사신 어깨이십니다. 그 어깨가 대개 양옆으로 흘러내리듯 풀어지십니다. 가슴이 한번 부풀고 다시 한번 가라앉으십니다. 든 뒤에 굳은 자리도 매트리스 안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가십니다. 허리에 묵은 힘도 무릎에 시린 자리도 함께 풀어지십니다. 버부님들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잠드시는 머리맡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세영 보살엘 천 가지 손이 그 어둠을 가만히 살피고 계십니다. 한 손은 이마 위에 한 손은 가슴 위에 한 손은 발취에 또 한 손은 창문 너머 멀리까지 펼쳐져 계십니다. 그 손은 무겁지도 않으시고 차갑지도 않으십니다. 어머니가 잠든 자식의 이말 살짝 얹어 주시는 그 손길과 다르지 않으십니다. 옛날 만공 선사 계실 적의 일이라 합니다. 늦은 저녁 절마당에 가난한 노부인 한 분이 찾아오셨답니다. 차림은 난무하시고 김은 구부셨고 손에는 작은 보따리 하나뿐이셨답니다. 시자가 막아서려 하니 만공 선사께서 손수 마당으로 내려오시어 그 노부인을 따뜻한 방으로 모시고 들어가셨다 합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수 따라 드리시고 그 노부인의 한숨 한 자락 한 자락을 끝까지 들어 주셨다 합니다. 노부인께서는 자식 잃은 슬픔을 한참 오신 뒤에야 보따리를 풀어 작은 떡 한 덩이를 내미셨고 만공 선사께서는 두 손으로 그 떡을 받아 부처님 앞에 먼저 올리셨다 합니다. 빛날 시자가 엿주었답니다. 스님 어찌 그리 작은 노부인 한 분께 그토록 정성이셨습니까? 만공 선사께서 가만히 웃으시며 답하셨답니다. 관세음 보살께서 그 모습으로 오신 줄을 어찌 모르겠느냐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곧 관음을 만나는 자리이니라. 법원님들 그 말씀이 그저 옛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관세연 보살께서는 부처의 몸으로도 비구의 몸으로도 평범한 노부인의 모습으로도 잠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