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12:37~43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마지막 날에 심판받는 자 12:44~50
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무리는 그분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관리들은 출교당할까 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아버지 명령대로 말씀하신 예수님을 저버린 자는 마지막 날에 심판받습니다.
--------
출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12:37~43
예수님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받은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선재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고 예언한 일입니다(38~41절; 사 6:10). 그들이 믿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유대 관리(산헤드린 회원) 중에도 믿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출교를 당할까 봐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영광을 따르면 구원의 은총과는 멀어집니다.
더 깊은 묵상
●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고도 사람들이 믿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사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중에서 무엇을 우선시하나요?
---------------
마지막 날에 심판받는 자 12:44~50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분의 정체성과 사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44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46절). 그분을 믿는 자는 어둠에 머물지 않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47절).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예수님 말씀이 심판 기준이 됩니다(48절).
넷째,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자기 마음대로 하신 게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그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49절). 그 명령은 ‘영생’과 직결됩니다(50절). 이렇듯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빛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습니다.
더 깊은 묵상
●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성과 사역에 대해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님이 반복해서 주시는 말씀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한절묵상:요한복음 12장 42~43절
믿음에는 용기가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관리가 많았지만, 그들은 믿음을 드러내지 않고 숨깁니다. 바리새인들의 공격으로 출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음을 숨긴 진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그리고 개인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얻어도 예수님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어도 예수님만 얻는다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버릴 때 우리 삶은 주님의 거룩한 뜻대로 재구성될 것이다. - 데이비드 플랫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에 빼앗긴 제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영생의 빛으로 오신 주님 앞에 저의 어두운 죄를 벗어 버리고 주님의 빛을 따라가길 원합니다. 완악하고 믿음 없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삶으로, 입술로 주님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요한복음12:37-50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것을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입니다
37절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니 그를 믿지 아니하니"
예수님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38절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힌은 이사야53장 1절 본문 38절에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사야53장은 예수님의 수난을 말씀하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임을 말씀했습니다
다시 이사야6장 10절을 인용합니다본문 40절입니다 "그들이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이사야6장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다시말해 이사야의 소명을 말씀합니다
이사야가 소명을 받을때 사람들이 믿지 않을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41절에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고 했습니다
곧 이사야는 예수님을 보았으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거듭 예수님은 44절에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50절에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예수님이 하니님이시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상의 사실에서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동시에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46절에 빛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어둠에 거하지 않는다 말씀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자 돌아가서 38절에 "그들이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의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시려 함이라"는 말씀을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것이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는 말씀에서
첫번째 깨닫는 것은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오게 했다는 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이 죽을수 밖에 없었다는것입니다
두번째 깨닫는 것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 흘러 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믿지 않았다면 이방인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흘러 가는 것입니다
다시힌번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으로 큰 복임을 깨닫고 이 복을 흘려 보내는
우리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44~45절).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과 하나님은 하나(10:30)라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44~45절,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특정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독자로서가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께로부터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삶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증명해 볼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여기 있잖아~~’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내 자신을 통해 하나님을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답게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46~47절).
예수님은 빛으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는 주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46절)입니다. 어두움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악함과 죄악과 거짓등과 같은 악한 세력이 지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이러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시려고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필연적으로 심판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신의 말을 듣고 지키지 않을지라도 심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47절)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어서 빛 가운데 생활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구원과 생명을 누리며 맛보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통해 영생은 물론 더욱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행함이 없는 신앙이라면 죽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을 읽고, 들으며,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계 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마음으로만 믿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삶 가운데 힘써 지켜 나아가는 영생을 얻은 자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말씀이 기준이 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48~50절).
예수님은 종말론적 심판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그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48절)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친히 명령하신 것(49절)을 말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은 영생이며, 아버지께서 말씀하여 주신 대로 말할 뿐(50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는 말씀을 무시하고, 천국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결국 구원의 복음을 거부함으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만을 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한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을 지키므로 영생의 삶을 소망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매일의 삶이 주님의 말씀을 등불로 삼아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어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하나님을 온전히 보여 주신 것처럼, 삶을 통해 예수님을 온전히 보여 주는 믿음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영생에 이르는 생명의 빛 가운데서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요 12:44~50절)...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을 수 없는 표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지 않음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입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요12:39~40)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는데,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배경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배경은 주의 영광을 보았을 때라는 점입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12:41) 무슨 영광일까요? 주권자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욥25:2) 따라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 것은 그들이 믿으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는데 그것을 막으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그 완고한 상태로 유기하신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롬1:28) 그렇다면 왜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적극적으로 멀게 하사 믿지 못하게 하신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걸까요? 하나님이 모든 것의 유일한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딤전6:15) 믿음이 구원을 얻게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대한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믿음에 대한 주권도 가지심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구원의 주권자이신 주께서 그들의 눈도 열어 믿게 할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작정하시고, 오히려 미혹의 역사를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그러나 택하신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사 복음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2:13~14)
그러므로 우리가 믿게 된 것은 우리가 믿음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믿음을 주사 믿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에 따른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감사를 넘치게 하기 원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참으로 넘치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실 줄 믿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아
1-1. 왜 믿지 않는가(?) [12:37-40]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요한은 이사야53:1절의 말씀과
이사야 6:10절의 말씀을 근거로 인용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설득하셨지만
그들이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돌이키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고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신 것이
예수님의 시대까지 이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과연 한 사람이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그 눈이 열려서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고침을 받아야 하는데 [12:39]
이렇게 되는데는 여호와의 팔[능력] 이나타나게 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은혜가 차단된 이런 배경 가운데 오셔서
구약 선지자들의 완성이 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예수님의 사역은 헛수고였고
과연 실패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 대한 해답은
요한이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 6장의 결론으로 제시되는 그루터기[남은 자] 사상 곧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자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6:13]
이스라엘의 신앙이 다 바알에게로 돌아가고
불신앙이 최고조에 이른 것 같았던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상징적 수로써) 칠천 인을 남겨 두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엘리야의 시대 뿐 아니라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리고 오늘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희망의 말씀이며 내가 이 남겨진 그루터기와 같고
남겨진 칠천 인에 포함된 사람이기를 소원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분석이다.
사람들의 반응
요한복음 기자인 사도 요한은 이사야 53장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이 예언의 성취라고 강조하고 있다. '들은 바' 말씀과 '주의 팔'로 지칭되는 행하신 표적들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37절은 예수님의 표적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믿지 않는 이유
요한은 한 걸음 더 나가 그들이 불신하는 이유를 이사야 6:10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저들의 눈과 귀를 무디게 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불러도 불러도 듣지 않는 자들을 자기들의 죄에 방치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완고하게 한 것은 출교를 당하고 자기들이 가진 영광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 우리도 자신이 가진 기득권, 세상 영광을 내려놓아야 믿음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길
요한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인용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참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빛에 거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또 그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망설이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사람의 영광을 탐하게 하는 유혹을 떨쳐내고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44,45절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대리인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계시의 절정으로서 하나님의 성품과 의지를 가장 잘 반영하는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부정하고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46절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어두움과 함께할 수 있는 여지는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둠의 일을 추구한다면 진정으로 참된 믿음인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불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의로운 백성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도록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47,48절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심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처럼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하실 것이고, 그 순간까지 구원의 기회를 열어 두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선포하신 ‘말씀’만은 죽지 않고 살아서 마지막 심판 날에 그들에게 기소장이 되고 판결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남기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씀으로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셔서 지금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없고, 순종하지 않고서 구원을 얻을 길은 없으며, 회개하지 않고 심판을 면할 길은 없습니다. 말씀 묵상이 신앙생활의 액세서리가 되지 않고 진실한 교제와 순종의 시간이 되도록 간구합시다.
49,50절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해야 할 고난과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증언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태초의 말씀(1:1,2)이셨는데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선포하셨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어떤 것도 시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기쁨과 영생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행하신 예수님의 겸손한 순종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에 순종할 때 그 삶 자체가 영생이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영생을 충만하게 누리고 있습니까?
기도
공동체-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둡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줍니다. 47절은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이야기이고 48절은 예수님의 재림, 즉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의 칼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실 어린 양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 자로 이 땅에 오셨다면 요한복음 1-12장에 나왔던 인물 중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많은 표적을 체험하고 목격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둠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사랑 표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초림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는 칼을 가지고 정죄하러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죄하시는 잣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말과 증거는 오직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라 시인하지 않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종말)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말로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에게 죽음은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종말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 뒤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믿는 자들이 죽기를 싫어할까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룬 다음에 예수님께서 오시길 바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영생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생보다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7장 3절에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삶보다 이 땅에서 풍요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들은 죽음 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들은 이 땅의 풍요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관계가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욱더 알아가는 은혜가 풍성하길 소원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14:30-31)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말하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출18:8-11)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14:6-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 6:9~13)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1~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7~3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 이사야 49:8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무지하고 죄의 어둠 가운데 갇혀 있었던 우리의 생각과 육체와 영혼을 깨우시기 위해
친히 그 아들을 보내시고, 공의와 진리의 안에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모든 값을 완전히 치르심으로 깨워 주시고 일으켜 주신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하루하루가 은혜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셔서,
부르심에 후회하심이 없으신 주님을 쫓아 삶을 드리고 시간을 내어 드리는
거룩한 군사 되게 해 주시옵소서. 때론 세상은 하나님이 없다,
주님의 십자가가 어리석다 하지만, 택함 받은 제자로서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먼지와 같은 이땅의 인생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깨닫고 알리는 시간으로 살아 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열방 곳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우시고,
그 가정과 자녀와 동역자들에게 힘과 능력을 덧입혀 주시옵소서.
질병과 고통 수많은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주의 백성들을 긍휼이 여기사,
회복과 치유의 빛으로 밝혀 주시옵소서. 분쟁과 다툼, 분노와 미움으로
사로잡혀 있는 이 나라와 백성을 다시금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으로 불러 주시고,
넉넉히 감당할 거룩과 순결로 채워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